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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계 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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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 책망을 받은 교회는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특징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책망하시기를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데교회의 특징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실상은 죽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책망하시기를 일깨어 죽은 것을 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봅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는 건강이 가장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건강의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건강해야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건강하다고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요즘 지방선거가 준비되고 있는데 선거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 당선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당선 되었다고 모두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지혜를 가지고 일등이 되었다고 하여 모두 하나님의 일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먼저 이 질문을 던지기 전에 해야 할 질문이 있는 것 같군요.
성도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일을 잘 하시기 원하십니까?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감사하며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다시 묻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할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 그것은 부흥입니다.
부흥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부흥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영어로 부흥(revival)이란 단어는 라틴어의 두 단어에서 온 복합어입니다. 하나는, '다시'라는 의미이며, 또 하나는 '산다'라는 두 단어로 되어 있어서. 즉 '다시 한번 살아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활동하심으로써 쇠퇴하던 것이 다시 한번 소성하게 되고,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산 것 같지 않은 그가 참으로 살아있는 존재로 소성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잘 표현되고 있는 부흥의 실례는 에스겔 37장에 나와 있습니다.
에스겔이 마른 뼈를 향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 때, 뼈가 소리를 내며 연결되고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고 가죽이 덮어지면서, "생기야 이 사망을 당한 사람에게 들어가라"고 외칠 때, 그제야 죽어 있던 뼈들이 일어나 극히 큰 부대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뜻합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함으로써 영적인 숨을 쉬고,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소생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 여러분, 이러한 부흥의 역사가 오늘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저는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야말로 이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많은 교회가 부흥을 양적인 성장으로만 이해하고는 개인의 영적각성, 교회의 영적 각성에는 힘을 쓰지 못하다가, 결국에는 양적인 성장으로는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혀 좌절하고 절망하며 쓰러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와 성도님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영적 각성을 통한 부흥입니다. 겉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죽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다시 사는 것, 부흥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사데교회를 향하여 부흥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자로다”라고 책망하신 것은 사데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부흥임을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입니다. 

죽은 것이 다시 살고, 정말 사는 것, 부흥이 정말 우리들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저녁부터 있게 될 사순절 영적 각성을 위한 부흥회를 통해 진정한 부흥이 여러분들에게 일어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여러분의 심령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심방 중에 기도제목을 받고 기도해 드리고 있는데 어떤 분이 이런 기도 제목을 쓰셨습니다. “주님 내 심령에 부흥을 주시옵소서. 첫사랑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다시 일어나게 하옵소서.” 아멘
정말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것인지를 아는 성도님의 기도였습니다.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해 드렸습니다. 심령이 살아야 육체가 살고 삶이 풍성해지고 모든 일이 잘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여러분의 가정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관계의 부흥이 필요합니다. 가정은 관계입니다. 관계가 가정의 행복과 불행을 가져다 주는것입니다. 죽은 관계는 불행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관계는 행복합니다.

가정의 위기는 교회를 떠나 세상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얼마나 심각하고 무서운지 모릅니다. 윤리적 타락은 물론이고 도덕적인 비양심이 가정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고 죽게 했습니다. 거기에 행복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가정이 살아나야 합니다. 가정을 살리기 위해 파괴된 죽은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관계의 부흥은 가정을 살리고 모든 가족을 행복으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심령의 부흥이 가정의 부흥이 되고, 가정의 부흥이 교회의 부흥이 되고, 교회의 부흥이 지역사회의 부흥이 되고, 열방과 세계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부흥을 가장 원하십니다.
죽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있는 교회가 되어 이 세상의 구원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우리 영생교회 세워진 목적이요 영생교회가 이루어야 가야 할 최고의 목표입니다.

넷째로 우리 민족 가운데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민족 부흥은 민족주의나 국수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패와 타락과 부정과 불법으로 죽어가는 민족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로 살아나는 민족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경제부흥도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죽은 경제가 살아나고 다시 활기있는 경제회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부흥이 이번 영적각성을 위한 부흥회를 통해 실현되고 열매 맺게 되기를 바랍니다.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부흥의 역사를 우리들에게 보여주시고 모든 성도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데는 기원전 6세기 경 리디아 왕국의 수도로서 가장 화려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점차 쇠퇴하게 되었고 고레스와 안티오쿠스의 침략을 받으면서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원 후 17년 대 지진으로 인해 전멸되고 폐허가 되어 버렸습니다.

사데 교회는 사데 지역의 번영 속에 별 문제가 없이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이단의 위협이나 황제 숭배의 박해도 그리 심하지 않았기에 신앙의 무풍지대와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것이 교회의 영적 무기력을 부추키는 결과가 되었습니다. 
큰 신전 한 쪽 구석에 조그맣게 지어진 사데 교회는 그들의 영적인 무사와 안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데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영적 각성을 통한 부흥이었습니다.
죽어가는 교회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사데 교회를 향하여 통렬한 책망의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사데 교회를 책망하시는 주님은 사데 교회가 가장 필요한 것이 부흥임을 아셨고 부흥을 이루기를 촉구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데 교회는 결국 실패하고 퇴락하였으며 그 지역마저도 파괴되어 버리고 폐허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내가 촛대를 옮기리라는 주님의 준엄한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사데 교회를 거울삼아야 합니다. 영적 무기력의 결과가 어떠한 지를 깨닫고 다시 깨어 일어나야 할 것입니다.

사데 교회를 향하여 하신 주님의 말씀 가운데 다시 살 수 있는 부흥의 길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께서 사데 교회에 말씀하신 부흥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길을 통해 다시금 부흥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부흥의 길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는 말씀속에 담겨있습니다.

이 말씀 속에 담긴 첫 번째 의미는 영적인 각성입니다.
부흥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영적인 각성입니다.
영적 각성은 생각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자신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나의 영적인 상태는 어떠한가?
자기 성찰을 통해서 바르게 자신을 발견하고 판단할 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게 될 때 비로서 부흥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 말씀하십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오늘 이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영적인 각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역사를 주도하시는 하나님, 그 가운데서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들어 쓰시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참된 영적 부흥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영적인 각성을 하지 않는 다면 희망이 없습니다. 부흥은 요원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영적인 각성이요 부흥입니다.

성도여러분,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무엇을 하십니까? 정말 있어야 할 나의 필요는 무엇입니까?
혹 영적인 무사안일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지요. 영적인 무감각하지 않은지요.

두 번째 말씀의 의미는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부흥을 위해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회개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케 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다시 주시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자리에 부흥이 일어납니다.
진실한 회개는 하나님의 평안을 누리게 합니다. 그러므로 심령의 어두움과 죄악과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으로 위로받고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선교 초창기에 영적 대각성이 있었습니다. 1903년에 원산에서 시작해서 1907년에 평양에서 절정을 이른 부흥운동이었습니다. 영적 대각성은 1903년 선교사였던 하디 목사(R. A. Hardie)의 회개를 시작으로 일어났습니다.

회개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입니까? 단순히 놀음을 한다거나, 남을 미워한다거나, 거짓말을 했다거나 이런 죄가 아니라, 살인, 강간과 같은 큰 죄를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회개한다는 것-그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졌습니다.

당시 이러한 회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글이 있는데, 이글은 1904년 3월에 서울 잣골 교회(오늘의 자교교회)의 부흥회 기간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내용입니다.
"이야말로 가장 놀라운 집회였다. 죄의식이 너무나 깊어 온갖 추악한 죄들을 고백했고 훔친 재물들을 돌려주었다. 우리 교인 대부분은 처음으로 죄가 어떤 것이고 죄 사함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다. 이 집회 결과로 참석했던 사람들은 새 삶을 살게 되었고 축복을 받게 되었다. 이런 집회를 통하여 우리가 확신한 바는 성령께서 한국인들의 마음을 움직여 현재의 구원을 확신하고 증거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부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증거를 통해서 교인의 수를 증가시키는 것-그것은 부흥의 이차적인 결과에 불과합니다. 부흥은 하나님께서 내 삶 가운데 임재하는 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잘못된 삶을 자복하며 회개할 때 일어나는 회개의 역사입니다.

이번 영적각성을 위한 부흥회가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대 각성을 이루며 진실하게 회개하여 사죄의 은총을 경험하는 부흥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새롭게 세워지는 진정한 부흥을 이루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부흥회라는 것을 그리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것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입니다."
그러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당신은 땀으로 더러워졌을 때 목욕을 하지요? 그러나, 목욕도 역시 일시적인 효과일 수밖에 없지요. 그러기 때문에 자주 목욕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부흥이 필요한데도 부흥을 말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부흥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부흥을 이루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각성을 통해, 진실한 회개를 통해, 부흥하는 이기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년 3월26일 주일낮예배 이광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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