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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 (행 6: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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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들은 삶의 목적으로 참된 것 한가지만을 가집니다.  그의 생각이 여러 잡다한 것들로 인해서 흔들리지 않습니다.  죄는 언제나 우리의 분열된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여러 가지를 더 많이 가지려고 하다보니까 마음이 분열됩니다.  때문에 그 마음이 전심으로 하나님께로 향하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부름의 상을 향해, 그리스도 예수의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오직 한 가지 일에만 미친 사람이 되어보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큰 일을 해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그 한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 역사의 주역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아십니까?  여러분이 바로 역사의 주역입니다.

그래서 좌우를 돌아보시면서 "당신이 역사의 주역입니다"라고 축복의 인사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역사의 주역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생애에서 모든 방해물을 정리하고 죄의 가면을 벗어 던져 마음속에 있는 아간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죄인은 쓰셔도 가식에 물든 사람은 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고 연약한 사람은 부르셔도 가면을 쓴 위선자는 외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진실해야만 합니다.  여호와 앞에 예배하는 모든 사람들은 신령과 진실한 마음으로 드려야만 합니다.

오늘도 하늘의 음성을 듣고자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십시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고 말씀을 하셨더니 빛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났습니다.

여기에서 말씀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희랍어에서 사용하는 로고스라는 단어가 아니라 레마라는 단어입니다.  레마는 역사적인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주관적으로 관계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로고스는 총체적인 진리가 객관적으로 관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관계된 객관적인 역사가 주관적인 역사로 바뀌는 레마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레마는 역동적인 말씀입니다.  래마는 움직이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선배들이 바로 살아서 역동하는 움직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도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신 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붙들 수가 있다면, 이 살아있는 말씀을 붙들고 살 수가 있다면 우리 선배들의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나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삶에 결정적인 메시지를 가져야만 합니다.  자신의 삶이 어렵고 곤고할 때에 힘이 되어주는 그 한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 안에 각성과 감동을 자주 가져야만 우리의 영이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육신의 몸은 휴식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영은 쉼이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계속적인 영성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성령 안에서 날마다 때마다 풍성함을 누려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속 사람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오.  "이제 더 이상 나는 전과 같은 존재가 아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내 안에 있는 과거의 더럽고 아픈 모든 쓴 뿌리들이 다 제거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제발 쓴 뿌리를 씹지 마십시오.  지나간 과거를 되씹지 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했는데 우리가 누구이관대 과거를 이야기할 것입니까?

기억하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은 과거를 먹고 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를 먹고 삽니다.  이 시간 내 안에 있는 모든 쓴 뿌리들을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에 다 묻어버리고 창조적인 인생으로 오늘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선포하십시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믿음의 결과를 기대할 줄 아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일에 대한 비전과 소망이 없다면 그것은 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더 좋은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들에게 믿음을 강요합니다.  "네 믿음대로 되느니라.  믿고 구하는 것은 이루어진 줄 믿으라.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십시오.  믿는 자가 되십시오.  나를 살리고 내 가정을 구할 수 있는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에는 결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어설픈 믿음에는 어설픈 결과가 나타납니다.  절대적인 믿음에는 절대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아십니까?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지도자일수록 큰 믿음,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그 결과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기대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체험한 사람일수록 크게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으십시오.

여기에서 기름 부으심이란 성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은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킵니다.  흑암의 권세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시킵니다.  그릇된 생각으로부터 성별시킵니다.  정죄와 판단의 사고로부터 나 자신을 성별시킵니다.  이런 성별을 체험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쓰시고 계신다는 강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십시오.  그래서 세상의 죄악으로부터 나 자신을 분리시키십시오.  더 중요한 것은 생각의 오염으로부터 자신을 거룩하게 분리시키십시오.  내 안에 누군가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성령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단의 계략입니다.  혹여 우리들 가운데 생각의 침략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시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생각을 오염시키는 모든 어둠의 영들은 떠나갈지어다!

성경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사울에게 악한 영이 들어오니까 그가 심히 괴로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사고의 영역이 오염을 당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끊임 없이 기도하십시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사고의 영역을 침투해 들어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고의 영역에 미움의 영을 불어넣습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분노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비난하게 만듭니다.  정죄하게 만듭니다.  절망하게 만듭니다.  끊임없이 상대방을 비교하게 만듭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끊임없이 의심의 영을 불어넣습니다.

이 시간 성삼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생각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순간마다 때마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내 생각을 다스려 주시옵소서.  주의 성령이여,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내 생각과 마음을 주장하여 주시옵소서."

지난 주일에 저는 여러분들에게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사명자의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는 부흥되는 것이 아니라 갱신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대단한 영역을 행하다가도 몇 년이 지난 후에 그가 가진 메시지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그의 삶의 자세가 하나도 변하지 않고 옛날 것만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고자 한다면 그는 다 낡은 자동차의 배선과 같습니다.  낡은 배선은 바꾸어야만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쓸 만큼 쓰시고는 바꾸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바꾸지 않고 그를 평생토록 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최고의 영감, 최고의 영력, 최고의 자기 갱신을 위해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기뻐하십니다.

인간의 삶의 목적은 분명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 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한 길입니다.  이것이 분명하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넘치는 복으로 화답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로 세우시는 것은 또 다른 사역자를 생산키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진정한 사역자는 일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사람입니다.  누구도 혼자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사역자는 독선이라는 자기 활동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합니다.  자기 독선, 영적 독선, 주관적인 독선이 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정말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자기 독선이라는 사슬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독선의 사슬을 끊어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자기 아집의 사슬을 성령의 권능으로 끊어버리시기를 축복합니다.  결코 그런 것에 미련을 두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신만 피곤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어둠의 그물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는 사람이 많이 따르느냐?  얼마나 일을 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또 다른 사역자를 많이 세웠느냐 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는 이 땅에 헌신된 추종자, 주를 위해서 인생의 전부를 던질 수 있는 헌신적인 무리를 세우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전적인 헌신으로 주를 따랐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을 수는 있지만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위해 헌신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헌신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가 잘 배운 사람이든, 못 배운 사람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가 많이 가졌든 못 가졌든 상관이 없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헌신할 수 있는 삶의 자세를 보십니다.  나를 위해서 전부를 버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서 생명도 내놓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고 외쳤던 도마처럼 정말로 주와 함께 죽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위해서 헌신할 수 있는 결단만 분명하면 그 다음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충성된 일꾼을 찾았다고 했을 때에 그 사람이 하나님의 수준 이하이면 결국은 그로 인해서 하나님의 질서가 깨어지고 세상의 질서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파괴의 역사가 시작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적 충족을 위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까지 올라간 사람들을 헌신하게 하고 그런 사람들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따르는 제자들에게 목숨을 요구하셨듯이 황홀한 주님의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아무 것도 헌신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쓰임도 받을 수 없습니다.

아십니까?  성경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했던 사람들이 가장 풍성한 은혜와 복을 누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늘 그 역사를 저와 여러분들이 함께 만들어갈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이 쓰시는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라는 비전을 발견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무식한 자를 들어 유식한 자를 부끄럽게 하고, 없는 자를 들어 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말씀을 가지고 자기 합리화를 해서는 안됩니다.  가만히 보면 하나님이 더 크게 붙들고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 부름 받은 상태를 합리화해서 처음의 모습만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은 분명히 기적이고 축복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되던 그 모습 그대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놀라운 자기 성장을 위한 고된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만 쓰인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수준 이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변화 받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의 충족을 위해서 지도자를 선택하셨지만 선택받은 그 모습 그대로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언제나 일정한 단계를 거쳐 놀라운 훈련과 자기 성장을 한 사람들만을 쓰시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의 자기 성장을 위한 훈련을 거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종교꾼이 되지 말고 주님의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디자인하신 삶의 모습으로 나를 변화시켜 보십시오.

오늘 본문에 보면, 인류 역사상 가장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의 길을 걸어갔던 한 사람의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가 바로 스데반입니다.  그렇다면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첫째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8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여기에서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했다고 하는 말은 한 마디로 성령이 충만했다는 말입니다.

6장 3절에 보면 스데반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5절을 보면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은혜도 충만했고, 지혜도 충만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권능도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이 나타났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여러분에게 철철 흘러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는 한 마디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일을 은혜롭게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주님이 걸어가신 그 길을 나도 걸어갈 수가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성령의 충만함과 권능이 임하지 않고서는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의 길을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는 한 때 주님의 수제자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곳에 마태는 없어도 베드로는 있었습니다.  그는 그림자처럼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배반했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힘들어하시는 그 순간에 도망을 쳤던 비겁자요, 겁쟁이였습니다.  그랬던 그가 오순절 다락방에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능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에게도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옵소서.  스데반과 베드로에게 임하셨던 성령이여, 이 시간 나에게도 임하시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의 힘은 성령 충만함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힘도 성령의 충만함에 있습니다.  성령은 성도를 성도답게 만들어주십니다.  성령은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십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하늘의 권세자가 되십시오.  초대교회에 강하게 불었던 성령의 바람이 지금 이 땅에, 그리고 이곳에 다시 한 번 강하게 불어와야 합니다.

둘째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은 칭찬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을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여기에 보면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의 자격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평신도 사역자는 성령이 충만해야 한다.
둘째로, 평신도 사역자는 지혜가 충만해야 한다.
셋째로, 평신도 사역자는 칭찬 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믿음이 좋은 사람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가끔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으면 하늘의 상급이 적다고 말하면서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썼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말씀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다"  빌립보서 4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아십니까?  하나님의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칭찬을 듣기는커녕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기 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신자들보다 더 악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서 칭찬 듣는 사역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칭찬 받는 평신도 사역자가 많은 교회는 반드시 부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들어서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셋째로,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은 천사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15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

사랑하는 여러분, 모름지기 하나님의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는 얼굴이 달라야 합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얼굴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얼굴 모양은 주셨지만 인상은 내 마음에 품고 있는 내용에 따라 표현됩니다.

마음이 즐거우면 내 얼굴이 빛납니다.  마음에 근심이 쌓이면 얼굴이 빛을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인간의 얼굴은 마음을 표현하는 거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러분, 인상 찌푸리고 살지 마십시오.  나 혼자서 세상의 모든 근심과 고통과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처럼 그렇게 살지 마십시오.

솔직히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염려와 근심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이 세상은 소란과 전쟁, 좌절과 외로움, 슬픔과 스트레스 속에서 뒤엉켜 있습니다.

지금은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염려와 근심 중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문제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  마음입니다.  이 시대는 지나온 세대보다 더 이기적이고 더 탐욕적입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더 감각적인 것을 좋아하는 세대입니다.  그러니까 문제는 마음입니다.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에 살아가야 할 인생 길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기왕에 감당해야 할 사명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한번 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또 올 수 있는 인생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인생을 멋지게 기쁜 마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열정적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일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마음 가짐입니다.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저는 이 말을 이렇게 풀어보고 싶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에는 덕이 넘쳐 났다"  제가 성경을 너무 비약시켰다고 보십니까?

그러나 보십시오.  덕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얼굴이 평안합니다.  얼굴에서 넉넉함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덕이 없는 사람의 얼굴은 어딘가 불안합니다.  얼굴에서 찬바람이 생생 불어옵니다.  얼굴의 마음의 거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마음에 넉넉한 하늘의 덕을 품고 사십시오.  지금 이 시대는 덕망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지금 교회는 덕망이 있는 평신도 사역자가 필요합니다.  자기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 찬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안됩니다.  그런 사람이 교회의 리더가 되면 세상 소리만 납니다.  그 사람의 소리만 요란합니다.  결국 그 사람 때문에 교회는 분열될 것이고,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촛대를 거두어 가실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면 여러분의 마음에 하늘의 덕을 품고 사십시오.  덕망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옛날 어른들은 우리들에게 "덕을 많이 쌓아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늘과 땅에 덕을 많이 쌓으십시오.  그래서 덕이 있는 평신도 사역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 스데반.  그가 죽어서 그 영혼이 하늘나라에 가는데 예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나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도 주님이 인정하시는 평신도 사역자들이 다 되어주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서 훗날 주님께서 나를 만날 때에 너무 감격해서 천국에서 일어서서 맞이할 수 있는 존재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역사에 나 때문에 위대한 제자를 탄생시키는 황홀한 주님의 평신도 사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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