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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항상 말씀 전파에 힘쓰라 (딤후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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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스펄전 목사님의 전도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스펄전 목사님이 길을 가다가 빈 마차가 지나가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지나가는 마차에 살짝 뛰어 올랐습니다. 이상한 소리에 놀란 마부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이 태연하게 앉아있는 것을 보고는 마부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시오?  누군데 남의 마차에 허락도 없이 몰래 타는 거요? 빨리 내려요!”
  마부의 화난 말에도 불구하고 스펄전 목사님은 태연한 말투로 입을 열었습니다.
  “뭐 그리 너무 화내지 마시오. 이것은 모두 당신을 위한 일이니까요.”
  “나를 위한 일이라고?”
  “그렇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아주 급하게 전할 소식이 있어 탔소.”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내게 전할 급한 소식이라니, 대체 무슨 소식이란 말이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급히 전하라고 하셨소. 당신이 지금이라도 당장 회개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옥으로 보내겠다는 거요”
  마부는 이 말을 듣자 갑자기 너털웃음으로 웃어댔습니다. “그것참! 살다보니, 별 이상한 사람 다 보겠네. 그 따위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내가 눈이나 깜박할 줄 알아요? 어서 내려요!”
  “하지만 나는 당신의 하락을 받지 아니하고는 절대로 내리지 않을 생각이오.”  “무슨 허락?”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오겠다는 허락 말이요.”
  마부는 귀찮은 생각에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아, 알았어요. 그렇게 할 테니 내리기나 하란 말이오.” 그런데 마부는 일단 한 번 약속을 한 것은 꼭 지키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기에, 할 수 없이 그 다음 주일에 교회에 나갔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그 마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교회를 나서는 마부에게 목사님은 이렇게 물어 보았습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린 소감이 어떻습니까?”
  “별로 관심 없어서 잘 모르겠소. 이제 약속을 지켰으니 다음 주일에는 나오지 않을 거요” 그리고는 마부는 도망가듯 교회를 떠났습니다.     
  몇 주일이 지난 어느 날, 스펄전 목사님은 길에서 마부가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 목사님은 발견한 마부는 부지런히 도망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마부를 끝까지 뒤 따라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아, 예, 그저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나를 따라옵니까?”
  “아, 예, 하나님께서는 제게 당신이 교회에 나와서 예수 믿고 구원 받을 때까지, 따라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 마부는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펄전 목사님의 일화가운데서 전도에 대한 강하고 특별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전도에 대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끈질긴 영혼사랑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성서본문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는 말씀의 표현에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 전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아주 중대한 관점을 만들어 줍니다.

그것은 전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의무일 뿐 아니라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전도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긴장감을 주는 절대적인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엄숙하고 강하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과,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분의 나타나심과 그분의 나라를 두고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대는 말씀을 선포 하십시오” (딤후 4:1-2상 / 새번역)
  바울은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있을 심판의 역사를 상기시키면서 ‘엄히 명하노니’라고 강하고 중대한 표현으로 말씀하시면서, 2절에서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덧붙여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하심으로 복음전파에 전력할 것을 강력하게 강조했습니다.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꼭 해야 할 것은 전도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이 세상에 사는 그리스도인 누구에게나 주어져 있는 사명인 것입니다. 
  전도란 신앙의 완성에 이른 사람이나 특정한 사람의 몫으로 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의 기본생활 양식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본질적 지침인 것입니다.

  2. 전도는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 곧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믿고 영접하게 함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옥을 향하는 멸망의 길에서 구원받고 천국의 영생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요한복음을 끝내면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요한복음)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
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
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9-10)

  3. 전도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세상 사람들이 전도를 받아드리지 못하는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공동번역으로 읽어드립니다.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건전한 교훈을 받으려 하지 않고,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을 들으려고 자기네 욕심에 맞추어 스승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듣지 않고, 꾸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3절)
  현대인들은 복음보다, 귀를 즐겁게 하는 지식의 소리들을 들으려고 스승을 찾
아 다닙니다. 인간의 감각을 즐겁고 흥미롭게 하는 꾸민 이야기들에 사로잡혀 있
습니다. 결코 그러한 이야기들이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소리들에 익숙하고 취해 있어 복음을 받아드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전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려서 고난을 참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그대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5절 / 새번역) 
  전도는 분명히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기에 가장귀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일을 우리 모두가 해야 합니다. 이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기쁨을 체험되며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것을 바울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7-8절 / 공동번역)

  4. 어떻게 보면 전도는 사람을 살리는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죠지 W. 트루엣’은 “예수께 한 영혼을 인도하는 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이다”고 했습니다.
  전도는 사람을 살리는 역사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을 간직하게 하는 역사입니다. 우리가 복음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주고 증거 해줌으로 인간생명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0장 13-1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
은 자기들이 믿은 적이 없는 분을 어떻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또 들은 적이 없
는 분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새번역)

  오늘 저는 두 편의 영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쉰들러 리스트’와 ‘타이타닉’ 영화중에서 짧은 한 부분입니다.   
  ‘쉰들러 리스트’라는 작품은 1939년 독일군 의 폴란드 점령과 함께 유대인 수용소를 배경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기회주의자이며 호색한인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와 결탁해 임금을 줄 필요가 없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공장의 인력으로 이용하려고 합니다. 쉰들러는 그의 사업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하던 중 나치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유대인 학살의 살인행위를 보고 양심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는 수용소의 유대인들을 공장 노동인력으로 빼내어 그의 고향으로 옮겨 생명을 구할 계획을 세우고,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뇌물로 사용하여 노동수용소 장교들을 매수합니다. 그리고 수용소의 인원을 빼내어 1,100명을 구해냅니다. 1945년 전쟁이 종식되고 쉰들러가 연합군으로부터 도망가기 전, 자신이 살아 있다는 안도감 보다는,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을 한명이라도 더 구해내지 못하였던 자신의 부끄러움을 안타까워합니다. 이 부분을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타이타닉’ 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입니다. 1912년 건조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는 4만 6329t에, 길이 272m의 초일류 호텔 급의 배로 ‘바다에 떠 있는 궁전’으로 불렸습니다. 이배는 ‘뉴펀들랜드’ 동남쪽 640km 해상에서 거대한 빙산에 충돌하여 3시간 만에 3950m의 해저 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이 배에는 구명정이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못해 1513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작품화된 영화입니다. 배가 침몰한 후 마지막 생존자를 찾는 부분의 영상을 보겠습니다.

  인간의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은 죽음의 수용소와 바다 속에 빠져있는 것처럼 죄와 멸망의 죽음 아래 있는 영혼들입니다. 복음은 이러한 인간의 생명을 구원하는 능력입니다.. 복음을 전파함으로 사람을 살리는 축복 자가 되십시오. 아멘.  (김성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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