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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 (삼상 7: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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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가 자식을 갖지 못하여 수모와 고통과 슬픔의 세월을 살 때에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기도에 응답하셔서 그가 아들 사무엘을 낳게 해주심으로써 그의 개인적 삶의 역사를 반전시키실 뿐 아니라, 사무엘을 이스라엘의 새 사사, 제사장, 예언자로 세우시고 그의 지도력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반전시키신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그 반전의 역사의 첫 부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고 합니다. 사사 삼손이 등장하게 된 시대부터 사무엘의 시대까지 이스라엘의 주된 침략자며 지배자로서 이스라엘에게 고통을 준 족속은 블레셋 이었습니다. 사사시대 말기에 영적으로 타락하고 국력이 쇠약해진 이스라엘은 이 블레셋을 당할 힘이 없었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기 전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참담하게 완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첫번째 전투에서는 사천명의 군사를 잃었고, 하나님의 궤를 가져와 그것을 메고 나가 싸운 두 번째 전투에서는 더 많은 삼만명의 군사를 잃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마저 이방 블레셋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블레셋 앞에서 연전 연패하던 이스라엘이 오히려 블레셋을 추격하며 쳐부수는 반전이 이루어집니다.

단지 블레셋을 격퇴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로부터 항복을 받아냈고 다시는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사는 지역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듭니다. 본문 뒤에 나오는 13절을 보면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또 14절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 고 합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아 차지하고 살던 큰 성읍들을 포함해서 사방의 지역을 다시 이스라엘의 땅으로 회복시켰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블레셋 족속뿐 아니라 아모리 족속 즉 가나안 땅의 원주민 족속들이 모두 사무엘이 살아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동안 더 이상 이스라엘을 함부로 넘보거나 쳐들어올 생각을 버리게 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평온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이스라엘 역사의 반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일으키신 것입니다. 사무엘서의 기자는 이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혼비백산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서 넘어지고 도망치게 됨으로써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바로 다음 절인 12절을 보면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했다.” 고 합니다.

에벤에셀이란 ‘도움의 돌’ 이란 뜻입니다. 패배에서 승리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반전되었음을 기념하며 그것이 온전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음을 선언한 것입니다. 또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굴복하고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지역을 다 되돌려주고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된 것도 13절에 보면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셨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역사의 반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일어난 변화를 보시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전시켜주신 것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앞세워 하나님께 부르짖었기에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이에 응답하셔서 쳐들어오는 블레셋 족속에게 큰 우레를 발하시며 그들이 혼비백산해서 패퇴하게 하셨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백성이 된 변화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하나님을 찾고 오직 하나님께 매달릴 줄 아는 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해방과 평화의 시대를 얻고는 얼마 후에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방족속에게 침략과 지배와 약탈을 당하며 갖은 치욕과 고통을 겪게 되고 그러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으면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반복해온 민족입니다. 그러나 사무엘과 함께 하나님께 부르짖은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은 우리가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는 블레셋이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며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궤까지 빼앗아갔지만 그 때문에 숱한 고난과 생명의 희생과 대도시의 멸망을 당해야 했던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끝에 기럇여아림이란 곳에 갖다 놓고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습니다(삼상7:1). 하나님의 궤는 그곳에서 이십년 동안을 지내야 했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조금 앞에 있는 7장 2절에 보면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했습니다. 우리말로는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했다” 고 옮겨졌지만 보다 원뜻에 가깝게 옮긴다면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향해 애통하였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온 족속이 하나님을 향해 애통했겠습니까? 바로 그 앞에 있는 말이 그 설명이 됩니다. 즉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이나 거기에 그냥 있었는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그 기간이 오랜 기간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기럇여아림은 블레셋 사람들이 차지하고 살던 지역의 변방이고 이스라엘 사람들의 지역과의 접경지역입니다. 그들에게 재앙의 진원이 되는 하나님의 궤를 그들의 삶의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떼어놓되 아주 이스라엘에게 넘겨주지는 않음으로써 그 궤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다시 어떤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는 일은 막으려는 계산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접경지에 갖다놓고 관리도 이스라엘 사람이 하게 하되 그 궤가 기럇여아림을 떠나 이스라엘 백성의 중심지로 옮겨가지는 못하게 통제와 감시의 눈을 떼지 않았을 것입니다.

치욕스럽게 이방인의 손에 빼앗긴 하나님의 궤를 되찾아 하루라도 빨리 그 궤가 있어야 할 자리에 두고 싶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블레셋의 억압 아래 있던 이스라엘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었으니 온 족속이 하나님을 향해 죄스럽고 부끄러워 애통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 앞에 지도자로 나서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입니다. 오늘 본문 바로 앞에 있는 3-4절을 봅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말하여 이르되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을 던지기를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라 했습니다. 이 말 속에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있다고 봅니다.

우선 하나님의 궤 때문에 애통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말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향해야 할 곳은 하나님의 궤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궤에다 돌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란 말은 ‘하나님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애통이 정말로 그치게 되기를 바란다면’ 이라는 뜻도 갖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의 애통을 씻어주시기를 바란다면’ 이란 뜻으로 이해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란 말은 또한 ‘만일 너희의 마음이 하나님과 다른 우상들 사이에서 갈리지 않고 오직 그리고 온전히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하려거든’ 이란 뜻으로도 생각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물음을 던진 사무엘은 이어서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만일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사무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한 것은 소극적으로는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라” 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실 선물이 무엇인지도 덧붙여 말했습니다. “그리하면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어지는 4절은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거하고 여호와만 섬겼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변화가 일어났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변화는 하나님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의 역사를 반전시키시게 한 이스라엘의 변화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무엘의 말에 호응하여 그들에게서 우상들을 제거하고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심하자 사무엘은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고 거기서 기도의 대성회를 열었습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5마일 정도 떨어진 곳으로서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지파들이 모여 회의하던 중심지였습니다. 본문 5-6절을 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미스바 대성회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이 한 일은 하나님을 향했던 그들의 부르짖음이 그냥 부르짖음이 아니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그들은 미스바에 기도하러 모였습니다.그리고 그들이 거기서 드린 기도는 회개를 동반한 기도였습니다. 그들은 부르짖기를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 전 그들이 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물을 길어다가 여호와 앞에 부은 것입니다. 물은 생명의 보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부족 간의 전쟁 가운데 많은 경우가 물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이 물을 길어다가 마시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쏟아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걸 정도로 무언가 진지하고 단호한 결의를 표한 행위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훗날 다윗이 블레셋과 싸울 때에 갈증이 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 우물은 블레셋 군대의 요새였던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어서 물을 긷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말하기를 “누가 내게 우물물을 마시게 할 수 있을까?” 하자 그의 장수 삼십 명 중 셋이 용감하게 나서서 블레셋 진영을 돌파하고 지나가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다윗에게로 돌아오는 데에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장수들이 생명을 걸고 길어온 우물물을 다윗에게 전하자 다윗은 “여호와여 내가 나를 위하여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이는 목숨을 걸고 갔던 사람들의 피가 아니니이까?” 하고는 그 물을 마시기를 기뻐하지 않으며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 드리고만 일이 있습니다 (삼하23:13-17).

이렇게 물을 붓는 것은 자신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어떤 중요한 결단을 하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은 회개의 기도를 드리기 전 이렇게 물을 길어다가 마시지 않고 부어버림으로써 그들에게는 생명을 보전시켜주는 물보다 하나님의 은혜의 도우심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을 상징적으로 고백했고 전심으로 하나님에게 돌아오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그들의 확고한 결의를 하나님 앞에서 표명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종일 금식할 뿐 아니라 물조차 마시지 않으며 기도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앞세우고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부르짖음은 이러한 부르짖음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회개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결의한 사실을 전해들은 블레셋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두말할 필요 없이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한데 모여 집회를 갖는 것을 금지시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흐트러진 이스라엘 백성의 힘이 다시 결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미스바 집회를 초기에 무산시키고 집결을 시도한 이스라엘을 응징하여 이스라엘의 재기의지를 확실히 꺾어놓고 다시는 블레셋에게 항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군사를 동원한 것입니다.

본문 7-9절을 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블레셋의 침공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 싸였지만 하나님께 부르짖는 길밖에 없음을 알고 사무엘에게 하나님께 쉬지 말고 기도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예전과 달라진 이스라엘의 모습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했습니다. 엘리 사사 때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지 않고 하나님의 궤를 찾았습니다. 그 장로들은 말하기를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삼상4:3)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가 이스라엘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은 궤를 향해 땅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쳤던 겁니다 (삼상4:5).

그러나 사무엘과 함께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이렇게 변화된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쇠락하고 암울해진 이스라엘의 역사를 승리의 역사로, 평화의 역사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되는 역사로 반전시켜 주신 것입니다. 언약궤의 돌아옴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돌아옴이 구원과 승리와 평화를 얻게 한 것입니다.

본문이 전하는 이스라엘의 역사로부터 오늘 우리는 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전심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온갖 우상들을 제거하고 우리의 마음을 오직 하나님께로 향하며 하나님만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미스바에 모여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가 모여 기도하는 것을 싫어하는 세력들이 온갖 방해와 비난을 행하더라도 굽히지 않고 더욱 열심히 모여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부르짖음이 이스라엘이 사무엘을 앞세우고 하나님께 하던 그런 부르짖음이 될 때 우리의 부르짖음은 하나님께 상달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생명을 걸고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악한 세력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무리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시기도 할 것이며 그들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도 하실 것입니다. 이 땅의 악한 세력들을 굴복시키시고 다시는 이 땅에서 발호하지 못하게 하시며 밖으로부터의 그 어떤 위협적 세력으로부터도 하나님의 손으로 친히 막아주실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모든 국익과 주권도 다 도로 찾게 해주시며 우리 주변의 모든 나라와의 사이에 평화도 정착시켜주실 것입니다.

참된 믿음과 진심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부르짖는 이 땅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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