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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도마의 재발견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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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낫 놓고 기역자를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무식한 사람을 가리켜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신앙과 관련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옆에 두고도 참 모습을 잘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도 잘 몰랐습니다. 지독한 영적 무지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가 못 박힐 때 배반하고 도망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들이 예수님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고 신앙생활 하느냐, 아니면 예수님을 수박겉핥기 식으로 알고 신앙생활 하느냐에 따라 신앙의 질이 천양지차가 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은 부활 이후입니다. 그 전에는 예수님을 알아도 피상적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할 때면 감탄하면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지면 그 믿음은 곧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아직 예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반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그들은 정말 이제는 전혀 의심 없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자신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른바 예수님에 대한 ‘재발견’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하지만 ‘참 믿음’은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합당합니다. 성경을 연구해 보면 그 이전의 그들의 삶과 그 후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 혹시 우리도 그런 것 아닙니까?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를 믿노라 하지만 정말 예수님의 참 모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신앙생활하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무기력하고, 재미없고, 확신이 없고, 삶 속에서 실패하고 ... 그렇지 않은가요?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을 다시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의 참 모습을 재발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럴 때 질적으로 성숙해지고 살아 약동하는 신앙이 될 수 있습 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모두 그렇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특별히 도마에게 나타나신 사건의 기록입니다. 도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때 예수님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항상 동일하지만, 도마가 예수님의 참 모습을 이제야 발견하게 된 것이죠. 이른바 예수님을 재발견한 셈입니다. 이것이 도마의 신앙을 변화시켰고, 그의 인생을 새롭게 바꾸었습니다.
  그 과정을 함께 살펴보면서 우리도 동일한 과정을 거치기를 소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신앙이 변화되고, 우리 인생이 새로워지기를 소원합니다. 

[1] 의심했던 도마 : 상식으로 사는 사람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이미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확신이 없었습니다. 설마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으려고 ... ?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한 가운데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신 겁니다. 19절 보면 “안식 후 첫날 ... ”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부활하신 바로 그날입니다. (그날은 지금의 주일에 해당됩니다. 그러니까 주일은 예수님이 부활한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에는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는 겁니다.) 문을 닫아 놓았는데 예수님이 불현듯 나타나신 겁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깜짝 놀랐지만 예수님이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보여주자 믿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마침 도마가 출타 중이었습니다. 24절.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그가 돌아오자 제자들이 야단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녀갔다는 겁니다.

  어쩌면 도마가 약이 올랐을지 모릅니다. 하필이면 자기기 없을 때 다녀가시다니 ... 한편으로는 도저히 자기의 상식으로는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뭐라고 말하며 투정을 부립니까? 25절(하). “ ...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
  얼른 보면 도마가 아주 똑똑한 사람 같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이성주의자, 합리주의자, 실증주의자, 경험주의자 등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따지고 들어가면 아주 멍청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는 사람의 감각, 인지 기능이 진리에 대한 최종 판단 기준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거야 말로 착각입니다. 감각 기능, 인지 기능이 별 게 아닙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게 과연 얼마나 됩니까? 너 무 큰 것도 안 보이고, 너무 작은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망원경, 현미경 등의 보조 기구를 사용합니다. 그래도 안 보이는 게 많습니다. 또 인간의 경험이 얼마나 됩니까? 어떤 사람이 세계를 누비며 여행을 다닌다고 가정해 봅시다. 대단해 보여도 세계 지도에 표시해 보십시오. 그게 얼마나 될지 ... 별 게 아닙니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의 지식과 경험만으로 판단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해 들음으로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겁니다.

  이 점에 있어서 도마가 착각을 한 겁니다. 아니, 교만했던 겁니다. 평소 동고동락하던 다른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면 겸손히 받아들이는 게 올바른 자세입니다. 물론 도마에게 예수님이 다시 나타났지만 만약 그러지 않으셨다면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경우 도마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바르게 믿고 바르게 알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서 가능한 겁니다. 그것이 곧 성경 말씀입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을 들음으로써 믿음이 생기는 법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목격하고 체험한 이야기를 성경에 기록으로 남긴 그 말씀을 지금 우리가 전해 듣는 것입니다.

  이런 예를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합니다. 여러분, 세종대왕 보셨나요? 매일 지갑 속에서 보신다구요? 우리가 그분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역사적 실존에 대해 1%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요? 전해 듣고 그대로 믿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부모님이 정말 맞나요?  언제 나를 낳는 것 보았나요? 기억이 납니까? 그렇지 않아도 부모님이 그렇다고 하니까, 우리를 사랑해 주니까 그대로 믿는 겁니다. 

  우리의 신앙이 바로 그런 겁니다. 예수님을 보지 못했지만 그분을 보고 체험한 사람들이 남긴 성경 말씀을 통해 얼마든지 믿고 따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도마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9절. “ ...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 ” 벧전1:8~9 에도 보면 그런 원리를 언급합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여러분, 의심이 생기는 것 자체야 탓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의심을 마냥 방치하면 불신앙이 되고, 결국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의심의 문제는 속히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말씀에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신지 아닌지, 구주인지 아닌지 결판을 내야합니다. 막말로 아니면 걷어치우고, 진리라면 열심히 신앙 생활해야 마땅합니다.

  의심의 문제는 심지어 부정적으로 접근해도 말씀 앞에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해결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님은 분명 살아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벤허>라는 영화를 아시죠? 본래는 류 월리스(장군, 소설가)가 쓴 소설이죠. 그는 무신론자 친구 잉거솔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기독교의 거짓됨을 증명해내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2년 동안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가운데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2장에 접어들면서 펜을 꺾고 맙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 후에 쓴 소설이 바로 <벤허>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겸손함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의심을 이기고 확실한 믿음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2] 확신하는 도마 : 신앙으로 사는 사람

  의심하던 도마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26절~27절. ‘여드레 지나 ...’라는 말은 예수님이 1주일 후에 다시 나타나셨음을 의미합니다. 처음 나타나신 것이 안식 후 첫날, 즉 지금의 주일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주일에 나타나신 겁니다. 주일은 부활 기념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 ...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러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도마가 얼마나 질겁했을까요? 마치 자기가 한 말을 옆에서 엿들은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대로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 말씀 앞에 도마가 예수님을 직접 만져봤는지 아닌지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눈으로 확인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는 부인할 수 없었고, 이내 주님 앞에 엎드려 고백합니다. 28절. “ ...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 ” 이것은 위대한 신앙 고백입니다. 도마가 이전에도 예수님을 알고 있었지만 새롭게 만난 겁니다. 예수님에 대한 재발견입니다. 그는 그동안 예수님을 단지 좋은 선생, 훌륭한 분, 선지자 정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위대한 발견이었습니다. 그에게 구원과 영생을 가져다 준 것이요, 더 나아가 가치 있는 인생의 기초가 된 것입니다. 이제 도마는 ‘상식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신앙으로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3] 변화된 도마 : 새 신앙, 새 사람

  예수님이 하나님인 사실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신앙과 인생이 변화됩니다. 도마는 예수님 앞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이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과연 어떤 사람으로 변화되었을까요? 도마에 관한 기록이 성경에 많이 나와 있지 않아 유감입니다. 그러나 그의 고백을 통해 충분히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① 기쁨이 있는 사람 :
  도마는 다른 제자들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지냈습니다.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쁨으로 감격하며 외칩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인간에게서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가는 것은 죄입니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죄입니다. 여러 가지 증세가 나타나지만 그 원인이 되는 병원균은 한 가지인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나서 속죄의 은혜를 받으면 영혼에 기쁨이 넘칩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그녀는 고달픈 인생이었습니다. 행복을 찾아다녔지만 죄의식과 수치심만 남아 동네 사람들도 만나기 싫어합니다. 사람들을 피해 한낮 정오에 우물가에 나옵니다. 예수님을 처음 보았을 때는 그저 평범한 유대인 남자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대화를 나누면서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 깨닫게 됩니다. 재발견한 겁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임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사람들에게 가서 전합니다.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너무 기뻐서 ... 그럼ㄴ 무슨 환경이나 조건이 달라졌나요? 걱정거리, 문제가 해결됐나요? 아닙니다.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나니까 모든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으로 충만해진 겁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다 이렇게 됩니다. 

  ② 용기가 있는 사람 :
  도마는 예수님을 다시 만난 이후 겁이 없어집니다. 제자들과 함께 담대히 복음을 증거합니다. 세상에는 두려운 게 많습니다. 그 두려움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모으고, 권세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소유하면 할수록 역설적으로 더 두려워집니다. 그래서 이런 희한한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지갑에 빨간 딱지를 넣고 다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다 무식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적으로 대단한 사람들도 그런 경우가 허다합니다. 학박사가 ... 권세자가 ... 재산가가 ... 그러고 다닙니다. 세상 것들은 두려움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면 담대한 용기를 얻게 됩니다.

  독일의 본회퍼 목사 이야기입니다. 그는 나치의 독재에 항거하다 처형된 순교자입니다. 그는 수용소에서 처형 직전 동료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교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광명과 소망의 세계가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끌려가면서 동료들에게 고개를 돌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는 이제 여러분과 마지막 순간입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새 생명이 시작됩니다. 천국에서 만납시다!” 이게 바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용기입니다. 

  ③ 능력이 있는 사람 :
  도마가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제자들의 행적을 통해 도마의 활동상을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도마의 이름이 따로 거명되지 않았어도 사도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한 기록들을 자주 봅니다. 거기에 도마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킨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아마 도마도 이와 비슷한 능력을 많이 행했을 겁니다. 사도들 자신이 능력이 있었던 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이 능력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는 아무리 과거에 대단했더라도 아무런 능력이 없습니다. 그 이름을 대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9장 보면 바울이 능력을 행한 것을 봅니다. 심지어 그의 손수건만 지나가도 병이 낫고 악한 귀신이 물러갔습니다. 그때 마술하는 자들이 보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흉내 냅니다. 그랬더니 “귀신이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덮쳐버렸고, 그들은 혼비백산 도망가 버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에 능력이 있지만, 아무나 함부로 부른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 그 이름을 부를 때라야 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여러분, 살아계신 예수님을 만나보십시오. 그리고 그 이름을 의지하며 그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앞에 있는 질병도, 문제도, 고통도 사라질 줄로 믿습니다.

  ④ 목적이 있는 사람 :
  도마는 예수님을 재발견한 후 인생의 목적이 달라졌습니다. 그 전에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세상에 속한 관심으로 가득했을 겁니다. 3년이나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늘 마음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먹고 사는 문제나 해결하고, 예수님이 혹시 왕이라도 되면 출세할 수 있으려나 그런 궁리만 했을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살려고 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멀리 인도까지 가서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마지막 체포되었고, 창에 찔려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2년 전엔가 우리교회 와서 말씀을 전했던 김태식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본래 의사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아들이 병에 걸려 일찍 죽게 되었습니다. 보통 부모들도 다 그렇지만 특히 의사인 아버지 입장에서 아들의 병을 고쳐주지 못하고 보내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런데 그 아들이 이렇게 유언을 남기고 하늘나라로 갔다고 합니다. “아빠,  천국에서 만나요! 이제 바쁘게 돈만 벌지 마시고, 선교하세요!” 그 전에도 신앙생활을 했지만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후 그분은 의사 일을 보는 것보다 복음 전하는 일에 더 바빠졌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인생의 목적이 분명해야 됩니다. 이 세상 것에 매달려 살면 곤란합니다. 세상 것은 다 수단에 불과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사는 게 영원히 후회 없는 인생의 목적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얼마나 오래 하셨습니까? 중요한 것은 연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셨습니까? 이게 중요합니다.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은 물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나 오래 된 분들도 다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정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났는가? 만약 이 질문에 불분명한 대답을 할 수밖에 없다면 도마처럼 예수님을 재발견해야 됩니다. 그래야 우리는 진정으로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부디 그런 생생한 신앙생활을 하심으로 날마다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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