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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임마누엘의 신앙 (마 28: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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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선생님을 찾아와 상담을 했습니다.
  "저는 날마다 아버지의 구두를 닦아요. 그런데 그 일이 정말 싫어요. 무슨 묘안이 없을까요?"
  교사는 그 소년에게 한 가지 충고를 해주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단다. 내일부터 아버지의 구두를 대통령의 구두로 생각하거라. 그러면 짜증과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소년은 이튿날부터 아버지의 구두를 닦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 구두는 대통령 할아버지의 구두다. 대통령의 구두를 닦는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그런데 그때부터 구두를 닦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일이 영광스럽고 기쁘게 여겨졌습니다. 무슨 일이나 억지로 하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사랑을 갖고 하는 일은 능률과 기쁨을 선물합니다. 가족과 친구와 직장에 대해 항상 불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합니다. 애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능력을 인정받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바로 갈릴리로 가셔서 사랑하는 제자들을 다시 만나셨습니다. 참으로 기적적이고 감격적인 꿈같은 순간입니다.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중요한 일을 시작함에 있어서 갈릴리보다 더 의미와 역사와 추억이 깃든 곳은 없습니다.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세 가지 일을 유언조로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인 동시에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이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부활의 아침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시대의 제자들인 여러분들에게 하시는 명령을 아멘으로 듣고 충성하시는 부활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제자를 삼으라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모든 족속'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과 정치와 종교와 문화와 이념과 지역과 풍습과 그밖에 모든 것을 초월하여 글자 그대로 인류 전체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미식 축구선수 하인즈 워드의 방한으로 인하여 혼혈인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지고 이해와 배려가 생긴 것은 발전과 성숙의 모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주적이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동등하고 공평한 차별이 없는 복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사 온 인류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특정한 민족이나 신분의 사람만을 위한 십자가와 부활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느 민족도, 누구도 복음에서 제외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장벽과 환경을 초월하여 모든 족속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또 다른 제자를 삼아야 합니다. 교회나 사람의 명령이 아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인 것입니다.

  깊은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은 한 달에 한 번씩 장을 보러 읍내로 떠났습니다. 그때마다 아내는 세 살된 딸과 돌이 갓 지난 아들과 함께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아내가 장작더미를 드는 순간 그 속에 숨어 있던 독사가 발을 물어 버렸습니다. 아내는 독사의 독이 온몸에 퍼져오는 것을 감지했습니다.
  '남편이 돌아오려면 사흘이 걸린다. 이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 줄 이웃도 없지 않은가. 저 어린것들을 굶겨 죽일 수는 없다.'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피워 아이들이 먹을 우유를 데우고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쏟아졌지만 계속 불을 피웠습니다. 정신은 점점 혼미해져왔습니다. 그러나 어머니의 마지막 사랑은 계속됐습니다. 몇 시간 후 아내는 자신이 아직 살아 있음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비 오듯 쏟은 땀과 함께 뱀의 독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만약 어머니가 그대로 주저앉아 신세한탄을 했더라면 남편은 비참하게 죽은 세 가족의 시체를 발견했을 것입니다.

  '미치면 미치고 안 미치면 못 미친다'는 말은 유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명령인 전도에 미쳐야 합니다. 전도하는 성도와 교회는 반드시 살고 부흥합니다. 그러나 어렵고 힘들다고 하여서 전도하지 않으면 영혼은 죽고 부흥과 성장은 결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 전도대가 매주일 수요일 오후에 전도를 합니다. 저와 목회자들도 함께 나가서 전도합니다. 수유 전철역에 가서 전도지를 나누어줍니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야 할 주님의 명령이기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다 보면 때가 되면 반드시 제자를 삼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전도대원 뿐만 아니라 전교인이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너도나도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제자를 해산하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제자 삼는 일에 앞장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세례를 주라
  본문 19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말씀에서 유명한 삼위일체 교리가 생겨났습니다. 물론 성경 안에는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없습니다. 그러나 간접적으로 삼위일체를 시사해 주는 구절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기 때문에 그동안 성경학자들과 신학자들은 다같이 그 점을 가리켜 '삼위일체'라고 일렀던 것입니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라는 말은 우리가 구원의 주를 전할 때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 하나님만 전해서도 안 되고 그리스도만 전해서도 안 되며, 또한 성령만 전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위격만 다를 뿐 한 분 하나님이신 점에는 조금도 하자가 없는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삼위는 동등하시고 언제나 동역하시며 동재하십니다. 본문에서는 이 삼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성도가 받는 것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공적으로 공동체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성도와 만인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 분을 위해 살겠다는 선포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순간인 것입니다. 영적인 결혼식과 같은 의미입니다.

  유럽의 종교개혁자인 루터와 쯔빙글리는 각자가 추구하는 종교개혁의 방향이 서로 차이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종교개혁에 대해 대화를 나눌 때마다 의견충돌로 얼굴을 붉혔습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스위스의 산을 오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마리의 염소가 매우 좁은 다리 위에서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습니다. 염소들은 다리의 중간에서 오지도 가지고 못했습니다. 곧 한판 싸움이 붙을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염소 한 마리가 다리 위에 납작하게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다른 한 마리가 염소의 등을 밟고 유유히 다리를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루터와 쯔빙글리는 이 광경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화해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염소에게서 겸손과 양보를 배운 것입니다. 스스로를 낮추는 사람들이 사는 사회는 분쟁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를 죄악에서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낮추었습니다. 인류는 그분의 등을 딛고 영원한 생명의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은 분들과 교회 공동체는 서로 낮추고 양보하여 화해와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얼마 전에 67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습니다. 국가나 교회나 목사의 이름으로가 아닌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마음껏 기뻐하며 축하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감격적이고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이러한 세례예식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전도하여 제자를 삼을 때 세례자는 생기고 더 많이 전도할 때 더 많은 세례자가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67명의 세례자들은 결코 거져 되거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전도와 양육의 열매인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전도한 분이 세례 받을 때 그 기쁨은 하늘의 기쁨인 것입니다. 이런 기쁨을 맛 보셨습니까? 모두 이 하늘의 기쁨을 맛보시기를 바랍니다. 금년 가을에 꼭 하늘 기쁨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성도와 교회에게 많은 제자들을 삼아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함께 아멘으로 순종하여 많은 세례자를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가르치라
  본문 20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는 것에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야 할 교육적 사명이 있습니다. 전도의 영역을 넘어서 전도 받은 사람이 말씀을 믿고 지키도록 교육하라는 명령입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은 신앙은 맹목에 빠지기 쉽고 미신에 떨어지기 쉽습니다. 가르침만이 신앙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가르친 것을 지키도록 계속 가르치고 신앙의 본을 보여야 합니다. 사람은 죽는 순간까지 배워야 하듯 주님 재림하시는 날까지 교회는 말씀을 가르치는 교육적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4만 명의 병정을 이끌고 동방원정에 나섰습니다. 지리에 밝지 못한 알렉산더의 대군은 사막의 중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전투는 고사하고 사막에서 떼죽음 당할 위험에 처했습니다. 알렉산더와 군사들은 심한 갈증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한 군사가 적진에 뛰어들어가 물 한 병을 훔쳐왔습니다.
  "대왕께서 이 물로 목을 축이시고 힘을 내어 우리를 구출해 주소서."
  그는 이 말을 남기고 그대로 죽었습니다. 군사들은 알렉산더가 과연 물을 어떻게 하는가를 주시했습니다. 알렉산더는 "내가 이 물을 먹는 것은 내 부하의 피를 마시는 것과 같다"라고 하면서 수건에 물을 적셔 죽은 부하의 몸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군사들을 향해 외쳤습니다.
  "우리 모두 한 방울씩 물을 나누자. 그리고 용감하게 싸우자!"
  군사들은 알렉산더 대왕의 후덕에 감동을 받아 갈증을 잊고 적진에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승을 거두었습니다.

  참된 지도자는 고통을 이겨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삶으로 말해야 합니다. 삶 없는 말은 영향력이 없어 울리는 꽹과리에 불과합니다. 오히려 귀만 아프게 하는 소음에 불과합니다. 교육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공교육, 사교육, 교회교육이 중요하지만 어려움이 많습니다. 많은 시간과 예산과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특별히 우리 교회 교회교육이 어렵습니다. 장소가 협소하고 교육장비가 낙후되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사들이 수고하고 있습니다. 관심과 기도가 필요합니다. 교육관을 새로 짓는 일이 필요합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교회교육이 없이는 교회의 미래도 없습니다. 교회교육에 눈을 뜨고 관심을 갖고 투자하는 교회라야 미래가 더 좋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열심히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교육은 반복되고 선순환되고 발전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교육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인 것입니다. 중국 속담에 "1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밀을 심고, 10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나무를 심지만 100년을 내다보는 사람은 사람을 심는다"고 하였습니다. 교육은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임마누엘입니다. 사람, 건강, 생명, 물질, 권력, 모든 것은 한시적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기에 우리는 행복하고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제자 삼고 세례를 주고 가르치는 일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김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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