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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이성교제(1) (창 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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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23)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1. 우리들의 이성에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며 정상적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많은 관심사항들이 있습니다. 직장, 학교성적과 진로 등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가정과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의 외모와 복장 등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성에 대한 관심도 있습니다. 이러한 관심 사항들이 우리의 소원대로 이루어질 때 행복을 느낍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 사항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슬픔과 고민에 빠집니다. 그로인해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그중에서 우리의 마음 깊은 곳까지 상처를 주는 것 중의 하나가 이성문제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관심 사항들은 바로 우리 마음의 욕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입니다. 우리의 내면세계에서 분출되는 욕구들이 관심의 대상을 결정합니다. 이 욕구들 중에는 정상적인 것도 있고 비정상적인 것도 있습니다. 비정상적인 욕구에 의해 나온 관심은 결국 불행으로 끝납니다. 정상적인 욕구에 의한 관심이라 할지라도 그 처리 방법이 틀리면 마찬가지로 불행에 이르게 됩니다.

이성교제에 대한 관심 중 대다수가 잘못된 욕구에 의해 나타납니다. 이성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대개 성적인 욕구 충족을 위해 관심을 나타내는 형제들이 많습니다. 이성을 소유하려는 소유욕을 위해 관심을 나타내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자기 과시를 위한 과시욕으로 관심을 나타내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이성과의 관계가 자신의 성공에 속한다는 성공관에 의해 관심을 기울이는 자매들도 있습니다. 이성의 정복을 위한 정복욕을 위해 관심을 기울이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잘못된 욕구에 의한 관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관심의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성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곳이 있습니다. 이성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의 존재로 인해 외로움이 존재합니다. 이성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의 존재로 인해 공허함이 존재합니다. 이성교제는 이 외로움으로 인해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외로움을 통해 이성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관심이 왜 나타나는지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을 지어 주셨습니다. 결국 아담에게는 자신을 완전케 하는 돕는 배필에 대한 욕구가 있었으며, 그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배필을 만나기까지 그 관심은 계속 됩니다. 하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도울 배필을 찾기까지 남자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계속 됩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줄 남자를 찾기까지 관심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신을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받아들일 남자를 발견하기까지 관심은 계속됩니다.

남자와 여자의 이러한 관심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서로 만나 한 가정을 이루기까지 이 관심은 계속 되어야 합니다. 좁은 의미로, 이성 교제란 이러한 관심사항이 성취되어 결혼함으로써 둘이 한 몸이 될 때까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성교제를 어떻게 해야 성경적인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성교제의 기준을 말씀 안에서 세워 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담과 하와가 결혼하기 전까지 어떻게 지내왔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2. 이성 교제의 첫 번째 전제조건은 개인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아담과 하와의 이성 교제는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만드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하와 역시 하나님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오로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으로서 한 순간에 완성된 만남입니다. 이 만남에 의해 아담과 하와는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 지식이 이성교제의 기본을 형성해 주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알고, 돕는 짝을 알 때 이성교제가 가능합니다. 아담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의 훈련을 받았습니다. 독처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신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며 그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자신과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이끄셨습니다. 동물들을 아담에게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빈 공간이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 공간을 채워줄 여자가 어떤 여자인지 알았습니다.

하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와도 창조주 하나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자신이 가야할 곳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이 채워 주어야 할 대상이 되는 남자가 어떤 존재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님의 이끌림에 의해서, 그 남자에게로 가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자신이 갈 방향을 찾아 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찾아 갔습니다. 자신이 채울 갈빗대의 위치를 아시는 분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한 훈련과 이끌림에 의해 아담과 하와가 만났을 때 완전한 짝의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 벌거벗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는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만남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성교제는 남녀의 만남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남녀의 완전한 연합과 일치를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남자는 남자대로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고 돕는 배필의 모습을 그려가는 과정입니다. 여자는 여자대로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하나님과 자신을 발견하고 남자의 모습을 그려가는 과정입니다. 남녀간의 이성교제는 곧 만남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긴 준비기간을 거친 후 이루어지는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사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는 남녀간의 만남을 통하여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상 첫 사람인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성교제의 기간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이성교제의 기간 없이 만나 완전한 연합을 이루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고백을 할 정도로 완전한 연합임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그려가던 짝임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완전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반쪽임을 알고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은 이들이 아직 범죄 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하나님 안에서 온전히 하나님과 자신과 상대방인 이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독처하며 일을 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막힘이 없이 상대 짝을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들이 이미 하나님과 완전히 아는 관계 속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아담과 하와와는 또 다른 전제 조건이 요구됩니다.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는 일차적 조건이 만족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심인 이성교제는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 안에서 사람다운 사람이란 완전한 연합을 이룬 남자와 여자의 한 쌍을 의미합니다. 이 한 쌍이 함께 위로 하나님을 경배하며 아래로 만물을 다스릴 때 이 한 쌍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렇게 완전한 사람을 이루기 위한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위해서는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루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만날 때만 성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온전한 존재를 알게 됩니다. 남자는 남자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자는 여자로서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남자는 여자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여자는 남자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만이 성적인 존재로서의 이성의 존재를 바르게 알게 합니다. 우리는 결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과 다른 이성을 알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에게 맞는 반쪽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성 교제의 전제 조건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데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나님을 향해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남녀 사이도 점점 가까워집니다. 마치 삼각형의 관계와 같습니다. 꼭짓점에 하나님이 계시고 밑변의 양 끝에 남자와 여자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각각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존재 목적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돕는 짝의 모습을 정확히 그릴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성교제는 서로에게 상처를 쌓아간다.

그러므로 이성교제란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서 얻은 신적 지식을 실제로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이성에 관한 정보를 확인하고, 적용하고, 새로운 정보를 발견해 가는 과정입니다. 그러기에 이성교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이성을 바라보고, 이성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 과정이 없는 이성 교제는 육체적 관계일 뿐입니다.

아담은 독처하는 기간동안 하나님과의 만남이 우선되었습니다. 독처하며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자신의 참 모습을 알아 갔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 속에서 동물 이름을 지어주는 일을 하며 이성인 여자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세워 나갔습니다.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이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와도 독처하는 기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신과 이성의 참모습을 알아 갔습니다.

하나님과 만난 사람만이 이성과 만나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만난 사람만이 이성과 바르게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과 만난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알게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자신에게 반쪽이 부족함을 알게 됩니다. 이 사명을 감당할 때 자신에게 비어있는 반쪽의 모습을 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만이 이성의 바른 모습을 알고 찾아 나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오직 정욕과 소유욕과 인생의 장식품으로서 이성을 찾아 나설 뿐입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이성 교제를 하는 사람은 죄악의 지름길로 접어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이성교제를 하는 사람들은 그 이성교제를 중지하고 우선적으로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우선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럴 때만 이성교제가 유익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안에서 이성 교제를 할 때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 안에서 영원한 기쁨의 과정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성 교제를 계속 한다면 그 상처가 마음에 쌓일 것입니다. 원치 않는 쓰레기들이 마음에 쌓여 나갈 것입니다. 흉한 상처가 마음에 새겨질 것입니다. 억지로 이성교제를 하여 이성간의 만남과 영육간의 결합을 이루어지더라도 그들에게 오는 것은 기쁨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조만간 이혼이라는 쓴 뿌리가 생기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여자들은 결코 남자에게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런 여자와 교제하는 남자들은 그들의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파괴시켜야 하는 불행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남자들은 결코 여자들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합니다. 그 남자들은 여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를 성적 소유물로 사랑할 뿐입니다. 여자 본체 전체를 자신의 반쪽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만 반쪽을 인정하기에 그 외의 더 많은 부분들이 거부당합니다.

그런 남자들은 다른 방식으로 여자의 육체적인 반쪽의 채움을 받을 수 있을 때마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그러므로 결코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남자 또는 여자와 이성교제를 하지 마십시오. 또한 자신이 하나님과 만나지 못하는 한 이성교제를 하지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까이 하시며 여러분의 이성교제를 만족 가운데로 이끄실 것입니다.

4. 이성 교제의 두 번째 전제조건은 부모님의 통제와 공급이다.

이성 교제를 위한 전제 조건에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성 교제를 위해서는 하나님을 만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는 창조시의 아담이나 하와와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름다운 청년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계속 성장해 가야 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상황입니다. 우리는 지금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성장해 가면서 이성 교제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장성한 가운데 이성교제를 하고 연합을 하였지만 우리는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자라가면서 이성 교제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이차적인 전제조건 속에서 이성 교제를 하게 하셨습니다. 이성 교제의 이차적인 조건은 부모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통해 이성 교제에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십니다. 부모님과 가정은 이성과의 만남에 필요한 공간을 제공합니다.

가정과 부모님은 우리의 이성과의 만남을 거룩한 만남이 되게 합니다. 독처하는 기간 동안 돕는 배필이 없는 부족의 채움을 받습니다. 부모님과의 만남은 반쪽이 없어서 부족한 우리를 보호합니다. 부모님을 통해서 다른 반쪽의 모습을 그려가게 하십니다. 부모님을 통해 다른 반쪽의 역할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영향 아래서 이성을 만나는 사람이 정상적인 이성 교제를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의 공급이 없는 이성 교제는 역시 타락의 지름길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처하는 기간 동안의 활동을 부모와 가정에 위임하셨습니다. 아담의 독처하는 기간 동안의 모든 만남은 오늘날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정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성교제는 하나님을 아는 믿음 안에서, 그리고 가정의 부모님의 통제와 보호와 공급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의 도움이 어려운 가정이라면 그 누구보다도 더욱 철저하게 하나님과의 만남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성교제에 있어서 기본적인 두 가지의 만남인 하나님과의 만남과 부모님과의 만남이 정상적일 때, 그 안에서 이성과의 만남도 정상적일 수 있습니다. 아담이 독처하는 기간 동안 아담에게 영향을 준 요소는 오직 하나님과 가정뿐이었습니다. 그 안에서의 이성교제였기 때문에 자신의 돕는 짝을 발견하고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5. 이성 교제의 전제 조건에 관한 성경의 예들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는 이 두 가지의 전제 조건에 대한 예가 나와 있습니다. 이성교제의 전제 조건을 만족시킨 가운데 행한 이성교제와 이것을 무시한 가운데 이루어진 이성 교제의 결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제조건을 무시한 대표적인 이성 교제는 창세기 34장입니다. 야곱의 딸 디나와 하몰의 아들 세겜 사이의 이성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는 이방인 세겜은 남자인 자신과 여자인 이성이 어떤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디나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빠져 디나를 소유할 욕심으로 강간하였습니다.

이 “강간”이라는 단어는 “화간”의 의미가 담긴 단어입니다. 이것은 야곱의 딸 디나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의 요구에 응답했다는 뜻입니다. 디나와 세겜 모두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이 이성 교제를 하였습니다. 그로인해 세겜의 남자들이 진멸 당하는 공동체의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벧엘에서 서원했던 것(창 28:18-22)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야곱의 죄가 드러나게 되었고, 그 상황에 대한 두려움 속에 빠졌습니다. 전제조건을 무시한 이성교제가 자신과 공동체를 파괴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예는 사무엘하 13장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누이 다말과 다윗의 아들 암논 사이의 이성교제입니다. 외적 아름다움만을 기준으로 하나님과 가정 밖에서 이루어진 이성교제였습니다. 사무엘하 13:2에 보면 암논은 다말을 연애하여 상사병이 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친구의 도움과 속임수로 다말을 자기 침실까지 유인하여 억지로 동침하였습니다. 그런데 동침을 한 후에는 암논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사무엘하 13:15에 보면 그가 다말을 심히 미워하게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말을 그리워하는 암논의 그동안의 상사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외모에 대한 소유욕에서 비롯된 갈증이었습니다. 암논이 하나님 안에서, 그리고 부모님의 통제 안에서 다말이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하고, 그와 연합하기를 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 이성교제 역시 파괴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로 인하여 암논 자신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다말의 오라비인 압살롬은 아버지인 다윗을 반역하다가 그도 죽임을 당하는 등 공동체 파괴가 일어났습니다.

반면에 이성교제의 두 전제 조건을 따르는 이성교제는 자신과 공동체를 세워줍니다.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이삭과 리브가의 만남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해 있었고,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습니다. 또한 양쪽 다 부모님의 도움 속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충분한 공급과 관리 속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로인하여 이들의 만남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세울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한 가지는 창세기 39장의 요셉과 보디발의 아내 사이의 관계입니다. 요셉에게는 하나님과의 만남 안에서의 이성교제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모르는 유부녀인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리 강력하게 교제를 요청해도 그 요청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요셉을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그리스도인 남녀들은 이 두 전제조건 속에서 이성과의 만남을 구체적으로 진행해 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먼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을 향해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이성 교제의 모든 문제가 풀립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성을 알 때만 이성 교제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부모의 공급과 통제 속에서 이성교제를 할 때 우리의 이성 교제는 아름답게 이루어집니다. 이제 정상적인 이성 교제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부모님께 나아가십시오. 우리의 이성 교제가 천국의 기쁨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우리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가정들은 우리의 이성교제에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오히려 신앙적인 교제의 방해가 되기도 하고, 대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의 가정들이 믿음의 가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정이라 할지라도 성경적인 안목이 부족한 가정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정과 부모님을 고려할 믿음을 벗어난 이성교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과의 만남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과 교제는 남자와 여자의 모든 부족들을 보완해 줍니다. 또한 가정과 부모님의 공급과 보호의 결핍까지도 해결해 줍니다. 요셉은 부모의 손을 떠난 애굽 땅에 홀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성교제의 최우선순위로 삼는 이성교제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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