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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사람 (히 12: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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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대째 예수를 믿는 사람입니다. 참 많이 부족하지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제가 제일 좋아하고 열심히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예수를 믿는 일이었다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때문에 받은 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 복을 한 마디로 말씀드린다면 후회 없는 삶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후회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삶의 후회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젊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젊어지기를 소원하는 마음속에는 지금의 삶을 후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다시 젊어진다면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참 건방진 말로 들려질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면에서 조금도 젊어지고 싶지 않습니다. 아니 젊어질까 봐 오히려 걱정입니다. 젊어진다면 다시 오늘로 돌아올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 제 자신의 삶에 100% 만족합니다. 아니 그 이상 만족합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에서 고백한 것과 같이 제 삶의 잔도 넘칩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저의 삶의 경험을 통하여 예수 잘 믿는 것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저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 저 보다 똑똑하고 공부 잘 한 사람, 인간적으로 볼 때 저보다 훌륭하고 잘 난 사람들이 참 많았습니다. 저는 그런 면에서 별로 뛰어나지 못했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딱 하나, 비록 조금이지만, 남보다 잘하고 뛰어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예수 믿는 것이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을 즐거워하고 열심히 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부족하지만 제 삶의 경험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권면 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 예수 믿는 일을 중히 여기고 열심히 하시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정말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삶, 후회 없는 삶, 젊어지고 싶지 않는 삶, 언제나 삶의 잔이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언제나 주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지혜가 있었고 그 지혜는 부족한 저의 삶에 언제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축복을 주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치기만 해도 복이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말씀들이 있지만 그 중 하나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눈다면 창세기 2장 24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라는 말씀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이성에 눈을 뜨게 되고 여자 친구를 사귀게 되자 아이들이 부모인 저보다 알게 된지 얼마도 되지 않는 자기 친구를 더 좋아하고 마음이 그에게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여자 친구의 생일에는 꽃을 사서 보낸 아이가 정작 제 생일은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전화 한통 하지 않았을 때 참 많이 섭섭했습니다.

그날 하나님은 저에게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날 저는 ‘아 이제 내 아이가 나를 떠날 때가 되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힘들었지만 마음으로 아이를 떠나보내 주었습니다. 내 아이가 나보다 자기 여자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것, 앞으로 나보다 자기 아내와 자기 자식을 나 보다 더 사랑하게 될 것을 인정하기로 하였습니다.

온 세상 보다, 아니 자 자신보다 더 사랑하고 귀히 여기는 자식을 마음으로 떠나보낸다는 것처럼 힘들고 어려운 일은 아마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저는 힘들었지만 그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아이가 나를 떠나 자기 아내와 자기 자식을 더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이라는 표현이 좀 이상하지만 내 아들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며느리와 손주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날 그 말씀의 깨달음과 순종 때문에 제가 참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을 자식을 잃지 않고 자식과 함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희 집은 지금 현재 4대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저희 어머니, 저희 부부, 아들 며느리 그리고 손녀입니다.

제가 만일 창세기 2장 24절의 말씀을 그냥 말씀으로만 알고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지 못하였었다면 저는 오늘 이 행복과 축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는 점점 더 자라나 자식에게 뿐만 아니라, 돈과 명예와 자리와 권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꼭 붙잡고 놓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식에게처럼 그것을 마음으로 떠나보내었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일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물질과 명예와 자리와 권세가 저를 떠나지 않고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창세기 2장 24절 말씀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많고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되는데 성경 66권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만일 다 순종하고 산다면 우리가 받고 살 하나님의 축복은 아마 다 감당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말씀 중에 하나는 요한계시록 3:20절의 말씀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로니 구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제 문을 두드리시며 제가 문을 열어 드릴 때 까지 기다려 주신다는 말씀이 너무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들어오시는 것이 옳으신 일이고 좋으신 일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에게도 좋으신 일이고 저에게는 좋은 일 정도가 아니라 축복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일을 강제적으로 하시지 않으십니다. 늘 나의 동의를 물으십니다. 늘 나를 이해시키시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까지 기다려 주십니다. 나를 하찮은 피조물로 여기지 아니하고 귀한 인격으로 존중해 주십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좋았습니다.

저는 그와 같은 말씀의 깨달음을 통하여 나도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그렇게 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자녀들에게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처럼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노력하였습니다. 내 아이지만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고 하여도, 그것이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고 하여도 그렇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함부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의 동의를 구하고 아이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려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제가 영락교회 협동목사로 있다가 동안교회 담임목사로 가게 되었을 때 제 큰 아이가 중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저는 아이가 당연히 저를 따라 동안교회로 올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동안교회로 오지 않고 그냥 영락교회 중등부를 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아버지가 목사지 자기가 목사냐?’고까지 고집을 부렸습니다.

담임목사 아들이 다른 교회를 고집하며 다닌다는 것을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저를 조금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를 강제적으로 끌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 생각을 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존중해 주기로 하였습니다. 주일마다 큰 아이를 영락교회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일년을 넘게 그렇게 하였습니다. 아이가 중등부를 졸업한 후 제 스스로 동안교회로 왔습니다.

여러분 그냥 평범한 이야기로 들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 때문에 얼마나 큰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들 셋을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아들 셋을 키우면서 거의 한번도 세대차 때문에 갈등하지 않았습니다.(저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강제로 제 말을 듣게 하기 보다는 예수님처럼 문밖에서 기다려 주기로 하였습니다. 아이가 문을 열어주면 그때 들어가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기다리면 언제나 아이들이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이제 아이들이 제가 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자 아이들이 문을 잠그지 않게 되었습니다. 제게 대한 아이들의 마음이 언제나 열려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적인, 인간적인 그 어떤 성공보다 그것을 더욱 더 큰, 아니 가장 큰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요한계시록 3장 20절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지혜를 삶에 적용하지 못함으로 중요한 삶의 문들이 닫쳐지는 아픔을 격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까지 복이 되는지를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스치기만 해도 축복입니다. 제대로 부딪히면 그 축복은 감당이 안 됩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그 믿음으로 산다.’(롬1:17)라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는 것을 죄라고 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습니다. 사탄은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말씀을 따라 살게 하지 못하고, 세상을 따라, 욕심을 따라 살게 하려고 합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그와 같은 사탄에게 넘어갔고, 그 죄는 원죄가 되어 우리에게 유전이 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합니다. 이해와 신뢰가 부족합니다.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우리들에게는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욕심대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세상 식을 좇아 살려고 하는 마음이 더 강합니다. 성경은 그것을 죄라하고 그렇게 살면 잘 살 것 같지만 결국에는 못 살게 될 것(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그 죄와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싸우지 말고 피 흘리기까지 작심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죄에 무뎌져서 죄를 심상히 생각합니다. 그냥 싸우기는 하지만 죽기 살기로 싸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피 흘리기까지 싸우려고 하지는 잘 않습니다. 그것은 좀 지나친 것이고 광적인 것이라고까지 생각합니다. ‘사람이 죄 안 짓고 어떻게 사냐?’고까지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죄를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죽기 살기로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죄 안 짓고 말씀대로 살기가 그만큼 힘들고 어렵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청빈(淸貧)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청빈한 삶을 용기 있게 사시는 분들은 인정하고 존경하지만, 저는 깨끗한 사람이 가난해져야만 하는 세상이 싫습니다. 저는 청빈을 왜곡된 세상의 훌륭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이 왜곡되었고 삐뚤어졌기 때문에 깨끗한데 가난해 지는 것입니다.

깨끗하면 가난해 지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깨끗하면 부자가 되는 세상이 좋은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왜곡된 세상에서 가난해 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가난하게 사는 한이 있어도 깨끗하게 사는 것에 우선 도전해야만 합니다.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는 말씀은 잘못하면 추상적인 말씀이 될 수 있습니다. 죄와 싸울 때 흘려야 하는 구체적인 피 중에 하나는 가난입니다. 피 흘리는 것이 무서워 싸우지 않습니다. 가난해 지는 것이 무서워 죄와, 세상과 싸우지 않습니다. 적당히 타협하는 것입니다. 가난해져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깨끗하지 못하고, 정직하지 못한 것과 싸우려고 한다면 결국에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승리하고 세상적으로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리시기까지 싸우셨습니다. 그와 같은 순종 때문에, 다시 말씀드려 불순종과 피 흘리시기까지 싸우심을 통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지내는 주간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믿음 때문에 당한 고난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기 위해 당하신 고난이었습니다. 그것은 죄와 피 흘리시기까지 싸우신 싸움의 전형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으면 구원 얻고 죄 지으면 죽습니다. 믿음은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죄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욕심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 자체가 지혜입니다. 우리에게는 말씀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세상과 세상 식을 하나님과 하나님 말씀보다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본능이 있습니다. 버릇이 있습니다.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과 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기 살기로 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말씀대로 살려면 피를 흘릴 수도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가난해질 수도 있고, 물론 잠시이기는 하지만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무서워서 싸움을 포기하고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산다면 결국 그는 살아남지 못하고 죽고 망하게 될 것입니다. 피 흘리는 한이 있어도, 잠시 어렵게 되는 한이 있어도 앞에 있는 즐거움과 축복을 바라보고 죄와 불신앙과 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공자 논어에 군자유어의 소인유어이 (君子兪於義 小人兪於利)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매사에 의를 생각하는데 소인은 언제나 이익만을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군자는 아무리 손해가 나도 옳은 일이면 하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큰 이익이 된다고 하여도 그것이 불의한 일이라면 하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소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익만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손해가 나면 아무리 의로운 일이라고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익만 되면 아무리 불의한 일이라고해도 개의치 않고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우리들이 믿음의 군자들이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지금 우리는 대개가 다 믿음의 소인배들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축복입니다. 왜곡된 세상에서 말씀대로, 믿음대로 산다는 것이 힘듭니다. 때로는 피를 흘려야만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은 그만한 대가를 치를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축복을 내다보고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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