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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옵소서 (삿 4:1 ~ 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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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남녀평등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두 인격체가 합하여 한 몸으로서의 조화를 말합니다. 남편의 사랑과 아내의 순종은 어느 것이 먼저가 아니라 동시에 같이 가는 것입니다.
옛말에 '현부 영부귀 악부 영부천'(賢婦 令夫貴 惡婦 令夫賤)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어진 아내는 남편을 귀하게 만들고 악한 부인은 남편을 천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오늘날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하게 되었다고 해서 남녀의 성경적 원리가 파괴되어서는 안 됩니다. 요즘 부쩍이나 여성들의 사회적 약진이 괄목(刮目)할 만합니다. 조만간 특별히 공직사회가 여성천하가 될 것 같다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최근 여성들의 성과는 대단합니다. 여성이 남성에 비해 사시 32%, 행시 44%, 외시 52.6%로 계속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수석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과 외시의 경우 최연소 합격과 최고령 합격자도 여성이라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경찰대학 졸업생 중 1, 2, 3등 모두가 여성인가 하면 금년도 해군 사관학교 입학과 졸업 수석도 여생도라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은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는 흔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성경에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탁월한 여성들이 많이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여 사사 드보라(Deborah)는 그러한 인물 중에 한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꿀벌'이라는 뜻입니다.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4번째 사사인 동시에 여선지자입니다. 그녀는 에브라임 출신으로 이방민족을 몰아내고 그의 차원 높은 신앙인격으로 이스라엘을 통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여호와를 찬양하는 '드보라의 노래' 라는 아름다운 시를 남겼습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신앙고백은 문학적 가치로서도 탁월합니다. 그녀에게는 모성적 자상함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반영하듯이 드보라에게 붙여진 최고의 명칭은 '이스라엘의 어머니'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보편적 의식 구조 속에서는 사회생활에서 여자들의 발언권이나 권위가 경시되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보라가 한 시대의 통치자였다는 것은 그의 인품이나 그가 가진 능력의 탁월함보다는 하나님의 섭리적 의도에 무게를 두어야 합니다.

Ⅰ. 이스라엘에 대한 여선지자 드보라의 축복입니다.

본문 4장 4절에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드보라 외에도 여선지자가 모세의 누이 미리암(출 15:20)과 홀다(왕하 22:14)가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사사시대였습니다.
드보라는 백성들의 절대 지지를 받아 민족의 지도자로 활약했던 여걸입니다. 미리암이 여 선지자였으며 여성 지도자의 위치를 확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의 누나라는 후광을 업고 그 그늘 밑에 있었습니다. 그녀 단독으로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활약했던 것은 아닙니다.
드보라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의 폭정 밑에서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온갖 죄를 범한 필연적인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야빈에게 당하는 핍박과 억압은 견디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고통의 세월이 20년이 흐른 뒤 그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악을 회개하며 민족구원의 여망으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여선지자 드보라를 세워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로 삼은 것입니다.

Ⅱ. 죽음을 불사하고 시대적 사명을 수행 하 는 자들에 대한 드보라의 축복입니다.

본문 4장 6-7절에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으로 가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스라엘 민족 해방을 위하여 야빈 왕과의 일전을 명했습니다. 야빈으로부터 가장 고통을 당한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 명을 선봉으로 다볼산에 집결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네 손에 붙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붙이다}(나탄, )라는 말은 '대적들을 패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즉 야빈과 시스라의 군대가 이스라엘에게 패하게 된다는 예언적인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했을 때 믿고 그것을 실천하는 드보라의 선지자다운 결단이었습니다. 바락은 드보라의 말을 이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드보라를 민족의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녀의 명령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바락이었습니다. 이때 바락은 드보라가 함께 가야만 움직이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본문 4장 8절에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고 했습니다. 바락의 이러한 태도를 보고 그가 비겁하고 연약한 사람이라고 평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락은 더없이 용맹한 장수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2절에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와 다윗과 사무엘과 및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바락이 드보라와 함께 행동하기를 원한 것은 홀로 적군을 대적하기가 겁이 나서라기보다는 '하나님의 사람'과 동행하기를 원하는 그의 신앙인격으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한편 야빈은 드보라와 바락이 거느린 이스라엘군 일만 명이 다볼산에 집결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야빈 왕은 시스라를 사령관으로 삼아 900대의 전차를 앞세운 정예군으로 다볼산을 포위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낸 위대한 선지자 드보라의 출생과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성경에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드보라가 랍비돗의 아내라는 것과 판사로서 백성들의 송사를 다루었다고 했습니다.

본문 4장 5절에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고 했습니다.
드보라가 비록 사사의 위치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핍박하던 야빈 왕에게 도전하는 군사적 행동은 바락 같은 장군들이 취했어야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때가 이르렀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마침내 '내 백성을 구출하라' 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때 드보라는 주저하지 않고 장군 바락에게 가나안 군과의 전투 준비를 명령했습니다.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결단과 용기를 갖추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는 신속하고도 올바른 판단과 조치였습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이 야빈 왕의 군사력에 도전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와 같다는데 주목해야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지 아니하고는 안되는 일이었습니다. 야빈과의 전투는 누가보아도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선지자의 지혜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급히 모집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군사훈련도 안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기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야빈의 군사력은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막강한 정예군으로 900대의 전차까지 갖추었습니다.

승산 없는 전투의 결과는 더욱 심한 압제와 핍박을 가져온다는 당연한 사실을 드보라가 몰랐을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바락에게 군사를 일으키라고 명령한 것은 그녀가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환경과 형편보다 우선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드보라는 여호와께서 함께 하실 때 승리는 자기의 것임을 확신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빈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 비해 상대는 최신 무기와 전차로 무장한 정규군이었습니다. 드보라는 죽음을 불사한 일전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바락을 선두로 일만의 이스라엘 군은 사기백배하여 파죽지세로 시스라가 거느린 가나안 진영으로 돌진해 들어갔습니다.
결국 가나안 군은 손 쓸 사이도 없이 전멸하고 말았습니다. 시스라는 구차히 목숨을 구하여 도보로 도망하던 중에 한 여인, 야엘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했습니다. 본문 4장 21절에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고 했습니다.

여장군 드보라가 거둔 이날의 빛나는 승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몰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여자의 역할이 종족 보존의 도구와 극히 수동적인 위치에서 가사를 돌보는데 국한되어 있었습니다. 여자들의 사회적 진출은 생각조차 가질 수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이때 드보라는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야빈 왕 밑에서 신음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구했습니다.
본문 5장 18절에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라고 했습니다.

Ⅲ. 주를 사랑하는 승리자들에 대한 드보라 의 축복입니다.

본문 5장 31절에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침 해가 돋음같이 미래가 복되게 해 달라는 드보라의 축복입니다.

1) 이스라엘의 승리의 주체는 하나님 자신입니다.
본문 4장 23절에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전쟁 승리의 주역을 꼽으라면 드보라, 바락, 야엘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는 이방인들을 징계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징계를 위해서 이방인들을 들어 쓰시지만 궁극적으로 이방인들은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백성들을 종으로 다스릴 수 없는 일입니다. 따라서 전쟁 승리의 영광을 사람에게 돌리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선용되는 복을 받은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승리의 과정은 하나님의 계시의존에 있었습니다.
본문 4장 14절에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라}고 하는 말은 하나님이 뜻을 굳게 믿는 확신에 찬 음성입니다. 그녀는 오늘이야말로 이스라엘이 20년 동안 야빈의 압제에서 해방되는 날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이 역사적 사건을 바락에게 맡겼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드보라가 이미 예언한대로 시스라를 죽인 자는 바락이 아닌 야엘이었습니다(4:21). 드보라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자신의 삶의 궤도였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때가 이르렀으니 일어나라}고 한 말은 그의 선지자적 기능이 발동한 것입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바락과 더불어 다볼산 전투를 계획했습니다.

3) 이스라엘의 승리의 결과는 하나님의 계시 실천에 있었습니다.
본문 4장 24절에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고대의 전투에 있어서 열등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을 때에 높은 곳에 진을 치는 일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아군보다 우세한 적군을 내려다보게 되면 군사들이 사기가 떨어져 불리해지기 때문입니다. 다볼산 전투에 있어 바락과 일만 군사는 새까맣게 몰려드는 적군을 바라보며 전의를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보라가 산 위에 진을 친 것은 적군의 주 무기인 전차의 위력을 약화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드보라는 다볼산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으고 시스라도 자기 군사와 그가 자랑하는 전차 900대를 기손 강으로 모았습니다. 기손 강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은 전차부대는 그 기능을 상실하고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군에게 시스라의 군대가 대패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통쾌한 승리를 거둔 여장군 드보라는 왕이 없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의 권력을 탐하지 아니했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선지자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전쟁을 명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가나안 왕 야빈이 죽은 후로부터 가나안인들이 쇠퇴하게 되는 결정적 동기가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일이 있었던 후로 가나안 원주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전쟁을 승리케 하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드보라는 선지자의 사명으로 자신의 존재 의의를 찾는 자였습니다. 그녀의 행동강령은 철저히 계시의존화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제일주의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볼 때 스스로 죽기를 각오하는 사람들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동화 할 때 자주 듣게 되는 말입니다.
여기 다볼산 전투에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모두 참석한 것은 아닙니다. 르우벤 지파도 참전을 거부했고 메로스에서도 군사를 보내지 아니했습니다.
본문 5장 23절에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드보라는 전투를 감행한 것입니다. 이 모두는 계시의존의 힘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형편과 처지를 앞세우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미 익숙해진 이러한 생각들을 속히 없애야 합니다. 드보라는 본문 5장에서 바락과 함께 감사의 노래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본문 5장 24-31절에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손으로 장막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장인의 방망이를 들고 그 방망이로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뚫되 곧 살쩍을 꿰뚫었도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 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 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 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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