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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 (창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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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2: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1.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이 인생 최고의 가치와 목적이다.

세상은 점점 빠르게 돌아갑니다. 우리의 눈과 귀는 그러한 세상을 따라가기도 지칩니다. 그 세상을 마음에 두고 생각할 여유도 없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생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지도 못하고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갑니다. 인생의 종착지가 어디며, 인생의 결과가 무엇인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삶의 현장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눈을 돌리고, 인생의 목적을 생각 합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달리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하나님 안에서 증거할 수 있는 지식과 확신이 있습니다. 인생의 가치와 목적을 아는 인생은 그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발견합니다. 평강과 안식 가운데 그 인생의 의미를 즐기며 기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가는 인생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의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인생을 최고의 가치와 목적으로 삼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은 성공적인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성경말씀 속에서 수없이 언급하십니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인생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인생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인생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인생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화평의 직책을 감당하는 인생입니다.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섬기는 인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생을 사는 한 사람을 부르셔서 교회 공동체의 지도자로 세우실 때는 언제나 그의 가정을 함께 부르셨습니다. 성경에서 성공적인 인생에 대해 다양한 모습을 말씀하시지만, 하나님의 우선적인 관심은 그의 인생보다도 그의 가정이었습니다. 디모데전후서나 디도서에서 교회의 직분자를 세울 때마다 그들의 가정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다. 이것은 가정이 하나님의 주요 관심의 기초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을 인생 최고의 가치와 목적으로 알며, 그 가정 중심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에 머물며, 그 가정 중심으로 하나님과 이웃과 세상과 만물을 향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다양한 변수와 예외들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지라도, 가정 회복을 통한 인생의 열매는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의 모습은 우리들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을 성공적인 인생의 중심에 두어야 하는 이유를 잘 알려줍니다. 창 1:1-2:3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기사입니다. 그런데 창 2:4a의 말씀은 창 1:1-2:3의 마무리로서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라고 끝맺습니다. “대략(톨레도트)”이란 단어는 “계보”라는 의미입니다. 즉 천하 만물 모든 피조물들도 인간의 계보처럼 일종의 계보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의 의도에 의해 이루어진 계보라는 말씀입니다.

창 2:4b-14의 말씀은 이 계보가 완성될 때, 그 계보에 존재하는 인간의 위치를 알려줍니다. 먼저 창 2:5-6은 창조가 완성되기 전에는 비가 없고, 사람이 없어서 완성되지 못한 피조세계의 모습을 설명합니다. 창 2:7-8은 “사람의 창조”를 통하여 하나의 부족을 해결하신 모습입니다. 창 2:9-10은 에덴동산에 사람을 위치시키셨음을 말씀하시고, 창 2:11-14는 “강의 흐름”을 통하여 또 하나의 부족을 해결하신 모습을 말씀하십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위치시켜 주신 그 위치에서 인생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 위치는 모든 피조물의 계보를 완성하고 유지해야 하는 위치입니다. 창 2:8에서 “두시고”라는 표현은 사람이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위치하여 하나님의 의도에 맞는 인생을 살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창 2:15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그 위치에 두시고 의도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 곧 아담을 “이끌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에덴동산에 두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목적이 “다스리며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담의 가정을 완성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사역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창 2:16-25에서 그 사람이 이루는 가정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이렇게 하나님께 이끌리고, 두어지고, 다스리고 지키도록 명령을 받은 자가 이루는 가정입니다. 이것이 인생 최고의 목적입니다.

2.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자의 가정이다.

첫 번째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자가 이루는 가정입니다. 창 2:15의 첫 번째 문장을 직역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끌었다”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이룰 가정을 세우시기 전에 먼저 “그 사람” 즉 아담을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오신 곳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해야 할 곳입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을 다스리며 지켜야 할 위치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이끌어(라카흐)”라는 단어는 구약에서 967회 사용된 단어로서 이곳에 처음 나타납니다. 이 단어는 신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용법으로도 자주 사용된 단어입니다. 창 5:24에서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실 때 “데려가다(라카흐)”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왕하 2:3에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취하실 때 “취하다(라카흐)”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밖에도 “아내를 취하다” 또는 “결혼하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이끌어 오신 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아내를 취하듯, 마치 결혼하는 것처럼 아담을 취하여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아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이룬 자들이 구성하는 가정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흙으로부터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생령이 되게 하심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무도 경작하지 않은 땅을 함께 경작하고자 이끌어 오셨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이끄심을 순종하며 에덴동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이 순종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서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자로서의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가정을 향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실 장소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나게 하실 돕는 배필 하와를 향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여 함께하는 자들이 이루는 가정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의 비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인생의 열매는 하나님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사람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의 비를 주셔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열매입니다. 창 2:5에 나타나는 두 가지 결핍은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사람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비의 두 가지 요소가 충만할 때만 온 땅에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님의 피조물 사이에 위치하며 에덴동산에 두어져서 위치하게 되었을 때 에덴에서 발원하는 네 강이 동산을 풍성하게 적시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이끌림 받는 자가 구성하는 가정을 책임지십니다. 그 가정에서 축복의 샘이 흐르게 하여 주십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뜻대로 가정을 구성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가정에 축복의 단비가 내리고, 시원한 생수의 샘물이 흐르게 하시는 분은 전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대에 합당한 가정의 꿈을 꾸고 이루어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모든 축복의 열매는 가정을 중심으로 주어집니다. 우리들이 수많은 사역과 활동을 하며, 수많은 업적을 쌓고, 수많은 인간관계를 맺는다고 하여도 그 중심에 있어야 할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이 파괴될 때 축복의 샘은 말라버립니다. 그 가정에 하나님의 평강과 은혜의 단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인간의 첫째 꿈은 언제나 가정에 있어야 합니다.

최초의 가정을 파괴했던 사단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이끌림 받는 자가 가정을 이루어야 하지만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돈에 이끌리는 가정이 되게 합니다. 외모에 이끌리고, 명예에 이끌리는 가정이 되게 합니다. 세상일의 열매에 이끌리는 가정이 되게 합니다.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는 자가 이루지 않는 가정은 하나님의 의도에서 벗어난 가정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의 이끌림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미 결혼을 경험한 분들은 이제라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모두 창세기 3장 이후의 인생들이기에 한결같이 파괴된 가정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파괴된 가정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지체로 교회 공동체 가운데 나온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에서 벗어난 위치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부르심을 받아 새로운 가정을 꿈꾸는 자로 세움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속한 가정이 죄악 된 가정이었음을 고백하며, 그 가정의 모습을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부활의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 이끌림을 받으며 새로운 가정을 꿈  꾸며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만물을 다스리고 지키는 위치에 서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에 단비를 주십니다.

3.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에덴동산에 머물도록 두신 가정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두신 자가 이루는 가정입니다. 창 2:15의 두 번째 문장을 직역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에덴동산에 두셨다”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창조세계의 완벽한 환경에 놓여진 사람에게 첫 번째 명령이 주어지기 전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여기서 “두사(야나흐)”라는 단어도 이곳에 처음 등장하는 용어이며, 히필형 동사로서 기본적으로 “안식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안식하도록 에덴동산에 두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창 2:15의 문맥적인 상황을 보면, 창 2:15-25까지는 사람의 창조를 중심으로 하는 관점 중에서 최초의 금령(창 2:16-17)과 최초의 결혼(창 2:18-25)이 전개되고, 창 2:15는 창 2:4-14에서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최초의 금령과 결혼에 이르는 전환점에 놓여 있습니다. 창 2:15 이전의 내용은 창 2:8의 “두시고(쑴)”가 지니고 있는 창조 질서 속에서의 “다스림과 지킴”에 관계되어 있고, 창 2:15 이후의 내용은 창 2:15의 “두사(야나흐)”가 지니고 있는 “금령과 결혼”에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 2:15의 “두사(야나흐)”는 사람으로 하여금 최초의 행위명령을 통해 특정한 위치에 머물게 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창 2:16-17의 최초의 금령은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머물러야 함을 알려주며, 창 2:18-25는 돕는 배필과 함께 한 가정에 머물러야 함을 알려줍니다. 즉, “두사(야나흐)”가 주는 안식은 아담이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위치에 머물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머무는 곳이 가장 안전한 곳이며, 평안한 곳이며, 안식을 누리는 곳입니다.

인간의 모든 사역과 활동은 안식을 찾아가는 활동이 아닙니다. 이미 안식하도록 주어진 곳에서 안식을 누리며 거시적인 창조질서 속에서의 안식을 이루도록 사역을 완성해 가는 것입니다. 즉 안식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더 큰 안식을 이루어가도록 에덴동산에 두어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안식하도록 두어진 영역에서 출발하지 않는 어떤 사역과 활동도 최종적으로 그의 안식을 위한 열매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안식을 위한 활동을 하기 전에 먼저 안식할 곳에 두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영역은 창 2:16-25에서 볼 때 하와와 이룰 아담의 가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안식하도록 두신 장소가 세상 영역이 아닌 한 가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하와와 함께 한 가정을 이루고, 그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하나님께서 창조의 7일째 누리셨던 그 안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안식을 누리도록 두신 가정입니다.

“두사(야나흐)”라는 단어의 뜻은 “놓아두다, 머물도록 허락하다, 쉬다, 정착하다”의 뜻으로서 안식, 안전과 관계된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두신” 것은 아담을 안식할 곳에 두신 것입니다. 사람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위치할 때 안식을 누립니다. 그리고 돕는 배필과 함께 하나님께서 두신 에덴에 머물 때 안식을 누립니다. 그 에덴이 곧 아담과 하와가 이루는 가정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안식을 누리며 머물도록 아담과 하와를 두신 가정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원대한 꿈을 꾸기 전에 제일 먼저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꿈을 꾸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한 가운데 세상 속에서 이루는 모든 수고의 열매들은 솔로몬의 고백과 같은 고통만 안겨주는 “헛된 것”들일 뿐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워 두신 가정에서의 안식을 일차적인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안식을 누리는 가정이 우리의 사역의 첫 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안식을 누리는 가정에서 사역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안식하도록 우리를 두신 가정에서 최고의 안식을 찾는 자로서 가정의 꿈을 꾸고, 그러한 안식을 누리는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안식을 누리는 가정에의 소망을 자신의 소망으로 두며 가정을 이루고자 하는 자들을 통해 이 세상이 움직여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러한 자들을 위해서 이른 비 늦은 비를 내려 주시며 열매를 거두게 하십니다. 가정이 아닌 세상일이나, 돈이나 세상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안식을 얻고자 하는 자가 이루는 가정은 불행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이 에덴동산에 머물도록 두신 가정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깨어진 가정에서 떠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합니다. 가정 없이 홀로 인생을 보내고자 하는 열망도 가득합니다.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늘어납니다. 기존 가정을 버리고 물질을 따라, 성격을 따라, 생활을 따라 새로운 가정을 만들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금 현재의 깨어진 가정을 안식의 가정으로 만들어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이 목적 때문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4.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가정이다.

세 번째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가정입니다. 창 2:15의 마지막 두 단어는 “다스리며(아바드) 지키게(솨마르)”라는 두 개의 목적어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도록 아담을 이끌어 오셨고, 그를 에덴동산에 두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해야 할 일은 에덴동산을 다스리며 지키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으로 하여금 다스리며 지킬 수 있도록 가정을 인도하셨습니다.

장차 아담이 이룰 가정이 안식을 누리는 것은 그 가정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킬 때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가정이 안식을 누릴 때 온전한 다스림과 지킴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교회의 지도자를 세울 때마다 예외없이 가정을 살피는 것입니다. 가정에서의 안식이 사역과 직결되어 있고, 온전한 사역이 가정의 안식과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창 2:8에서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두어진(쑴) 존재는 “다스림과 지킴”에 의해 안식하는 가정에 두어지게(야나흐) 됩니다.

하나님과 만물 사이에 머물러 안식하는 사람, 한 가정에 머물러 안식하는 사람이 “다스림과 지킴”의 사명을 감당합니다. 그리고 “다스림과 지킴”을 위해 움직이는 가정이 안식을 누립니다. 창 2:15의 다스림(아바드)의 선행사가 16절의 “하나님의 계명”이라고 볼 때 “두사(야나흐)”를 통한 안식의 의미는 더욱 분명해 집니다.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또한 아담과 하와의 가정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가정의 목적을 하나님의 명령인 다스림과 지킴을 이루기 위한 것으로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한 언제나 가정에서 안식하며, 그들이 행하는 모든 사역이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의 안식으로 나타납니다. 사람은 이렇게 안식을 누리며 사역하도록 에덴동산에 두어진 존재들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렇게 “안식”할 수 있는 “안전”한 동산에 “두어” 졌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안식하는 곳이며, 안전한 곳입니다. 다스림과 지킴의 사역을 이루는 한 안식합니다.


“다스리며 지킴”은 하나님께의 순종이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의 다스림과 지킴이 순종과 경배의 삶입니다. 즉 가정은 경배와 순종과 안식과 안전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두신 가정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며, 하나님을 경배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스리며, 지키는 사역을 행하는 곳으로서 안식을 주는 곳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이 두신 가정을 중심으로, 그 가정에 머물며, 그 가정 공동체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만물을 다스리며, 재생산을 해 나갈 때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스리고 지켜 갈 꿈을 꾸어야 합니다. 가정은 자신의 욕심의 꿈을 이루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출발기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스리며 지키는 사명을 감당하는 가정을 지켜 주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수확을 거두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스리며 지키는 비전을 품은 자들이 이루는 가정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가정은 하나님의 세상을 다스리며 지키는 가정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습이 우리 자신의 기대 수준을 따라가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지금 이 순간부터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리며 지키는 사역으로 가정의 방향을 전환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 깨어져 있는 가정이라 할지라고 하나님께 이끌리는 자 중심으로, 그리고 가정에서 안식을 누리고자 하는 자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다스리는 사역과 지키는 사역 가운데로 들어가도록 가정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한 가정이 하나님의 비전 속에서 함께 다스리며 지켜 나갈 때 안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대하시며 기다리십니다. 가정을 포기하고 개인의 욕심을 따라가는 이 시대 속에서 우리들의 가정을 향한 꿈을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손에 이끌려 왔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로 택하심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신랑으로 삼는 신부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가정의 안식을 통해 세상의 안식을 이루어 가고자 하는 꿈입니다. 다스리고 지키는 사역을 통해 이루어 가고자 하는 꿈입니다.

하나님께 이끌림 받은 자로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가정에 머무는 안식을 꿈꾸는 자로서, 가정을 통해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스리며 지키는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로 결단하며 돌아서야 합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 가치와 목적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기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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