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십자가에 달린 자의 승리 (눅 24:1-12)

  • 잡초 잡초
  • 258
  • 0

첨부 1


기독교는 삼일의 종교다 그렇게 말합니다. 기독교는 삼일 동안에 모든 것이 이루어졌다 그런 뜻이 되겠습니다. 성경 66권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이 삼일에 완성이 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이 삼일에 완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놀라운 비밀은 삼일 안에 다 감추어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금요 일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토요일 지나고 오늘 주일 아침 부활하심으로 기독교는 처음과 끝이요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신 최고의 날이요 승리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교훈입니다, 도덕입니다, 선을 찾습니다. 그리고 한 개인의 삶과 혹은 죽음을 귀히 여기면서 모인 것이 인간의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인간을 위해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교훈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생명을 얻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모든 종교는 인간의 문제를 인간에게 맡깁니다. 인간의 죄는 인간에게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인의 죄는 본인이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우리가 죽어야할 죽음 문을 여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랑입니다. 복음입니다. 교회가 오늘날까지 지나온 모든 승리의 비결은 바로 이 삼일에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향해 주여 우리에게 표적을 좀 보여주세요. 너희에게 무슨 표적을 보여주느냐? 유대인들은 표적이 있는 곳에 유대인들이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귀히 여깁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낳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지 않았습니까? 바로 왕의 열 재앙이 있었지 않았습니까? 반석에서 물먹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우리가 잘 아는 다니엘은 사자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풀무 불에서 살아나지 않았습니까? 모두가 다 기적입니다.

  예수님에게 우리에게 표적을 보여주세요 나는 이 땅에 표적을 보여주러 온 것이 아니다 나는 그런 표적을 보이려고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표적은 요나의 표적이니라. 요나의 표적은 삼일입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까지 있다가 나온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하여 요나는 바닷 속에 들어갔지만 주님은 무덤에 내려가셨다가 우리 죄를 사하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적입니다. 기독교는 아무 표적이 없어도 아무 것이 없어도 이 하나를 위하여 우리가 모였고 이 하나를 믿고 우리가 믿음의 생활을 승리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금요 일날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그 날 무덤에 묻히시고 주님은 오늘 아침 무덤 문을 여
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 죄를 위하여 달리심이며 무덤에 가신 것은 우리 대신 무덤을 여시고 무덤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주님은 무덤에 내려가셨습니다. 인간의 제일 귀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는 생명입니다. 사는 것입니다.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환경 속에서라도 사람은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홉스라는 분은 말하기를, 전 세계를 내가 소유하고 있다면 단 하루라도 더 연장하는 자에게 내가 이 재산을 바치고싶다 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생명을 건지는데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사람은 어떤 것이라도 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제 친구는 두 다리를 잘라서라도 더 살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양다리를 위까지 다 잘라도 아니 어디를 자를지라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수술을 백 번까지 하고 이십 년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삼십 년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도 더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과학은 인간의 생명을 연장하는데 모든 과학이 그것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3T가 있지 않습니까? IT, BT, NT 두 번째 BT, 생명공학에 우리는 지금 모든 지식과 국가의 힘과 학자들의 힘을 모으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 오래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있는 사람은 죽습니다. 땅에 있는 삶은 짧습니다. 이 땅을 건너가서 저 땅으로 가야만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저 땅으로 건너가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없이는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주님은 그래서 어떤 분은 예수님은 장례식을 한번 하셨나? 그 많은 것 가운데 주님은 장례식 설교를 한번도 안 하셨습니다. 성경에 죽은 자를 위해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한 것이 한 마디도 없는 것입니다. 왜? 기독교는 죽음이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주님이 옮기셨습니다. 정복하셨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죽음에서 떨고 있고 어떻게 하더라도 살려고 하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죽음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이미 여러분이 뉴스에 들은 대로 수많은 사람이 냉동에 보관을 해서 죽은 다음에 혹시라도 인간의 지식이 발달해서 오백년 천년 지난 다음에 우리가 다시 살수가 없는지 지금 냉동을 해 놓은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브라질에서는 장의사가 아이디어를 내가지고 사람이 석관에 들어가서 이년동안 혹시 그 안에서 다시 살지도 모르니까, 모르고 장사 지내는 일들도 있으니까 그 안에서 살 수 있는 이년동안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그 안에 공급해 주고 이년동안 먹을 수 있는 건조 식품을 넣어 주고 또 밖과 연결을 짓기 위해서 무전기까지 다 넣어 주고 만약에 그 무전기도 통하지 않을 때는 무덤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장비까지 넣어 주는 이런 일은 허황된 이야기지만 사람은 한 가닥이라도 기대하니까 이런 곳에 장례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사람은 살고 싶어합니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원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덤에서라도 살기 위해서 오늘 우리 조상들의 무덤을 보면 그릇이 나오고 숟가락이 나오고 의복이 나오는 것은 그 안에서라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의 문명이나 인도의 문명이나 중국의 문명이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 없습니다. 죽음을 정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능력 있는 권세자도 종교인들도 다 죽었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대답한 사람이 없습니다. 정복한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망 권세 이기시고 이 천년 전 생명의 부활로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우리 모든 성도들의 기도 들으시고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날마다 도우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의 왕으로 주님은 살아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밖에서는 살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 없는 곳에 생명이 없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면 저절로 과실을 맺고 영원히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우리가 살게 될 것입니다. 식물이나 곤충이나 박테리아 같은 열등한 생물은 다시 살수도 있습니다. 작년 겨울에 죽었다가도 또 다시 살아납니다. 이 천년 전에 있었던 완두콩도 다시 살아나는 길이 있지만 인간은 죽으면 끝나는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그리스도에 의해서만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문을 박차시고 승리하신 주님은 살아 계신 주님이십니다. ♬살아 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살아 계신 주♬ 그렇습니
다. 주님은 살아 계십니다.

  삼일의 전쟁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싸움은 승리가 있습니다. 온 인류를 사로잡고 있는 악에 대한 승리였습니다. 온 인류를 사로잡고 있던 죄에 대한 승리입니다. 온 인류를 사로잡고 있던 모든 저주와 죽음에서 주님은 승리하셨습니다. 대 로마 총독 빌라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사형 언도를 내리고 사인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은 다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결의하였고 로마 총독에게 넘겨주었고 이스라엘의 국회 의회는 밤에 모여서 정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을 결의했습니다. 모든 권력은 어떻게 하면 백 퍼센트 다 힘을 모았습니다. 엄청난 힘들이 모아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철저하게 계획대로 되어졌습니다. 모든 군중 수많은 수 십만 수백만의 군중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아우성을 질렀습니다. 모든 권력은 거기에 힘을 합하고 서로 손에 손을 잡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일에 모두 승리하였습니다.

  금요일 오전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채찍에 맞으시면서 수많은 욕을 얻어먹고 침 뱉음을 받으시면서 힘든 그 십자가를 끌고 골고다로 가시면서 쓰러질 때마다 로마 군인들은 무지막지하게 채찍을 가했습니다. 아무리 때려도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었을 때에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끌고 갔습니다. 골고다 위에서 예수님은 양손 양발에 못을 박으셨습니다. 로마의 군인들은 제사장의 군인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을 박고 강도 두 명과 함께 예수님은 가운데 못 박히게 되었습니다. 너는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지? 그래서 가시로 관을 만들어서 한번 왕이 되어보라고, 너는 정말 왕이구나 가시관이라도 써라 하며 머리를 찌를 때 온 머리에서 피가 흘러 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네가 왕인데 왜 안 내려오느냐고 온 인류를 구원한다더니 너라도 구원하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악한 것입니다. 주님이 악한 일을 한 가지도 안 하셨거늘 인간은 가장 악하게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입니다. 여섯시간 십자가 위에 계시다가 주님은 운명하셨습니다. 운명한 다음에도 로마 군인들은 정말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가지고 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다 쏟아내었습니다. 운명하신 주님은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들어가셔서 묻히셨다가 오늘 아침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살아나셨습니다. 왜 살아나셨습니까?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의이기 때문입니다. 의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의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간이 역사 속에 아무리 하나님을 대적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는 그러기 때문에 성경대로 영원히 거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힘이 아무리 있어도 의인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제사장과 빌라도가 제 아무리 군중이 많을지라도 의인의 생명을 해칠 수는 없습니다. 의인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 4절에 보면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라고 했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는 일점 일획도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 있습니다. 악은 실패합니다. 아무리 힘이 있어도 실패합니다. 악은 망합니다. 악은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습니다. 시편 1편에 있는 대로 악인의 길은 망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권력 어떠한 능력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의가 아닌 길은 망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참된 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인이 없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습니다. 왜? 하나님의 의만이 의입니다. 역사 속에 모두 의인이라고 말했지만 참 의는 없습니다. 이것이 진실이라고 재판했지만 진실한 재판은 없습니다. 히틀러가 6백만을 죽이고 가장 진실하게 정의의 삶을 살았다고 했지만 정의의 삶이 아닙니다. 뭇솔리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스탈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가장 정의의 길이고 모두를 정죄하고 자기만이 진실했다고 했지만 참 정의는 이 땅위에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만이 의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자만이 진실하고 의인인 것입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내가 의인이요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모두 다 죽였지만 그는 의인이 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지역은 가보면 뱀을 섬기는 사람이 뱀을 섬겨야 가장 진실하고 의로운 것 같지만 그것도 진실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나라에는 지금 10억도 넘는 인구가 소를 숭배하고 있지만 그 소를 숭배하는 것 그건 그 나라의 의지 절대로 참된 의가,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은 의가 아닙니다. 제가 갔던 한 나라도 원숭이를 온 나라 임금으로부터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 나라도 대학이 있고 학자들이 있지만 모두 원숭이를 숭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참된 의가 아닙니다.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양반 상놈 갈라놓고 상놈은 인간이 아닌 걸로 취급했지만 이건 우리들의 잘못된 의였지 하나님 앞에 의는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의만이 영원합니다. 인간의 의는 지역적인 의입니다. 인간의 의는 잠깐의 의입니다. 인간의 의는 내가 기준을 정한 나의 의에 지나지 않지 참 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만이 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 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의 의로움으로 살아야 하고 그의 말씀으로 살아야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되어 하늘 나라 갈때에 의인만이 들어가는 나라, 인간의 의로는 갈 수 없습니다. 내 공로로는 갈 수가 없습니다. 하늘 문은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천국 문이 열려지고 영생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오늘 부활절에 가장 중요한 교훈은 악인은 망하는 것입니다. 악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 터키 지역 이스탄불이라는 곳에 가 보면 그 때에 빌라도가 직접 로마 황제에게 보고한 사항이 나옵니다. 아 놀라운 이 되어진 일이 분명히 죽고 우리 군대로 혹시나 부활하면 군대로 다 죽이려고 했는데 살아났다라는 거예요. 지금 온 나라가 우리 다 이렇게 했는데 살았다는 거예요. 황제에게 보고했고 놀라운 일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로마가 예수 그리스도 죄수 앞에 지금 황제로부터 온 나라가 1천 7백년 동안 그를 섬기고 있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가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는 영원한 것입니다. 가로막을 자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의를 좇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을 좋게 하고 사람의 마음에 들고 악인을 좇아가면 우리의 의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천국 가서 살아가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의의 길로 걸어가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악인의 길은 망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인정하시기 때문에 어두운 밤에도 빛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24장에 보면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난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넘어지느니라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훼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을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같으니라. 정치적인 훼리바람 한번만 불어도 악인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수 천대에 살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복을 받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의인의 수고는 생명에 이르고 악인의 소득은 죄에 이르느니라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 악인의 집에는 여호와의 저주가 있거니와 의인의 집에는 복이 있느니라 의인의 장막에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리로다 의인이여 너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며 그 거룩한 기념에 감사할지어다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발육하리로다 의인이여 여호와를 찬양하라 주를 섬기고 주의 계명과 말씀과 뜻을 따라 우리가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길은 의인입니다. 강도도 예수 믿으면 의인입니다. 우리는 어떤 길에서도 돌아서서 예수와 함께 살아가는 의인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유명한 문학가 괴테의 파우스트라는 책이 있습니다. 파우스트 인물이 인생의 회의를 느끼고 비애를 느끼고 인생이 살기 싫어서 그는 자살하려고 가다가 어디선가 들려 오는 부활의 기쁜 소리를 듣습니다. ♬예수 부활 하셨네 할렐루야♬ 교회에서 들려오는 부활절 성가대의 소리를 듣고 이 파우스트는 돌아갑니다. 자살하는 길에서 부활의 주님 빛을 바라보고 생명의 길로 나가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어두움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빛의 길로 우리는 양심이 더러워지고 불의하고 인간을 좇아 인간의 손을 의지하고 어디에 가서라도 살기만 잘 살면 된다는 이 어리석은 발걸음에서 돌아서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믿음으로 살
아야 됩니다.
 
  우리 교인이 있습니다. 아주 큰 재벌 회사에 상무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날마다 술을 먹이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명성교회 안수집사라서 못 먹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먹이는지 너는 여기 얼마 못 있는다 얼마 있으면 끝난다 모두 다 그렇게 생각했대요 자기도 그렇게 생각했대요. 우리 성도들은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악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이 회사 아니면 못산다는 이런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나의 가는 길은 여호와께서 지키시는데 그래서 우리가 의에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에게는 담대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회사의 회장이, 사람이 위에서는 압니다. 다 압니다. 술 안 먹고 진실하게 사는 것 압니다. 그래서 이번에 큰 회사를 맡아서 사장이 되었어요. 의인은 의인의 길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로 말미암아 의로워졌기 때문에 예수의 의로 우리가 살아가기 때문에 그의 부활하심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악인의 길을 걸어가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접 들었습니다. 아주 큰 나라에 회사와 계약을 건설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이 분이 가만히 보니까 그 나라의 지도자가 진실하지 못하고 악해요, 하나님 앞에 바로 안 사는 거예요. 특별히 잘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계약을 안 했대요. 안 했더니 우리나라의 왕회장이 그걸 알고 왜 그걸 몇 천억을 버는데 수억 불이 쏟아져 나오는데 왜 그걸 안 했냐고? 얼마나 그 왕회장이 화가 나서 6개월 동안 말도 안 하더래요. 그러나 교인이란 기준이 있잖아요 교인이 보는 눈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권력도 망하고 그 이어 받았던 그 기업도 망하고 그러니까 그 다음에 왕회장이 그러더래요. 한 일년 지나니 그 무슨 계시 받은 것 있냐고 어떻게 알았냐고 그러
더래요. 교인이 계시가 무슨 계시예요 믿음의 눈으로 보면 안 할 것 할 것 갈 곳 안 갈 곳 결혼해야 되느냐 안 해야 되느냐 먹어야 되느냐 안 먹어야 되느냐 계시 안 받아도 금방 드러나는 거예요. 술 갖다 놓고 주여 계시 하옵소서 먹어야 됩니까 안 먹어야 됩니까 이것이 계시로 결정하는 거예요? 의인의 길은 돋는 햇빛 같아서 이게 빛이냐 어두움이냐 금방 알 수 있는 일을 왜 방황하고 계십니까? 지난번에 우리 교회에 와서 간증하신 분도 계시잖아요. 대통령 비서실장을 대통령이 시킬 때 예, 각하 저는 다 좋은데 주일 예배는 꼭 지켜야 됩니다. 의인의 길은, 주일 없는 의인이 어디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만들어진 날이 오늘 주일이에요. 우리는 이 세상에 살다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영원히 하나님 나라에 가서 살 줄로 믿습니다.
 
  인생의 영광은 잠간입니다. 시편 103편 15절에 보면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광이 들의 꽃과 같다라고 했어요. 베드로전서 1장 24절에는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고난도 올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는 의인을 멸할 만한 능력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자굴 속에도 풀무 불 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계 만민이 의의 길 이 길 따라서 살길을 온 세계에 전하세 만 백성이 나갈 길 어둔 밤 지나서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주 예수 따르라 승리의 주 세계 만민이 돌아갈 길과 진리요 참 생명 네 창검을 부수고 다 따르라 화평 왕 어둔 밤 지나서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 땅에 곧 오겠네 오겠네♬ 우리는 의의 길 옳은 길이 어디에 옳은 길이 있습니까? 예수 떠나면 옳은 길이 없습니다. 모두 다 잘못된 이기적인 길로 걸어가고 정욕의 길로 걸어 갈 뿐입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문학이 있고 음악이 있고 과학이 있고 지식이 있어도 예수 떠난 길에는 길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학적인 표현도 그리스도와 함께 음악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업도 그리스와 함께 지식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상도 그리스도와 함께 오늘 그리스도가 없는 공산주의 사상이 몰락한 것을 못 보았습니까? 세계를 붉게 덮던 저 엄청난 공산주의도 망했는데 오늘날 그리스도의 의를 대적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빌라도가 헤롯이 이 어마한 로마가 다 예수님을 멸해 죽였는데도 예수님은 살아나셨어요. 왜? 의인은 살아요. 의는 이기게 되어 있어요. 의는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도 의롭게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누구나 결혼해서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의인의 길을 걸어가야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부활이 없다면, 예수님이 의인으로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살려주시지 않으셨다면, 천국이 없다면 뭐하러 우리가 교회에 나옵니까? 저부터 목회를 안 할 것입니다. 나도 이제는 교회 목회 안 해도 얼마든지 땅에 삶만 살라고 하면 짭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왜? 나는 책만 팔아도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러나 나는 저 천국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내일도 끊임없이 주님을 위해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왜 박수를 싫어합니까? 꽃다발 받는 것을 왜 싫어합니까? 왜 영광을 싫어합니까? 오늘날 많은 사람이 영광을 버리고 선교사로 가서 수십만이 저 어려운 곳에서 고생하는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와 함께 천국에서 받을 무한한 영광을 바라보고 그 나라에 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교회에서 우
리 장로님들이 절기가 되면 돈 좀 쓰라고 줍니다. 나는 늘 교회에 돌려 드립니다. 내가 돈을 몰라서 드리는 게 아니에요. 안 아까워서 드리는 게 아니에요. 드릴 때 에리에리해요. 쓰고 싶고 그러나 저는 기준이 하나예요. 왜? 하늘 나라에 가서 내가 상 받아야지 여기서 다 상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여기서 배부르면 내가 얼마나 배 부른다고 잠간인데 내가 저 나라에 가서 하나님 나라 가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 나라에 가서 내가 대접받아야지 땅에서 그까짓 것 좀 더 잘사는 것 그까짓 것 좀 더 잘 입는 것 그까짓 것 좀 더 잘 먹는 것 그까짓 것 좀 더 좋은 차 그까짓 것 천국 가면 얼마나 좋은데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내일을 바라보고 우리가 살아야 될 것 아닙니까?

  우리는 의에 대해서 양보하지 마십시다 여러분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죄인과 손잡고 성공하려는 마음은 버려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빛을 잃어버린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를 가지고 의를 팔아먹고 장사하는 잘못된 삶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는 의를 주신 의의 옷을 잘 관리하여 더럽히지 않도록 주님 앞에서는 그 날까지 주의 의를 좇아 살다가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얻는 성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이 거룩한 부활의 기쁨 부활의 생명 부활의 큰 축복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영원히 사는 복된 성도 만들어 주옵소서 부활의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 모든 성도들 이 세상 끝날까지 의인의 길을 걸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옵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김삼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