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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께로 나오라 (사 5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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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목이 마르면 살수가 없습니다. 인간의 육체는 70%가 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의 몸에서 물이 5%만 빠져나가도 심한 갈증을 호소합니다. 15% 빠져나가면 살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물 중에 가장 신비한 것이 물입니다. 물은 생명이나 다름없지요. 요즘에는 음료수의 종류도 참 많아졌습니다. 예전에는 사이다 한가지였는데 제주삼다수, 풀무원생수, 퓨리스, 에비앙, 석수, 스파클 . . . 2% 부족할 때, 포카리스웨트, 게토레이, 칠성사이다, 렛스비, 비타 500, 1000. 코카스, 환타, 초록매실, 데미소다 . . . 기호에 따라서 마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얼마나 발전해 있습니까? 그런데 문명의 이기에 반해 만족을 느끼기 보다는 몹시 갈급한 상태에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걸 먹어도 갈증은 똑같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넉넉한 사람도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무식한 사람이나 유식한 사람도, 권세 있거나 없거나, 남자도 여자도, 청년도 노년도 모두 목말라 하고 있습니다. 목마름의 세상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목마름을 재물로 채우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명예나 권력으로 목마름을 채우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으로 목마름을 채우려 합니다.
어떤 사람은 향락으로 목마름을 채우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채워지거나 충족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양동이로 물을 기어다가 넓은 바다를 채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인들은 그 갈증을 소유에서 해결하려고 열심히 돈을 법니다. 현대인은 무엇보다 물질에 목말라 있습니다. 물질은 분명 사람에게 필요 합니다. 물질은 우리의 생활을 윤택하게 합니다. 행복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정주부들이 너도나도 취업전선으로 나섭니다. 그래서 마치 가정에 주부 역할만 하면 마치 무능한 여자로 여겨지는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반면 돈은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기도 하고 인격을 손상시키고 믿음에서 떠나게도 합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은 일만악의 뿌리가 된다고 했습니다.
돈이 좋지만 돈을 잘 못써서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고 인격에 치명적인 손실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현대인은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메듯 물을 찾아 헤메이다가 저녁이되면 지치고 피곤한 모습으로 돌아 옵니다. 아프리카 짐승들은 물을 찾기 위해서 1,800마일씩 이동한다고 합니다.

사회심리학에서 ‘코쿠닝 현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 말은 누에고치(코쿤)라는 단어에서 나온 것입니다. 누에고치와 같이 껍질 속으로 들어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혼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르거나 좁은 공간에 숨으려고 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사람들에게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방문화가 발전되어 있습니다. 노래방, 비디오방, 전화방, 찜질방 . . . 좁은 고치와 같은 곳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 받고 싶은 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찜질방은 어디나 바글바글합니다. 어떤 사람은 찜질방을 너무 너무 좋아 하는데 그 이유는 돈도 적게 들어가고 그 안에는 모든 것이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아침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지낸다는 것입니다. 휴일에는 아예 찜질방을 간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그 만큼 한이 많은 나라입니다.
툭 트인 곳에서 공기도 마시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 자연도 보고 . . .그렇게 살아야지 누에고치 속에만 들어가서 지낸다고 해서 우리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것은 치료가 아닙니다. 덮어두고 감추어 두는 것입니다.

목이 마를수록 목이 마르면 우물에 가야 하듯이 수원지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 나가야 합니다. 문제가 많을수록 문제의 해결자 되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2:13)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입니다. 생수의 근원이란 “수원지”라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사람들은 이 수원지를 버리고 자기 웅덩이를 팝니다. 자기 철학의 웅덩이를 팝니다. 물질의 웅덩이, 권력의 웅덩이, 명예의 웅덩이, 학력의 웅덩이 . . 이런 웅덩이들은 물을 담지 못할 “터진 웅덩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이런 웅덩이를 끊임없이 파고 있습니다.
배가 고프면 부엌에 가야 합니다. 영이 마르면 주님께 와야 하고, 영이 고프면 교회에 와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 갈증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목마름을 아시고 초청하십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상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이방의 모든 신들과 비교할 수 없는 전능하신 신으로 믿었는데 바벨론의 신을 이겨내지 못하는 무능한 신으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신앙의 희망마저도 잃게 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은 하나님이 바벨론의 신보다 약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죄, 곧 불순종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 것임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벨론에 있는 어느 것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만일 그들을 의지한다면,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헛된 짓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이 초대장은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경고의 소리였습니다. 즉 돌아오지 않으면 망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1. 그 초청은 ‘누구나’입니다.

1절 누구를 초청합니까? 목마른 자입니다. 여러분은 영혼의 갈증을 느끼고 사십니까?
감각이 없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돈 없는 자도 괜찮습니다. 즉, 주님께 나올 자격이 없는 자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목마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물이라도 목마르지 않은 자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영적인 존재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우리 인간은 영적인 것이 공급되지 못할 때에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사람은 영적 갈증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영적인 갈증 신앙의 몸부림이 없다면 그때는 그 심령은 죽은 사람일 것입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공짜가 있다고 하는 곳에 가면 속임수만 있습니다. (동네 약장사 . . )올무에 걸려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모두 공짜입니다.
세상에는 “돈 없는 자도 오라”고 말하는 곳은 없습니다. 음식점도 백화점도. . 그러나 하나님은 돈 없는 자도 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짜로 사라는 것입니다. 외상도 아닙니다. 생수를 사고 양식을 사되, 돈을 지불하지 말고 사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가 공짜로 먹고 살수만 있다면 그렇게 아득바득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공짜로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그 이유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값이 너무나 비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진 돈으로 살 수 없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태양을 돈주고 살 수 있습니까? 공기를 돈주고 살 수 있습니까? 죄사함, 구원, 영생을 돈주고 살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하나님의 은혜도, 하나님의 지혜도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공짜로 주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이미 지불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내 죄 값을 대신 지불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바쳐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죄 투성이인 나와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그 목마름을 채울 수 있는 곳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3-14)

물을 찾기 위해서 이리 저리 다니지 말고 생수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교회만 나오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돌아와야 합니다. 탕자처럼 아버지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회개하며 돌아 와야 합니다. 모든 죄의 생각과 죄악된 삶을 버리고 와야 합니다. 그 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것들을 공짜로 받으시면 됩니다. 영생도, 천국도, 병 고침도, 은혜도, 물질의 복도 . .

2. 공짜의 복을 받는 길은 하나님께 나아와 말씀을 청종하는 것입니다.

2절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사람들은 양식이 됮 못할 것을 위해 투자하고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할 수 없는 일을 위해 헛수고 하는 일들이 너무 맣습니다. 헛된 일에 분주하고 헛된 것을 위하여 수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헛된 일을 위하여 온갖 정력을 다 쏟는 것입니다. 다 헛된 것입니다. 나중에 남는 것은 허무함 밖에 남지 않습니다.
세상의 헛된 철학, 말도 안되는 논어, 공자이야기, 이런 것이 절대로 우리 영혼에 만족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코메디를 보면 잠시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혼의 기쁨과 만족을 주던가요? 돌아서면 뭔가 아쉽고 허전한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다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현대를 살아갈려면 영적인 일에는 인색하기 그지없으나 즐기고 노는 일에는 엄청난 투자를 합니다. 사업상 . .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 . . 주변 사람들과 레벨을 맞추기 위해서 . . 그런 투자를 하지 않으면 왕따가 되기 때문이라는 것 등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청종’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큰 위로가 됩니다. 소망을 줍니다. 방패가 됩니다. 산성이 됩니다.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을 누리고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야곱, 여호수아, 베드로, 나아만, 백부장 . . .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신8:3) 사람은 이 땅에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으며 살았듯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청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2절)
청종하면 영혼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 변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뀝니다. 인생이 바뀝니다.

요4: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을 보세요. 그가 예수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듣고서 그는 놀랍게 변화됩니다. 예수님이 그에게 준 것이라고 말씀 몇 마디 나눈 것뿐입니다. 그렇지만 물통을 버려 두고 마을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불러 내어 옵니다.
심령의 만족함이 채워지고 나니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청종하면 영적인 복만이 아니 육적인 복도 주십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여 네게 미치리니”(신28:1-2) 신28장에서는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에게 6가지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1) 세계 민족 가운데 뛰어나는 복을 받습니다.
2) 처소에서 복을 받습니다.
3) 가문이 번창하여지는 복을 받습니다.
4) 부유해 지는 복을 받습니다.
5) 출입의 복을 받습니다.
6) 하늘의 보물창고가 열리는 복을 받습니다.

3.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55:3)
사람과 짐승이 무엇이 다릅니까? 짐승들은 먹을 것만 있으면 만족합니다. 짐승들이 자살했다는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우리 사람은 영혼의 존재이기 때문에 영혼이 병들고 낙심하면 그 사람의 육체도, 인생도 병들고 낙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어야 그것이 복이지 영혼이 잘못되었는데 범사가 잘되어진다면 그것은 복이 아니고 불행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마음속에 즐거움이 넘쳐난다고 했습니다. 기름진 것으로, 풍족한 것으로 여유있는 삶을 살 뿐만 아니라 그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이 넘칩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17:22)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여 들어 그 말씀을 통해 우리 영혼이 살아나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산다는 것은 정신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심령이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소생케 되는 역사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피곤하고 지치고 힘들어 죽을 지경이 되어도 영혼이 살아나면 새로운 힘과 용기가 솟아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사55:3)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실 뿐 아니라 다윗의 은혜를 허락하여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십니다. 현대사회에 있어서 신용을 평가하는 기준은 내가 신용의 실적을 쌓아야 상대방이 나를 믿어줍니다. 신용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어려울 때 조금의 도움이라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늘 의심이 많았습니다. 불평분자가 많았습니다. 걸핏하면 모세에 대하여,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하고, 데모하고, 농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십니다. 한 점 오차도 없으십니다. 사람이 사람을 의심 하는 것도 큰 병입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창15:6)

인간이 감히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의심하면 안 되지요.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 신짝처럼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의 약속이나 맹세나 사람의 신용은 믿을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용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약속이나 맹세는 변경되거나 취소되는 일이 없습니다. 한 마디 말씀이라도 다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목동소년으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비천한 존재였습니다. 당시의 직업 중에서 가장 천하고 낮은 직업이 바로 목동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아는 것도 없고 배운 것이 없으므로 하는 것이 양을 돌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믿음으로 살았더니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당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 약속을 붙잡고 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십니다. 긍정적 신앙을 가지고, 아멘의 신앙을 가지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신앙을 가지라고 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 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 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마7:9-11)

최상의 것을 예비하신 약속의 하나님 아버지를 믿으십시오. 긍정적 신앙으로 하나님을 믿고 꿈을 갖고 나가면 좋은 일이 생기게 하실 줄 믿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약속을 믿고 그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성공적인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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