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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누구관대 (출 3: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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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들 중 가장 대하기 어려운 사람을 들라고 하면 아마도 패배주의적인 사고에 쩔은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사람은 어떠한 반응에 대해서도 무관심이요,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대개 비관적인 사람은 지식인들이 많습니다. 많은 지식을 섭렵하고, 나름대로 날카로운 비판력이 있는 사람들이 대개 비관적이기 쉽습니다. 일례로 광림교회의 김선도 감독님은 자신에 대해서 종종 나는 참으로 비관적인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알고 보면 그 분은 젊어서 이북에서 의학을 공부한 지식인적 경향이 짙음을 알게 합니다. 즉 지식이 사람을 비관적인 태도, 즉 소망없음에서 건져주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이 왜 어렵냐면 대개 나름대로의 대책이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명 무엇이 아니고, 나쁜지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면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서는 쉽게 용단을 내리지 못하기에 비관적인 사람들이 무반응이고, 대처하기가 버겁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적극적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낙관적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비관적인 태도에 빠져버린 한 사람을 소개하기 원합니다. 그는 오랜 시간을 공허라는 의미의 땅, 광야에 거쳐한 사람입니다. 그도 젊었을 때는 열정이 있었고,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닥친 한차례의 홍역과 같은 실패가 그를 철저히 패쇄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번의 심각한 실수가, 실패가 다시는 그를 일어나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짐이 되어서 그를 철저히 패쇄적인, 부정적인 실패의 사람으로 절락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모세의 인생이 그랬습니다. 그는 젊었을 때, 속된말로 정말 잘 나가는 사람이었습니다. 출생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한편의 신화같은 전설과 같은 행운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빈틈없이 진행되어지는 인생의 모습은 한참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40의 나이에 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정말 인생 자체가 행운이고, 행복이고, 축복인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그는 한 걸음 나아가서 젊은 날 민족적인 포부를 품습니다. 야망이라면 야망이고, 사명이라면 사명인 의미있는 일을 계획합니다. 모든 일이 자신의 바램대로 척척척 들어맞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차례의 실패가, 단 한번의 좌절이 그를 철저히 무너뜨립니다. 어쩌다 그렇게 심각하게 무너지나 싶지만, 그는 인생 최초이자, 최대의 좌절 앞에서 철저히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리고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그의 인생이 끝나갑니다. 여기까지가 모세의 이력서요, 자기 소개서입니다. 모세는 이런 사람이었고, 지금 철저치 무너진 열등감의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하나님이 부르십니다. ‘모세야 모세야’ 그리고 그에게 사명을 주십니다. 이제 주의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랜 기간 그를 억누른 좌절이 그를 철저히 부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패배주의적인 태도의 관성은 그를 여전히 그곳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었습니다. 설령 그것이 하나님의 부르심인 들 그에게는 들려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는 왜 나를 부르시냐고 대드는 구제불능의 태도를 보입니다.
이쯤 되면 이것은 죄악입니다. 이쯤되면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그런 불신앙의 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불쌍합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치이고 살았으면, 의당 자신은 실패나 하는 사람이고, 그런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단정짓는 한심한 인생입니다.

40년의 위력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이젠 그는 예전의 그가 아닙니다. 그는 이제 예전의 혈기왕성하던 40대가 아닙니다. 그는 이제 80세의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육체적으로나, 신앙적으로도 위축되고, 열등감에 가득한 한 불쌍한 영혼이 된 것입니다.
10절, 11절입니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내가 누구관대” 이 한마디는 그가 지금 어떤 사람인지, 그의 인생이 지금 어느 쪽으로 흘러가고 있는지에 대한 분명한 보고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겸손이 아닌 위축된 영혼,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영혼이 어떻게 치유되고, 치유받아야 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 하기 원합니다.

1) 스스로 과소평가하지 말자.

열등감의 주요 특징 중에 하나는 자신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1절을 보면 그러한 모세의 성향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4:1 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즉 아무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를 만났다고 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인데 어쩌라는 것입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철저히 패배주의에 젖은 자의 말입니다. 그만큼 나는 형편없는 사람이며, 남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한심한 존재고, 아무도 내말에 귀기울이지 않을 그런 사람이러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어떻게 소개합니까?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이적과 증거를 동원해서라도 그를 담대하게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지 않습니가? 즉 내가 함께 할 테니 너는 나만 믿으라는 것입니다. 결코 너희는 그것으로 괴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에게 도움을 줄 하나님이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오늘 말씀에 나오는 모세의 과소평가도 큰 문제입니다. 모세는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쓰레기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낼만한 사람을 보내시라고 출애굽기 4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4:13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러분, 우리는 우리의 가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상품은 너무 많이 찍어내면 값이 싸지고, 농산물도 너무 많이 산출하면 값이 싸집니다만,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갑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실패는 열등감에서 시작됩니다. 우리 인생의 성공과 승리는 이미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열등감의 울타리, 사슬을 풀고 나와서 하나님의 자녀로 당당히 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피 흘리시고 고난당하셨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내가 살림을 입었습니다. 이사야 53장 6절에 보니,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 값을 예수님이 대신 지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에 보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를 살리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맞바꿔진 사람이 바로 나 한 사람, 한 사람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협력자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열등감의 다른 증상은 무기력감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입니다. 이것은 겸손과 다릅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심정,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 바로 무기력감입니다.

모세의 본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7장 22절에 따르면 40년 전의 모세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 아멘.
모세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공부해서 남주냐고 하는데, 그러한 능력과 실력이 분명 자기 자신에게 쓰며 있음에도 나는 그럴 만한 사람도, 그릇도 아닌 형편없는 사람이니 다른 번지수나 찾으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입니다.
“나는 말에 능하지 못한 자입니다. 입이 뻣뻣합니다.” 바로 무력감에 대한 보고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지만 아무도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는데요 하나님.. 누구와 함께 가란 말입니까?” 했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말에 능한 아론과 함께 가라. 또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가라.” 하나님은 모세를 위해서 그의 협력자들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목회도 목사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목회자들끼리 하는 게 아닙니다. 장로님들과 함께 동역하는 것,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권사님, 집사님, 제직들이 그 일을 거들고 함께 하는 것입니다. 결코 목회는 혼자 할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나는 혼자라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구역장이라면 당신을 도울 분이 반드시 구역 안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예비해 놓은 분들이 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협력자를 세우시는 이 섭리를 믿고 당당히 서야 할 줄로 믿습니다.

결코 시작도 안해보고 지레질겁해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을 극복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혼자서 다 하지 못해도 좋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것을 다하지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용기를 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혼자서 전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없을까를 놓고 괴로워하며 주저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함게 해주시라는 것을 의지합니다. 바로 그 믿음으로 움추러든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요 14: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3)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약속, 예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의 말씀 12절을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아멘.

다시 말하면 네가 애굽에서 그들을 이끌어 낸 이후에, 네가 다시 이 곳, 호렙산에 와서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그 약속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출애굽해서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시내산이었습니다. 곧 호렙산입니다. 그는 거기서 백성들을 머무르게 하고, 산 정상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십계명 판을 가지고 내려옵니다.

성경 21절, 22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내가 애굽 사람으로 이 백성에게 은혜를 입히게 할찌라 너희가 갈 때에 빈손으로 가지 아니하리니 여인마다 그 이웃 사람과 및 자기 집에 우거하는 자에게 은 패물과 금 패물과 의복을 구하여 너희 자녀를 꾸미라 너희가 애굽 사람의 물품을 취하리라” 아멘.

모세는 얘기합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도 가진 것이 없는데요. 이 가난한 백성, 이 노예들을 이끌고 광야에서 어찌 40년을 지내란 말입니까?” 그 때 “걱정하지 말아라. 내가 결코 너희들을 애굽에서 결코 빈손으로 내보내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손에 가득히 채워서 내 보낼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 말씀대로 애굽인이 가진 모든 것들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접수했습니다. 은과 금과 패물들을 다 취해서 다 가지고 광야로 나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지금도 가난하니 내일도 가난할 것이다! 믿습니다!” 절대 그렇게 믿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가난하고 힘들더라도 내일은 풍부할 것이다! 지금은 병약할지라도 내일은 건강할 것이다.”라는 믿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채우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빈손으로 내보내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풍성히 채우시는 그런 분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물질을 소유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선물들을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면 우리는 가장 큰 자 요, 가장 부유한 자 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그런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필요를 넉넉히 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가장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풍성한 축복이 예비 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이 확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병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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