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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좁은 문, 구원의 문 (눅13: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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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며 각 성과 마을에서 가르치실 때에 예수님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24절 이하 전체는 이 한 가지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입니다.  이 예수님의 답변 속에서 우리가 깨달아야할 구원과 구원 받은 자의 삶의 자세에 관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에게 던져진 물음은 "구원을 받는 자가 적습니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종종 그러셨듯이 이 물음에 대해 구원을 받는 자가 적다든가 아니면 많다든가 하는 직접적인 답은 하지 않으시고 동문서답 같은 말씀들만 하셨습니다.  던져진 물음에 어느 정도라도 직접적인 관계가 있어 보이는 대답을 굳이 찾는다면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대답으로부터 드러나는 두 가지 사실이 있다고 봅니다.  하나는, 어쨌든 누구든지 다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구원을 받는 자가 많은지 적은지는 우리의 알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하나님의 뜻과 주권에 맡겨야 하는 것이고, 우리가 관심 가져야 할 일은 다른 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참으로 우리의 관심이 되어야할 그것은 무엇이라는 말씀입니까?

  그 첫 번째 답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본문 24절)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는 말씀은 잘못하면 오해될 소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을 마치 사람들이 치열하게 경쟁해서 쟁취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생각하는 오해입니다.  구원은 누구에게 있어서나 오로지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라는 것은 확고하고 영원한 진리입니다.  그렇다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이겠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면 편안하지도 않고 부대끼는 일도 많고 양보도 해야 하고 인내도 필요하듯이, 구원 받은 이들의 삶은 그리 쉽고 편하기만 한 것이 아니며 많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보다 넓고 쉬운 문을 택하겠다고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열심히 힘써야할 삶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만사가 갑자기 편해지는 것 아닙니다.  예수 제대로 믿으려면 오히려 평소의 삶이 불편해지고 자유롭지 못하고 눈치봐야할 일도 많고 손해도 많고 피곤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기가 뭐 이렇게 힘들어. 나 안 해. 그냥 이대로 살다 죽을래" 하고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로 택하여주셨기에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복된 삶을 누리는 특권을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 자녀라면 이 세상에서부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 것을 요구하시는 것인데 그것이 귀찮다고, 피곤하다고, 신나게 놀지 못한다고 영원히 복된 하나님나라에서의 삶을 포기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고 아무리 애써도 들어가지 못해 안달하는 사람이 쌔고 쌨지만 그 문이 아무리 좁다 해도 너는 그리로 들어오는 길에서 떠나지만 않고 기다리기만 하면 확실히 넣어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잠시를 못 견뎌서 그 좁은 문을 버리고 떠나가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고3 학생이 누구나 들어가고 싶어 하고 들어가기만 하면 최고의 영예와 장래의 취업과 출세가 보장된 일류대학에서 입학을 약속 받은 것과 같습니다.  다른 학생은 밤잠 안 자며 죽기로 공부하고서도 합격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고3 1년간 학교에 성실히 출석하고 수업시간에 착실히 공부하며 불량학생 같은 행실을 삼가고 정상적인 생활만 하면 무조건 입학이 약속되었을 뿐 아니라 4년간 전액장학금과 졸업 후 해외유학과 귀국 후 교수직이든 다른 직장에서의 중직이든 임용이 다 보장되었는데 고등학교에서의 남은 1년간의 성실한 학교생활이 갑갑하다고 불평불만하고 뛰쳐나가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이 세상에서의 삶의 경우도 그런 것입니다.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하신 말씀의 뜻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구원 받고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따라서 좁은 문으로 들어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이와 관련해 우리가 명심하고 주의해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25-28절의 말씀입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이 말씀을 요약하면 집 주인이 일단 문을 닫은 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무슨 말을 해서도, 들어갈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나라의 비유입니다.  그것은 28절에서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신 말씀이 분명히 해줍니다.  그런데 이 비유을 통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의도하신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심을 받아 구원 받고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따라서 좁은 문으로 들어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주저하거나 지체하지 말고 즉각적이고 흔쾌히 응답해야 할 것을 가르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부르심의 은혜를 입은 이들의 후회하지 않을 삶이라는 것입니다.

  25-28절의 비유말씀에서 예수님께서 의도하신 다른 하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에로의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싫어서 보다 넓고 들어가기 쉬운 다른 문을 찾아 떠났던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들어가려던 문이 진정한 문이 아닌 것을 뒤늦게 알고 좁은 문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문은 닫쳤고 밖에서 아무리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소리 질러도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오히려 주인은 안에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대답할 뿐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말하기를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지만 그들에게 되돌아오는 대답은 역시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했습니다.  즉 그들은 한때 주님을 따라다니며 주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 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교회에 들락거리며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다고 해서 곧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라는 보장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사느냐 하는 것입니다.  쉽고 편한 넓은 문을 찾아다니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쁜 마음으로 응답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기는 하면서도 그대로 행하기를 싫어하는 자들은 한 마디로 말해서 "행악하는 자들"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떠나가라" 하셨습니다.  또한 덧붙여 말씀하시기를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자들임을 알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셨습니다.

  29-30절 말씀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으면서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이 할 말 즉 "주여 열어 주소서 ...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는 말에 대해 주님께서 내놓으시는 반박의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나님의 부르심과 주님의 말씀 따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는 삶을 살지는 않으면서 "내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는데, 내가 성경지식이 얼마나 많은데 하나님께서 나를 천국에 안 들여보내시겠느냐?" 하며 착각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런 자들 아니더라도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사람은 천지사방 어디에서도 언제라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문은 좁은 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 하기가 때로는 너무나 힘들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구원 받고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백성이 이 세상에서 살 삶은 본래 좁은 문의 삶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모든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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