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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욱 신사적인 우리 교회 (행17: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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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신사적인 우리 교회(행17:10-14)

(요약) 

데살로니가교회는 아주 신사적인 교회였다. 그런데 더 신사적인 교회가 있었으니 베뢰아 교회였다. 그럼 신사적인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을존중하여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또 옥토 밭과 같이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며, 나아가 더 적극적으로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여 무럭무럭자라가는 것이다. 그러나 비신사적인 사람은 자갈과 굴레로 단속해야 겨우 따라오는 짐승 같은 것으로 심히 어리석은 짓이다. 채찍이 필요 없고말씀으로 통할 수 있는 신사적인 성도들이 되도록 하자.

 

(설교)

신사를 영어로 gentleman 얼마나 좋은 말입니까? ‘신사’라는 말은 원래 왕실에서 수종하는 사람을 의미하는말이었습니다. 문벌 좋은 집에서 태어나서 고상한 지식과 품격을 갖추고 좋은 예절로 왕을 섬기고 봉사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만왕의 왕 되신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런 신사적인 교인이 된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본문은 사도바울이 2차 선교사역 중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데살로니가 교인들은아주 좋아 그렇게 말씀 잘 받아들이고 믿음 좋고 사랑 많아 그렇게 신사적일 수가 없었는데 그곳에 유대인들이 워낙 드세어서 복음을 전할 수 없게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할 수 없이 밤중에 그곳을 빠져나와 베뢰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놀란 것은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사람보다 더욱 더 신사적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신사적이지만 더욱 신사적인 성도가 되길 바랍니다.

그렇다면 신사적인 신앙은 어떤 것일까요?

1. 신사적인 신앙은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11절 상반 절에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그랬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신사란 어떤 에티켓이나 도덕적인 매너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말씀에 대해 열망하는 순수한 마음을 말하는것입니다.

벧전2:2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갓난아이가 젖 달라고 웁니다. 젖을 물려주면우리가 맛을 보면 그렇게 맛없는 것이 젖인데 왜 그렇게 맛있게 먹는지 여러분들도 애기 키우셨으니 아시겠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순수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마음이 닳아질 대로 닳아서 어떤 말씀도 먹혀들어가지 않는 반들반들한 길 밭이라면 소망이 없습니다.이런 사람에게 시편 기자는 이렇게 경고합니다.

시32:9에 “너희는 무지한 말이나 노새같이 되지 말지어다 그것들은 자갈과 굴레로단속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가까이 오지 아니하리로다” 신사적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신사적으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그렇게 매일 맞건만 깨닫지를 못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 앞에 말씀 달라고 보채고 매가 아니라 말씀이면 다 통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이것이 신사적인 성도입니다.

2. 신사적인 신앙은 간절한 마음으로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11절 중반 절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베뢰아 교인들은 말씀을간절한 마음으로 받았습니다. 전하고 듣는 자가 모두 성령의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어느 한 편이라도 성령이어야 합니다. 그러면누가 말씀을 전하든지 은혜가 됩니다. 베뢰아 교인들은 마음 바탕이 잘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공동번역에서 “신사적인 사람”이란 말을 “마음이 트인사람”으로 번역했습니다. 성경에 마음이 열려 있었습니다.

지금 중국 사람들이 그렇게 말씀을 사모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초대교회처럼 아침에 교회 오면 저녁까지 집에 돌아갈 줄 모르고 말씀 듣고 기도하고 말씀 듣고 전도한답니다. 한 사람이 설교하면 끝난 것이 아니라또 다른 사람이 설교하고 또 다른 사람이 설교하고 먹고 먹고 또 먹어도 더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려고 하는 사모하는 심령입니다. 우리나라는 어찌된일인지 설교 짧게 해야 교회가 부흥이 되고 은혜 받았다고 하니 좋은 징조일까요? 나쁜 징조일까요?

마음에 간절함이 없으면 예수님이오셔서 설교하셔도 은혜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간절한 사람은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은혜를 받습니다. 간절함은 마음의 옥토 중에 최고의 옥토예요.씨가 흙에 떨어지는 것 같지만 좋은 옥토는 떨어지는 씨를 품어버립니다. 그리고 장대같이 크게 키워냅니다. 간절한 마음에는 어떤 씨라도 100%나 크게 자랍니다. 그래서 호10:2에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호10:12,렘4:3) 하셨습니다. 내 마음의 옥토만 된다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간절함의 은혜를 구하시기바랍니다. 고후8:16에 “또 너희를 위하여 같은 간절함을 디도의 마음에도 주시는 하나님”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과같은 복된 심령이 되시기 바랍니다. 시63:1에도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했습니다.

그리고 베뢰아 사람들이 말씀을 받았다는 것은 겸손했다는 것을가리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말씀을 받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착각해서는 안 될 것은 대형교회 성도만 자랑스럽고 대형교회 목사만 목사인 줄아십니까? 오히려 요즘은 대형교회에 대해서 우려와 경고하는 목소리가 더 많습니다. 대형교회도 하나님이 필요해서 내셨고 그런 은사를 주셨기에가능한 일이며 큰일도 하고 훌륭한 분도 많지만 그러기에 더 교만에 조심하고 더 물질에 조심하고 영광에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목회자이기 때문에하는 말인데 외제차에 억대 연봉 받는다면 다 하나님께 반납하고 더 낮아져야 합니다. 아무리 대부분 섬기는데 쓴다 해도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때문에 지금 반기독교적인 여론이 생겨나고 전도길이 막히지 않습니까? 그리고 타 교회 앞에까지 버스 대놓고 교인들 실어갈 이유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것보다 더 큰 우려는 메시지에 있습니다. 교인들 모으기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이런 기사가났습니다. 사무엘 코비아난 세계교회협의회(WCC) 사무총장은 세계적으로 대형교회가 많아지면서 기독교의 신학적인 깊이가 얕아지게 될 것으로우려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카리스마를 가진 대부분의 대형교회의 목사들이 교인들이 편하게 듣고 기분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메시지에는 깊이가없으며 신학적 관점에서도 특정한 관점도 없다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크기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규모가 작다고 다아름답다는 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전하는 자나 듣는 자나 성경 말씀의 간절함을 가지고 거기서 만나야 진짜 하나님 보시기에 훌륭한 것입니다.

3. 신사적인 신앙은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는 것입니다.

11절 하반 절에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베뢰아 교인들은 말씀으로 되는성도였으니 이런 자들은 매가 필요 없고 채찍이 필요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알지도 모르면서 무조건 따라가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한가하여” 라는 문구에는 말씀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추구함이 나타나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신사일 수 없지요. 영국신사가 그냥 된 줄 알아요? 안해 본 것이 드물도록 다 경험해 볼 뿐 아니라 식탁에서의 예절과 이웃에 대한 배려, 엄격함과 의무감, 진지함과 신중함, 근면과 기율, 끈기와정직, 정확한 회계처리와 시간 지키기, 애국심과 용기, 자기통제와 페어플레이, 충성심과 신체단련, 의회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심지어 사업의성공 등이 그런 것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면 신사가 될 수 없습니다. 영적인 깊은 것들을 체험해 보지 못하면 신사가아닙니다. 주를 위해 희생하지 못하고 지체를 받들어 섬기지 못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지 못하고 자기를 감추지 않는다면 신사가 아닙니다. 교인가운데 ‘후탁교인’이 있다고 합니다. 평소에 성경을 선반에다 모셔만 놓다가 주일날만 되면 그제야 성경의 먼지를 ‘후’하고 불고 또 성경을‘탁탁’ 털어서 교회 나곤다 하여 후탁교인입니다. 아무리 바지에 구김이 없고 성경책을 새 것처럼 멋드러지게 들고 나와도 후탁교인은 신사가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하다 바지도 구겨지고 성경 너무 보아서 다 낡아지고 봉사하다 손마디가 굵어지고 너무 울어서 눈이 부어 있어도 그게 진짜신사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베뢰아 교인들은 칭송을 받았고 믿는 사람들이 넘쳐났으며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않게 예수 믿는성도들이 되었습니다. 이런 굉장한 사람들이 교회로 왔다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진짜 기독교 신앙의 맛이무엇인지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한국교회도 더 이상 비난 받지 않기 위하여 말씀 안에서 성숙해져야 하겠습니다. 말씀에서 은혜를 받아야 진짜열매가 맺혀집니다. 뜨거운 감정도 필요하지만 말씀 없으면 열매도 없고 탈선합니다.

그 증거로 베뢰아 교회 보세요. 바울이 핍박을당하자 베뢰아 사람들은 구경만 하지 않고 위험을 무릎 쓰고 바울을 몰래 피신시킵니다. 베뢰아에서 아덴까지는 320㎞나 되는데 그들은 그 먼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바울을 인도하였습니다. 이렇게 말씀이 제대로 들어가야 참 신앙인이 됩니다. 성경은 묵시가 부족할 때 방자히 행한다 했는데묵시가 바로 말씀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을 신이라 했습니다(요10:35).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아니라 애굽 바로 앞에 모세가 신처럼 놀랍게 보였듯 엄청난 신령한 사람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경 한 구절이라도 매일 100번씩만외우며 기도해 보세요. 그 말씀이 염려 말라는 말씀이라면 어떤 염려도 불과 며칠 만에 확 날려버릴 믿음의 유효사거리 안에 들어오고 말 것입니다.그리고 우리의 믿음이 상상할 수 없이 강화될 것입니다. 이 놀람은 물론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이 귀히 쓰임 받는 일군이 될 것입니다. 제가 어릴때 그렇게 성경구절을 늘 외웠는데 남이 놀람은 물론 제 자신도 놀랐습니다. 어떤 분은 제의 확신에 넘치는 믿음을 보고 다뭉개진 성구쪽지를 아들에게 주겠다고 달라신 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비신사적인 교인도 있습니다.

어떤 잡지에비신사적인 교인들을 기록해 놓았습니다. 좀 듣기에 거북하지만 웃으면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감투 교인 - 직분을 감투로 알기에 마지못해서나오는 교인입니다. 인력거 교인 - 심방을 가서 끌어와야만 나옵니다. 핑계 교인 - 교회 일 좀 하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빠져나가는사람입니다. 꽈배기 교인 - 설교가 조금만 길어지면 몸을 꼬기 시작합니다. 파장 교인 - 설교 끝날 때쯤 들어옵니다. 고양이 교인 - 인정해주고 쓰다듬어 주어야만 신앙생활 합니다. 염소 교인 - 험담하고 맘에 안 들면 들이받는 사람입니다. 오락 교인 - 운동회나 야유회 때만나옵니다. 벙어리 교인 - 몇 해를 믿어도 기도 한마디 전도 한마디 못하는 교인입니다. 저기압 교인 - 언제나 은혜 받지 못하고 시무룩합니다.채점관 교인 - 자기 신앙 채점은 않고 설교나 남 신앙만 평가합니다. 소풍객 교인 - 주일날 갈데없으니까 나오는 교인입니다. 묵상 교인 -예배만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눈감고 자다 옵니다. 그러면서도 남이 찔벅이면 안 잔다고 화내는 교인입니다. 누가 잔다고했나요? 도둑 제 발 저린다는 격이지요. 국회의원 교인 - 가족 대표로 혼자 나오는 교인입니다. 가시 교인 - 잘못된 점만 보고 상처를줍니다. 이 말씀이 우리 신앙에 귀한 백신이 되길 바랍니다. 원래 백신은 병균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듣기 거북한 이 말씀이 우리에게 좋은예방주사가 되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멋졌는데 베뢰아 교인들은 더욱 멋졌습니다. 우리들도 그처럼 멋진 신사적인 성도들이되시기 바랍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갈망하고 배우고 연구하고 확신하고 순종하고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굴레와 채찍이 필요 없는 말씀으로 통하는 신사 성도들이 되어 하나님 앞과 교회와 세상에서도 기쁨과 칭송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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