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린이주일] 새로운 눈으로 (막 10:13-16)

  • 잡초 잡초
  • 231
  • 0

첨부 1


1. 서 론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들이 새로운 눈을 가지고 어린이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에 어린아이들은 피곤한 대상으로 꾸지람의 대상으로 제자들에게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과 전혀 다른 입장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다같이 14절을 함께 읽어보십시다.
막10:14-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      지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예수님은 아주 강한 감정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두가지의 날카로운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즉 막지말라 방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18:6절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소자 즉 어린아이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편이 낳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예수님이 왜 이렇게 강하게 나오시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어린아이를 실족케 한다는 것 내 아이를 실족케 한다는 것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에서 실족케 한다라는 문자적인 의미는 “넘어지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소자를 넘어지게 하면 즉 어린아이를 신앙의 길에서 넘어지게 하면 영원한 형벌이 주어질 것으로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린이 주일을 맞아서 어린아이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이 되겠습니다.

2. 본 론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렇다면 어린아이를 내 아이를 넘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첫째, 교회오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오는 것을 막는 방법은 부모의 직접적인 간섭과 간접적인 방치 두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아빠! 나 오늘 학원에 가야 하는데 교회 안가도 될까요?
야! 당연하지!
학원에가서 열심히 공부하고 아빠가 주일 지키니까? 걱정하지마...
아이가 토요일날 밤 늦게 까지 컴퓨터에 앉아 있다가 밤을 세웠습니다. 주일날 아침에 일어나지 못합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깨우지 못하고 자도록 내버려 둡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현실 아닙니까?
저는 적어도 우리 믿는 사람들은 좀 달라야 된다고 봅니다. 성경적인 자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1. 어린이는 「하나님 주신 상급이요 기업이요 선물」이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주신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로다 했습니다. 물론 내가 낳은 내 자식이요 내가 기른 내 새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이 주셨고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이요 상급과 선물입니다. 그래서 근본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인은 철저하게 이 신앙과 이 사실을 인식하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아이를 낳게  되면 8일 만에 할례를 행하는 것은 이 아이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표하는 예식입니다. 욥도 고백합니다. "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시는 자도 여호와시다."

첫째, 순수한 백지위에 밑그림을 그려주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 칭찬할줄 알고 칭찬 받을 수 있는 어린이가 되게 하십시오. 10가지중 한 두가지 칭찬거리가 있다면 그것을 극대화 시켜야 합니다. 보람있는 일의 가치의 중요성을 알게 해 주어야 합니다. 만남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어야 합니다.
  넷째, 철저한 예배 중심의 삶과 기도의 체험과 말씀의 은혜를 깨달을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교사의 온전한 예배 자세를 보여주며 어린이의 고민을 함께 기도하는 교사, 말씀의 지혜로 모든 문제 해답을 찾아주는 영력있는 교사가 되십시오.
이시대에 주님이 요구하시는 교회학교 교사의 모습 입니다.
순수한 백지위에 밑그림을 그려주는 역할을 부모가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가 말하기를, "18세기는 민중을 재발견하는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독재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발전하기시작한 것입니다. "19C는 여성을 해방하는 여성해방의 시대"라고 했습니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위주의 전통사회가 변화되서 남녀가 서로 평등하게 사회와 국가를 위해 봉사는 적극적인 여성참여의 시대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20C는 어린이의 시대입니다" 어린이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인류 미래에 대한 꿈과 행복이 어린이들의 미래에 달렸다고 인식을 해서 어린이들에게 많은 관심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 "오늘의 21C는 청소년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미래는 어린들과 청소년들 바로 그들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언젠가 길을 가다가 유치원 차량에 눈에 뜨이는 글귀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차 안에는 장래의 대통령이 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린이가 자라서 대통령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구석구석에서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되는것입니다.

본문 1절에,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향해서 물었을 때, 어린이를 품에 안으시면서, "어린이가 천국에서 가장 큰 자요,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한번은 많은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예수님께서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때에 제자들은 꾸짖고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오히려 제자들을 꾸짖으시면서,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어린이를 귀중히 여기신 것입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열등감에 빠지게된데는 어릴적 부모님의 영향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아이에게 너무 칭찬에 인색했습니다. 공부를 잘 해도, 운동에 잘해도...... 뭐든 자기깐에는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부모의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고 책망만 하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아무런 의욕을 갖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는 해봤자 잘 하지 못하는데..... 열심히 해도 칭찬 받지 못하는데.....' 해보지도 않고 미리 포기하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결국 자신감을 잃고 심한 열등감에 사로 잡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대부분 이런 아이들이 주로 불평불만이 많고 반항적입니다. 사회생활에 적응력이 떨어집니다. 너무 아이들을 띄워주고 칭찬해서 교만한 성격을 줄 위험성도 있겠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고 칭찬해 주는건 참 중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린이, 자녀를 사랑하되, 사랑의 채찍을 가지라고 증거합니다. 아이들을 학대하란 얘기가 아닙니다. 사라이란 명분으로 윽박지르라는 얘기도 아닙니다. 사랑하고 품는 마음에서 훈계하라는 말입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13명의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운 어머니로 유명합니다. 그녀는 말하기를 "자녀들의 고집을 즉시 꺽어버려라 이것을 빨리 꺾을 수록 좋다.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사실상 잔인한 사람이다. 자녀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부모는 마귀의 일을 하는 사람이며 신앙을 무의미하게 하며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고 영혼과 육신을 멸망케 하는 사람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의 어린이들은 옛날 처럼 천덕구러기나 구박덩어리가 아닙니다. 장유유서만을 강조하던 권위주의 시대의 그런 어린이도 아닙니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는 명분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어 버렸고, 우상이 되 버렸습니다. 이상한 세상습관에 빠지도록 오히려 어른들이 부추기는 경향이 많습니다. 최고급 신발을 신겨야되고 최고급 상표가 붙은 옷을 입혀야 폼이 난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을 맹목적인 소비와 사치의 주인공으로 전락시키고 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신문에 씁쓸한 기사가 났던적이 있습니다. 경기도 분당의 한 초등학교에서 급식 도우미로 고학년 아이들을 시켰다가 학부모들의 반발 때문에 시행 사흘만에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학원 갈 시간도 없는 애들한테 왜 그런 일을 시키냐", "우리 애가 식사 당번이나 하려고 학교 다니는 줄 아느냐", "아이들이 다친다", "공부할 시간이 없다", "우리 애가 점심 시간에 밥을 못 먹는다". 학교에 항의 전화를 하기 일쑤거나, 심할 경우 교육청에 집단 항의가 넘무 심했다고 하는데, 어짜피 저학년은 도우미가 필요한 상황이고, "아이들 시켜도 안된다, 부모들 동원시키지 말라........" 도대체 어떻게 아이를 지도해야될지 학교측에선 상당히 난감하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점수제를 도입하면 달라지지 않겠냐는 얘기도 나온다고 하는데, 저도 아이키우는 입장이지만, . 한 상점에서 어떤 아이가 어머니가 한눈파는 사이 과자를 슬그머니 호주머니에 집어 넣다가 어머니에게 들켰습니다. 그러자 이 이 어머니가 아이의 손을 붙잡고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차근차근 잘못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호주머니에 감췄던 과자봉지를 들고서 주인에게 가서 잘못을 빌라고 시키더라는 것입다. 제발로 훔친 과자를 들고 용서를 빌러 가는게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기 힘든 부끄러운 일이었지만, 주인 앞에 가서 용서를 빈다음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 아이가 얼마나 고통 스러웠겠습니까? 또 그걸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안스러웠겠습니까? 용서를 빌고 돌아오는 아이를 엄마가 끌어안고 울면서 이야기했습니다. "얘야 이제부터 갖고 싶은게 있으면 먼저 엄마에게 얘기해라. 남의 물건에 손대는건 나쁜짓이란다...." 어린이들이 잘 할 때에는 잊지 말고 사랑해 주고 칭찬해 주어야 하지만, 사회의 법을 어기거나 하나님의 규율을 어기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도 알려주어야 정상적인 인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잘못했을 때 깨닫도록 타이르거나 채찍을 가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고 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잠언 13편 24절에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를 하느니라"했고, 잠언 29편 15절에는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내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하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본을 보이고 반드시 예수님에게 데리고 나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기를, 어린이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기업이고 상급이며 자랑거리가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하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백성으로 잘 양육하라는 것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여러 가지면에서 가장 확고하게 신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는 가장 연한 가지와 같은 때 입니다. 순수한 백지위에 그림을 그리는 거와 같은 귀중한 때 입니다. 좋은 기억을 심고 저장할 수 있는 선교의 때고, 종교적인 교육으로 잘 가꾸고 거름주는 때가 바로 어린이의 때 입니다. 종교심리학자 스펜서 박사 성인 남녀 1천명에게, '언제 예수 믿고 신자가 되었느냐?'는 질문으로 앙케이트 조사를 해서 발표한적이 있습니다. 1천명의 절반 이상인 548명이 20살 이전에 신앙을 가졌다고 응답했고, 50세 이후에 신자가 됐다고 응답한 사람은 불과 4명 뿐 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통계를 볼 때 어린이 때, 청소년 때에 신앙적으로 가장 결단하기 적절한 때고, 이 때에 신앙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중요한 때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어도, 성장기의 중간 부분의 기억은 많이 잊어 버리지만, 어렸을 때의 기억, 어렸을 때의 추억은 오랫동안 잊지를 못합니다. 어떤면에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히려 생생하게 기억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어린이의 때는 교육상으로 볼 때, 가장 적절한 때요 효과적인 시기이기에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잠22:6절, "마땅히 행할 것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칼릴 지브란'이란 사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어린이는 어머니가 낳았다고 해서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자녀일 뿐 이다. 자녀들은 스스로 갈망하는 생명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이다. 자녀들은 부모를 통해서 이 세상에 태어나지만 하나님이 세상에 보내신 천사들이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으나 생각은 줄 수 없다. 아이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육신의 집은 줄 수 있으나 영혼의 안식처는 줄 수 없다. 아이들의 영혼은 하나님의 뜻에서만 안식을 누리기 때문이다'. 모든 부모는, 자녀를 바르고 복되게, 선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양육할 책임이 있습니다. 가장 훌륭한 스승은 부모고, 가장 훌륭한 교육의 장소는 가정입니다. 천국에서 가장 높은자로 인정해 주신 우리의 자녀들을, 주님의 훈계와 교양으로, 하나님과 어른의 말을 들을줄 아는 아이, 질서를 지키고 진하고 진실하고 정직하게 사는 아이로 가르쳐야 합니다. 오늘날 물량적 가치가 행복이라고 아이들을 잘못 가르치고 있지 않는가 반성해봐야 합니다. 소박한 것은 행복이 아니고 화려한것만 추구하는 잘못된 아이를 만들고 있지 않는가 반성해야 될 문제 입니다.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성적이 떨어지면 가슴아파 하면서, 신앙적으로 헤이해진 우리의 아이들을 보면서 어떤 마음이 듭니까? 자녀를 사랑하되, 주의 교훈과 훈계로 바르게 사랑해서 천국에서 가장 존귀한자로, 가장 큰 자로 우뚝서게 하는 신앙의 바른 부모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