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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를 만나 자신의 운명을 바꿔라! (요 4: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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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사오정과 저팔계가 미국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대한항공기를 타고 미국 공항에 내려서 입국 수속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영어를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저팔계가 입국 수속을 밟으면서 미국 직원에게 한국말로 하라고 야단을 쳤습니다.
막무가내로 따지고 있는 저팔계를 뒤로 밀치면서 사오정이 아주 유식하게 영어로 말합니다.  "Excuse me.  I'm English O.K."
직원이 사오정을 향해 다시 물었습니다.  "Really?  Can you speak English?"
사오정이 저팔계를 보면서 아주 당당하게 대답을 합니다.  "O Yes. No problem.  O. K. Good."
이후로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한국말로 통역해서 하겠습니다.
이제 직원이 사오정을 향해서 묻기 시작합니다.
"잘 듣고 질문에 대답해 주세요."
"으 응"
"당신은 위험한 무기나 마약을 소지하고 있습니까?"
"예∼스!"
"당신은 불법적인 일을 하기 위해서 입국합니까?"
"물론입니다."
직원이 경찰 호출 비상벨을 누르면서 사오정을 향해 다시 말합니다.
"당신들을 조사하기 위하여 연행하겠습니다."
이 말에 사오정은 아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직원과 저팔계를 번갈아 보면서 한 마디를 합니다.
"부라보!"
그날 두 사람은 경찰에 연행되어 죽도록 두들겨 맞고는 한국으로 추방당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름지기 사람은 말이 통해야 합니다.  말귀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은 마음이 열려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이 시간 열린 마음으로 부족한 종의 입술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여러분의 심령이 뜨거워지고, 성령이 임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주님의 전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에는 어떤 인간적인 면보다 하나님의 은혜에 먼저 초점을 맞추십시오.  우리를 모든 방황에서 건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으십시오.  우리는 모든 고난에서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을 사모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성경 전체가 뚜렷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은 우리 성도의 삶 속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살아 역사할 것을 믿고 오늘도 성령의 충만함을 사모하시기를 축복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 가운데 보면 대낮에도 어두운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밤중에도 대낮같이 밝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의 차이가 아니라 사고의 차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일 큰 축복은 세상 생활의 축복이 아니라 사고생활의 축복입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이 사람이 끝없는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하늘의 넉넉함을 품고 살아가는 권세있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이란 사고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고를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미래의 모습도, 성장의 모습도 결정이 됩니다.  결국 인간의 사고는 동화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가 보이게 안 보이게 우리 인간의 인격과 삶을 형성해 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사고의 통제력이 필요합니다.

사고의 통제는 한 마디로 위엣 것을 찾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2절을 보면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라는 말은 우리의 온 몸 전체가 하나님의 영으로 흠뻑 젖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온 몸 전체에 성령께서 기름 부어주시는 은혜가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가지십시오.  소망을 가지십시오.  바다 같은 사랑의 마음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겨울 바다를 본 적이 있습니까?  끝이 없는 수평선 너머에서 쉴 사이 없이 밀려드는 파도를 본 적이 있습니까?  지난번에 에스더 여전도회가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출석율이 90%가 되지 않아서 오후에 저녁을 얻어먹으러 포항에 갔습니다.  시간도 있고 해서 칠포 바닷가에 갔는데 밀려오는 겨울 파도가 정말로 장관이었습니다.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바다를 바라보면서 그러더라구요.  "오∼ 바다!"  그날 따라 엄청나게 큰 포물선을 그리면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는 정말 환상이었습니다.
밀리고 또 밀리고….  왠만하면 지쳐서 그만 두겠지만 지칠 줄 모르는 그 힘의 원동력!  이 시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여, 사랑하는 언양 영신가족들에게 바다 같은 마음을 주시옵소서.  바다 같은 힘을 주시옵소서.  바다 같은 신비의 능력들이 오늘 예배를 드리다가 심령 깊은 곳에서 폭포같이 솟아나게 하옵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무엇보도다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받으십시오.  마귀는 사람을 충동질합니다.  마귀는 사람의 깊은 내면에 잠자고 있는 쓴 뿌리를 들추어냅니다.  그래서 감정을 격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령은 언제나 사람을 감화 감동시킵니다.  쓴 뿌리를 치유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사탄 마귀의 충동질에 서두르지 말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소멸하지 마시기를 축복합니다.

살아가면서 만나게 되는 모든 문제는 언제나 자신이 만듭니다.  그러나 비록 내가 실수를 하고, 내 잘못으로 인하여 문제가 났지만 그 해답은 언제나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연단하는 시간을 마귀는 언제나 시험하는 시간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연단을 받을 때에 그것을 사탄의 시험으로 내주지 말아야 됩니다.  결코 사탄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특징은 어떤 시련에도 낙심하지 않는 것입니다.  육신의 안식을 위하여 밤을 주시는 하나님은 영혼의 정화를 위하여 시련의 밤도 주십니다.  그 영혼에 더 아름다운 정화가 필요하면 좀 더 큰 시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은 밤이 지나가는 것처럼 시련의 날도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누가 제일 행복할까요?  진시황제처럼 으리으리한 아방궁을 짓고 사는 그가 행복할까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 권세를 부리는 그가 행복할까요?  몇 백만원짜리 외투를 입고 벤츠를 타고 가는 그 여자가 행복할까요?

아닙니다.  엄마 등에 매달려 사탕을 먹으면서 엄마 등에 온통 사탕칠에다 콧물을 범벅해 놓고도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제일 행복합니다.  어린 자녀들은 부모의 슬하에 있는 한 환경을 문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일진대 우리가 주 안에만 거한다고 한다면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인간이 당하는 고난 중에 하나님이 모르시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 중에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아십니까?  우상은 제물을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의 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안에서 다시 일어나십시오.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자리에서 훌훌 털고 일어나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여 주십니다.  무기력한 자에게 능력을 더하여 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염려가 되십니까?  걱정이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염려하지 마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사 도우실 것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에 복을 주시옵소서.  삶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모든 사람은 그가 알든 모르든 자신의 인생 철학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은 끝없는 용서와 사랑과 화해의 삶의 철학을 가지고 남을 편안하게 해 주고, 성공시켜 주고, 이해해 주는 남다른 기쁨의 덕목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불행하게도 끝없는 미움과 불평과 복수심과 절망적인 분노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인생 철학은 끊임없이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것으로 말입니다.  쉽게 말해서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생각이 굳어지면 안됩니다.  지금은 변해야 삽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역사에서 도태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시대에 뒤쳐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약자와 강자의 문제가 아니라 빠른 자와 느린 자의 문제입니다.  역사에서 20% 미만이 적응을 한다고 합니다.  나머지 적응하지 못하는 80%는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변화를 거부하면 자아 도취에 빠지거나 자아 만족에 빠지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변해야 합니다.  변해야 삽니다.  나사렛 예수 이름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자기 내면의 변화를 시작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 변화와 변질을 구분하셔야 합니다.  변해야 한다면서 추하고 더럽게 변하는 것은 변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변질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변화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본질은 복음입니다.  진리의 말씀입니다.  이것은 절대로 변화될 수 없습니다.  변화되어서도 안됩니다.  반면에 비본질은 환경이나 피아노, 예배의 순서 등입니다.  비본질은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습니다.  또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비본질은 변화되지 않고, 본질을 변화시키려고 합니다.

한경직 목사님께서 서울 영락교회를 은퇴하신 후에 박조준 목사님께서 후임으로 부임하셨습니다.  그런데 박조준 목사님이 부임하신 후 8개월 후에 그 교회에 영향력 있는 어느 권사님이 박 목사님을 찾아와서 점잖게 이렇게 한 마디를 하더랍니다.
"목사님, 왜 마지막 송영 때 찬송가 3장을 안 부릅니까?"
그러니까 한경직 목사님이 목회를 하실 때에는 예배 마지막 송영으로 언제나 찬송가 3장을 불렀다는 겁니다.  그런데 박조준 목사님이 오셔서 다른 찬송을 부르니까 예배가 이상하다는 겁니다.  도무지 은혜가 안 된다는 겁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3장을 부르면 어떻고, 300장을 부르면 또 어떻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비본질적인 것을 가지고 생명을 걸지 마십시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본질이 변하면 안됩니다.  그러나 비본질은 얼마든지 변할 수 있고, 또 변해야만 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보다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로 변화되기를 소망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변화에 보다 민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변화에 민감하다는 것은 생각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마음을 여십시오.  생각이 굳어지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사모하십시오.  부탁합니다.  얘 늙은이가 되지 마십시오.  몸은 아직도 한창인데 생각이 굳어져버린 사람이 되지 말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여러분 가운데 요즘 우리 교회가 전통적인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고 해서 심란한 분들이 계십니까?  예배가 거룩하지 않고 방정맞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매 주일마다, 매 시간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고 하니까 제 수준을 의심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래도 좋습니다.  어차피 제 머리가 큰 것은 여러분들이 알고,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러나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을 누리고 행복한 삶을 살 수만 있다면 이것보다 더한 변화도 시도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라면 어떤 변화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정관념을 깨뜨리십시오.  패러다임의 변화를 거부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유기적인 공동체입니다.  때문에 교회는 건강한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타까운 것은 이 땅의 많은 교회들은 제도주의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래서 변화를 싫어합니다.  그저 앉아서 거룩거룩만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런 신앙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아십니까?  혼자 사는 할머니와 목사에게 공통적으로 없는 것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바로 영감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영감이 없는 목사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동일하게 우리 언양 영신가족 여러분 모두가 영감이 없는 빈 껍데기의 성도가 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는 영감이 넘쳐나야 합니다.  예배가 살아야 합니다.  예배가 뜨거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뜨리십시오.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건강한 열매를 맺으려면 토양이 좋아야 합니다.  토양이 좋다는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변화를 수용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황홀한 평신도 사역자가 되십시오.  제발 시들시들한 병신도가 되지는 말아 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평생 예수를 믿어도 생각이 바뀌지 않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생각이 굳어져 버린 사람, 그래서 자기 변화와 자기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의식하며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행복한 삶을 사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를 만남으로서 자신의 운명이 바뀐 한 여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본문을 잘 보십시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라는 불모의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동네를 지나가시다가 우물가에 앉아 계셨습니다.  그 순간 한 여인이 물을 길러 옵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그 순간에 전개되는 이 한편의 드라마를 상상해 보십시오.

이 여인은 확실히 어떤 곡절이 있는 여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극심한 더위를 피하여 새벽이나 저녁에 물을 길러 옵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한낮에 불볕 더위 속에 아무도 없는 우물가에 혼자서 물을 길러 왔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여인은 이글거리면서 내리 쬐는 태양열보다 사람의 눈총과 시선이 더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오지 않는 그 시간, 제일 뜨거운 한낮에 물을 길러온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은 당시 시대적인 상황으로 보아서 아픔과 사연이 많은 여인입니다.

첫째로,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과 섞일 수 없는 소외감의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보십시오.  이 여인은 의도적으로 남의 눈을 피해야만 하는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이웃이 없는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남편을 다섯이나 두어야만 했던 기구한 팔자에 대한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자신의 삶의 자리를 좋은 남편을 만나기 위해 다섯 번씩이나 옮겨야 하는 떳떳하지 못한 삶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지나온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공개할 수 없는 삶의 은폐성에 대한 아픔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아픔은 2천년 전 수가성의 이 여인의 아픔만이 아니라 어쩌면 이 아픔은 오늘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난도 고통입니다.  질병도 고통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잘못 만난 아픔은 더 큰 고통입니다.  그러나 모든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은 대인 공포증이나 대인 기피증입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만나기를 두려워하는 고통,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의 이러한 성품을 싫어하는 것은 고통 중의 고통입니다.

오늘 우리들 가운데 보면 군중 속의 소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어울릴 수 없는 소외감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이 여인에게 있어서 고통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통입니다.

이미 이 여인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없는 여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남이 출근할 때 출근하고, 남이 학교 갈 때 학교에 가고, 남이 일할 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남이 잘 때 잘 수 있다는 것, 남이 놀 때에 놀 수 있다는 것, 남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찾을 때에 함께 교회에 올 수 있다는 것은 행복 중의 행복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평범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행복이고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삶의 일상성 속에 숨겨 있는 작은 행복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사람들은 너무 극적인 변화만이 행복인 줄로 압니다.  죽을 뻔하다가 살아나야 행복이고, 다 망했다가 일어나야 기적인 줄로 압니다.  굉장한 일, 깜짝 놀랄 일만이 행복이고 축복이요 기적인 줄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범한 가운데 다른 사람들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감사이고, 축복이고, 그것이 바로 기적입니다.

세 번째로, 이 여인에게 있어서 아픔은 자기 삶에 대한 은폐성, 내지는 조작을 하는 아픔으로 이것은 신분 콤플렉스요 출생 콤플렉스입니다.

"나는 어쩌다 이런 신분을 가지고 태어났을까?"
"내 가정은 왜 이 꼴이었을까?"
"나는 왜 이런 시대에 태어났을까?"
"왜 우리 부모는 나를 이렇게 길렀을까?"
"어쩌다가 사마리아 사람으로 태어났을까?"

이 출신 콤플렉스에서 오는 숙명적인 열등감이 자꾸만 조작행위를 하게 합니다.  이 출신 콤플렉스는 삶의 위축 현상을 낳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매사에 소극적이고 패배감에 차 있습니다.  무기력하고 모든 것이 시들합니다.  자기 모습대로 자기 혼자만 살고 싶어하는 자기 불행의 굴을 자꾸 파 들어갑니다.

이 출신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나는 성장 과정이 나빴다, 나는 나쁜 성품과 인성을 가지고 자랐다, 나는 육체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는 등 자꾸 자기를 학대하고 판단합니다.  삶의 은폐 현상을 조작하다 보면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자기 중심적이 되고 너그럽지 못합니다.  교만해지고 정직은 하지만 욕심이 많고 사람이 자상하지 못해집니다.  이기적이고 인정머리가 없어집니다.

이에 대한 반동 현상으로 드러내 놓고 막 가버립니다.  될 대로 되라는 태도가 생깁니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고집이 세고 안하무인이 되어서 한마디로 온유와 겸손이 그리운 모습이 되고 맙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안고 있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물가의 여인의 이 콤플렉스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의 문제입니다.

삶의 은폐 현상, 대인 기피 현상, 위축 현상이 일어나서 결국에는 가는데 까지 막 갑니다.  소속 집단으로부터의 소외감, 남과 같이 될 수 없다는 자신의 현실에 대한 극단의 불안감, 동화할 수 없고 이웃이 없는 현실성의 아픔, 일상성에 대한 허무감이 생깁니다.  인간미는 점점 없어져서 너그럽지 못하고 강퍅해 집니다.  인성과 그 심성에 쓴 뿌리의 상처가 깊어만 갑니다.  자기 중심적인 자기 포로 현상이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자기 내면의 속에 들어가면서 자기 기분에 빠져 나오지를 못합니다.  자신의 상한 감정이 자신을 이끌어갑니다.  이것은 인생에서 불행이요, 비극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과의 대화 속에서 이 여인은 심령 깊은 곳에 내려져 있던 쓴 뿌리와 아픔들이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이 여인은 주님을 만나면서 자신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한 인생이 주님을 만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어졌다는 이야기는 무수하게 많이 들을 수 있습니다.  멀리는 창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거룩한 성녀가 되었다는 이야기, 평생 고기 잡는 어부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사람을 낚는 제자가 되었다는 이야기, 구두쇠 세리장이가 예수님을 만나면서 선한 이웃으로 바뀌어졌다는 이야기.  이와 같은 이야기는 우리들 주위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고,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예수가 아닙니다.  박물관 속의 예수가 아닙니다.  인격적인 예수를 만나보십시오.  지금 내 안에서 역사하시고 치유하시는 사랑의 주님을 만나보십시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예수를 만남으로써 운명이 바뀌어지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있어지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에서 이 여인을 치유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네 물을 내어 놓으라"고 하십니다.  여기에서 물은 생명을 뜻합니다.  "여인아, 너의 생명을 내 놓아라!"  이 말씀은 능동태로서 명령문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서 그 모습 그대로 너의 생명을 나에게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목마르고, 소외되고, 사람을 기피하고, 남과 어울리기를 싫어하고, 너그럽지 못하고, 교만하고, 도전적이고, 자상하지 못하고, 고집에 차 있고, 그냥 막가고 있는 그 생명을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내어놓아라.  너의 길 잃고 방황하는 생명, 갈급한 생명, 갈증스런 생명, 목마른 그 삶을 주님 앞에 내어놓으라는 것입니다.

오늘 주 앞에 예배 드리러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예배가 무엇입니까?  예배는 나의 생명을 주님께 내어놓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올려 드리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신다면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내면을 가리고 있는 모든 가면을 벗어버리고 신실하신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 앞에 내 생명을 온전히 드리십시오.

"물을 좀 달라"  "너의 생명을 내어 놓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이 여인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버려진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에게 얼마나 숨겨진 복잡한 삶이 있는 줄을 알기나 하십니까?"

자기로부터의 혁명과 변화를 스스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에 뿌리를 강하게 내리고 있는 쓴 뿌리를 치유하고자 하는 어떤 손길도 포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비단 이 여인만의 반응이겠습니까?  이 여인의 반응은 오늘 변화를 거부하고, 자신의 내면에 머물러 있으려고 하는 우리들의 반응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에게 있어서 안목의 차이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이 여인이 찾아 헤매던 물은 썩은 물로 생명이 죽은 물입니다.  고인 물이요, 땅의 물이요, 쾌락의 물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시는 물은 살아있는 물이요, 솟아나는 물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요, 진리의 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인 물을 먹으면 병이 나거나 죽습니다.  썩은 물 폐수를 먹으면 죽습니다.  생수를 먹어야 삽니다.  솟아나는 물, 하늘의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성령의 생수를 먹어야 삽니다.

여러분, 바로 알아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제대로 알아듣는 것이 축복입니다.  말귀가 열려야 합니다.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는 백성, 귀 있는 자는 성령의 소리를 들으라고 했습니다.

이 사건 바로 앞에 나오는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덤벼드는 것입니다.  매달리는 것입니다.  "주여, 이런 물을 내게도 주사 목마르지 않게 하소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들에게도 이 여인과 같은 매달림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아픔과 상처를 그대로 주님 앞에 내어놓으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께 내 생명을 드려 충성하십시오.  나를 향한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십시오.  주님이 주시기를 원하시는 성령의 생명수를 탐내십시오.  그리고 굳게 닫혀있는 자기 내면의 문을 여십시오.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시편 143편에서 다윗이 고백하는 것처럼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저와 여러분의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십시오.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그 다음에는 우리 주님께서 알아서 하십니다.

다시 묻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의식하며 메마른 사막과 같은 인생을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내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행복한 푸른 초장과 같은 삶을 사시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찬양하는 가운데서 주님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만나서 여러분의 인생의 운명이 바뀌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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