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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요 10: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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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봉양하는 효부장이라고 생각하면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것만도 못합니다. 왜냐하면 룻기의 의도가 이상적인 효부상에 있지 않고 온갖 고난과 시련 속에 방황하는 나오미와 룻을 하나님이 구원하셨다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룻기야 말로 구속사적 맥락에서 볼 때 탁월한 성경입니다. 엘리멜렉이라고 하는 한 이스라엘 사람이 기근으로 견디지 못해, 고향 땅 베들레헴을 떠나 이방의 땅 모압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안정과 행복을 찾지 못했습니다. 엘리멜렉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아들 말론과 기룐이 그만 그곳에서 죽게 되었습니다. 남은 가족은 죽은 엘리멜렉의 부인 나오미와 모압 출신인 두 자부 오르바와 룻이 있습니다.
그들은 나오미의 고향에 기근이 그쳤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나오미는 자부들의 장래를 염려하면서 그들이 모압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했습니다. 나오미의 간청에 의해 한 자부인 오르바는 떠났으나 룻은 끝까지 어머니를 따랐습니다.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기 원했습니다. 어머니의 나라를 자신의 나라로 삼고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룻은 추수 밭으로 나가 이삭을 주우면서 어머니 나오미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에게 베들레헴의 유력자인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서로 연민의 정을 느끼도록 하셨습니다.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기업을 대신 이어 줄 가까운 친척이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을 보살필 책임이 있는 자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보아스와 룻이 결혼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오벳이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오벳은 후일 이스라엘의 성군이라고 불리워지는 다윗의 조부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Ⅰ. 죽기를 무릅쓰고 우상을 버리겠다는 고백입니다.

본문 1장 16절에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 지방에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작정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흉년을 거두고 자기 백성을 권고하사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나오미는 남편도 없는 두 자부에게 모압 땅으로 돌아가라고 세 번씩이나 권고했습니다. 고향 땅으로 돌아가라는 나오미 말 속에는 자부를 사랑하는 시어머니의 애틋함이 듬뿍 담겨져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으면 그 아내는 그 죽은 남편에게서 자유하게 됩니다. 따라서 다시 결혼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퇴계 이황선생은 자기 아들이 죽은 후에 사돈댁에 직접 찾아가서 아직 젊은 자부를 개가시키기를 권했습니다. 결국 자부는 개가를 하게 되었습니다. 퇴계 선생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외딴 집에 하루 밤을 묵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 젊은 주인이 정성껏 저녁상을 가져왔는데 그 음식이 평소에 자신이 먹던 음식과 너무나 맞았습니다. 단잠을 자고 아침에 나가려고 할 때 착하게 생긴 젊은 주인이 길가면서 갈아 신으라고 버선 한 켤레를 가져왔습니다. 그 버선이 퇴계 선생의 발에 꼭 맞았습니다. 퇴계 선생은 음식과 버선이 자기에게 꼭 맞는 것을 보고 자부가 그 젊은이와 같이 살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가한 자부는 시아버지가 자기 집에 머물게 된 것을 알고 정성껏 상을 준비하고 그 밤에 버선까지 마련한 것입니다. 퇴계 선생은 가엾은 자기 자부가 착하고 예의 바른 남편을 만나 잘 살고 있는 것을 고맙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부부는 참으로 어렵고 쉬운 관계요 쉽고도 어려운 관계입니다. 언제나 예의와 배려가 있어야 합니다. 일방적인 것은 금물입니다. 남편과 사별한 여인들이 재혼을 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본인의 자유입니다. 따라서 그 누구라도 약한 과부에게 그 자신의 소중한 자유를 억압하는 그 어떤 말이나 행위를 해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나오미가 흉년을 만나 유다 땅을 떠나 우상을 섬기는 모압 땅에 살고 있었지만 여호와 신앙만은 버리지 아니했습니다. 그래서 나오미의 말 속에는 말마다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그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비록 우상을 섬기면서 모압 땅에서 살아온 룻이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섬기는 시모 나오미와 생활하는 동안에 그는 모압의 신을 버리고 여호와의 신을 섬기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한 말이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룻의 고백을 받아들이기에는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모압 족속들은 여호와의 총회에 영원히 들어갈 수 없도록 규정했습니다. 이것을 종족적인 유기라고 합니다.
신명기 23장 3-6절에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너의 평생에 그들의 평안과 형통을 영영히 구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시대적인 유기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16-17절에 {v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규례는 국가 단위의 포괄적인 관계를 의미한 것이고 개인적으로는 얼마든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방 남자들은 할례의식을 통해서였습니다.
창세기 17장 11-14절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너희 집에서 난 자든지 너희 돈으로 산 자든지 할례를 받아야 하리니 이에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방 여자들은 신앙고백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방화 되는 것은 죄악이지만 이방인이 이스라엘화 되는 것은 환영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생 라합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수 2:1-24). 룻이 나오미를 따른다고 할 때 그 형편이 어떠하겠습니까? 일차적으로 개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Identity)을 버리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영적 신분인 ID(Identity Card)가 바뀌는 것입니다. ID가 무엇입니까?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이 아닙니까. 예나 지금이나 그 사람이 무슨 종교를 가지,느냐는 중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종교가 자신의 가치관과 인생관과 내세관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룻은 모압의 신 바알브올과 그모스를 섬기며 살아온 사람입니다. 모압 족속은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유기된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시모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없는 시모가 유숙하는 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겠습니까? 나이 늙어 이미 기력이 쇠해 버렸고, 재산은 다 탕진하여 빈털터리가 되어버린 나오미가 아닙니까. 그녀에게는 안식할만한 집도 약속된 장래의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룻이 단호하게 어머니를 따르겠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평안과 부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죽기를 각오한 것입니다.
나오미는 자신의 처지와 형편을 자부들에게 진솔하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1장 11-13절에 {나오미가 가로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나의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들이 오히려 있느냐 내 딸들아 돌이켜 너희 길로 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밤에 남편을 두어서 아들들을 생산한다 하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인하여 그들의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어찌 그것을 인하여 남편 두기를 멈추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인하여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라고 했습니다.

Ⅱ.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의 죽기 를 불사하는 고백입니다.

본문 1장 17절에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이라고 했습니다.
나오미는 룻이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진심으로 원했습니다. 일견 인본주의라고 비난받을 수 있으나 자부를 사랑하는 인간적인 나오미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본문 1장 15절에 {나오미가 또 가로되 보라 네 동서는 그 백성과 그 신에게로 돌아가나니 너도 동서를 따라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나오미가 이렇게 강권했을 때 룻의 마음이 조금 흔들릴 만도 합니다. 동서인 오르바가 떠나는 마당에 자신도 못이기는 체하고 따라서 떠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마음이 흔들리기는커녕 더욱 그 마음이 확고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룻은 나오미를 따르겠다는 의지를 굽히지 아니하고 매달리다시피 한 것입니다.
본문 1장 14절에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 시모에게 입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고 했습니다. 바로 붙좇았다는 말이 룻의 당시의 간절한 상황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룻은 나오미의 말에 자기 고향 모압으로 돌아간 동서인 오르바와는 달랐습니다.

Ⅲ. 죽기를 각오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겠 다는 고백입니다.

본문 1장 17절에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히브리인들의 가장 강력한 신적인 맹세입니다.
사무엘상 3장 17절에 {가로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2장 23절에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룻이 여호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여호와란 명칭은 이스라엘 사회에서만 사용하는, 언약 공동체 안에서만 통하는 단어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감안하여 볼 때 룻은 자신이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성호로 맹세함으로써 이미 언약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단호히 모압 신을 버릴 것을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룻은 이방 모압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을 숭배하면서 자랐습니다. 모압 족속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유기된 자들인데 그 가운데서 구원받은 룻입니다(신 23 : 3-6). 룻은 죽는 것까지도 시모와 함께 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결코 믿음의 백성들과 분리되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습니다. 룻은 죽는 일 외에는 시모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을 천명했습니다.

룻은 시집와서 사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있었고 자신이 시집오기 전에 섬기던 우상이 얼마나 허무하고 저주스러운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오미를 통하여 룻에게 상당한 여호와 하나님의 지식이 교육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전하거나 가르치는 자가 없었다면 룻이 이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4-15절에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흉년이 들었을 때 이곳으로 먹을 것을 찾아 이주했던 자신의 시아버지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것까지도 분별할 줄 아는 혜안이 있었습니다. 그는 모압 땅을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는 우상숭배의 땅을 떠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베들레헴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룻의 고백 가운데서 이와 같은 사실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가 자부들을 그렇게 사랑했다고 하면 왜 우상을 섬기는 모압 땅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는가?
그렇다고 우리가 나오미의 신앙을 의심하면서 나오미의 행위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깊으신 섭리적 현상으로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두 자부 중에 나오미의 간청과는 관계없이 오르바는 끝까지 유기되었고 룻은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두 자부에게 한 나오미의 말은 결과적으로 시험(test)적 형태를 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의 섭리적 결과로 보아야 합니다. 마침내 우여곡절 끝에 룻은 보아스를 새 남편으로 맞아 오벳을 낳았습니다.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 그리고 다윗의 혈통에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룻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마 1:1)에 거룩한 한 멤버가 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육신을 좇아 본능대로 살아가는 금수가 아닙니다. 인간은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이성적인 존재입니다. 더욱이 그리스도인들은 본능이나 이성마저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시키는 영적인 존재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라고 했습니다.

희랍 철학자들이 말하는 '사람은 만물의 척도'(Man is the measure of all things)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만물의 척도'(God(Bible) is the measure of all things)가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 육신을 쳐 복종케 하는 것이 큰 과제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를 때 고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따른다는 증거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볼 때 영광이 고난을 설명하고 고난은 영광의 증거가 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의 장차 받을 영광과 현재 고난은 깊은 우정관계에서 설명되고 이해되어져야 합니다.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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