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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고전 15:5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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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사실“승리”라는 말은 전쟁술어였습니다. 이기고 진다는 것은 정 반대개념입니다. 예수님은 누구와도 다투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가 “승리하셨다”하니 이상하지요. 사실 예수님의 삶은 전투였습니다. 공군을 “3,000만의 불침번”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 인구가 3,000만이 넘습니다. 그만큼 적을 경계한다는 뜻입니다. 불침번은 잠시라도 졸면 안 됩니다. 졸면 죽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에 의해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승리자 중에 승리자이십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를 대신해서 아들을 죽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변함이 없으신 것입니다. 그는 무력으로 이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보니페스(Boniface) 교황은 “여우처럼 와서 사자처럼 다스리고 개처럼 죽었다”고 합니다. 비참한 죽음을 죽었다는 말입니다. 투르나이젠은 “칼빈의 전기”끝부분에서 “사람은 그 죽는 것을 보아서 그 삶이 어떠했다는 것을 안다.”고 했습니다. 인류는 지금도 죽어가고 있습니다. 병으로 죽습니다. 늙어 죽습니다. 사고로 죽습니다. 전쟁에서 죽습니다. 자살로 죽습니다. 인류는 점점 가인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사람의 역할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감정 하나를 마음대로 못 합니다. 예수님은 그 십자가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활의 영광을 위한 십자가였습니다.(No Cross, No Crown) 현대인은 죽는다면 질겁합니다. 이것 다 죗값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무서워 합니다. 그러나 생명을 삼키는 원흉이 무엇입니까? 죽음 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병이 무서운 것입니다. 병이 없으면 죽음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가정 더럽습니다. 가장 추악합니다. 가장 악질적입니다. 이를 부추기는 것이 바로 사탄입니다.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세계는 조류 독감으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은 100여명 정도입니다. 여기에 퍼붓는 돈이 천문학적입니다. 그런데 죄 때문에 비상이 걸립니까? 죄 때문에 적색경보를 내리는 나라가 없지요. 나라가 위태하면 비상계엄령이 내려집니다. 비 때문에 호우주의보, 호우경보를 내립니다. 황사주의보도 내립니다. 태풍경보가 내려지면 대피령도 내립니다. 그런데 어느 지도자도 죄에 대해서는 감각이 둔합니다. 죽고 또 죽습니다. 죄에 오염되면 그건 위험신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를 송두리째 해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계획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권세를 이기신 것입니다. 세상 어떤 일도 준비 없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군인은 전쟁 준비를 합니다. 미국, 일본과 같이 이북이 우리나라를 쳐들어온다는 징조가 보인다는 가정 하에 전쟁을 준비한 것입니다. 미국의 항공모함이 길이가 340m랍니다. 거기에 일하는 군인이 5,600명, 비행기가 86대 탑재되어 있답니다. 축구장 넓이의 10배라던가요? 이런 군인이 우리나라를 지키고 있으니 우리가 잠이라도 잡니다. 공부도 하고 일도 합니다. 그런데 미군이 훈련하는 데 사람들이 가서 “미국함 물러가라”고 데모를 했답니다. 그런데도 군인, 경찰 누구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신부는 결혼 준비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 위해 허물을 벗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입니다.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이 크면 클수록 준비해야 할 것이 더 많습니다. “죽음과 세금은 피하지 못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한자스(Mike Hanzass)는 죽기 전 2년 앞서 무덤을 미리 사놓았습니다. 매주 무덤을 찾아가 꽃을 심고 기념일엔 꽃을 갖다 놓았답니다. 또 관까지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일가친척을 모았습니다. 유언을 남겼습니다. 그는 그 만큼 천국 갈 준비를 잘 한 것입니다. 옳게 죽을 준비를 했습니다. 우리는 늘 준비합시다. 예수님은 이미 십자가를 다 아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법들입니다. 이 방법 이외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하신 것이 십자가였습니다. 십자가가 끝이 아닙니다. 시작이었습니다. 십자가는 영원한 승리의 시작입니다. 이 십자가로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의 노래를 부릅시다. 우리는 예수님이 다시 사신 부활의 노래를 부릅시다. 이 부활의 기쁨, 감격, 충격이 대단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저도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라는 말씀으로 같이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Ⅰ. 왜 예수님이 부활하셨어야 합니까!

부활 사건은 인간 역사에 폭탄(핵) 같은 사건입니다. 세상에 이럴 수가? 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것도 구약부터 예언한 일입니다. 또 당사자인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습니다. 예수님은 정신병자 취급받았습니다. 한 젊은이의 미친 독백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죽은 사람이 다시 사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이는 과학적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전설이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 성경의 저자인 바울은 학자입니다. 철학도 공부했습니다. 성경도 누구보다 더 많이 압니다. 그는 바리새인입니다. 그런 그가 사람이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산다는 것 거짓말이라고 했습니다.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야기라는 것입니다. 그런 그가 그렇게 비웃었던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음성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강한 빛으로 나타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십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고 하십니다. 생전 처음 듣는 음성이었습니다. 그런 위엄이 있는 소리는 처음 들었습니다. 그 권위에 제대로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땅에 엎드렸습니다. “주여 뉘시오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하십니다. 나사렛 예수는 그가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얼마 전 틀림없이 죽었습니다. 그는 이 사실이 너무 신나고 성공적인 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 있다니, 귀신에게 홀린 것도 아닌데, 대낮에 강한 빛에 쓰러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예수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그는 ‘예수는 얼마 전 십자가에서 틀림없이 죽었소. 무슨 소리요?’ 라고 전에 같았으면 말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한 순간에 그 잘난 사울은 녹초가 되고 말았습니다. 참 어리석었지요. 그가 예수님을 쳐다볼 용기도 없었습니다. 이미 그의 눈은 장님이 되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예수님은 가짜입니다. 유대인의 말대로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닙니다. 메시야가 아닙니다. 그는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고 말씀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말씀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하필이면 왜 3일입니까? 그 이유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더운 나라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날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곧 부패하기 때문입니다. 사흘 같으면 그 시체의 부패 정도가 어떠하리라는 것 짐작하시겠지요? 또 예수님은 온 몸이 상처투성입니다. 더 잘 썩을 것입니다. 그런 시체가 다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그런 일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약속을 지키셔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김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부활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거짓투성입니다. 요즈음 “잃어버린 복음서” 유다 복음이란 책이 1,800년 만에 공개되었습니다. 그것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한 것은 그에게 내려진 신학적 임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배신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인간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그가 악역을 맡아 희생한 것이다.”라고 합니다. 이단이지요. 성경에도 없는 개인의 글입니다. 이것은 2세기에 쓰여진 것입니다. 당시 노예 몸값이 은 30세겔(343g)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이 값에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이 내용을 가룟 유다의 입장에서 쓴 문서가 있습니다. 1976년 발견된 후 최근 골동품 시장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이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요구에 의해 배신했다는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2세기에 이미 이를 이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네 책의 복음서가 있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서입니다. 각각 저자의 이름을 따서 책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생애를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관복음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서는 연대순서보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네 복음서외에 어떤 복음서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구약 39권, 신약 27권, 모두 66권의 책을 한 권에 묶어 성경전서(성경전부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란 뜻)라 합니다.

Ⅱ.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구약은 주전 100년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신약은 397년 칼타고 교회 회의에서 정경으로 결정했습니다. 정경으로는 부적격하나 어느 정도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모은 문서를 외경(아포크리파)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7년 개신교, 천주교가 공동 번역한 성경에는 외경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외경을 성경으로 보지 않습니다. 모든 성경은 역사의 시작(창조)과 종말을 말씀합니다. 인간의 타락(죄)과 구원에 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 얻느냐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예수 믿는 자의 삶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유대인의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가 다시 3일 만에 살아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복음이란 책은 이단자가 쓴 유사품입니다. 사기 문서입니다. 금년은 이 책이 부활절을 앞두고 세계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우리가 구원 받도록 한, 일등공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를 광야로 보내 회개하도록 했다는 해괴망측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부활의 종교인 기독교를 넘어뜨리려는 사탄의 역사인 것입니다. 요즈음은 사탄의 전성시대입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우리를 흔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다. 하나님은 없다.”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기독교, 불교, 원불교, 모슬렘, 유교 다 같다고 합니다. 완전히 정신 나간 사람이지요. 이런 신학자가 있습니다. “동성애도 상관없다.”고 주장합니다. 큰일입니다. 부활은 없다고 합니다. 이런 망발이 어디 있습니까? 바울사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한 일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알았습니다. 사람은 어리석다고 느낄 때 돌아서야 합니다. 기독교는 많은 정권에 의해 탄압 받았습니다. 공산주의에 의해 죽어갔습니다. 우리 교단에서 30억인가를 들여 이북에 교회를 짓는다고 합니다. 봉수교회를 짓고 평양을 복음화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걱정도 많습니다. 북한에서는 교회 이름으로는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체육관, 문화공간으로 이름을 붙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북한의 본색입니다. 어느 신문에서는 보수교단인 합동측이 제 정신이 아니라고 합니다. 과연 이북에 이런다고 복음이 전해질 성 싶으냐는 것입니다. 이쨌거나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당시 로마군인, 종교지도자들, 군주 얼마나 예수님을 비웃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비웃었습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그렇습니다. 다들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자기만을) 피해 주기를 바랍니다. 제일 겁나는 말은 “죽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영웅이 있습니다. 그는 바울입니다.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이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제일 큰 기쁨입니다. 가장 큰 승리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신 것입니다.

맺는 말 :

저는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오늘은 부활주일입니다. 세계가 승리의 축가를 부르는 날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과학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를 죽인 사람을 비웃은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날 것으로 알았습니다. 오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제일 큰 선물을 주셨습니다. 곧 새 생명입니다. 부활 소식입니다. 부활은 가장 위대한 승리의 깃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입니다.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는 다 제로(0)입니다. 부활은 인간승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생명의 승리입니다. 이 부활은 기독교의 승리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의 승리인 것입니다. 사망의 짓누름도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활을 통한 복을 주신 것입니다. 2006년도 부활주일은 남다릅니다. 이 부활의 축복이 우리 문화의 가족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기적이 계속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날마다 주 안에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006.4.16 -충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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