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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사람은 존귀합니다 (출 28: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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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라. 그 위에 인장을 새기듯이 ‘여호와께 몸 바친 성직자’라고 새겨라. 이것을 자주빛 털실로 꼰 줄에 매어 사모에 붙여라. 사모 앞쪽에 가도록 하여라. 그 패를 아론의 이마에 붙여라.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예물을 봉헌할 때 그 거룩한 봉헌물을 잘못 드려 죄를 지으면 그 책임을 아론이 지게 하여라. 아론은 그것을 이마에 늘 붙이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제사장의 속옷까지 모시실로 짓도록 하였습니다. 모자도 고운 모시로 만들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성직자로 세우셨습니다. 성막만 있어도 안 됩니다. 그 안에서 예배드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를 제사장이라 합니다. 또 성직자라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부릅니다. 그런데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이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곳은 거룩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해 계시는 곳입니다. 또 누구나 그 곳에 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사람만 갑니다. 제사장입니다. 이를 성작자라 합니다. 이들은 독특한 차림의 옷을 입습니다. 얼른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옷에 권위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만 하나님은 세상과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하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합니다. 제사장의 옷이 너무 화려하다고 합니다. 너무 사치스러운 것 아니냐 합니다. 또 사람들의 사정도 좀 헤아렸으면 합니다. 지금 모래 바닥에 사는 떠돌이입니다. 대충 입고 지내다가 가나안에 가서 옷에 금을 붙이거나 보석을 달아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걸 모르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선한 지도자의 옷차림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충한다고 해서 제사장의 권위가 문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구춘서 교수님에 대한 글을 옮깁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님이십니다. 포천 음성 나환자촌의 작은 교회 목사님이십니다. 돈과는 거리가 먼 가난한 목사입니다. 구 교수님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돈 버는 것이 목표였답니다. 수 없이 다짐을 했습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지. 아버지 같이는 안 되어야지.” 그는 어려운 중에 공부해서 일류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했습니다. 일류 대기업 종합 무역상사에 취직했습니다. 다음에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모자람이 없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마음에 만족이 없습니다. 가난, 배고픔의 연속이었던 목사 아버지의 삶이 자꾸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그는 고민했습니다. 지금 가는 길은 그가 가야할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 날 “아 나도 아버지의 길을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아버지를 몹시 원망했습니다. 직장을 그만두자. 신학교에 가자. 목사가 되자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눈물로 장장 7장의 편지를 썼습니다. 아버지께서 답을 보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편지가 왔습니다. 7장의 편지에 아버지의 답은 단 한 마디 “할렐루야”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목사로서 만 40년입니다. 제가 부러우십니까?

Ⅰ. 후진타오의 팔영팔치, 중국사회 새화두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이 “팔영팔치”(八營八恥・8가지 영예로운 일과 8가지 수치스러운 일)를 중국 사회의 새로운 화두로 제시했습니다.

①以熱愛租國爲榮 以危害租國爲恥(이열애주국위영 이위해조국위치) : 조국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은 영예이고, 조국에 해를 끼치는 것은 수치다.

②以服務人民爲榮 以背離人民爲恥(이복무인민위영 이배리인민위치) :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것은 영예이고, 인민을 위배하는 것은 수치다.

③以崇尙科學爲榮 以愚昧無知爲恥(이숭상과학위영 이우매무지위치) : 과학을 숭상하는 것은 영예이고, 우매하고 무지한 것은 수치다.

④以辛勤勞動爲榮 以好逸惡勞爲恥(이신근로동위영 이호일오로위치) : 근면성실하게 일하는 것은 영예이고, 편한 것만 찾고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수치다.

⑤以團結互助爲榮 以損人利己爲恥(이단결호조위영 이손인리기위치) : 단결해 서로 돕는 것은 영예이고, 남에게 해를 끼치며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것은 수치다.

⑥以誠實守信爲榮 以見利忘義爲恥(이서실수신위영 이견리망의위치) : 성실하게 신의를 지키는 것은 영예이고, 이익을 좇아 의를 저버리는 것은 수치다.

⑦以遵紀守法爲榮 以違法亂紀爲恥(이준기수법위영 이위법란기위치) : 법과 규율을 지키는 것은 영예이고, 법을 어기고 규율을 혼란하게 하는 것은 수치다.

⑧以艱苦奮鬪爲榮 以驕奢淫逸爲恥(이간고분투위영 이교사음일위치) : 어려움을 참으며 분발하는 것은 영예이고, 교만하고 사치하며 방탕한 것은 수치다.

한 나라의 지도자 후진타오는 잘 사는 길을 말한 것입니다. 정말 성직자는 인간적으로는 외로울 때도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탈진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신적인 얇은 부분입니다. 성직자는 “여호와께 몸 바친 성직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삶을 잘 압니다. 바리새인들이 가장 역겹게 여긴 표적이었습니다. 무식한 촌놈, 가난뱅이 나사렛 목수, 못난이, 머저리였습니다.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저게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저게 구세주라니 구역질난다.”고 했습니다. 누구도 그를 구세주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늘 외톨박이였습니다. 왕따를 당하셨습니다. 집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러운 짐입니다. 그러나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여우도 종이 있고, 나는 새도 깃 들일 곳이 있건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길을 행복하다고 여기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난 것을 일생에 가장 값진 순간이라 믿었습니다. 아 여기 내 목숨을 바쳐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성직자의 삶은 별난 삶입니다. 하나님은 별난 사람을 부르시는 것은 아닙니다. 평범해도 별나게 살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론이 다른 사람보다 더 능력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더 경건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는 생각이 다른 데가 참 많습니다. 우리는 키도 크고 체격도 듬직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엉뚱한 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보시지 않으십니다. 제사장직은 종신직입니다. 중간에 마음에 안 든다고 버릴 수 없습니다. 세상의 일은 바꿀 수 있습니다. 대학교수가 사업가가 된 사람도 있습니다. 판사, 변호사가 국회의원도 합니다. 이와 같이 이것 아니다 싶으면 진로를 수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그렇게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교단도 헌법에 명문화했습니다. 목사는 목회 일 외에 다른 직업을 갖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일에만 전심전력하라고 했습니다.

Ⅱ.성직자의 멘토(mentor)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누구나 삶의 스승인 멘토가 다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타이카 왕국의 오디세우스 왕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전쟁에 나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아들 텔레마코스를 보살펴 달라고 친구인 멘토에게 부탁했습니다. 멘토는 오디세우스 전쟁에서 돌아올 때까지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를 선생님이자 상담자, 아버지 역할을 해서 잘 돌봐 주었습니다. 그 후 멘토는 한 사람의 인생을 이끌어 주는 지도자, 후견인이란 의미로 사용됩니다. 그런 제도를 멘토링이라고 합니다. 멘터(menter)는 멘토(mentor)에게 지도를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들의 멘토는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그러시지만 한 사람의 영혼과 인격에 대해 관심이 많으십니다. 이래라 저래라 하십니다.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고 하십니다. 제사장 세우셨으면 지나칠 법 합니다. 그런데 속옷 입는 것까지 가르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좋은 옷 입으라, 모자를 써라, 정도만 해도 될 법 하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대강 넘어가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다. 적당하게가 통하지 않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목사 되기 위해 신학교 오는 학생들 중에는 목사를 참 편안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 목회가 뭔가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할 일이 참 많습니다. 늘 시간에 쫓깁니다. 하긴 1주에 설교 몇 번 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가하면 그런 말 할 법도 합니다. 옛날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오늘의 목사와는 다릅니다. 상당히 화려한 생활을 했습니다. 옷도 어마어마한 값진 옷을 입었습니다. 물론 먹고 쓰는 것에는 전혀 불편함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다 임기가 있습니다. 정년도 있습니다. 없다면 가족관계일 것입니다. 제사장은 종신직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또 아들의 아들이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직은 세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늘 완전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실 때 그 계획이 치밀하십니다. 건물 하나를 세우는 데도 많이 연구합니다. 장소, 설계, 짓는 이, 자제. 그런데 하물며 제사장을 세우는 일은 더 할 것입니다. 제사장 한 사람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김일성 한 사람이 수천만 생명을 불행하게 했습니다. 몹쓸 병균이 엄청난 생명을 괴롭히고 죽입니다. 그런가 하면 선한 한 사람은 대단한 일을 합니다. 역사는 사람이 중심입니다. 물론 역사(History)는 그의(His) 이야기(story)입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언제나 사람들 등장 시키십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다윗, 이런 인물에 이어 모세라는 역사의 영웅을 한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는 타협을 모르는 외골수였습니다. 좀 답답하다 할 정도로 사람 편에 서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기를 포기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야말로 융통성이 없었습니다. 적당하게 이쪽저쪽을 오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와“아니요”가 분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합니다. 세상에서 출세를 바랐다면 그는 지금 이집트의 왕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일종의 사막의 떠돌이가 된 것입니다. 옛날 모난 성격도 다 죽었습니다. 온유하기로는 세상에서 으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중심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하시는 것입니다. 일은 사람이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총리,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장관, 검찰총장, 경찰총장, 국세청장은 청문회를 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이 자리에서 일할 자격이 있는가를 검증하는 것입니다.

맺는 말 :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지나치다 할 정도로 배려하십니다. 옷 하나까지도 세심한 관심을 가지십니다. 지금도 성직을 맡은 사람은 투표합니다.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생활비를 교회가 책임집니다. 그리고 그들도 그 직분에 어울리는 경건생활을 해야 합니다. 아무나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막만 잘 지어 놓으면 그것은 하나의 건물일 뿐입니다. 그 안에서 제사를 드리고 백성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제사장)이 필요합니다. 그는 얼른 봐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특별한 옷을 입습니다. 특별한 모자를 써야 합니다. 그리고 귀한 보석으로 치장도 합니다. 그 이유는 이런 사람은 성직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만 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날마다 주 안에서 늘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6.3.26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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