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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참회의 기도를 드려라! (욘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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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는 말

“참회(懺悔)”라는 말은  “죄악을 자각하여 이것을 뉘우치고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고백하는 것”을 말합니다. 참회는 ❶죄를 뉘우치는 회오(Contrition)로 시작합니다. ❷회오로 시작하여 고백(Confession)에 이릅니다. ❸고백으로 무르익어 회개(Repentance)에 이릅니다.  ❹회개한 후에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 맺는 생활이 시작됩니다. ❺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자손 만대에 받습니다.

1.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세상 만물은 하나님의 뜻을 품고 있습니다. 의미 없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존재한다는 자체가 사명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낙태한 핏덩이로부터 시작하여 969세를 살았던 므두셀라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 있습니다.

1941년 12월 7일 미국의 진주만 기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날은 평화로운 주일(일요일)이었습니다. 태평양상의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일본군 비행기 353대가 진주만을 향해 벌떼처럼 돌진했습니다. 진주만이 공격받기 1시간 전 2명의 미군 병사가 레이더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장교에게 즉시 이를 보고했습니다.

그러나 장교는 레이더 스크린을 까맣게 채운 물체를 보고도 막연한 낙관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의 뇌리에는 저녁에 열리는 파티생각뿐이었습니다.

장교는 병사들의 급한 보고를 받고 태연스럽게 말했습니다.

“걱정마라. 저것은 우리 비행기다.”... 장교의 대책 없는 낙관과 무관심은 1시간 후 엄청난 비극으로 이어졌습니다. 진주만은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미군 3000이상이 사망하고 177대의 항공기가 파괴되고 수십척의 군함이 침몰했습니다.  사명을 이행하지 않았던 한 미군 장교의 실수는 엄청난 재난을 몰고 왔습니다.

잠언 16:4절에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의 후손 중에는 가인의 계보가 있습니다. 가인의 계보는 악인들의 계보입니다. 가인은 놋땅으로 쫓겨나 살면서 에녹을 낳았고 에녹 성을 쌓았습니다. 가인은 에녹 성을 중심으로 세속문화, 살인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가인은 에녹성에서 생활하면서 일부다처의 조상인 라멕을 낳았습니다. 라멕은 살인문명의 조상인 두발가인을 낳았습니다. 두발가인은 살인무기를 만들어 살인문명을 발달시켰습니다. 가인은 아담보다 칠 배나 더 악했습니다. 라멕은 아담보다 77배나 더 악했습니다. 드디어 노아시대에 와서는 네피림이나, 유명한 자들의 악은 하늘에까지 닿을 정도였습니다. 

아담의 후손 중 아벨과 셋의 계보는 의인들의 계보였습니다. 셋은 에노스를 낳았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셋의 계보에서 노아와 셈이 태어났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도울 사명을 받아 누렸습니다. 

요나서 1:2절에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악독한 큰 성읍 니느웨를 회개시킬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니느웨는 이스라엘의 적국이었습니다. 그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선택하셔서 부르셨습니다. 그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것을 쳐서 외치라”고 하셨습니다.

사명은 하나님을 대신하는 일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다가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희생될 수도 있습니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2. 혹자는 사명을 등지고 도망하기도 합니다.

야생동물은 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은 야성 때문에 가축으로 길 들여지지 않습니다. 야생동물을 잡아 우리에 가두어 놓으면 철조망과 인간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탈진합니다. 광릉수목원의 백두산 호랑이가 맹수 구실을 못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야생 동물에게는 야성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자유롭게 살아가려는 야성이 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야성이라고 합니다. 인간의 야성은 타락이후 자연스레 생겨났습니다.

아담은 동산 어슥한 곳으로 도망갔습니다. 가인은 놋땅으로 도망갔습니다. 모세는 호렙산 이 골짝 저 골짝으로 도망 다녔습니다. 호세아의 부인 고멜은 당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 다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요나서 1:3절에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말했습니다.

요나의 신관은 뚜렷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팔레스틴의 수호신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팔레스틴만 벗어나면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으로 착각을 했습니다. 자기가 하나님을 피하면 피해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욥바항으로 내려가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습니다. “다시스”는 어디인지 확실치는 않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틴의 서쪽인 동시에 멀고 먼 지역임에는 분명합니다.

다시스(Tarshish)는 “노란빛을 띠는 보석, 금빛깔을 띠는 보석”이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이상화되고 있는 항구, 소망의 항구, 낙원과 같은 곳으로 여겨졌습니다. 
                                 

                                                                  <욥바>


다시스는 정교하게 세공된 은을 수출했으며(렘10:9), 납이나 철을 수출하는 항구도시였습니다(겔27:12). 금이나 은, 상아, 잔나비, 공작 등을 수출하는 곳이기도 했습니다(왕상10:22). 당시 다시스는 이상향이며, 노다지가 쏟아지는 지상 낙원으로 여겨졌습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선교하다가 죽는 것보다는 다시스로 가서 장사를 하여 거부가 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요나는 똑똑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갔습니다. 아무도 요나를 말리지 못했습니다. 티켓을 사서 승선하는데 척척 일이 잘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교회로 나옵니다.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은 십자가를 지라는 명령입니다. 머리 나쁜 사람들은 엘리야와 같이 죽으나 사나 복종합니다.

그러나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들은 요나와 같이 세상으로 도망칩니다. “예수 믿다가는 큰 일 나겠구먼, 교회 다니다가는 거들 나겠구먼, 에라 모르겠다 살고나 보자”라고 외치면서 도망칩니다.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3. 하나님이 내리시는 대풍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명을 받들기 위하여 죽음을 각오한 자들에게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닥아 오십니다. 그러나 사명을 등지는 자들에게는 공의로우신 심판의 하나님으로 닥아 오십니다.

하나님은 요나가 도망갈 수 있는 데까지 도망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비도 넉넉하게 허락하셨습니다.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도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수속을 밟는데 하등의 어려움이 없도록 간섭치 않으셨습니다. 날씨도 좋았습니다. 선장과 승객들도 맘에 들었습니다. 혹시 하나님에게 들킬까봐 배및층까지 내려가 자리를 잡고 두러 누었습니다. 이내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보우난자(Bonanza) 즉 노다지를 찾아 나선자의 길이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요나의 이 모습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나서 1:4절에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가는 자의 길을 가로막기 위해서 바다에 대풍을 일으키셨습니다. 대풍이 폭풍으로 바뀌었습니다. 요나가 타고 가던 배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배가 부서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배및층에서 잠만자고 있었습니다.

바울이 로마로 호송되어 갈 때에 276명을 태운 배가 그레데 해변을 행선할 때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났습니다. 14일간 표류하다가 아드리아 바다의 멜리데 섬 근처에서  좌초위기에 놓였습니다.

그날 밤 바울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27:24-25)고 말했습니다.

도망가는 요나는 배및층까지 내려가 사망의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교를 목적으로 로마로 가고 있던 바울은 배위에서 밤이 맞도록 하나님께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4. 하나님께서 큰 물고기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인간에게 필요한 만물을 예비하셨습니다. 여자를 창조하시기 전에 남자를 예비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로 가정을 이루기전에 에덴의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홍수의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방주를 예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에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예비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으로 가기 전에 번제를 드릴 양을 예비하셨습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려가기전에 애굽에 보디발의 집을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도망가다가 풍랑을 만난 요나를 눈여겨보셨습니다. 성난 인간들에게 버림을 받을 것을 아시고 미리 요나를 구출할 방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요나서 1:17절에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뱃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을 때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습니다. 뱃사람들은 그 광경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을 겁니다. 자기의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고 도망가는 자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요나에게 큰 물고기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수단이었습니다. 큰 물고기는 요나를 삼키고 삼일삼야동안 지중해를 누볐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죽지 않았습니다.

태아가 어미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삽니다. 물론 어미가 모든 것을 대신해 줍니다. 요나가 고기 뱃속에서 삼일삼야를 지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대신하여 모든 것을 해주셨습니다.

요나는 2:2절에서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를 “스올”이라고 했습니다. “스올”이란 “무덤, 음부”를 말합니다. 요나의 사례를 보아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사명을 등져 도망하는 자의 최종 종착역은 큰 고기 뱃속과 같은 음부와 무덤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5. 하나님께 참회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요나의 도주 생활의 7단계 경험은 하나님을 떠나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 올 수밖에 없는 인생들의 경험들입니다. 불순종에서 순종으로 회귀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불순종하면 환난이 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거절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우리들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러한 스텝을 밟고 있습니다. 불순종은 환난을  향해 돌진하는 겁니다.

2) 캄캄함 음부로 들어갑니다. 

요나의 육체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의 영혼은 지금 음부의 공포로 싸여 있습니다. 음부의 상복이 그의 몸과 마음, 영혼을 휘감고 있습니다.  비로소 그의 영혼이 깨닫게 됩니다. 내가 음부 즉 무덤에 들어 왔구나...

3) 영혼이 비로소 고백하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손이 자기를 체포하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당신이 나를 깊은 데로 던지셨나이다. 사람이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깨달을 수 있도록 준비되기 전에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자비를 바란다면 반드시 자기의 죄를 깨닫고 고백해야 합니다. 

4) 하나님만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요나는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나이다”(욘2:4)라고 했습니다.

성전에서 버린 사명, 성전에서 다시 찾겠다는 회개와 자복의 기도였습니다. 모든 환난과 재난의 시련은 참회의 기도부터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데서 무덤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음부의 고통이 사라집니다.

5) 하나님께 서원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 없는 영혼의 처소는 밀폐된 그릇과 같습니다. 비닐을 덮어쓴 것과 같습니다. 바다 괴물의 배에 갇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무덤에 매장된 것과 같습니다.

그러한 환경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서원기도입니다. 서원기도는 큰 믿음이 필요합니다. 서원 기도의 입을 열면 죽음의 문턱이 사라집니다.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탈출합니다. 

요나는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욘2:9)라고 기도했습니다.

6) 환난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욘2:10)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육지에 토함을 받았습니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욥바 항의 어느 지역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이 됩니다. 죽도록 도망가 봐야 결국은 그 자리로 다시 끌려오게 되리라는 겁니다.

7)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하게 됩니다.

요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욘2:9)라고 말했습니다. 요나의 기도는 참회의 기도로 시작하여 감사의 기도로 끝납니다. 참회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감사하면 구원이 문앞에 임박했다는 증거입니다.

끝맺는 말

요나의 참회의 기도는 자기도 살아났습니다. 니느웨도 살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도 메시지를 선포하여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열왕기하 14:25-26절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로 하신 말씀과 같이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지경을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도말하여 천하에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신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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