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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눅 13: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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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실 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헤롯이 지금 당신을 죽이려고 하니 속이 여기를 떠나소서!”라고 말했습니다.(31절) 그런데 그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은 고마움의 표현을 하시기보다 도리어“가라사대 저 여우에게 이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1절) 예수님이 말씀하신 여우는 누구입니까? 여기서 여우는 헤롯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여우라는 짐승은 짐승들 중에 가장 간교하고 교활한 짐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탈무드에 보면 가장 게으른 동물로도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헤롯을 여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헤롯이 여우와 같이 간교하고 교활하였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헤롯은 갈릴리와 베뢰와 지방을 다스렸던 분봉 왕 헤롯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그는 이전에도 동생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맞아 들였던 사람입니다. 이 일로 인하여 세례요한이 그를 책망하자 세례요한의 목을 베어 죽였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위협함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통치 구역에서 떠나가시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헤롯에게 있어서 예수님은 언제나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거기에다 예수님 때문에 자신의 통치 구역에서 복잡한 문제라도 생기면 골치 아프잖아요.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갈릴리 지역에서 유대 지역으로 예수님을 떠넘기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헤롯이 당신을 죽이려 하니 속이 이곳을 떠나라!고 위협하게 했던 것입니다.  얼마나 여우같이 간교한 자입니까? 헤롯은 예수님을 자기의 영내에서 쫒아내고자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였고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중지시키고 이곳을 떠나게 하여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계획대로 예수님을 속히 제거해 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거짓된 음모론을 제기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여우에게 이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가서 저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32절)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쫒아내며 병을 낫게 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사명을 말합니다. 귀신을 쫒아내며 병을 낫게 한 것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의 중요한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나는 메시아로서의 사명을 오늘도 감당할 것이며 내일도 묵묵히 감당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 삼일에 완전하여 지리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사역의 완성이 바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미리 선언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33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33절)
표준 새 번역이나 NIV 영어 성경을 보면 오늘과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나는 내 갈 길을 가야 하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 자신이 헤롯의 영지인 갈릴리에서 죽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에서 달려 죽으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고 그 장소가 바로 예루살렘이라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렇게 고난과 핍박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반드시 내 길을 가고야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가서 저 여우에게 전하라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메시아로서 귀신을 쫒아 내며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나는 어떤 핍박과 환란이 있어도 아니 그 길이 피와 땀과 눈물이 없이는 못가는 길일지라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 길을 갈 것이다.”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보면 예수님은 정말 그렇게 사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약간의 반대나 역경을 만나도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작은 일에도 시험에 들고 전략적 후퇴라는 말을 써 가면서 쉽게 타협해 버립니다. 우리 주님은 한결같은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피와 땀과 눈물이 없이는 못가는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주님 가신 길을 걸어 가리라! 온 세상이 다 나를 반대한다 할지라도 또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주님이 맡겨준 사명을 감당하며 살리라!
주님은 오늘도 이런 하나님의 사람을 찾습니다.

□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한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34절)
예수님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죽음의 장소입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곳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사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랑은 암탉이 제 날개 아래 새끼들을 모은 것과 같이 품는 것입니다. 안아 주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있는 모습 그대로 품어 주고 안아 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그 넓으신 품 안에 우리를 안으려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날개 아래서 쉼을 얻고 돌보심을 받아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35절은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한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는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은 첫째로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후 70년 로마에 의해 멸망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심판의 주로 오시는 그날에 그들이 결코 예수를 보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은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의 인내에는 끝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크고 영원하지만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누가 지옥에 들어갑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독생자를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고 무시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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