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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나비효과 (행 16: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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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로 ‘butterfly effect’라고 부르는 이 말은 기상학에서 처음 쓰여진 말입니다. 1961년 미국의 에드워드 로렌츠(E. Lorentz)가 기상관측을 하다가 생각한 이 원리는 훗날 물리학에서 말하는 카오스 이론(Chaos Theory)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이 원리는 한마디로 브라질 정글의 한 마리 나비의 날개 짓이 미국 텍사스에 거대한 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즉, 지구상 어디에서인가 일어나는 조그만 변화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날씨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나비효과의 이론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브라질 아마존 정글에 한 마리 나비가 날개 짓을 하며 날아갑니다. 나비가 날개 짓을 하자 나비에 묻어있던 꽃가루가 날려 옆에서 바나나를 먹던 원숭이 등에 자극을 줍니다. 그러자 원숭이는 간지러워 야자나무에 자기 등을 긁어댑니다. 야자나무를 흔드니까 야자나무의 열매가 떨어집니다. 떨어진 야자나무로 인해 언덕에 있는 돌들에게 충격을 주고, 돌이 움직여 다른 바위와 돌들로 순식간에 산사태가 나게 됩니다. 산사태로 하천이 막히고, 물이 범람합니다. 그 영향으로 분화구의 가스가 방출되지 못하고, 가중된 압력이 바다에서 폭발하여 기상에 영향을 주고, 결국 이것이 거대한 폭풍을 만들어 텍사스를 덮친다는 것입니다.

  나비의 작은 날개 짓이 이처럼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온다는 것입니다. 곧 작은 변화가 결과적으로 엄청난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이 처음에는 기상학에서만 사용하다가 점점 사회 전반에 걸쳐 확대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분야에서 나비효과를 말합니다. 정보화의 시대에 디지털, 메스콤은 물론이고, 기업이나 금융,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까지, 심지어는 스포츠에까지 확대가 되었습니다. 이미 2002년 한일월드컵을 통해 나비효과의 큰 영향을 경험했고, 이젠 지난 주 세계 야구선수권대회로 또 한번 축구가 아닌 야구의 나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비효과는 신앙생활에도 잘 나타납니다. 우리가 이 땅에 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마치 우리가 나비의 날개 짓과 같습니다. 나 한 사람은 아주 작지만, 그것이 폭풍과 같은 거대한 결과와 영향을 준다는 것입니다. 특히 신앙과 삶에 나비효과가 가장 적절하게 나타나는 곳이 바로 은혜의 현장입니다. 우리는 은혜를 먹고사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매일 예배와 경건을 통해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엄청난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은혜는 개인적이지만, 영향은 개인을 넘어 공동체까지 확대되고, 작은 것에서 크고 위대한 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은혜를 사모하고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바로 그것을 대표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은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힌 사건입니다. 몸도 마음도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겠습니까?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감옥에서, 아니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그들이 감옥에서 찬송과 기도를 했다는 것입니다. 25절에서 그것을 잘 알려줍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지금 이런 상황에서의 찬송과 기도는 은혜가 없는 자에게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모습입니다. 은혜를 받으니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감옥도 마치 자기 집과 같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아무리 온 몸을 족쇄로 칭칭 감고, 조이고 있어도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으니 몸은 힘들고 지치고 고달팠지만 마음은 하늘을 날것과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지금 감옥에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과연 어떤 찬송을 불렀을까요? 저는 이것을 묵상하다가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가의 이런 가사가 머리 속에 떠올랐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의 얼굴 뵙기 전에 멀리 뵈던 하늘나라 내 맘속에 이뤄지니 날로날로 가깝도다... 높은 산이 거친 들이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주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그들은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은혜 받아 복음 전하고, 은혜 받아 감옥에서도 찬송하고, 은혜 받아 근심과 염려를 주께 맡기고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바울과 실라가 지금 감옥에서 보여준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은혜 받은 자의 놀라운 모습 속에서 결국 엄청난 사건이 벌어집니다. 은혜의 나비효과가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은 은혜의 나비효과를 2가지로 전합니다.

  우선, 옥문이 열렸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이것이 은혜의 결과요, 나비효과였습니다. 이 말씀을 한번 자세히 보십시오.
먼저 ‘이에’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은혜의 결과를 나타내는 접속사입니다.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몸은 착고에 매였어도 마음을 하늘에 두고 있었더니, 바로 ‘이에...’ 그 결과로 옥문에 열렸다고 강조합니다.

  또한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라고 하는 말입니다. ‘다’가 두 번이나 반복하여 나타납니다. 지금 이들을 막던 모든 문들 전부가 열린 것입니다. 당시 죄수의 탈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문으로 겹겹이 이중삼중으로 문을 만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모든 문이 동시에 다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문만 열린 것이 아닙니다. 몸에 매인 모든 것이 역시 다 풀렸습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들을 불편하게 감고 있던 모든 것들이 다 풀린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 말씀에서 가장 귀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입니다. 분명 바울과 실라가 찬송을 불렀습니다. 다른 사람이나 죄수는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도 꽤 있었을 것인 분명합니다.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은혜를 받아 찬송과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었더니 이 두 사람만이 아니라 감옥에 있던 모두 죄수의 몸에 있던 착고가 다 풀린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나비효과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은혜는 이런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날마다 사모하고, 받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옥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 앞에 장애가 있고, 난관이 있더라도 은혜 앞에 무너지지 않을 장벽이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삶에 종종 여리고와 같은 장벽이 가로막힐 때가 있습니다. 홍해와 같은 막막함이 우리를 죄어 올 수가 있습니다. 사방으로 우겨 싸임을 당해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뒤로 갈 수도 없고, 옆으로 빠질 수도 없는 상황이 처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쩔쩔매고, 낙심하고, 눈물 흘리고, 괴로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은혜가 내 삶에 임하면 이것은 결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난관도 은혜를 막을 장벽은 없습니다. 은혜는 우리의 모든 문제와 난관을 극복케 하는 놀라운 힘이 있습니다. 은혜는 옥문을 열게 합니다. 걱정과 근심을 덜어주고, 문제와 고민을 해결해 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기 모든 사람에게도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렸다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으면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을 주고, 근심을 덜어주고, 그 사람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의 놀라운 힘입니다. 내가 은혜를 받으면 나만 잘되는 것이 가정도 잘되고, 사업도, 직장도, 친구도, 주변 사람도, 이웃도 다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은혜의 이런 나비효과를 믿습니다. 그래서 은혜가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영적으로 바로 서 있으면 그 영적인 흐름이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막혀 있으면, 다 막히는 것입니다. 내가 뚫리면 다 뚫리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나부터 잘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바로 되어야 합니다. 나부터 은혜로 충만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거기에서 놀라운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은혜를 통해 이런 나비효과가 여러분의 삶에 임하기를 소원합니다. 은혜를 받아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난관도 극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은혜를 통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큰복이 임할 줄로 믿습니다. 이런 은혜로운 삶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간수가 변화되었습니다. 은혜의 나비효과는 죄수들에게만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죄수를 지키고 있던 간수에게도 나타났습니다. 계속되는 말씀을 보십시오. 간수는 자다가 깨어 보니 옥문이 열리고, 죄수가 다 도망간 것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습니다. 이 모든 책임을 자기가 감수하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바울은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간수에게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죽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감옥에 그대로 있던 바울과 실라, 은혜 받은 자의 귀하고 아름다운 행동에 감동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보는 순간 자기도 예수를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때 바울은 간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복음의 은혜 앞에 간수는 예수를 믿기로 작정합니다. 자기만이 아니라 온 가정이 다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습니다. 그리고 후에 간수는 더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데 귀하게 쓰임을 받고, 그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로 세워집니다. 그의 전도를 통해 빌립보 지역이 복음화 되고, 그곳에 아름다운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 교회를 통해 전도와 선교가 이루어지고,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나비효과입니다.

  은혜를 통해 한 사람 간수가 변화 받고, 그의 가정이 구원받습니다. 그가 사는 마을과 도시가 변화되고, 온 세계와 열방이 달라집니다. 한 사람 바울, 한 사람, 간수는 당시 그렇게 크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의 작은 날개 짓이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온 것입니다. 이 세상의 복음은 다 그렇게 해서 영향을 준 것입니다.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큰 것으로 변화는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변화가 결국 큰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사람이 설날에 스승에게 세배를 갔습니다. 세배를 하자 선생님은 제자에게 세뱃돈이라며 1원을 주었습니다. 요즘 세상에 1원이 무엇입니까? 1원은 갖고 있기도 힘들 것입니다. 제자는 적잖이 실망한 나머지 나중에 선생님에게 1원만 주신 이유가 뭐냐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그때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천원이나, 100만원 모두 1원에서부터 계산하지 않는가? 1원이 없으면 100만원도 1,000만 원도 될 수 없다네, 1원의 가치를 알아야 더 큰 가치를 아는 것이 아니겠는가?” 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한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습니다. 매일 저녁 예수 믿을 사람을 초청했는데 한 사람도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사흘째 저녁에 겨우 어린 소년 하나가 손을 번쩍 들고 강단 앞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결신자는 없었습니다. 한 주간의 부흥회를 마치면서 목사님은 얼마나 실망이 됐는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번 집회에는 겨우 어린 소년 한 명 밖에는 결신자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어느 날 그 교회 목사님은 옛날 자기가 했던 그 고백을 크게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부흥집회 기간 동안에 유일하게 예수 믿기로 결심했던 그 어린 소년이 자라서 유명한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를 위해 일했던 리빙스턴을 통해 60만이 넘는 사람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한 사람을 통해 큰 나비효과가 일어난 것입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책에서 이 세계는 소수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있다고 간파하면서, 그들이 창조적 소수인지 혹은 파괴적 소수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 히틀러의 잘못된 판단으로, 치유되지 못한 과거로, 온 인류를 전쟁과 죽음의 공포에 떨게 만들고 600만이 넘는 유대인을 무참히 죽였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 아브라함 링컨을 통해 미국의 모든 흑인들을 억압과 고통에서 풀어 주었습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 지 모릅니다. 내가 지나쳐버린 바로 한 사람이 그리고 앞으로 내가 만나게 될 한 사람이 바로 이런 가능성을 지닌 사람인지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한사람에 대해 관심 갖으면 한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사람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는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는 일입니다. 간수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한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아주 작은 한 사람, 바로 거기에서부터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온 인류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모든 인류에 구원이 임했습니다. 한 사람 바울로 인해 복음이 전 세계에 퍼진 것입니다. 한 사람, 바로 나, 작은 한 사람 나의 변화가 이처럼 중요합니다. 한 사람, 나의 작은 날개 짓으로 거대한 폭풍을 일으키는 나비효과가 임하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은혜가 중요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나로부터, 모든 것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늘 저녁부터 우리는 기다리던 부흥사경회를 갖습니다. 해마다 맞이하는 집회이지만, 이번에 더욱 기대가 됩니다. 개인과 공동체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출발한 이 한해동안 우리의 소원은 결국 은혜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의 의미와 효과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들이기에 이번 집회가 중요합니다. 저는 이 은혜의 강가에 여러분을 정중히 초대합니다. 시간마다 빠지지 마시고 참여해 보십시오. 함께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면서 은혜의 도가니에 한번 깊이 잠겨보십시오. 내가 은혜를 받으면 분명 크고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나의 작은 은혜 받은 자의 날개 짓이 거대한 폭풍과 같은 결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분명 우리는 은혜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분명한 나비효과가 있습니다. 나의 작은 은혜의 날개 짓이 나의 모든 문제와 난관과 장벽을 무너뜨릴 것입니다. 은혜의 날개 짓이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작은 은혜의 날개 짓이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알고, 복음이 확장되는 거대한 폭풍을 만드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고, 풍성히 받으셔서 이런 놀라운 결과가 여러분의 삶에 크게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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