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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잠자는 영성을 깨우자 (마 26:3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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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오늘 밤 너희들이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시니까, 베드로가 그 말을 받아서 말하기를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보리지 않겠나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하여 온전히 신뢰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체포되시는데 베드로는 냅다 도망을 쳤습니다. 도망을 가서 체포되는 것은 피했지만 주님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그래서 약간 변장을 하고, 그의 제자가 아닌 것처럼 해서 주님께서 심문 받는 곳에 몰래가서 지켜보는데, 그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그 곳에 있어 탄로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베드로는 저 예수와 아무 상관없다고, 욕도 하고 저주도 하면서 절대로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3년이나 함께 다니면서 배우고 훈련받은 제자가,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해 놓고, 스승이 붙잡혀 갈 때 자기 살겠다고 도망을 하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면서 모른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예수 모른다고 부인하면 구원을 받지 못하여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지옥 갑니다.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만약 이런 문제를 내가 안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예수를 절대 모른다.’ 라고 한다면 지금까지 신앙생활이 도루묵입니다. 죄 사함도, 구원도 없고 천국도 없고 완전히 망하는 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나는 안 그럴꺼야!” 하겠지요! 맞습니다. 맞고요. 절대로 안 그래야지요! 죽어도 안 그래야지요! 그런데 베드로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베드로라는 것에 우리가 주목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절대로 버리지 않고 같이 죽겠습니다.”라는 말은 절대로 가식이나 위선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떠났습니다.

왜 베드로가 그렇게 되었을까요? 베드로가 예수께 고백을 하고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예수께서는 자신이 유대인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에 의해서 붙잡혀 많은 고난을 받고, 결국 십자가에 죽을 것을 미리 알고 있었으므로, 붙잡히시기 전날 밤 예수님은 겟세마네라는 동산에 올라가서 고난과 십자가를 질 것에 대한 괴로움을 아버지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버지여 할만 하시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제 생각일 뿐입니다. 아버지께서 꼭 하셔야 하신다면 그대로 하십시오” 너무나 멋진 기도입니다. 기도는 언제나 내 뜻을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닌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함이어야 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이 있는 곳에 와보니 그들은 쿨쿨 자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밤이므로 피곤하여 잠을 잡니다. 그러나 스승이신 예수께서 잡혀가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다는 사실을 알면 아무리 피곤해도 잠이 올 수가 없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예수님과 함께 기도할 것입니다.

제자들의 그런 모습을 보신 주님은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느냐?”고 안타까워하십니다. 두 번째 기도하고 오신 후에도 자고 있고, 세 번째 기도하시고 온 후에도 여전히 그들이 잠자고 있습니다. 그들이 피곤해서 잠자는 것이 문제가아니라, 예수님의 당할 그런 심각한 문제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음에 있습니다. 주님의 심정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입니까? 제자들이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뜻을 모르고, 지금 주님의 심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의 심정을 아는데 필요한 것이 곧 “영성”입니다.

영성(spirituality)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주님을 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불어넣어주신 성품입니다. 그러므로 영성이 깨어있다는 말은 주님의 마음과 내 마음이 통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고, 영성이 잠들어 있으면 주님과 상관없이 내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영성이 깨어 있으면 주님 뜻대로 살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의 강이 흘러 넘쳐 기쁨과 평안과 감사 충만하지만, 영성이 잠들어 있으면 내 뜻대로 살기 때문에 마치 윤활유가 없는 기계처럼 삐걱거리고, 괴롭고 힘들과 짜증 충만합니다.

영성이 잠들면 심령을 썩게 만들고 모든 신앙의 신경을 마비시킵니다. 말씀도 거부하고 사명도 거부합니다. 그러니 베드로는 자기 한 목숨 살겠다고. 주님 팽개치고 도망가고, 모른다고 욕까지 하면서 부인하지 않았습니까? 영성이 잠든자는 오직 자기만 압니다. 자신이 살려고 주님도 모른다고 부인하고 욕하는데,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교회를 욕하는 것, 목사 욕하는 것, 가정을 버리는 것 아주 우습게 여기지 않겠어요!!

주님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자기 손해나는 일을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무섭습니까? 그것이 나라도 생각해 보세요. 끔찍하지!!!

성경을 몰라서도 아니고, 하나님을 몰라서도 아닙니다. 뻔히 알면서 그럽니다. 그러니 더욱 심각한 것입니다. 누가복음12:47-48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구약시대에 요나를 보십시오. 그는 니느웨에 가서 회개를 선포하라고 하는 말씀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 밑창에서 잠을 자다가, 하나님의 진노로 3일 동안 고래뱃속에 들어가 깊이 회개하고, 다시 니느웨에 가서 억지로 하나님 시키는 대로 하였더니, 온 니느웨 사람들이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하였고 하나님께서 내리시고자 하는 진노를 내리지 않습니다. 이때 요나는 디따 화를 내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여호와여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이 크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내가 알았었습니다. 이제 나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좋으니 죽여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사람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신 줄 뻔히 알고, 너무나 잘 알면서 자기의 원수의 나라라는 이유 때문에 그들을 살려준다고 짜증 충만, 원망 충만입니다. 얼마나 못됐습니까! 이런 경우는 많이 맞아야 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기 성낼 일이가???”(요나4:4)

영성이 잠들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요! 성 낼일 아닌데 성내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짜증내고, 화내고, 싸우려고 하고, 원인이 자신의 영성이 잠들었기 때문에 그런 줄은 모르고 남을 원망하고, 화를 냅니다.

무섭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영성이 잠들면요, 예수 안 믿는 사람보다 더 험악합니다.

괜히 짜증나는 분계십니까? 영성이 잠들었습니다. 즉 주님과 안 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 밖에 모르기 때문이에요.

영성이 깨어있는 자의 특징은 먼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고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고 갑니다. 즉 남을 위해 기쁨으로 희생하는 것입니다. 어디 짜증을 냅니까?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여러분! 잠자고 있는 영성을 깨워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과 통해야 합니다. 내 삶에 주님이 최고여야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생활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먼저 예배를 통하여 영성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예배도 자기중심의 예배가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즉 보는 예배가 아닌 내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를 드릴 때 영성이 깨어나 주님과의 관계가 곧 회복됩니다.

둘째는 기도를 통해 영성을 깨우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언제부터 주님을 위해 목숨 바쳐 사명감당하고 어떤 환난과 어려움에도 기쁨 충만한 삶을 살았습니까?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 열흘 동안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더니 강력한 능력의 성령이 임하여, 성령 충만한 이후였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성령 충만하여 잠자던 영성이 깨어나 나와 세상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 만 보이도다. 찬송하며 기쁨이 충만할 줄 믿습니다.

세째는 말씀을 통해 영성을 깨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듣고 묵상하고 실천하는 일을 통해 잠자는 영성이 깨어나 주님과 언어가 소통이 됩니다.

그 외에 전도, 섬김, 나눔, 친교, 교육을 통하여 주님과 통하는 영성이 깨어 날 수 있습니다. 어느것을 선택하든지 좋습니다.

내일 새벽부터 실시하는 홍해작전은 새벽에 말씀과 기도가 있습니다.

살아있는 기독교인들의 최후의 마지노선(Maginot-line)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기도와 말씀이 없는 곳은 인본주의가 판을 치고 성령의 역사는 제한되고 사람들의 잔치만 있을 뿐이지 하나님이 진정코 기뻐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중단된다 하더라도 끝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기도와 말씀입니다.

지금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때입니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이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로서의 본질을 되찾고 세상에 비전과 소망을 제시할 수가 있습니다. 흔들리는 배속에 있을수록 더욱 더 나침반은 필요하고, 시대가 어두워지고 절대적인 가치의 기준이 흔들릴지라도 우리가 믿는 진리는 더욱 더 선명해지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새벽을 깨워 깊이 잠에 빠져 있는 영성을 깨워 초대교회와 같은 순수하고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언제까지 나만 알고 나 한 사람만 위해 살다가 인생을 마치시렵니까? 그렇게 해서 설령 주님 앞에 갈지라도 부끄러워 어떻게 서겠습니까?

새벽에 다 나오세요. 등대교회교인, 다른 교회 교인 따지지 말고, 초신자, 구신자 따지지 말고, 등록을 하고 안하고 따지지 말고, 심각한 병을 고치시는 마음으로 나오셔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셔서 잠자는 영성이 다 깨어나시기를 기원합니다. (강재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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