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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려주일]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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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3-6)

남편을 일찍 잃고 외아들을 애지중지 키운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커서 결혼을 하고 며느리가 들어왔습니다. 며느리가 들어오니 왠지 모르게 아들을 빼앗긴 것 같고 작은 일에도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느날 밤 어머니가 잠이 오지 않아 거실에 나왔는데 우연히 아들방에서 도란도란 얘기 소리가 들려오는 것입니다.
며느리가 아들에게 말합니다. "자기야,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아?"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얼마나 좋아?" "요만큼" "요만큼이 뭐야? 치. 삐짐." "그건 요만큼만 빼고 다 사랑한다는 거야. 요건 당신 마음." 밖에서 듣다보니 열이 받습니다. 그런데 며느리가 한 수 더 뜹니다. "그런데 자기야. 두 번째는 누가 좋아?" "두 번째?" '설마 어머니라고 하겠지'하여 귀를 쫑긋 세웁니다. "우리 아기." "세 번째는?" "세 번째? 우리 장모님" "그럼 네 번째는?" "우리 강아지." "그럼 다섯 번째는?" "어.. 우리 엄마." 어머니는 큰 충격을 먹었습니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어머니는 메모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1번 보아라. 5번 용정 간다.'
우리가 제일 고통스러운 때는 누군가에게 배신감을 느낄 때입니다. 사랑하는 대상에게 배신을 당할 때,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할 때, 헌신적으로 은헤를 베푼 자에게 배신을 당할 때 견디기 힘듭니다.
예수님도 그런 고통을 맛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은 삼십을 받고 팔아 넘긴 제자로 인하여 끌려가 수모와 채찍질 등 말할 수 없이 큰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그리고 이번 주간을 수난주간입니다. 특별한 주간을 맞아 예수님의 고난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어떤 고난인가?

1. 죄없이 받으신 고난이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아마 우리는 지각없이 또 때로는 무의식적으로 십자가를 미화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보석장식이나 교회의 뾰족탑들은 모두 장식적이고 매혹적이지만 십자가 처형의 실상은 제대로 나타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1세기 당시의 가장 고통스러운 공개처형 방법이었습니다. 죄인은 나무로 만든 십자가 위에 눕혀졌습니다. 죄인의 손과 발에는 못이 박히었고, 그 십자가를 들어서 흔들어 땅에 박아서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살이 찢기고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심한 고통을 받게 됩니다. 형을 집행하는 군인들조차 그 참혹한 정경에 익숙하지 못하여 감각을 둔하게 하려고 독한 술을 마셨다고 역사가들이 일러줍니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보면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이 생생하게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육체적인 고통만을 묘사했습니다. 온갖 심한 고문과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도 엄청나지만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처절하게 버림받고 단절되는 고통이야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고통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위에서 고통을 받으며 마지막으로 외치신 말씀이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는 뜻입니다. 누군가에게 버림받은 것은 고통입니다. 특별히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것은 큰 불행입니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았습니다. 왜 버림받으셨습니까?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받으신 거예요. 에덴동산에서부터 하나님을 배신하고 범죄하여 멀리 떠나 관계가 끊어진 인간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이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버림받는 형벌입니다. 십자가에 매어 달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쳐야 할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나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여 이렇게 희생할 사람이 예수님 말고 또 누가 있습니까? 그렇게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철저하게 대신 형벌을 담당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십자가만 보지 말고 거기에 내가 매달려 있어야 함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대신하여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사랑이 밀려옵니다. 은혜가 밀려옵니다. 새생명의 환희가 밀려옵니다.

2. 저항하지 않으신 고난이다.

(사 53: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벧전 2:22)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가끔 텔레비전 뉴스에 보면 정치인들이 "나는 희생양이다" 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희생양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구약 시대 때 여러 가지 제사 때 죽어야했던 양을 희생양이라고 합니다. 구약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었던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양의 피를 흘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양을 죽여서 양의 피를 흘림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희생양을 드릴 수 있는 양은 어떤 양이었습니까? 희생양을 드리려면 아주 흠 없고 순결한 양이 아니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정을 저지른 정치인들이 "나는 희생양이다" 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예수님처럼 죄가 없으신 분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그렇게 순결한 분을 희생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 때 흠이 없는 양을 제사에 사용했던 것과 같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 죄를 없이 하시려면, 예수님은 당연히 죄가 없으신 분이어야 합니다. 죄인 자신이 타인의 죄를 대신 할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를 위해 하나님 앞에 대신 죽어줄 사람은 죄에서 자유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사람중에는 아무도 죄에 자유한 사람이 없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죄의 대가는 곧 죽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대가를 치루기 위해서는 죽음, 생명, 곧 피흘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9:22절에는 "피흘림이 없으면 사함이 없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값 대신에 예수님이 귀한 피를 십자가에서 흘리실 수 밖에 없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들은 그래서 예수님의 피값으로 다시 살아난, 죄에서 자유한 존재가 될 수 있었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 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아더 코난 도일경의 '은빛 불꽃'에서는 침묵의 단서를 둘러싸고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탐정 셜록 홈즈는 경비견이 지키고 있었던 값비싼 경주마 도난 사건을 조사합니다. 홈즈는 증거들을 수집하면서 범인이 들어왔을 때 개가 짖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개가 범인을 알고 있었다고 추론해내고, 결국은 그것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줍니다.

예수님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많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그것들 중의 하나가 주님의 침묵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수백 년 전에 이사야 선지자는 그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7).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그를 고소하는 자들 앞에 끌려가셔서 "아무 대답도 아니하실" (막 15:5) 때까지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은 작지만 중요한 증거의 하나입니다. 특히 그의 베들레헴 출생 (미 5:2; 눅 2:4), 다윗의 혈통 (사 11:10; 눅 3:31), 그의 옷을 갖기 위해 제비 뽑음 (시 22:18; 요 19:23-24) 같은 다른 단서들과 종합해볼 때 더욱 그렇습니다. 이것들과 더불어 200가지 이상의 성취된 예언들은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해 압도적인 증거를 제공해 줍니다.
그는 메시아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구주이십니다.

3. 죄를 속하신 고난이다.

(사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로마서 5:8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은 너무 깊은 진리이어서 신학자들도 그 깊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으려고 죽으셨다니요! 인간구원을 위해 있었던 그 사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신학적 이론들이 쏟아져 나왔으나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속이라는 단어야말로 이 큰 신비의 핵심을 설명하는데 가장 가까운 단어입니다. 죄 없는 한 분이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 지어주신 것입니다.

크리프 바로스는 그의 두 어린 아이들이 잘못을 했을 때의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로 타일러도 계속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벌을 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아버지 크리프의 가슴은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비와 베티를 자기 방으로 부른 후 셔츠를 벗고 벨트를 풀고 맨 등으로 침대 옆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는 한 아이당 열대씩 자기의 등을 때리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들이 얼마나 울었겠습니까! 그러나 죄값은 치루어져야만 했습니다. 아이들은 흐느끼며 아빠의 등을 쳤습니다. 그런 후 아빠는 아이들을 껴안고 입맞춤을 해주고는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물론 아픈 경험이었지요. 하지만 그후 다시는 아이들에게 매를 대야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라며 그 날을 회상합니다.

당신이 행한 비겁하고 이기적이며 부끄러운 행동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모든 죄를 대신해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우리에게 주시는 죄 용서를 누리도록 초청하고 계시며 우리의 남은 삶을 그에게 드리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로 알기를 원하십니다. 그 사랑 때문에 바로 예수님이 돌아가셨습니다!(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청소년시절 어머니의 이혼과 재혼의 반복으로 상처를 받고 집을 나온 어떤 자매가 있었습니다. 외로운 마음을 기대려고 이성교제를 하고 동거까지 하였습니다. 영영 자기 곁을 떠나지 않을 줄 알았던 애인은 일본으로 유학을 간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그러다 6년 만에 다시 나타난 애인은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한 다른 여자의 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이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여인은 살고 싶은 생각도 살 의욕도 잃어버렸습니다.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 남자 저 남자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에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우울증, 정신분열증, 대인기피증 등 정신적인 질환이 점점 심해져서 정신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한 달에 한번식 고아원에 가서 봉사하는데 같이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가볼까?'하고 따라 나섰습니다. 마침 교회에서 와서 봉사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아이들과 함께 설교를 듣다가 울음보가 터졌습니다. 목사님이 "여러분,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러분을 외면해도 심지어 여러분의 부모, 친구들이 여러분을 버려도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 버리시지 않습니다." 하는 말씀에 눈물이 터지고 엉엉 소리내어 울게 된 것입니다. 여섯 시간이나 같이 붙잡고 기도하고 상처를 나누고 하다보니 모든 정신질환이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정신분열증, 대인기피증, 우울증.." 그리고는 "예수님이 이제 제 신랑입니다."하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리고 자매는 피아노를 전공하였는지라 교회에 출석하며 반주를 하였습니다. 다윗이 악기를 연주하며 악신이 떠나는 것처럼 이 자매가 반주를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치유가 일어납니다.

어느날 교회에서 집회를 하는데 미국에서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습니다. 목사님을 따라 총각집사님이 함께 왔습니다.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은 분인데 의학세미나 참석차 한국에 왔다가 본 교회 목사님이 집회를 인도한다고 하니 참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집회가 끝나고 이 총각이 반주하는 자매를 소개시켜달라고 조르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자매를 불러 말을 꺼내니 '목사님, 이젠 상처입고 싶지 않아요. 저는 모든 사람에게 거렂당하고 버림받았어요. 예수님 만나 다시 살아났는데 더 이상 상처입고 흔들리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목사님이 한 번만 만나보라고 설득해서 만났는데 세 시간만에 결혼약속을 하였습니다. 자매가 자기 인생을 다 이야기 했어요. 과거의 허물까지 다 털어놓으니 총각집사님이 듣고 확신이 들었어요. '이 사람은 내가 없으면 안된다.' 그래서 결혼하여 미국으로 가서 너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답니다. 남편이 그렇게 인자할 수가 없고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새벽까지 일을 하다가 들어가보면 아내가 자지 않고 거실구석에서 무릎꿇고 남편을 위해서 울면서 기도합니다. '우리 남편 수술 잘 하게 해달라고' 서로 세상에 이런 아내가 어디 있느냐고? 이런 남편이 어디 있느냐고? 감사하며 삽니다.

아내는 말하기를 "제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못했더라면 어두운 방구석에서 벽이나 긁으며 증오하고 비참하게 끝나버렸을 인생인데 하나님 은헤로 이렇게 변화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어요"라고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위대한 사랑을 깨달으면 누군든지 변화됩니다. 여러분도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 받으신 고난의 진리를 깨닫고 놀랍게 변화받는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문기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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