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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밀한 중에 갚으시는 은혜 (마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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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은혜가운데 호주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물심양면으로 기도하고 협조하여 주신데 대하여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가지로 국내외교회들을 두루 살펴 볼 때에 문제가 없는 교회들이 없는 것을 보고 주님 오실 때가 임박한 것을 느낄 뿐만 아니라 말세에 믿는 자를 보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고 믿음으로 기다리면 하나 둘씩 해결되어 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께서 든든하게 양육해 주시는 줄 확신하고 기쁨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금 위하여 기도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 마6:1절 이하의 말씀들을 보면 성숙한 성도들의 삶의 스타일에 대하여 교훈하여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보이려고! 사람을 의식하고 의를 행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하는 말씀을 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선행은 근본 뿌리부터가 다릅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감당 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먼저 우리에게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생명을 주셨고 한없는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말씀하시기를 가서 너희도 이와 같이 행하라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하셨습니다. 사랑 받았으니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선행의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선행에 대한 몇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1. 은밀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6:1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절에 “구제할 '때에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나팔을 불지 말라” 3절에는 “구제할 때에 오늘 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4절에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이런 말씀들을 볼 때에 선을 행하는 첫째 원리가 은밀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하는 일은 은밀해야 합니다. 그와 나만이 아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밥을 먹다가 돌을 씹는 경우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경험이 있습니다. 남편 되신 여러분들 어떻게 반응을 하십니까? 세 가지 반응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얼굴을 찡그리면서 당장에 화를 낼 수 있습니다. 돌을 씹었으니 기분 나쁜 것 사실입니다. 이빨이라도 부러지면 어떻게 합니까? 쌀을 잘 일지 못한 아내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래서 기분 나쁜 것 아내에게 그대로 다 나타냅니다. 이런 태도 틀린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사랑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미안한 아내의 마음은 티끌만큼도 생각지 않는 철저한 자기중심의 사람입니다. 둘째로는 돌을 보여주며 그냥 웃을 수 있습니다. 돌은 씹었지만 “아 밥에 돌이야 쌀을 아무리 잘 일어도 간혹 나올 수 있는 것이니 당신 원망하지도 나무라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아내를 생각하는 좋은 남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까지 하기도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자기는 즐거울 수 있을지 몰라도 부인은 즐거울 수 없습니다. 셋째로는 돌 씹은 것을 숨기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와 혼자 몰래 처리해버리는 것입니다. 전혀 내색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이 셋 중 누가 아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랑은 비밀스러운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은근하게 쌓이고 쌓인 것들이 충만하게 될 때 아름다운 사랑이 됩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나타내고 싶어 합니다. 별 것 아닌 것도 자랑하고 생색내려고 합니다. 은근하고 은밀한 맛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밀함에 행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 기도하는 것, 선을 베푸는 것, 이 모든 것이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참된 선행이 되는 것입니다.

현대를 자기 피알의 시대라고 합니다. 어떻게 하든지 남에게 보이려하고 인정받으려 하고 칭찬 받으려 합니다. 그래서 자랑부터 먼저 하기도합니다. 어떤 분이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 관해 재미있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잘 아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 강도를 만난 사람이 쓰러져 있습니다.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평소 유대인으로부터 개같이 취급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도와주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장소를 한번 바꾸어보자는 것입니다. 강도를 만난 것이 인적 드문 여리고로 가는 험한 길이 아니라 예루살렘 도시 한복판 복잡한 인도에서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루살렘 거리에서 한 사람이 강도 만나 쓰러져 있었다면 레위인과 제사장이 그냥 지나갔겠습니까? 많은 행인들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그냥 지나갔겠습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앞을 다투어, 어쩌면 서로 하겠다고 싸우면서라도 도와주었을 것입니다. 결국 문제는 보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보아주지 않을 때 선을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본성입니다.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자기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사람의 칭찬을 기대하며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얻었다면 이미 자기 상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아닙니다. 은밀한 중에 이루는 아름다운 선행을 배워야 합니다. 물론 착한 선행은 칭찬과 존경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존경과 칭찬은 결과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그것이 동기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보이기 위해, 칭찬 받기 위해 행하는 선은 하나님 앞에서는 선이 아닙니다.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한 걸음 더 나가서 받은 사람은 물론 베푼 사람도 몰라야 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베풀었다는 것도 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 사람 도와주었다는 것 기억하고 있으면 결국 언젠가 자기에게 섭섭한 행동을 하면 나는 이 사람 도와주었는데 이 사람은 내게 왜 이렇게 나오나 섭섭하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진정한 선행이라 할 수 없습니다. 깨끗이 잊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 3,4절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함께 봅시다. “너는 구제 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한 마디로 우리 속에 선행이라는 의식조차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조금 맡아 있다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조금 나눈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물으신다면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고, 하나님 앞에 내어놓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선을 행할 때 받는 사람도 은혜가 되며, 주는 사람도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2. 아버지께서 아시고 보신다는 생각으로 만족해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된 것이 아닙니까? 사람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던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그러면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신다 할 때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말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는 선행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라 하던 하나님은 아신다.”고 기뻐하며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신다고 할 때 두려워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진실을 아시고, 나의 위선을 아시고, 나의 죄악의 상태를 아신다고 하는 사실이 나를 얼마나 두렵게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느 쪽입니까? 여러분, 사람들이 어떻게 보느냐, 이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합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 이것만이 중요하고 이것만이 관심입니다.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보고 계시고 알고 계십니다. 이것으로 만족 할 수 있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3.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보상을 바라고 선을 행하는 것 아닙니다. 그러나 은밀한 하나님 앞에서 선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자식이 부모를 섬길 때에 재산을 바라고 효도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 때문에 효도하면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다 주고 싶은 법입니다. 하나님이 꼭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의 이름으로 대접하면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냉수 한 그릇의 선행이라도 주님은 귀하게 받으십니다. 가장 작은 선행에 대해서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눅6:38절에 보면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 막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풍성하게 안겨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미국에 록펠러라는 유명한 부자를 여러분들이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억만 장자입니다. 이미 50세에 세계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행스럽게도 그는 몹쓸 병에 걸려 머리카락이 빠지고 눈썹이 빠지고 단 한 조각의 과자와 우유 한 모금을 마실 정도였습니다. 의사는 그가 앞으로 일 년을 못 살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그런 돈을 버느라 사람들에게 인심을 다 잃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지경이 되자 그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기에 이르렀습니다. 천국 갈 때는 한 푼의 돈도 가져 갈 수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1년 밖에 없는 인생이지만 다시 살기로 하고 자기의 재산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재산은 교회에 기증되기 시작했고,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유명한 록펠러 재단을 만들어 전 재산을 기증했습니다. 록펠러 재단은 그의 재원을 가지고 필요한 선한 곳에 돈을 보내었습니다. 수많은 교회에 오르간이 기증되고 도서관이 세워졌으며 연구 사업에 보내졌습니다. 그의 마음이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행복과 보람이 찾아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54세에 죽을 것이라고 했던 이 록펠러가 98세까지 건강하게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상에서 자기의 기분대로, 감정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어도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는 듯싶습니다. 저는 오늘 이 시간에 우리 대선의 성도들과 함께 다짐하고 싶은 것은 신앙생활을 기분이나 감정으로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자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선행 하나를 해도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시는 주님의 말씀대로 하는 삶 같은 것 말입니다. 오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리까지라도 가 주려고 하는 마음, 겉옷을 달라고 하면 속옷까지 주려고 하는 그런 마음 말입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 보다 복이 있다 했으니 진정한 복은 주는 자가 받는다는 그런 심정으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상을 다 받으면 하늘나라에 가서는 받을 상이 없다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이 땅에서 보다는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상 받는 것을 크게 여기고 진정한 복으로 아는 그런 마음의 자세로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모쪼록 이 세상에 살면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은혜 받고 사랑받았으니 선을 부지런히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보상해 주실 줄 믿고 선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설사 이 세상에서 내가 행한 아름다운 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영원히 이 땅에서 묻힌다 해도, 우리 하나님께서 아시고 보신 줄 믿고 그러면 됐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부디 은밀한 가운데 넘치도록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으로 행복이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윤정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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