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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창립기념] 진리의 기둥과 터 (딤전 3: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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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가 전개되는 세계역사의 모든 곳에는 항상 교회가 있었습니다. 역사의 모든 현장 속에 있었던 교회들은 제각기 자기 본연의 사명을 감당하느라 부산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또는 세상일과 무관한 것이 교회라고 정의하면서 세상일에 침묵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의 교회 역시 개신교 역사 일백년 동안 줄곧 한국의 역사 속에 존재했습니다. 나름대로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많은 힘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한국 교회가 방향을 잃고 본연의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세상의 조류에 표류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제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많은 교회들이 세상의 조류에 휩쓸렸고 지금도 한국 교회의 상당한 교회, 어쩌면 우리 교회도 상당부분 사람들에 의해서 세상 조류에 흔들리는 교회일지도 모릅니다. 계속해서 깨어 정신 차리지 않으면 우리가 교회를 세상조류에 흔들리는 교회로 만들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관점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한국 사회와 역사의 방향을 변혁시킨 원동력이 되어 온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은 교회 수가 많거나 교회의 재정이 넉넉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라도 살아있는 교회가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살아있는 교회를 통하여 당신이 하실 일을 하십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이 사회를 위하여 존재해야 합니다. 이 사회와 무관하게 존재할 수 있는 교회는 없습니다. 다만 사회를 위하여 교회가 존재하되 세상의 하나로서가 아니라 교회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세상과는 다른 존재로서 교회는 존재해야 합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교회가 아닌 교회로 존재하면 존재의 의미가 없고 가치가 없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사명을 감당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시대 속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것을 분명하게 하지 않으면 교회는 모습은 가지고 있습니다만 하나님께서 전혀 교회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눈과는 다르게 평가하십니다. 중요하고 근본적인 사명 중의 또 하나는 교회에서 선포하는 것이 인간의 말이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하더라고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사람의 말이나 사람의 이야기가 되면 그것이 선포되는 곳은 교회의 모임이 아니라 세상의 모임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것으로 나타날까요? 사랑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해 나갈 때, 아무리 낮고 비천해도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사랑할 때 그것이 참된 교회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하는 교회를 참된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이 권세를 알지 못하고 함부로 교회를 대적하면 무서운 일을 당하게 됩니다. 세상이 감히 대들지 못하는 권세가 교회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권세와 능력은 모든 교회가 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하나님이 모든 교회에 다 권세와 능력을 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참다운 교회라야 하나님께서 권세와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임으로서의 교회뿐만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교회의 신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능력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참된 신자,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하나님이 원하는 모습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그 신자에게 권세와 능력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예수님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체포되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지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로 모든 사람이 억울하다고 하는 일에 대해서도 인간의 방법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힘이 있었지만 우리 예수님은 그 힘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천군과 천사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만 폭력으로 맞서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논리인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라는 명제를 우리 예수님은 완강하게 거부했습니다.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를 가주라고 예수님은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당신의 모든 가르침을 몸으로 실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에게 하나님은 어떤 권세를 주셨을까요? 성경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바보같이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한 것 같은, 정말 맥없이 인생을 끝낸 것 같은 우리 예수님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들이 그 앞에서 예수님에게 침을 뱉었지만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보다 더 약한 사람으로 죽어갔습니다. 하나님의 가르치심,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어떻게 높였습니까?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모든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 이름에 꿇게 하셨습니다. 모든 입으로 예수님을 칭송하도록, 주로 시인하도록 권세를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교회, 특별히 우리 교회는 이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거니와 세상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배워야 합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교회에 대해서 특별히 우리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비워라, 그리고 세상을 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를 비우고, 신자들 스스로를 비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죽임으로써 세상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살아있으면 세상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죽으면 세상이 삽니다. 이상한 논리에 현혹되지 마십시오. 교회가 살아나야 한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살아나야 하고 그리스도가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또 교회와 신자는 세상에게 주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모인 사람들을 붙들어 놓지 말고 세상에 내어 보내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는 모은 물질을 교회 안에 가두어 두지 말고 세상에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뜻이 아닌, 교회의 몇몇 사람이나 목사의 뜻이 아닌 우리 주님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에야 교회는 강해집니다. 그러나 반대로 만약 교회가 사람의 뜻이나 교회 지도자의 뜻을 이루려고 할 때에 교회는 약해집니다. 우리는 가난해지고 이웃이 부해질 때 교회는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 교회로 말미암아 행복해지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에, 우리 교회로 말미암아 잃었던 무릎에 힘을 얻는 사람이 많아질 때에 우리 교회는 강한 교회가 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됩니다. 우리 교회는 어려운 일을 당하고 이웃이나 다른 교회가 뜻밖의 득을 볼 때 교회가 부유해 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세상은 자기가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가 손해 보면 그것으로 끝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교회가 잘나게 되면 우리는 잘나게 될지 모르지만, 교회는 유명하게 될지 모르지만 그 교회에 우리 주님은 더 이상 거하지 못합니다. 떠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란 말의 뜻은 세상에서 구별된 사람들, 세상과 다른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즉, 세상에서부터 불러낸 사람들, 세상에 있다가 하나님으로 부르심을 받아서 따로 모인 사람들을 교회라고 말씀합니다. 그러기에 참된 교회는 다음과 같은 교회를 지향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분열되어 있습니다. 곳곳이 분열되어 있고 가정까지도 분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는 교회까지도 분열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한 시대에 함께 나누는 삶을 회복시키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잘난 사람 몇 사람이 교회를 이끌어 가는 교회가 아니라 함께 모여서 의논하고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더 말을 많이 하고 좋은 의견보다는 때로는 덜한 의견도 더 많이 반영되는 교회,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또 하나는, 이 세상은 얼마나 사람의 수단과 재주가 판을 치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더러 그런 것을 좋아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것을 두고 재주 좋다고 이야기하고 있고, 참 잘한다고 속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사람의 수단이나 재주가 아니라 성령님의 이끄심을 따라가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성경을 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기도하는 교회,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지만 그래도 또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 여기 모여서 기도하고 저기 모여서 기도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세상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서 그 똑똑한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뜻을 결정하는 교회가 아닙니다. 하나님에게 속을 다 드러내고 하나님께서 결정해 달라고 부탁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이 세상은 얼마나 사람을 선전하고 사람을 내세우고 있습니까? 세상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적지 않은 교회가 얼마나 사람을 내세우고 있습니까? 그 교회를 인도하는 어떤 사람, 그 교회를 출입하는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얼마나 내세우고 자랑하고 있습니까? 이러한 시대에 오직 그리스도만을 내세우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그 교회에는 잘난 사람도 없고 똑똑한 사람도 없고 대단한 사람도 없고 모자라고 고만고만한 사람들만 있는 교회라고 생각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드러나야 할 분은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이고 십자가만 드러나야 참된 교회입니다. 우리는 많이 속고 있습니다. 그 교회에 어떤 지도자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그 교회에 출입하는 어떤 사람이 유명한 사람이면 그 교회가 유명한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성령님만이 계신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세상의 지식을 선포하고 세상의 이야기들을 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모인 사람들이 듣고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리고 좋아하고 그래서 여기저기서 그 이야기를 인용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는 우리를 위해서 저 높은 곳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 오셨고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고 수치와 고통과 모욕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셨다는 아주 재미없는 이야기를 여기저기에 나누어 주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여러분, 이 시대는 얼마나 받으려고 하고 얼마나 이기적인 시대입니까? 심지어는 결혼을 해도 내가 아내를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내가 남편에게서 받고 시댁에게서 받고 처가에서 받는가 여기에 눈이 먼 시대입니다. 그러나 주는 교회, 주는 신자들이 모여 있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유명한 집안에 우리 아들딸을 시집장가 보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들딸을 결혼시켰다고 자랑하는 사람이 가득한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내 주변에 잘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는 교회가 아니라 내 주변에 얼마나 못나고 바보같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나로 말미암아 행복해 하고 나로 말미암아 우리 주님을 만나게 된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비인간화라는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이 상실되고 인간적인 사랑과 애정을 찾기 힘든 시대입니다. 그러나 인간을 존중하는 교회, 돈과 명예를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 못나고 약한 사람을 존중하고 귀히 여기는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입니까? 힘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큰 소리를 칩니까? 가진 사람은 없는 사람에 대해서 얼마나 함부로 하는 시대입니까? 그러나 참된 교회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들에게는 약하고 오히려 큰 소리 치려면 많이 가지고 있고 높은 사람들에게 소리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교회, 세상의 못난 사람들이 들어올 때에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교회, 그런 교회가 참된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은 이 일을 위하여 모든 노력을 앞으로 함께 더 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교회 창립기념 주일에 틈틈이 기억해야할 소중한 이야기를 다시 나눕니다. 배가 자주 파손하는 위험한 해안에 난파한 사람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작은 인명구호소 하나가 생겼습니다. 움막처럼 보잘 것 없는 집, 작은 배 한척이 그 인명구호소의 전부였습니다. 인명구호소의 헌신적인 일꾼들에 의해 난파한 배가 여러 차례 구조됩니다. 그에 따라 이 인명구호소는 점점 더 유명하게 됩니다. 그 인명구호소의 구조원으로부터 구조받은 사람들과 이 일에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인명구호소와 관계를 맺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기부합니다. 돈이 많이 모였습니다. 새로운 배들을 사고 선원들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인명구호소는 옛날과 다르게 규모와 시설이 점점 커지고 현대화 되었습니다. 좋은 가구가 들어오고 화려한 시설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그 인명구호소는 이제 더 이상 인명구호소가 아니라 멋진 사교장소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인명구호 작업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식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인명구호소는 돈으로 인명구호 할 사람들을 고용하여 자기들 대신에 구조활동을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고용된 직원들이 난파된 배에서 누추한 사람들과 병든 난민들을 구호소로 데리고 왔습니다. 아름답게 장식된 구호소는 삽시간에 더러워 졌고 소란스럽게 되고 맙니다. 구호소 안에 있던 사람들은 불쾌했습니다.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습니다. 구호소의 입구에 간이 목욕실을 마련하고 구조된 사람들이 그 구호소에 들어오려면 먼저 그 목욕실에서 깨끗하게 씻고 난 뒤에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회원들 간에 마찰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살려야 하지 이래서는 안 된다는 사람도 있고 이에 반해서 이제 더 이상 구조활동을 하지 말고 사교클럽으로 바꾸자는 의견으로 나누어져 투표를 했습니다. 절대다수가 사교클럽 쪽으로 바꾸자는 쪽으로 투표결과가 나왔습니다. 인명구호를 하려면 이제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여 내쫓겨 나오게 됩니다.

몇 해가 지납니다. 그 인명구호소에서 나간 구호소도 똑같은 현상을 되풀이 했습니다. 또 거기서 사람들이 나갔습니다만 또 같은 이야기가 되풀이 됩니다. 지금도 그 해안 지대에는 사교장으로 변한 화려한 구호소가 여러 곳 있지만 파손하는 배에 탄 대부분의 선원들은 구조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교회에 대해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김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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