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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려면 (빌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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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세계적인 심리학자 조수아 리브만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스승님을 찾아가 자신이 일생동안 누리고 싶은 희망과 소원에 대해서 상담을 했다. 그는 1.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희망이 있고, 2. 달콤한 사랑을 영원토록 하고 싶은 희망이 있고, 3. 재능을 가지고 남들보다 뛰어나게 살고 싶은 희망이 있고, 4. 권력을 가지고 세상에서 뛰어난 삶을 살고 싶은 희망이 있고, 5. 돈을 가지고 남부럽지 않게 멋지게 살고 싶은 희망이 있고. 6. 명예를 마음껏 누리면서 살고 싶다고 했다. 스승님은 가리킨 제자에게 참으로 좋은 희망들인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빠졌는데 그것은 마음의 평강이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마음의 평강이 없이는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린다고 할지라도 행복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스승님의 충고를 받고 마음의 평강(Peace of Mind)이라는 책을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이 모든 것을 많이 가졌을 지라도 평강이 없으면 보람도 행복도 없다. 인간에게 있어서 마음의 평강은 모든 행복의 근원이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평안은 모든 사람에게 이상이고 행복이고 으뜸가는 선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평화스러운 나라와 평화스러운 가정에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 그 까닭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평강. 평안이라는 말이 400번 이상 언급되어 있다. 우리는 헤어졌다가 서로 만나면 안녕하셨습니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히브리어로 샬롬 이라고 인사를 나누게 된다. 그 이유는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평강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다.
그러면 인생의 행복의 요소가 되는 참된 평안은 어떻게 소유할 수가 있을까?
오늘 함께 봉독한 말씀 속에서 그 비결을 배워서 평강을 누리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첫째는 주안에서 항상 기쁘게 살 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소유할 수가 있다.
본문 4절에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권면하였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인생의 최고의 행복과 평강을 누리며 살려면 낙천적 인생관을 가지고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고 했다. 사실 주안에서 기뻐하는 것은 세상과는 차원이 다르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조건적이고 순간적이기 때문에 환경과 감정에 따라 자주 변하고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주안에서 누리고 소유하는 기쁨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고 우리의 감정을 압도하는 전천후적인 기쁨이다. 이러한 기쁨을 소유하는 성도에게는 모든 불안과 염려, 슬픔과 괴로움을 극복하게 된다.

명예가 있고 돈이 많다고 해서 참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에 많은 것을 소유한 기업인의 자녀가 자살을 했다. 또 어느 공직에 있던 위대한 지도자는 건강 때문에 고민하다가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했고 어느 회사의 대표는 불안을 견디지 못해 자살을 하고 말았다. 또한 어느 가정에서 자폐증을 가진 손자가 있었는데 할아버지가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냐 하면서 입을 막고 코를 막아 숨지게 하였다. 이러한 안타까운 죽음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는 신앙이 없고 둘째는 기쁨이 없고 셋째는 마음의 평강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죽음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주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게 되면 불행과 절망이 온다할지라도 그것을 믿음으로 극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된다.
 
제가 아는 장로님이 있다. 그분은 열한 자녀를 가졌는데 그중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자녀가 다섯 명이나 있다.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이 세상에서 최고의 불행한 사람으로 생각될 것이다. 이웃사람들은 그 가정을 향해 비웃고 손가락질하고 천대하고 죄가 많아서 저런 벌을 받는다고 조롱을 했다. 그러나 그 장로님 내외분은 앞 못 보는 다섯 자녀를 데리고 늘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 저에게 앞 못 보는 다섯 자녀를 주신 이유가 무엇이냐고 매달렸다. 그는 기도 중에 요한복음 9장의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들었다. 조상의 죄도 아니고 부모의 죄도 아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섯 자녀에게 찌르는 가시를 주었다는 음성을 들은 후에 그는 더욱 기쁘고 평안함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열심히 길러서 목사님이 되게 했고 전도사님이 되게 했고 훌륭한 교사로서 지도자가 되게 했다. 그 장로님은 앞 못 보는 다섯 자녀를 주신 은혜가 너무나도 기뻐서 그 가정에서 며느리 까지 포함해서 여섯 식구가 한날 한시에 신학교에 입학을 해서 똑같은 날에 졸업을 하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맹인 자녀 다섯을 주었기에 축복을 받았다고 하면서 열심히 전도를 했다. 이렇게 주안에서 기뻐하는 삶을 살 때에는 절망 속에서도 평강을 누리면서 살게 된다. 참 신앙인은 일이 잘되고 좋을 때에만 기뻐할 것이 아니라 좌절과 불행 속에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살 때 하나님의 평강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음악가 베토벤은 젊은 날에 귀를 듣지 못하는 절망이 찾아왔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24년간 작곡을 계속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교향곡 9번은 기쁨의 송시라는 시에 곡을 붙였다. 교향곡 9번이 처음으로 연주되는 날 많은 사람들은 환호를 하고 기립박수를 칠 때 그는 맨 뒤에 앉아서 악보를 넘기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하여 그 얼굴에 웃음이 가득 찼던 것이다.

시 90 : 14에서는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라고 하였고 고후13:11에서는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찌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 하였다.

저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절망이 왔지만 그러나 주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기쁘고 즐겁게 사니까 항상 평강이 넘친다. 기쁘게 사니까 머리에 염색을 안 해도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안에서 기쁘게 살아서 평안을 누리시고 9988하셔서 즉 99세까지 팔팔하게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둘째로 주안에서 너그럽게 용서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된다.
오늘 본문 5절에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하라”고 권면하였다
우리 기독교는 믿음의 종교이고 구원의 종교이고 사랑의 종교인 동시에 용서의 종교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주님을 세상에 보내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므로 우리는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게 되고 천국시민권을 소유하게 되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나에게 손해를 끼치고 억울하게 하고 고통을 준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제가 열 살 때 6.25전쟁이 났다. 그 전쟁으로 인해서 부모를 잃고 폭탄에 실명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저는 고모님을 찾아가서 얼마동안 살았다. 눈을 못 본다고 고모네 가족들로부터 욕설과 함께 수없이 많은 매를 맞았다. 그래서 저의 몸에는 상처가 육십개 가까이 있다. 제 양머리에는 작대기로 맞아서 크게 구멍이 나있다. 그 구멍에 제 손이 닿을 때마다 끔찍하고도 원망스럽게 생각될 때가 있었다. 그러다가도 제가 성직자로서 용서할 마음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 솟아오르곤 했다. 그럴 때 제 마음이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용서에 대해서 톨스토이는 서로 용서하라. 이 세상에서 화평하게 지낼 수 있는 한가지 방법은 용서밖에 없다고 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마 6:14 에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라고 하셨고 마 5:23-24 에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셨고 눅6:35 에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라” 하셨다.

어느 젊은 청년이 밤늦게 택시를 타고 가다가 어둔 골목길을 지나갈 때 갑자기 강도로 변해 운전사 손을 찌르고 돈을 뺏어서 달아났다. 운전사는 달아나는 젊은 강도 뒤를 쫓아가서 그 청년의 집을 봐 두었다가 며칠 후에 운전사는 손을 치료하고 얼마의 돈을 가지고 그 청년 집을 찾아가서 이것을 가지고 자그마한 장사를 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하면서 준비해간 돈을 전해 주니 그 청년이 울면서 회개하는 모습을 뉴스에서 봤다. 이 작은 사건 속에서 기독교인의 참된 용서의 모습이 무엇인가 볼 수가 있었다. 주님께로부터 오는 영원한 평강을 누리려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는 믿음과 사랑으로 살면 평강의 축복을 누리게 된다.

우리 주님 안에서 용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평강을 누리시기를 바란다.

셋째 주안에서 항상 감사하며 살 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게 된다.
본문 6절에서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하였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와 걱정이 끊어질 날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이 더 많고 잘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고 또한 기쁜 일보다 슬픈 일이 많고, 그리고 원치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고혈압, 당뇨, 위암, 간암, 장암과 같은 무서운 병들이 많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환경이 오염되어서 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공기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 어려운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이런 세상을 살면서 어떻게 무엇을 감사하면서 살 것 인가? 우리는 때때로 갈등과 고뇌를 느낄 때가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럴지라도 모든 염려를 나에게 맡기고 감사하게 살라고 하였다. 벧전 5:7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하였다. 모든 염려와 근심걱정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 염려를 맡아주시고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여 주시겠다고 사 41:10에서 약속하셨다. 우리 앞에 절망이 오고 슬픔이 오고 고난이 올지라도 주님을 의지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

제가 고모집에서 살 때 너무나 학대가 심하고 굶기고 매를 너무 많이 맞아서 견딜 수가 없어서 도망을 쳐서 거지 생활을 2년 반을 했다. 거지생활을 하는 동안 저에게는 무서운 절망이 다가왔다. 어떤 때는 다리에 동상이 걸려서 다리가 썩어 들어갈 때가 있었고 어떤 때에는 얻어먹은 음식이 썩어서 식중독에 걸려서 죽음을 직면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남의 집 나무를 쌓은 창고에서 자다가 옻이 올랐다. 옻이 온몸에 펴져서 꼭 나환자처럼 되었다. 진물이 흐르고 손과 발도 쓸 수 없을 정도로 되고 말았다. 그럴 때에도 주님을 바라보고 깡통을 끌어안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예수님 치료해 달라고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어느 할머니가 지나가시다가 저를 보시고 손을 잡고 기도해주셨다. 낙심하지 말고 예수님을 잘 믿고 그분께 맡기라고 하셨다. 할머니는 위로하시고 가셨다. 그 후에 한 시간쯤 되어서 다시 오셔서 저를 할머니 집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거지 옷을 벗기시고 기도하시면서 닭을 잡아서 삶은 물로 목욕을 시키시고 닭고기도 먹이시고 몸에 옻오른 고름으로 가득찬 것들을 입으로 빨아내시면서 주님! 이 아들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4주가 되었을 때 몸은 깨끗하게 나았다. 할머니는 저의 손을 붙들고 내가 만일 돈이 있으면 널 우리 가정에 같이 살면서 눈도 보게 해주고 공부도 시켜 줄텐데 나는 돈이 없구나 그러나 너하고 나하고 약속을 하자 내가 일평생 너를 위해 기도해 줄 테니 너는 앞으로 훌륭한 목사가 되어서 세계를 다시며 복음을 전하는 종이 되라고 하시고 헤어졌다. 할머니가 너무 고마워서 거지였지만 매주일 깡통을 들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얻은 돈 가운데 새 돈을 골라 하나님께 헌금을 드렸다. 그리고 저는 거지 생활 속에서 동료거지를 전도하고 얻은 것은 거지들에게 나누어 주고 거지들을 섬기니까 거지세계에서 왕초가 되었다. 거지 생활에서 감사기도를 했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빈손이었지만 정상인들이 공부하는 숭실중고등학교를 비롯하여 최고의 학부를 거쳐서 성직자가 되어 실로암안과병원의 원장으로서 20만 시각장애인과 농어촌 섬지역의 500만 저시력자들을 위한 무료안과진료로 실명을 예방하고 일 년에 800-1000명에게 개안수술로 어둠에서 새 생명의 밝은 빛을 찾아주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어려울 때 감사의 기도를 쉬지 않았기에 많은 분들의 기도와 도움이 있었다. 감사하며 살 때 불가능도 가능케 되는 놀라운 기적이 이루어진다. 

기도의 왕 죠지뮐러는 기도와 감사를 통하여 응답과 기적을 이루었다. 폭우가 쏟아지는 어느 날 아침 고아원에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때도 뮐러는 400명의 고아들과 빈 식탁에 둘러앉아 감사기도를 드렸다. 그의 기도가 끝났을 때 한 대의 마차가 고아원 문을 두드렸다. 그 마차에는 아침에 막 구운 빵과 신선한 우유가 가득 있었다. 인근 공장에서 종업원들과 야유회를 가기 위해 준비했던 것이 폭우로 인하여 취소되자 고아들에게 보내온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추운 겨울날 고아원에는 양식이 다 떨어져 먹을 것이 없었다. 부득불 고아들을 굶길 형편이었다. 뮐러는 골방에 들어가 이 고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딸들이오니 하나님이 책임져 달라고 기도했다. 그때 마침 어떤 신사가 고아원에 찾아와서 자신의 생일을 맞아 5천파운드를 고아들을 위해 받치고 갔다. 그 돈을 가지고 고아들을 풍성하게 먹일 수 있었다. 그가 기도했던 물품과 음식은 언제나 어김없이 공급됐다.  뮐러는 이처럼 고아원을 운영한 65년 동안 순간순간 기적적인 주님의 공급을 체험했다. 그는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가장 선한 것으로 주신다는 사실을 의심 없이 믿었고 그 믿음은 늘 사실로 증명됐다. 죠지뮐러의 기도와 감사가 있었기에 고아들에게 먹일 수 있어서 그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행복과 평강을 안겨주었다. 이처럼 성도의 감사의 기도는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응답과 기적으로 이어진다.

사도 바울은 엡 5:20에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께 감사하며”라고 하였고 골 3:15에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고 하였다.

요 14:27에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사시고, 주안에서 늘 믿음과 사랑으로 너그럽게 용서하며 사시고, 어떤 환경 속에서도 내게 주신 은혜에 만족하고 감사기도를 드리시면서 하나님의 평강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김선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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