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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의 시초 (눅 22: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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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의 시초

(눅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이솝 우화로 유명한 이솝이 어릴 적에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학자인 주인은 이솝에게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습니다. 목욕탕에 가 보니 입구에 뽀쪽한 돌이 하나 있는데,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이 그 돌에 걸려 넘어질 번 하는 등 불편을 겪고 있었으나 누구 하나 그 돌을 채우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솝은 목욕탕에 들어가지 않고 계속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데 한 사람이 그 돌에 걸려 넘어질 번 하였습니다. "어, 왜 이런 돌이 이곳에 있어? 아무 쓸데도 없구만." 하더니 그는 그 돌을 뽑아 버리고는 손을 툭툭 털고는 목욕탕으로 들어갔습니다. 그제서야 이솝은 목욕탕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집으로 돌아가서는 목욕탕에는 사람이 한명 뿐이라고 주인에게 말했습니다. 이솝을 데리고 목욕탕에 가서 사람이 가득한 것을 본 주인은 이솝에게 왜 거짓말을 하였느냐고 야단을 치려했습니다. 이솝은 돌 이야기를 하며 자기가 보기에 사람다운 사람은 그 사람 한 명뿐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주인은 정말로 그렇구나 하고 이솝의 바른 생각을 칭찬하였습니다.(둘로스자료-내가 조금만 헌신하면...)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을 보내시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에게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도록 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시면서 떡과 포도주를 통해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신 떡과 포도주는 성찬의 식물로, 오늘날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주님의 육체적 구속의 상징물로 기념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유월절 어린양과 자신을 연결시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음식 잡수실 때가 되자 열두 사도들과 함께 미리 준비해 놓은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주님에게 있어서 이 자리는 인간적으로, 구속사적으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날 밤의 만찬은 주님께서 사도들과 잡수신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식사였기 때문에 그것은 곧 이별의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식탁을 중심으로 주님은 주님의 구속 사업을 이어갈 제자들과의 인간적 교제를 나누시면서 음식을 잡수시고 새로운 성만찬 예식을 제정하신 다음에 제자들에 대한 간곡한 교훈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은 예수님께로부터 시작이 되어졌습니다.
만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으신 대속의 날이 내일로 박두해 있었던 이 마지막 밤의 의식은 엄숙한 가운데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제자들과 고난 받으시기 전에 유월절을 먹으심으로 성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14, 15절).
때가 이르매는 유월절 식사의 때 즉 니산월 14일 저녁 해질 때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식사를 할 때 함께 한 사람들을 언급하면서 제자(마데케스)라는 말 대신 사도(아포스톨로스)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사도는 제자들을 지칭하는 다른 말로서 대표, 사자 등의 뜻을 지니며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수로부터 선택받은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누가는 '사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유월절 식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을 것으로 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를 자신의 고난과 결부시키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 식사가 단순히 출애굽을 기념하는 식사가 아니라 고난과 죽음을 앞둔 비장한 각오와 결단이 서려있는 기념적인 식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나누는 의미심장한 친교를 뜻하는 만찬입니다. 죽음을 앞둔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자 하는 심정은 이제까지 함께 활동해 온 지난날의 모든 추억들을 제자들의 마음속에 되살리고 자신의 일을 제자들이 실천해 주기를 기대하면서 제자들과의 영원한 연대성을 확인시켜 주고자 함입니다.
  유월절의 식사는 어린 양을 잡아 피를 문설주에 뿌린 후 고기를 구워서 무교병과 쓴 나물과 포도주를 함께 먹는 것입니다. 유월절을 먹는다는 말은 '유월절 식사를 한다'는 말입니다. 이 식사는  예수님 자신이 유월절 어린 양이 되는바, 장차 이루어질 그의 죽으심을 의식하시고 제자들과 더불어 사전에 기념을 한 선견적 식사입니다. 예수는 이 같은 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기를 '원했다'는 말을 반복하여 사용함으로써 간절하게 강조합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제자들과의 식사를 간절하게 원하셨기 때문에 유월절 식사를 준비하셨고 장소를 마련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고 계셨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개인적인 시간을 가지시면서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고(요 14-16장) 성찬 예식을 제정하심으로써 자신의 죽음이 갖고 있는 구속사적 의미를 가르치시고자 한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기를 원하신 것은 죽음을 앞에 두고 사랑하는 제자들과 고별의 시간을 갖기 위한 데 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지 못했던 그들을 주님은 제자로서 삼아 3년 반 동안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들은 오늘밤 주님께서 잡혀가시게 될 때 주님을 버리고 다 도망갈 자들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요 16: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수제자 베드로까지도 새벽닭이 울기 전에 주님을 세 번 부인할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마 26:3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요 13: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리고 지금은 약하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되면 대사도들이 될 것을 믿고 계셨습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들은 주님께서 위임하시는 복음 사역을 충분히 감당해 낼 것으로 주님은 믿으셨습니다.
  주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세상에 두고 떠나심에 즈음하여 그들에게 교훈해야 할 간곡한 말씀이 있었습니다.
  이 날 밤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장차 갈 천국에 대하여(요 14:1-14), 보혜사 성령의 보호하심에 대하여(요 14:15-26), 하늘이 주는 평안에 대하여(요 14:27-31), 주님과 제자들과의 관계에 대하여(요 15:1-17), 그들의 핍박할 세상에 대하여(요 15:18-16:6),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요 16:7-15), 그리고 주의 재림에 대하여(요 16:16-33)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들은 주님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시는 동안의 제자들의 삶을 염려하여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들을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중보의 기도를 하심으로써(요 17:1-26) 이 날 밤의 고별 순서를 마치셨던 것입니다.

  유월절 음식을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심으로 성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유월절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루기까지 다시 먹지 아니하리라'(16절),
'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18절).
지금까지 지켜오던 유월절 음식을 이 세상에서는 다시 잡숫지 않겠다는 주님의 말씀은 '유월절'의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시고자 하시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원래 유대 민족의 애굽에서의 해방을 기념한 절기로서  출애굽 전날 밤에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고기를 구워 먹도록(출 12:1-14) 함으로써 천사들의 장자 살육에서 구원받았던 것이며, 이로 인하여 민족의 해방(애굽 탈출)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어린양의 살(고기)과 피 그리고 민족의 해방이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식사를 하고자 간절히 원했던 이유는 이 유월절 식사가 마지막 식사가 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더 이상 유월절 식사를 하시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기한을 정하고 있는데 그 기한은 유월절이 하늘나라에서 이루어지기까지입니다. 로마로부터의 정치적 지배뿐만 아니라 인간 생활의 전 영역을 이 피지배자의 위치에서 신음하고 있는 상황과 같은 민족이면서도 지도자들은 민중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집권자들의 착취가 민중을 억압하는 상황과 고통이 모두 사라지고 인간의 죄악성이 뿌리채 뽑아져 변화된 사람이 살게 되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참된 유월절이 이루어지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주의 만찬의 친교를 통해 새로운 유월절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다음에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과 함께 참예하게 될 만찬은 유대의 전통적 유월절이 아니라 만민이 참여하게 되는 성찬식이 될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예수의 만찬은 마지막 유월절 만찬이 되는 동시에 새로운 성찬 예식의 전조가 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 새로운 성찬 예식은 예수의 부활 이후부터 지금까지 실시되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떡과 잔으로 자신의 살과 피를 예표 하심으로 성찬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17-20절).
주님은 자신의 대속적 죽음이 유대 민족의 구원이라는 '유월절'의 의미를 넘어서서 인류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어린양(요 1:39)으로서 그 살과 피를 제물로 바치는 것임을 '성만찬'에서 구현하시고자 한 것입니다.
어린양의 살과 피가 유대 민족의 구원을 가져온 것이라면 예수의 살과 피는 인류의 구원을 가져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요 6:53)는 말씀의 개인적 적용이 '성만찬' 예식으로 상징되었고, 이 성만찬 예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대속적 죽음,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와 사랑을 기억하고 그 대속적 삶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떼어(크라오)는 큰 빵을 '쪼갠다'는 의미로 신약 성경에서 식사 때 빵을 나누는 데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큰 빵을 제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나누어 준 것인지 포도주처럼 자신의 것만 떼고 나머지를 제자들에게 돌려 차례대로 먹게 한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강조되는 점은 한 개의 빵 덩이를 여러 사람이서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의 이것(투토)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누어 준 빵, 즉 유월절 식사용 무교병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빵과 일치시킨 몸(소마)은 인간의 전체적인 육체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몸 전체를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온 인류의 희생물로 드리고자 하셨음이 분명합니다.

요 6:51에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고 같은 의미의 말씀을 하시면서 몸(소마) 대신 살(사뤀스)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 살과 피를 통해 죽음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사실과 연관을 갖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이 빵 한 개를 여러 사람에게 나눈 것은 자기의 몸 곧 살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는 상징적 의미를 가집니다.

이 상징적 행동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자신이 여러 사람을 위해 희생됨과 동시에 그들과 함께 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먹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그 빵 즉 예수의 살을 먹는 모든 사람은 예수의 희생, 즉 그 삶에 동참하는 것을 뜻합니다. 왜냐하면 빵을 먹는다는 것은 그 빵이 먹는 사람의 살이 된다는 의미에서 빵과 사람이 하나로 일치되듯이 예수의 살 곧 빵을 먹는 사람은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예수와 일치된 삶을 산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을 자신의 최후의 만찬으로 지키셨으며 이를 그대로 행하여 기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기념하라(아남네시스)는 '기억' 또는 '기념물'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행하면서 예수의 전체적인 삶을 기억하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죽은 사람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빵을 떼는 데서 상징적으로 묘사된 바처럼 예수의 삶과 희생을 생생하게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찬식의 기원과 목적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성찬식의 목적은 그와 같은 기억을 되살려 세상에 널리 알리는 선교에 있으며, 기독교인은 예수의 일을 기억하여 선교에 힘써야 한다는 마땅한 의무를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만찬 도중에 떡과 포도주를 가지사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분명히 밝히시고 자신의 재림 시까지 이를 기념토록 명하신 것은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에서 지키고 있는 성만찬 예식의 기원이 됩니다. 성만찬은 어디까지나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기억하며 우리를 대속하신 그 은혜를 감사하고 그 성만찬에 임재하시는 예수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의 잔은 유월절 식사 중 마시게 되는 잔 중 식사 후에 분배되는 마지막 잔으로 이해들을 합니다. 잔은 단순한 그릇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잔 속에 담겨진 포도주를 가리킵니다. 이 포도주가 예수의 피로 세운 언약이 된다는 묘사는 출 24:8에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하심과 비슷한 내용입니다.

누가는 새로운(카이노스)이라는 표현으로 모세의 계약과 예수께서 세우시는 언약을 구분시키고 있습니다. 더 이상 짐승의 피로 하나님과의 계약이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통해 구원이 약속되는 새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 식사는 포도주를 마실 때마다 예수의 희생과 구원의 능력을 기념하고 기억하게 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이것이 성찬 예식의 시초가 된 것입니다. 이 성찬 예식은 예수의 말씀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보여 준 하나님 나라의 현존을 기념하고 체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의 붓다(여퀸노메논-여케오에서 유래)는 '피를 흘린다' '피를 쏟는다'는 뜻과 '술을 붓는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붓는다 라는 말은 예수의 죽음을 나타내는 피 흘림과 그 죄를 상징하는 포도주의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할머니의 손이란 간증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할머니 품에 남겨졌습니다. 공사판을 떠돌며 생활비를 버느라 허덕이는 아버지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고 할머니는 산나물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온종일 산으로 들로 다니며 나물을 캔 뒤 밤이 하얗게 새도록 할머니는 그 나물을 다듬었습니다. 어스름 새벽이 되면 할머니는 나물 함지를 머리에 이고 시오리 산길을 걸어가 나물을 장터에 내다 팔았습니다. "애기엄마, 나물좀 들여가구려, 싸게 줄께." 하지만 장사는 잘되는 날보다 안되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나는 할머니 없는 빈 집이 싫었고 할머니가 캐오는 산나물이 너무 싫었습니다. 숙제를 다 하고 나면 으레 손 톰 밑이 까맣게 물들도록 나물을 다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손톱 밑의 까만 물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잘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이 깜깜해지는 일이 생겼습니다. "토요일까지 부모님을 다 모시고 와야 한다. 다들 알았지?" 중학교 진학문제를 의논해야 하니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시고 갈 사람이라곤 할머니 뿐인데...... 나는 선생님의 그 말을 듣는 순간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어, 어휴......" 허름한 옷, 구부정한 허리, 손톱 밑의 까만 땟국......나는 내심 걱정이 되어 속이 상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이 할머니 손톱 밑의 그 까만 때를 보는 게 싫었습니다. 시무룩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한참을 망설이다 말을 꺼냈습니다. "저, 할머니... 선생님이 내일 학교에 오시래요" 하는 수 없이 내뱉긴 했지만 할머니가 정말 학교에 오시면 어쩌나 싶어 나는 저녁도 굶은 채 이불을 뒤 집어 쓰고 잠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오후였습니다.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교무실에 갔다가 나는 그만 눈물을 쏟고 말았습니다. "하, 할머니!" 선생님은 할머니의 두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지영아, 할머니께 효도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겠다." 나는 선생님의 그 말씀에 와락 울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선생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잡아드린 할머니의 손은 퉁퉁 불어 새빨간 생채기로 가득했습니다. 할머니는 손녀딸이 초라한 할머니를 부끄러워한다는 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서 아침 내내 표백제에 손을 담그고 철수세미로 박박 문질러 닦으셨던 것입니다.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손등에서 피가 나도록 말입니다.(할머니의 손)
예수님은 이보다 더 큰 사랑을 실천하사 자신의 몸과 피를 다 희생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고난 받으시기 전에 유월절을 먹음으로 성찬의 시작을 삼으시고 유월절 음식을 성찬의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 올리심으로 시작하시고 떡과 잔으로 자신의 살과 피를 예표 하심으로 성찬을 시작하셨습니다.
이 의미를 바로 깨닫고 함께 동참하는 모두가 됩시다.
(강성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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