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들어야 할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 (마 28:1-10, 요 20:19-..

  • 잡초 잡초
  • 402
  • 0

첨부 1


'네플류도프 공작(公爵)'이라는 사람이 자기 '백모' 집에서 일을 하던 '카츄사'라는 여자를 범하고, 배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임신을 한 '카추샤'는 백모 집에서 쫒겨나 자포자기 상태로 윤락의 길로 빠져 듭니다.

10년 후 '카추샤'는 돈 많은 남자를 독을 먹여 죽이고, 금품과 반지를 훔쳤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네플류도프'가 그 지방 재판소의 배심원으로 나왔습니다. '네플류도프'는 법정에 선 여인이 자기가 10년 전에 범한 여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랍니다. 자기로 인해 타락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된 '카츄샤'를 보면서 자신의 죄의 결과가 너무 큰 것에 놀라며, 자아를 자각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그래서 약혼을 파하고 토지의 사유를 거부한 뒤 '카츄샤'를 구출하는 일과 사랑을 관철시키는 일에 몰두합니다. 결국 '카츄샤'는 매춘의 생활에서 벋어나 새로운 출발을 합니다. '네플류도프'는 자기 때문에 한 여성이 파멸된 것에 대하여 깊은 죄의식을 느끼고, 어떻게 해서라도 그녀를 구원하기로 결심하고, 형무소로 그녀를 면회 가서 용서를 빌고, 변호사에 의뢰하여 그녀의 변호를 부탁하고, 유력자에게 조력을 간청하는 등 가진 애를 썼으나, 형을 바꾸지는 못하고 '카츄샤'는 끝내 죄수들 틈에 끼어 시베리아로 가게 됩니다. '네플류도프'도 귀족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버리고, 그녀를 따라 갑니다.

시베리아에서 겨우 판결 취소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네플류도프'는 그 소식을 가지고 카츄샤를 찾습니다. 이 과정에서, '네플류도프'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에게 깊이 감사하고 있었지만, 그의 장래를 생각하여 자신의 나갈 길, 정치범과 약혼한 그 길을 선택합니다.

'네플류도프'는 복잡한 마음으로, 그녀를 축복합니다. 그 후 그는 성경을 탐독하는데 성경에 쓰여져 있는 무한한 사랑으로, 진실을 찾아서 살아 갈 것을 결심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내 복음 진리를 통해 '영혼의 부활'을 찾게 됩니다.

이 내용은 19세기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 (Aleksey K. Tolstoy 1817∼1875)'의 걸작 「부활」의 줄거리입니다. 당시 러시아의 부조리, 러시아의 크나큰 죄악에 대해서 행동으로써 속죄하려고 했던 것이며, 내적으로는 자신의 삶의 변화를 '부활의 의미'로 보고 있는 내용입니다.

오늘날 많은 지성주의 크리스챤들이 이런 예수님의 부활을 '정신적' 혹은 '윤리적 부활'로 다루므로(그런 메세지가 전혀 불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참 복음의 핵심적 내용인 '예수님 부활의 역사성'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가사설(假死說)', '도거설(盜去說)',' 허위설(虛僞說)', '환상설(幻象說)', '착오설(着誤說)' 등을 받아들여 <예수님의 역사적 부활 자체>를 부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경의 예언대로 죽으셨다가 성경의 예언대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3-4절). 예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예언하시고, 자신께서 살아생전에 예고한 대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셨습니다(사7:14, 53:5-6, 10-12, 시16:10, 마16:21, 17:22-23, 막9:9-10, 요2:19-22, 사도행전 3:18,베드로 전서 2:24).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이며, 육체적 부활입니다. 그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살아나셨습니다. 음부와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셨습니다. 원수를 이기시고, 살아나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 부활절은 '인간의 근본적인 모든 문제가 해결된 날'입니다. 특별히 믿는 자에게 '구원의 확증을 주신 날'입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신 축복의 날'입니다. '마귀, 사탄의 머리를 깨트리시고, 영원한 죄로 인한 저주와 고통과 지옥에서 벗어나게 하신 승리의 날'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첫 열매되신 예수님 때문에 성들은 <부활의 은총에 동참하도록 첫 열매가 되셨고, 성도들은 새 생명을 얻은 날입니다.> 죄와 사단과 사망이 끝장난 날입니다. 죽음과 흑암을 정복한 날입니다. 부활절은 예수믿는 성도의 운명을 바꾸고, 소속을 바꾸어 준 기쁨과 희망의 날입니다.

요한복음 20:20절에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라고 제자들이 증언합니다. 눅 24:40에서는 발을 보여 주셨고, 요 20:27에 도마에게는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부활의 사실성'을 보여 주는 사례입니다. 기독교는 듣고, 보고, 믿는 종교입니다. 체험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무덤 속의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시고, 지금도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실 확인도 해 주셨지만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신 주님이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평강을 누리며, 모든 신앙이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은 어떤 음성이 있었습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무서워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 군병들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앞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몰라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생활했는데 그분의 죽음으로 바라볼 대상을 잃게 되어 절망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구현되기를 바랐던 이스라엘의 정치적 독립이 불가능하게 된 데 대하여 허탈감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마태 28:5절에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큰 슬픔을 안고, 무덤을 찾아갔는데 천사가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리고 "너희는 무서워 말라. 예수는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마태복음 28:10절에는 직접 부활하신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의 부활은 어떠한 의미가 있습니까? 부활이란? 헬라어' 아나스타시스( (αναστασι?)' 는 '죽은 자가 살아남을 의미'합니다. “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 것”, “새로운 형체로 살아난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죽지 않고 부활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은 것 같이(히9:27), 모든 사람이 다 부활합니다(요5:29). 천국 갈 부활이냐, 지옥 갈 부활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부활의 진리를 이 세상 물질계에서 동, 식물로 부활진리를 간접적으로 증거 합니다.

<계란>이 부화되어 완전히 다른 새로운 형체 <병아리>가 되어 살아갑니다.
<물벌레>가 탈바꿈하여 새로운 형체 <잠자리>로 하늘을 날아다닙니다.
<번떼기>가 완전히 탈바꿈하여 <나비>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다닙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서 썩고 죽은 후에 새로운 형태의 <밀 나무>가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져 있는 데도, 사두개인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마22:23). 오늘날에도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활한 육체는 '썩을 몸이 썩지 아니 할 몸이 되고, 욕될 몸이 영광스러운 몸이 되고, 약한 몸이 강한 몸이 되고, 저주 몸이 영화로운 몸이 되고, 육의 몸이 신령한 몸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는 썩지를 않는 몸이 됩니다. 다시는 저주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몸이 됩니다. 다시는 악령의 지배를 받지 않는 몸이 됩니다. 다시는 오염되지를 않는 몸이 됩니다. 다시는 시공간의 제한을 받지 아니하는 몸이 됩니다. 다시는 죽지를 않습니다. 다시는 사망이 해치 못하는 신령한 몸이 되는 것이 부활입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영안실에서 3일 만에 살아난 일이 있는데. 그런 것은 '부활'이라 하지를 않습니다. 다시금 죄 아래, 마귀아래, 시공간의 제한을 받는, 오염, 타락되는 몸은 '부활체'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고전 15:42-44절에 증거 하기를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 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영원히 썩지 않고, 영원히 약하지 않고, 영원히 오염되지 않고, 영원히 악령과 죄에 지배받지 않고, 영원히 병들지 않고, 영원히 불안하지 않고,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히 시공간을 초월하는 천사 같은 신령한 몸이 되는 것을 '부활'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의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요한 16:33에 "너희가 세상에서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이 시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무서워말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고난이나 실패, 연약함, 질병, 어려움, 심지어 '죽음'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가 아니라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마귀의 역사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영원토록 나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임마누엘로 함께 하심을 믿으시고,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2.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핍박당하는 초대교회 신자들은 마가 다랍방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는데 이때 마28:9절에 "예수께서 저희를 만나 가라사대 평안하뇨?"라고 말씀했습니다.

요한 20:20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시면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요20:21절에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요20:26에 "여드레 후에 제자들에게 또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를 잃어버린 사람들과 예수의 죽음만을 생각하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그들에게 예수가 없고, 절망과 실패와 죽음만 있습니다.

요한 14:27에 "평강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했습니다. 주께서는 거듭 제자들의 평안을 빌어주셨습니다. 제자들이 도마와 함께 있을 때에도 나타나셔서, 주님은 다시 한 번 제자들의 ‘평안’을 빌어주셨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문으로만 들어서 알고 있던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 앞에 직접 나타나시자, 그들은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예수님을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께 지은 죄가 너무나 컸기 때문입니다. 죽기까지 따르겠노라 하고서는 아주 쉽게 주님을 배반하고 말았으니, 어찌, 아니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에, 그처럼 거듭 <평강을 선포하셨습니다.>

아무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한 마디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같으면, 한 마디 말만 하고 말았겠습니까? 속에 있는 응어리가 다 풀릴 때까지, 무섭게 야단을 쳤거나 큰 벌을 내렸을 것입니다. 말이나 안 했으면 좋은데, ‘주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노라!’고 한 앞장 선 사람들 아닙니까?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야단치지 않았습니다. 과거지사에 대해서는 아예 거론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께서는 <평안을 빌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 "너희가 평안하냐?"라고 물으시며, 아직 평안이 없고, 두려워한다면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부활의 신앙, 이마누엘 신앙으로 평강을 회복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3.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20:21절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합니다. <사도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나는 너희를 보내노라." 보내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여인들에게 나타났습니다. 미국에 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자동차가 뭐냐? B.M.W 랍니다. B.M.W란 것은 Big mouth woman의 약자입니다. <입이 큰 여자들이다.> 이 말은 '말이 많다.''는 뜻입니다. 어쨌든 이 여인들을 통해서 첫 부활의 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에 대한 책임은 여성들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도는 책임이요. 특권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믿는다면 저와 여러분의 부활이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서 보증된 사실을 우리가 알고있다면 어찌 잠잠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홍보는 '프로의 기본'입니다. 빅토리아 여왕 때 총리를 지낸 영국의 대표적인 웅변가 <디즈래일리>는 하원에서 발언할 때마다 가끔씩 메모지를 보곤 했습니다. 언젠가 그가 메모지를 떨어뜨렸습니다. 한 의원이 재빨리 그것을 주워 보았습니다. 그런데 메모지에는 놀랍게도 아무 것도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단지 빈 메모지를 보는 것은 ‘나는 언제나 이렇게 단단히 준비하고 신중하게 발언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프로라면 자기를 홍보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고, 상품이 있어도 자기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기회를 잡기 힘듭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의 <마크 빅터 한센>은 집필을 마치고, 자신에 차서 원고를 33개 출판사에 보냈으나 매몰찬 퇴짜를 맞았습니다. 또 다시 134개 출판사에서 거절당했습니다. 결국 조그만 출판사와 연락이 되어 책을 출간하게 되었고, 독특한 마케팅으로 그 책을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홍보효과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도 자신이 어떤 분인가에 대해서 알리는 일을 하셨습니다.“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6)고 하셨습니다.

결국 자신을 타인에게 어떻게 인식시키는가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진정한 프로! 그는 자신을 홍보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는 진정한 프로 크리스챤이 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당당히 알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것은 진정한 사실입니다. 성경대로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시겠다는 것은 우연히~ 어쩌다~ 되어 진 일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성경의 예언에 나타난 약속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살아 계실 때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과 장로들도 이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그 무덤을 굳게 지키도록 한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빈 무덤도 부활의 증거가 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 나셨다 하는 것 외에는 주님의 빈 무덤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또 실제로 살아나신 예수님이 사람들 앞에 나타나신 것도 주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거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성경에 무려 열 한 번이나 예수님께서 사람들 앞에 나타나신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때는 개인적으로 또 어떤 때는 그룹의 사람들에게 심지어 어떤 때는 동시에 500명에게 나타나신 일도 있었으며, 신약성경이 기록되었을 때에 그들의 태반은 아직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제자들의 변화도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좋은 증거입니다. 살아 계셨을 때나 죽임을 당했을 때 제자들은 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친 비겁한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그들은 변화되어 담대히 주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돌팔매를 맞고, 핍박을 받으며, 순교(죽임)를 당해도 계속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계속 전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사도 요한만 빼놓고 모든 제자가 다 순교로 일생을 마쳤습니다.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던 그들이 정말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렇게 될 수 없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온 세상에 나가서 부활의 '복음을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있지 말고,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전도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4. "숨을 내 쉬며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20:22절에 "숨을 내 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왜 성령을 받아야 합니까?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난 이후, 성령을 받은 후에는 그들의 <마음자세>와 <생활태도>가 180도로 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더러운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서로가 마음으로 하나가 되어 뜨겁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를 증거 하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공동으로 사용'했으며,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물건을 나누어 썼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사도행전 4장 34절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자신 있게 설교'했습니다.

이처럼 제자들의 마음자세와 생활태도가 완전히 새롭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뵈었기 때문이며, 성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무조건 다 용서하셨는데 성령을 받자 확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소에 간이라도 다 빼줄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주께서 고난을 당하시자, 그들은 예수를 배신하고 다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께서는 그 못된 인간들을 다 용서해주셨는데 성령을 받자 죄 사함의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인간은 창조될 때 이미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타락과 범죄로 하나님의 생기는 떠났습니다. 그 인간이 다시 살아나려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야 거듭나고, 진리가 믿어지고, 부활을 확신하게 되고, 죄 사함의 감격이 생기며, 성령의 권능을 받고, 보내시는 곳으로 갈 수가 있고, 가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만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하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용서해주지 않으면, 그들의 죄가 그대로 있으리라(요20:23).’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컨대, 주께서는 제자들로 하여금 성령을 받게 함으로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전할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제자들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죄의 용서함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주의 제자들은 그 누구보다도 ‘주님의 사랑’과 ‘죄의 용서’를 직접 절절하게 경험했으니, 그 경험을 바탕으로 온 세상 사람들에게 주의 복음을 널리 전하라고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우리 본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즉 부활하신 예수를 자신 있게 증거 하면서 주의 제자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5. "내가 너희를 갈릴리에서 만나리라."고 하셨습니다.

마태 28:10에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했습니다.

갈릴리는 예수님의 활동 무대입니다. 수많은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제자를 부르시고, 말씀을 전하시고, 기사와 이적을 행하시고, 기도하시던 곳입니다.

갈릴리는 "고을, 집, 가정"이라는 뜻입니다. 내가 오늘 너희 마을로 가리라. 너희 집으로 가리라. 너희 가정으로 가리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너희를 만나리라는 것입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조직이요. 기관입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의 최고의 표현'입니다. 불편했던 갈릴리, 풍랑 일던 갈릴리, 실패했던 갈릴리, 문제 많던 갈릴리에 부활의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 평화가 임했고, 기쁨을 회복했고, 잃었던 사명을 다시 깨달았고, 그 갈릴리의 아름다운 이름을 회복했습니다.

오늘 부활의 주님이 이 민족과 교회와 가정과 심령에 찾아오실 때, 모든 문제는 해결될 줄 믿습니다. 절망이 희망으로, 슬픔이 기쁨으로, 근심이 평강으로, 두려움이 담대함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내가 너희를 갈릴리에서 만나리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현장, 갈릴리에서 만나 믿음도 회복되고, 기쁨도 다시 찾고, 사명도 다시 회복되는 역사를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고, 보약도 먹어야 보약이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우리의 부활을 소망하고, 현재에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는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말씀으로 이 시간 함께하시고, 보내신 성령께서 함께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살리실 것입니다(롬6:5, 8:11). 이제 현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을 덧입어 사시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24-26에 "마르다가 가로되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귀한 신앙고백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다시 주님을 만나 사명을 회복하고 제자의 귀한 직분을 잘 감당했습니다. 우리도 다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인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재림 주나 심판주로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대 어떤 모습으로 만나기 원하십니까? 부활체의 영광이 각기 다를 줄 알고 항상 주의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고전 15:51-52절). 고전 15장 58절에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말씀합니다.

부활(復活)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무서워하지 말고, 평강을 누리고, 복음을 전하며, 성령을 받고, 주님을 대망(기다리는) 신앙으로 전진하시기를 복 빌어 듧니다. 이 신앙으로 살아야 주님을 참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시인하는 것이요, 자랑하는 것이요, 선포하는 생활이 될 줄 믿습니다(롬6:5, 빌3:10-11). 할렐루야!
(황 영목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