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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할렐루야 (시 146:1-2 , 시 147:1-9 , 시 148: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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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브리서 13장 15절에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라고 나옵니다. 일생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우리 성도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찬양 하도록 하나
님은 우리를 불러주시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10장 21절에 ‘그는 네 찬송이시오 네 하나님이시
라’, 시편 118편 14절에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라’, 예레미야 17장 14절에 ‘여호와여 주는 나
의 찬송이십니다’, 로마서 1장 25절에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이라고 했습니다. 고린
도후서 11장 31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영원히 찬송할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성도는 하나
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찬송 중에 거하신다’ 라고 시편 22편 3절에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찬
양을 어떤 것보다도 기뻐하신다’ 라고 시편 69편에 또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
신 목적도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라’고 이사야 43장 21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것?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이며,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찬양하는 것은 마땅합니
다. 찬양을 받으시기에 마땅하신 하나님, 우리는 찬양을 드려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라는 말이 4백 회나 기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에게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할 때 영적 부흥과 함께 범사에 하나님으로부터 내리시
는 은혜가 많았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다윗은 성가대원을 288명을 만들었고, 솔로몬은 성전
을 지은 다음에 레위인에게 음악을 담당하여 늘 노래하는 사람을 4천 명이나 두었습니다. 역대상 23
장에 나옵니다. 악기를 가지고 늘 찬양하는 사람도 120명이 있었습니다. 스룹바벨 시대에 바벨론에
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 중 128명의 청년 남녀들이 하나님 앞에 찬양을 드리는 것이 에스라 2장 41절
에 나옵니다. 또한 성전을 다 완성한 다음에 148명의 찬양대원들이 하나님께 늘 영광 돌렸다는 기록
이 느헤미야 7장에 나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는 어떤 예배이어야 합니까? 찬양과 기도와 감사와 말씀이 함께 잘
조화를 이룬 예배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어서 은혜를 받을 뿐만 아니라, 들은
말씀이 은혜가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의 입술이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제사도 있어야 합니
다. 그래서 시편에는 ‘하나님께서 소를 드리는 것보다도 찬양을 받으시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 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너무 찬양이 없습니다. 또한 노래도 너무 잘못된, 저속한 노래들이 많습니다. 제가
지난 금요일에 어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려는데 어떤 남자가 들어오면서 노래를 부릅니다. ‘♬사나
이 우는 가슴 그 누가 알랴’ 그러면서 노래를 계속 부르려고 하는데, 우리를 보더니 분위기가 영 안 맞
으니까 식당 주인이 다른 방으로 모시고 갑니다. 그래서 ‘우는 가슴’을 안고 가셨습니다. 사람들은 요
사이 너무 답답해합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상실의 시대라고 그럽니다. 여러 가지로 표현을 하는데
그 말도 맞습니다. 고향도 잃고 부모도 잃으며, 또한 자신도, 삶의 목적도 잃었습니다. 왜 사는지 어디
로 가야할지 너무 방황합니다. 그래서 상실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르는 찬송은 목적과 대상
이 있습니다. 세상을, 사람을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사람을 대상해 보십시오. 사람은 슬픔과 약점과
불행이 많으니까 이 세상으로 자꾸 내려갑니다. 그래서 그 노래를 부르면 부를 때도 문제지만 부른 다
음이 더 나빠집니다. 부르면 자꾸 더 정신적으로도 좋지 않고, 삶도, 생활도 좋지 않아집니다. 세상에
있는 노래이고, 세상을 보고 하는 노래이니 얼마나 고통스런 일이 많은 세상인데 기쁠 수가 없는 것입
니다. 그래서 절망하고, 잘못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잘못된 노래들을 너무 많이 부릅니다. 우리 성도들은 찬양을 불러야 하지만
이 시대에 건전한 노래를 부르고 또한 힘을 주며 소망을 주는 이런 노래를 부르는 분위기로 이 사회
를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나쁜 노래를 부르면 더 나빠집니다. 그러나
찬양은 노래의 왕입니다. 어떤 노래와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좋은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우리의 삶
을 차고 올라가도록 하여, 우리의 삶을 위를 향하여 소망과 자유함과 평안과 기쁨과 용기와 믿음과 신
뢰를 가져다 주며, 우리 마음에 어두움이 모두 다 물러가게 됩니다. 지금 의학적으로도 노래를 가지
고 치료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이 모두 다 되었습니다. 그래서 환자에게 노래를 부릅니다. 의학뿐
만 아니라 식물도 노래를 틀어 주면 꽃도 잘 피고, 향기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모두 다 증
명이 되었습니다. 동물도 닭을 키우는데 양계장에 어떤 노래를 틀어 주느냐에 따라 닭이 달라집니다.
훨씬 더 닭이 건강해집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을 찬양하도록 만들어 주셨고, 우리 인간도 하나님
을 찬양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아버지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찬양은 맹목적이 며, 허무
함을 노래하는 게 아닙니다. 전능하신 자, 지혜로운 자, 창조자, 영원하신 분, 왕의 왕이신 분,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 그 아들을 보내 주셔서 우리를 구속하신 분,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 우리는
그 분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의 찬양은 살아 있는 노래, 생명의 노래입니다. 내
영혼이 거듭나고 성령이 함께 하시며 구속함을 받지 아니하면, 이 노래를 절대로 부를 수가 없습니
다.

  시편은 노래의 책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말하기를 ‘신, 구약 성경의 엑기스를 다 모아 놓은 것
이 시편이다.’ 그렇게 말하고도 있습니다. 시편은 또한 성경의 중심에 있습니다. 신, 구약 전체에 중앙
에 있습니다. 그것이 노래입니다. 구약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도 레위지파들도 노래했습니다. 예수
님도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 하루 전날에도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으로 찬송하며 올라갔다는 말씀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주님도 노래하셨습니다. 그 노래
가 어디에서 나왔습니까? 시편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
는 노래입니다.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 앞에 드리는 찬양입니다.

  시편의 전체의 주제는 “할렐루야”입니다. 그래서 시편 150편 마지막 절 끝은 할렐루야로  마무리하
고 있습니다. 할렐루야라는 말은 ‘할랄’이라는 말 ‘하나님을 찬양하다.’에서 나왔으며, 예레미야 29장
13절입니다. ‘송축하다, 칭찬하다, 자랑하다, 빛내다’ 이런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할
렐루야에서 ‘루’자는 복수 명령형입니다. ‘찬양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에서 ‘야’자는 야훼의 줄인
말입니다. 그래서 야훼를, 하나님을 찬양하라, 여호와를 찬양하라 그런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시편
은 ‘하나님을 찬양하라’ 는 것입니다. 메츠헨네는 말하기를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라, 거룩한
사랑과 기쁨으로 그 분을 찬양하라,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는 믿음으로 그를 찬양하라, 흑암에 대한 승
리의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라, 하
나님으로 만족하면서 찬양하라,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완전히 경외하며 찬양하라, 하나님의 모든 섭
리에 즐겁게 순종하고 그 분의 사랑을 기뻐하며 그 분의 크신 자비 안에서 위로를 얻으면서 찬양하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찬양의 조건이 됩니다.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하나님을 찬
양하는 것입니다. 정글에서나, 사막에서나, 바다에서나, 감옥에서나, 오늘 죽음이 나에게 올지라도 찬
송을 빼앗아 갈 수가 없습니다.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늘 찬송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축복이고 은혜며, 힘이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찬양을 해야 합니다. 일하면서도, 씨를 뿌리면서도, 거두면서도, 밤이나 낮이
나 우리의 일생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
고 에베소서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6절에는 ‘놀라운 은총과 사랑을 우리에게 쏟아 부어
우리를 가장 사랑하시는 아들의 사람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시다’ 라고 새 번역에 기록되
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늘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편 30편 5절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찌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우리는 소망을 가지고 찬양하
는 것입니다. 시편 30편 11절에는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이 말씀을 새 번역 개역 성경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는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나에게서 슬픔의 상복을 벗기시고 기쁨의 나들이옷
을 갈아 입히셨기에 내 영혼이 잠잠할 수 없어서 주님을 찬양하렵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 나
의 하나님, 내가 영원토록 감사를 드립니다. 내게 슬픔의 옷, 상복을 벗기시고 나들이옷을 갈아 입혀
주셨습니다. 내 통곡을 기쁨의 춤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구속하
심이 있기 때문에 찬양이 있습니다. 구약에 모든 찬양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총과 기적이 있은 다음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다음에 노래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주신 그 승리, 하나님이
주신 그 축복에 대한 감사를 주님께 올리는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를 이렇게 영광스럽게 해 주신
참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는 찬양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는 찬양이 더 많이 발전해야 합니다. 제가 독일 교회에 친구들이 있어서 가서 보면, 유럽
의 교회들은 백 명인데도 찬양 목사가 따로 있습니다. 미국 교회들도 보면 찬양 목사가 꼭 있습니다.
우리는 설교하는 목사가 너무 많아서 말이 많고, 찬양은 너무 적습니다. 오늘 집에서도 찬양을 많이
부르고, 좋은 오페라, 뮤지컬, 음악회, 오케스트라 이런 것이 우리에게 많아야 됩니다. 그래야 좋은 것
이 작용해서 역작용이 생깁니다 물리학적으로... 너무 나쁜 문화가 많이 밀려오는데 이 나쁜 문화를
막아 낼 힘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모두들 연약하고 그 길로 빠지니까 이걸 막아낼 수 있는 능력은 하
나님의 교회에서 좋은 찬양이 흘러 나와야 됩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모든 성도들은 찬양을 많이 하
고 늘 찬송하면서 찬송 속에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찬양은 기도입니다. 찬양하면 기쁨이, 힘이, 능
력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전쟁에서도 이기고, 병도 떠나갑니다. 다윗은 노래를 부르면서 악기
를 연주할 때 사울 왕의 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요사이 과학이 발달한 것 모두 다 성경이 뒷받침합니
다. 우리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장, 자장 괜찮다, 괜찮다’ 그러면 괜찮아집니다. ‘자장, 자장’ 노래
를 부르면 잠이 잘 옵니다. 노래같이 잠을 잘 오게 하는 게 없습니다. 여러분! 찬송 틀며, 불러 보십시
오. 여러분에게 영적인 풍요로움으로 이 봄에 내 영혼에 시냇가의 시냇물같이 심령이 살아 역사 할 줄
로 믿습니다. 이 세상 사람은 찬양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찬양도 능력입니다. 정욕의 힘으로는 노래를
부를 수 없습니다.

  오늘 2부 예배에 사람들이 많이 나오셨습니다. 3부도 많이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2부가 3부보다 훨
씬 더 나오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왜 이렇게 2부에 몰리나 이상하다’ 여겼습니다. 하여튼 식당까지 모
두 다 찼습니다. 전부 로비와 비디오 실 열 개가 넘는 곳이 2부에 모두 다 찼습니다. 앉을 자리가 없습
니다. 이상하다 2부에 주님이 오시나 어떻게 이렇게... 나중에 보니까 야구 보러 가려고, 2부 드리고
야구 보러 가려고 그런 것입니다. 야구는 누구나 하는 게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야구를 해야 야구 근
육이 있고, 야구 근육이 발달해야 합니다. 힘은 근육에서 나오지 뼈에서 나오는 게 아닙니다. 야구 근
육이 있습니다. 농구는 농구 근육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공을 받으면 공이 그냥 쫙쫙 나가는 것입
니다. 축구는 축구 근육이 있습니다. 따로 있습니다. 근육이 그렇게 발달합니다. 테니스도, 골프도, 탁
구도 근육이 따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 힘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쳐 보십시오. 조금 밖에 안
나갑니다. 갈비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근육이 있어야 힘이 있습니다. 알통이 없으면 안 됩니다. 찬
송도 찬송하는 영적 근육이 있어야 합니다. 찬양도 힘입니다. 실패자는 그냥 허무한 노래를 부릅니
다. 못나옵니다. 찬양은 은혜 받은 사람, 기도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 구속
함을 받은 사람이 합니다. 그 근육이 찬양하는 근육으로 발달해야 합니다. 찬양하는 능력이 있어야 됩
니다. 항상 입에서 찬송이 나와야 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찬송하는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독교는 승리의 종교입니다. 이 찬송은 주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가는 나라마다 찬양
이 울려 퍼집니다. 어떤 마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인데 어떤 마을
에 해마다 처녀를 한 사람 제물로 바칩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일이 많았습니다. 어디에 바치느냐 하
면 이무기에다 바칩니다. 이무기가 그 처녀를 데려가 버립니다. 그러면 일 년 동안 그 마을에 재난이
없고 풍년이 들며, 이 이무기가 노하지 않는다 라는 이런 미신을 우리는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못에다 바친다하고 우리 마을에서도 저는 그런 이야기를 어려서 많이 들었습니다. 처녀를 바
친다, 애를 바친다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항상 이 마을은 우울합니다. 살기는 살아도 해마다 바쳐
야 되니까. 그 해에도 막 불안에 떨고 있는데 지나가던 청년이 마을에 들어와서 “어떻게 이렇게 불안
해합니까?” “아이고~ 말 마십시오. 오늘밤에 이 마을에 귀한 처녀를 한 명 바치게 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냐고 그 집이 어디입니까?” 그래서 그 청년이 그 집에 갔습니다. 그 집에는 온 가족이 웁니
다. 오늘 그 딸을 제물로 바쳐야 됩니다. 그래서 청년이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건 제가 해결 하겠습
니다.” 그러고는 그 처녀가 입었던 옷을 제게 모두 다 달라고 하고는 자기가 갈아입는 것입니다. 갈아
입고 밤에 큰 연못 위에 올라갑니다. 으슥한 달밤에 올라가서 밤중이 되었습니다. 동민들은 다 보고
있는데 드디어 불이 번쩍이며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더니 그 이무기가 죽어 나가떨어지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었나 하고 한참 지나서 새벽녘이 되었는데 그 청년이 다 찢어져 가지고 다 상한 몸으로 겨
우 살아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온 동민들이 열렬히 환영하고 이무기가 죽음으로 마을이 모두
다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없어졌습니다. 온 마을이 기뻐하고 그래서 그 승리한
총각을 처녀하고 결혼을 시켜서 잘 살았다라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쉬운 이야기입니다. 우리 조상들에게 늘 있었던 이야기인데 이것은 기독교적인 것이
참 많이 이 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모두 다 죄에 눌리고 마귀에 눌리며, 사망권
세에 눌리고 우리 조상들이 미신 안 섬긴 사람이 어디 있었습니까? 그래서 어떤 분이 교회 나와서 하
는 말이 예수 믿으니 너무 편하다는 것입니다. 귀신은 날마다 불안하게 합니다. 된장 담는 것까지도
모두 다 물어야 하고, 전부 다 물어야 하는데 안 물어보고 하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 우상입니
다. 그런데 예수 舅만?물어볼 게 하나도 없습니다. 마음대로 하면 됩니다. 그러니 세상에 이렇게 편
할 수가 없습니다. 농촌 목회를 제가 많이 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예수 믿으면
참 편하다 그럽니다. 귀신 섬겨보십시오. 처음에 섬길 때 쉽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
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우리 옷을, 죄인의 옷을 갈아입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내 대신 모두
다 맡고 만신창이가 되어서 우리를 그 사망의 세력에서 건지시고 지금 우리의 남편이 되셔서 우리와
같이 계시지 않습니까? 그래서 너무 좋아 찬송이 나옵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찬송은 자기 혼자 부르
는 것도 아니고 잘 살아서 부르는 것도 아니며, 기분 좋아서 부르는 노래는 절대로 아닙니다. 무슨 환
경이 좋아서 부르는 노래가 아닙니다. 이것은 주님이 주신, 내 안에, 내 영혼에 주신 영원한 축복이기
때문에 노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송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본인이 또한 잘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끊임없는 영광을 받으시고 찬송하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여 주십
니다.

  시편 146편을 한 번 보겠습니다. 전부 할렐루야입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
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평생토록 찬송해야 합니다.
내 생전에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그리고 10절 마지막에 보면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
히 대대에 통치 하시리로다 할렐루야” 147편도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께 찬양함이 선함이여 찬송함
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여러분! 이 세상 노래 부르며 막 옷을 찢고 비틀고.. 저는 아름답지 않게 보
입니다. 모두 열광하고 막 소리 지르며, 죽는 것같이 벌벌 떨어도 그래도 제 눈에는 아름답게 안보입
니다. 노래를 왜 그렇게 부릅니까? 천천히 서서 불러도 얼마든지 되는데..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
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를 모으시며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12절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찌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
양할찌어다 저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너의 가운데 자녀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케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했습니다. 이런 분을 어떻게 찬양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
까? 148편에도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찌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
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찌어다” 모두 전부 할렐루야입니다. 14절 “저가 그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
니 저는 모든 성도 곧 저를 친근히 하는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거리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로 나옵니
다. 149편 1절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찌어다” 150편 6절 “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찌어다 할렐루야” 하고 시편이 끝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서 끝납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미국에 백화점 왕인 제이시 페니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사업이 잘 되다가 사업을 실패 했
습니다. 1929년 미국에 대 불황이 닥쳤는데 그때 사업이 다 부도나고 아내도 죽고 절망 가운데 빠졌습
니다. 자기는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죽고 싶어서 유언장을 써서 주머니에 넣고 다녔습니다. 이, 삼 년
아무리 병원을 다녀도 병원에서 병명을 모릅니다. 병원도 가면 조금 차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런 병은
사실 못 고치지 않습니까? 계속 병원에 드나드는데 아무리 가도 안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 복도
를 지나가는데 이제는 더 이상 살기 싫고 죽고 싶은 마음으로 지나가는데 병원 환자실에 심방 와서 노
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43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날개 밑에 거하라 주
너를 지키리 주 너를 지키리 아무 때나 어디서나 주 너를 지키리 늘 지켜 주시리♬ 변화가 왔습니다.
찬송을 듣고 얼마나 은혜를 받아 심령이 새로워지고 능력을 받아 그래서 나와 가지고 이 분이 제이시
페니라고 하는 백화점을 세워서 세계적인 백화점 왕이 되었습니다. 지금 미국 뉴욕이나 LA 어디든지
가면 제이시 페니 백화점이 없는 도시가 없습니다. 미국에만 해도 수 백 개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 찬양할 때 찬양을 들어도 치료가 됩니다. 부르면 더 좋고 능력이 있습니다. 그
래서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성가대원입니다. 저는 사실 제 설교 잘 안 듣습니다. 늘 아쉽고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은혜를 받느냐하면 성가대가 찬양할 때 제 눈에는 눈물이 주룩 흐릅니
다. 참 감사합니다. 찬양할 때 그렇게 제 영혼에 기쁨이 올 수가 없습니다. 찬양은 참 좋습니다. 그래
서 우리 한국 교회도 찬양을 좀 많이 불러야 됩니다. 이 복잡하고 괴로운 세상 교인들도 찬瑛?안 부
르고 노래방 가는 교인이 많습니다. 그런 데에 가면 안 됩니다. 찬양을 불러야 어두움의 세력을 몰아
냅니다.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기쁠 때도 찬양, 슬플 때도 찬양, 언제나 찬양하는 것입니
다. 우리는 항상 좋아서 찬양하는 게 아닙니다. 스펄전 이라는 유명한 분은 말하기를 ‘우리는 일생이
꿀과 같이 달아도 해롭고, 쓰기만 해도 해롭다’고 했습니다.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항
상 춥습니까? 항상 덥습니까?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좋은 날도 며칠 안 되고, 항상 햇볕만 들면 이
땅은 전부 사막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비도 오고 눈도 오며, 햇빛도 비추고 고루고루 이래야 합
니다. 우리 성도들이 날씨보고 찬양하려면 하루도 찬양 못합니다. 이런 날은 이래서 찬양하고 저런 날
은 저래서 찬양하며, 봄에는 사론의 꽃 찬양하고, 가을은 가을의 노래, 밤은 밤의 노래, 혼자 있을 때
는 혼자 있어서 찬양하고, 늘 찬송하는 이런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가대에서 한 곡 더 찬양을 하겠습니다. ♬내가 만민 중에.....

  우리 교회에도 솔로몬 시대같이 주일 날 봉사하는 성가대원이 한 삼천 오 백 명이 되는데 내년에는
사천 명으로 늘리고 다음 달에는 성가대석을 2층으로 만듭니다. 그래서 2층에 한 백 오십 명 정도 더
앉으면 그 쪽에 앉는 분들도 다 올라갈 수 있습니다. 지금 한 6백 명 정도 봉사를 하는데 하나님 앞에
찬양을 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했습니다. 이 분은 원래 궁중에서 왕의 행사에 언제나 작곡을 해서 행사 때마
다 자기 주어진 일을 감당을 했습니다. 그러던 분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헨델이 메시아를 작곡을 했
습니다. 이 작곡한 메시아 내용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할렐루야를 시작
으로 해서 끝까지 할렐루야로 가고 중간에 보면 왜 하나님을 찬양 하냐? 왜 할렐루야 하느냐? 그는 영
원히 다스린다 라고 나옵니다. ♬영원히, 영원히 할렐루야, 할렐루야 왕의 왕♬ 내가 모시는 분은 왕
이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왕의 왕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왕에게 주는 작곡을 하지만 지금 이 노래
는 왕의 왕에게 바친다 라는 것입니다. ♬왕의 왕 또 주의 주♬ 영원히 다스린다 라는 것입니다. 여러
분을 영원히 다스리시는 분은 왕의 왕이신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
니다. 찬양하는 가정은 축복의 가정입니다. 어두움이 그 가정을 절대로 엿볼 수 없습니다.

  오늘 복음성가 ‘비전’을 잠깐 배우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에도 다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우
리 보좌 앞에 모였네 함께 주를 찬양하며 하나님의 사랑 그 아들 주셨네 주의 피로 우린 구원 받았네
십자가에서 쏟으신 그 사랑 강같이 온 땅에 흘러 각 나라와 족속 백성 방언에서 구원받고 주 경배 드
리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
님과 어린양께 있도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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