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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요 20: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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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에 불이 났습니다. 급하지요 소방서에 빨리 연락을 해야 됩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물어보는데 “여보 119가 몇 번이지?” 엄마 “나도 모르겠어요. 아들한테 물어보세요.” 침착한 아들 “아빠, 114에 물어 보세요. ”

언젠가 지붕위에 있는 닭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붕위를 노닐던 닭이 큼지막한 고양이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라서 지붕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뛰어 내립니다. 어떻게 내리는지 아세요? 그래요. 날개를 푸드득거리면서 사뿐히 내립니다. 전 그때 알았어요. 닭이 날개있는 짐승인지요. 땅에 구구하면서 다닐때는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는데 다급해지니까 숨겨진 날개로 납니다. 잠재능력이 나타나는 겁니다.

지난주 목요일이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신문 방송에 보니 대단한 분들이 많더라구요. 전 감동 많이 받았습니다. 그중에 영국사람으로 화가, 사진작가인 “엘리스 래퍼”이야기는 압권이었습니다. 이 여자분인데 두팔이 없고 다리도 중간이 없고 넓적다리에 발이 붙어 있습니다. ‘포크메리아’라는 병입니다. 해표지증이라고 우리가 말을 합니다. 기형아로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두팔이 없고 다리는 짧고 여러분들도 TV나 신문에서 보신 분들 계실겁니다. 태어난지 6주만에 엄마가 도망을 갔습니다. 왜? 사람구실 못한 것 뻔하니까요. 그런데요. 이분은 대단하시더라구요. 열심히 공부해서 화가가 되어서 그림을 그립니다.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기르기도 합니다. 남편은 도망갔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엄마인지 놀랠노자입니다.

저런 장애의 몸에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우리 곁에는 이렇듯 장애를 딛고 일어서는 분들이 있습니다. 프랑스 사이클 선수 암스트롱은 거의 죽게 된 암을 극복하고 세계 사이클 선수권대회 5연패를 달성했잖아요. 엘리스 래퍼는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좌절이 아닌 극복을 선택했다” 누가 앨리스 래퍼나 암스트롱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겠어요? 아무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일어섰습니다. 우리에겐 이처럼 장애나 죽을병이라도 보이지 않는 잠재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닭이 땅에만 다니니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평소엔 모릅니다. 그러나 어려울 때 이길 수 있는 날개가 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잉게 보르크 바하만의 시에 나오는 한 소절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추락할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간 사람은, 즉 능력이 있는 사람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추락한다 할지라도 솟아날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입니다. 신앙은 이와 같습니다. 평소엔 모릅니다. 그러나 날개를 펴면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자기 능력 여하에 따라 시련이 오더라도 해쳐나갈 방법의 방향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패도, 실패의 극복도 모두 자기 능력에 다른 것입니다. 그 속에 깃든 의미는 희망입니다. 추락은 절망이요, 포기라고 한다면 날개는 다시 비상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좀 더 너그러워지길 바랍니다.
이 제목이 의미심장합니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날개가 있는 것은 날 수 있고 날다가 언젠가는 추락할 수도 있으며, 추락했을지라도 날개가 있기 때문에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귀한 진리가 남겨 있습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습니다. 나는 너무나도 많은 추락을 경험했고 이제는 날개 짓으로 올라갈 곳 밖에는 없습니다. 추락한 그 시점에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 날개가 우리에겐 있습니다. 그래서 승리한 땅에서만이 아니라 하늘을 날수 있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게 하는 날개!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 후의 사건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유독 도마만은 똑똑한 척하고 ‘난 믿지 못한다. 예수님의 상처가 난 옆구리를 만져 보아 부활을 믿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만져보고 믿어라. 그런데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 라고 하십니다. 복이 되는 신앙, 복 있는 신앙생활은 어떤 것이냐? 첫째는 보지 못하는 겁니다. 또 하나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우리의 복은 보이지 않는 것에 있고 또한 믿음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날개, 그 복이 되는 2가지 인생의 날개가 될 2가지는 무엇입니까?

1. 은혜의 날개입니다.

이 은혜의 날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의 날개는 하도 커서 비밀스러워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보고 믿을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지 않고 믿어야 복입니다.
일본 과학자들이 땅을 팠습니다. 50m를 팠더니 ‘구리’를 발견했습니다. 연구해서 발표하기를 “고대 일본인은 2500년 전에 구리선을 이용해서 전화기를 사용했다”
중국이 불끈하고는 땅을 팠습니다. ‘유리조각’을 발견했습니다. 발표하기를 “중국 고대인들은 3500여년 전에 유리를 이용해서 광케이블을 이용해 전화기를 사용했다.”

한국의 과학자들이 격노했습니다. 그보다 더 깊이 땅을 200m이상을 팠습니다. 그런데 구리, 유리등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발표하기를 “고대 한국인들은 5500여년 전부터 무선 전화기를 사용했다.”
전화기도 유선보다 무선 핸드폰이 더 가치가 있습니다. 보고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더 복되다는 겁니다.
1980년경 미국에선 노예를 사고 팔았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이 흑인 노예 해방하기 전입니다.
한 부자가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샀습니다. 이 노예는 미국에 와서 노예 생활을 오래한 거의 쓸모없는 노예입니다. 그런데 이 노예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난 당신을 위해 일하지 않는데 난 당신들을 증오한다”
부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집에 도착해서는 그의 발에 있는 사슬, 착고를 풀어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일을 시킬 수 없는 쓸모없는 당신을 비싸게 산 것은 부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입니다. 이젠 자유의 몸이니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

흑인 노예는 부자의 마음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나를 사가는지... 그러나 순간 깨닫기는 ‘이것은 은혜다’ 이처럼 은혜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전혀 다르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은혜를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죄인은 죽어야 하는데 죄에서 자유를 얻었습니다. 자유를 얻은 흑인노예는 너무 놀랍고 감사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주인님, 이젠 제가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 자발적으로 당신의 노예로 살겠습니다. 이 은혜감사하며 평생 당신을 위해 살겠습니다.” 그리고 주인의 집에서 사랑 받으며 결혼도 하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 구원의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살아 갈 때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요즘 “유다복음”으로 화제입니다. 가롯유다를 변호하는 내용입니다. 가롯유다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 구속사역이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가롯유다는 기독교회의 공헌자(?)라는 것입니다. 배신자가 아니구요. 과연 그렇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요12:6에 가롯유다의 동료인 요한은 동료들은 회계를 받은 유다를 도둑놈이라고 했습니다. 막14:12 가롯유다는 제사장을 찾아가 예수님의 몸값을 흥정했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자기의 필요를 위해 이용하려했던 사람이지 예수님을 위해 희생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서를 자세히 보세요. 예수님이 가롯유다의 배반 사실을 인지하시고 회개시키려고 노력하십니다. 간접적(요13:10, 막14:18) 직접적(요13:26)으로 말입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회개할 기회에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회개하면 용서받습니다.(요일1:9, 롬13:10)

205장을 보게 되면 “예수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겠네 예수앞에 나와서 음성을 받으면 마음의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 우리 주만 믿으면 모두 구원 얻으며 영생복락 면류관 확실히 받겠네”
회개를 하면 용서를 받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 앞에 나오면 은혜 받습니다.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으니 회개하고 용서받고 위대한 일군이 되었습니다. 탕자도 회개하고 아버지 가니까 새로운 삶을 삽니다. 세리와 창기도 죄가 많았지만 예수님께 나오니까 새로운 사람들이 됩니다. 마1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축복에 나오는 다말, 다말 , 롯 우리아의 아내로 다 죄인들입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의 씨를 받았고 라합은 창기요 기생이었고 롯은 이방여인이었고 우리인의 아내는 다윗과 간음하고 남편을 죽게 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인생을 삽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가롯유다는 이 은혜를 몰랐습니다. 스스로 판단하여 자살을 했습니다.

여러분 은혜는 내 안에서 찾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입니다.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할 때 순종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은혜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살리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크고 비밀한 일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저 태평양보다도 넓고 무궁무진하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예비된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은혜 받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지난 3월 16일 권오승 공정거래 위원장이 취임식에서 “하나님의 도움으로 취임사를 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이 오해해도 하나님만이 인정해 주시면 됩니다.”라고 연설을 했습니다.
이런 일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가 큽니다. 특정종교를 찬양했다. 특정종교를 이용해서 표를 얻으려 한다. 특정 종교의 세력을 규탄하려 합니다.
예수님도 미쳤다라는 말을 들고 사도바울도 그렇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면 미쳤다는 말을 들을 것입니다. 그러나 속지 마세요.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살게 하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얘기를 아무리 잘 들어도 목사세금안내니까 세금낸다고 하니까 법적으로 못 받게 되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인터넷에 리플이 수백 개가 달렸습니다. 거기에는 세금을 안내다가 낸다고 하니까 “잘했다. 어서 법개정하자!” 그럴 줄 알았지요. 아니에요. 입에 담지 못할 정도의 욕설들이 많이 있는지... 여러분 속지마세요. 하나님의 은혜는 육체의 사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알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믿는 하나님의 은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날개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은혜의 날개를 펴십시오.

2. 믿음의 날개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자기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나를 변화시켜서 믿는 자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중국의 지혜서 “여씨춘추”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랬는데 이 사람은 이웃집 아이를 의심했습니다. 이웃집아이가 도끼를 훔쳐갔다가 생각을 하니까 그 아이의 말하는 것이나 일생, 걸음걸이를 보니까 틀림없다고 믿었습니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습니다. 분명히 도둑놈이라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며칠 후 산골짜기로 나무하러 갔다가 그 도끼를 찾았습니다. 그 후 이 이웃집아이를 보았더니 그의 얼굴이나 말, 행동을 어디를 보아도 남의 도끼를 훔칠 그런 아이가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보면 볼수록 순진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습니까? 이웃집아이는 변한 것이 없고 단지 내가 변한 것입니다. 믿음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생각한대로 믿고 믿음대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무슨 말입니까? 믿는 자는 생각이 변하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환경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부자-가난한자. 높은자리-낮은자리, 건강- 병햑함... 이것으로 믿음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백인과 흑인, 황인종, 키 큰사람이나 작은 사람, 뚱뚱한사람이나 마른사람... 누가 더 믿음이 좋은가의 질문과도 같습니다. 환경과 믿음은 다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의 양극화가 문제입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IMF이후 중산층은 무너지고 극빈자, 서민, 부자..... 모순된 구조로 이루어져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양극화는 과거에도 있었고 오늘도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조시대에는 양극화가 없었습니까? 더 했습니다. 양반에 상민에.... 여러분 문제는 이런 사회속에서 이런 것을 논의 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합니다. 내가 잘 살아야 합니다. 세상이 잘 산다고, 세상이 균등하다고 내가 잘사는 것은 없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도 양극화가 있습니다. 살 사람은 어디서도 사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해야 합니다. 그러면 극복합니다.

최근에 인터넷에 서민이 하지 말아야 할 5가지습관이라는 글이 떴습니다. 이름없는 한 사람이 글을 썼는데 호소력이 있더라구요.
1) 차를 먼저 구입하지 말라 - 나는 10년만에 샀다. 그때는 결혼했고 아파트도 장만했다. 결혼한자로 아파트가 자동차보다 우선이다.
우리는 돈을 벌면 쓸궁리 먼저 하잖아요.
2) 할부인생으로 살지 말라=외상으로 살지 말라. - 최소 70% 자기 돈으로 사야지 빚지고 살면 정말 어려울때 힘들다.
3) 쓰고 남은 돈으로 저축하지 말라 - 얼마를 벌든지 먼저 저축해놓는 가능한 쓰지않는 것이 버는 것이다.
4) 기분으로 소비하지 말라. 충동구매하지마라 - 특별한 일이 아니면 1차로 끝내라.
5) 실천없는 계획을 세우지 말라. - 생각만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오늘 이시대의 환경 때문에 못사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환경이 좋고 나쁜 것에 나는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잘 살아야 합니다. 어떤 목표를 위해서는 절제력,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어떤 환경이든 극복하려는 사람만이 살아 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환경에 의해서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노예생활, 감옥생활하든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주어진 여건에 최선을 다하니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형통케 하셔서 국무총리가 된 것입니다.

다윗도 사울왕에게 쫒겨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원수삼지 않고 하나님앞에서 행동합니다. 죽일 수 있어도 죽이지 않습니다. 아들 압살롬에게 쫒겨나 피난살이를 하면서도 누구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도 감옥에 갇히는 고통과 슬픔속에서도 한숨 쉬거나 절망하지 않고 찬송과 기도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그 사람들은 원망하지 않고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만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든지 믿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봅니다. 믿음은 우리자신을 변화시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믿음이라고 하면서 형편이 좋아지면 믿음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형편이 나빠지면 믿음이 없어진다고 하지 않습니까? 기분이 좋으면 믿음있는 척하다가 나쁘면 없는척하면 안됩니다. 누가 칭찬이나 격려해주면 믿음있는 척하다가 비난이라도 들으면 믿음이 사라져버리고 여러분 너무 환경에 좌우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환경에 좌우되지 않습니다.

창17장에 하나님을 아브라함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나이 100세에 사라90세에 자녀 생산능력이 없어질 때에 자녀를 주겠다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100세에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해도 바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믿음은 환경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0년전 학교에서 교목으로 있을 때,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 설교가 학생만을 위한설교가 아니라 교사만을 위한 설교가 아니라 이다음에 담임목회로 나갈 때 그때 써야지 하고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 결과 어느날 교목으로 나간지 2년이 안되서 한남제일교회에서 설교를 해달라고해서 그때 그동안 했던 설교를 가지고 갔습니다. 그때 설교가 사도행전 《 일어나 걸어라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그 설교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담임목사로 오게 됐습니다. 지금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설교가로서의 꿈말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게 해 주실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한남동의 한남제일교회의 담임목사 설교보다 세계적인 부흥사의 설교를 듣는 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여러분들을 위해서 세계적인 부흥사의 꿈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루어 줄실 줄로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모세가 홍해 바다를 갈라지기를 바라고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홍해를 가리켰습니다. 그랬더니 갈라졌습니다. 여러분 이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어떻게 받느냐? 좋다!! 교훈의 의미로 들어서 지식의 하나로 쌓아놓습니까? 그리고는 목사님 나는 다 잃어 버렸습니다. 지식은 잃어 버려도 좋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이다! 내가 이 약속을 지키면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약속의 말씀! 약속의 의미를 갖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제게 은혜의 날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를 주시옵소서. ”

이번 사순절 고난주간 기도회를 통해서 응답받은 이들의 기쁨이 참으로 큽니다. 희망을 갖더니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빈집에 세들어 오고 병든 자가 낫고, 돈문제로 고민하던 분이 해결받고....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믿을 때 그리고 기도할 때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이름, 자비를 주십니다. 때문에 응답하십니다. 또 하나님의 필요로 응답하십니다.

다윗의 성전건축소원은 그러니까 건축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전쟁승리의 경험은 많습니다. 그래서 전쟁의 승리의 확신은 있습니다. 그런데 평안할 때 자신이 없습니다. 우리가 싸울 때는 잘 싸우는데 모든 것이 해결될 때는 약해질 수가 있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평안할 때 간음도하고 살인도 하고 그랬잖아요. 그 염려한대로 염려한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평안할 때 잘 살수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낸 것이 하나님을 내가 늘 모시고 살면 좋겠다고 해서 백향목궁에 평안이 거할때에 하나님의 성전건축에 소원을 담는 것입니다. 다윗은 참 멋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성전건축을 한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다윗은 그럼 성전건축할 수 있는 건축재료라도 마련하겠다는 다윗을 축복하시잖아요. “네 자손만대까지 복을 주겠노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랬더니 그가 얼마나 평안하게 잘 사는지... 건축재료를 준비하는 것에 복을 주시니까 나라에 복을 주시고 물질의 복도 주시고 평안의 복을 주시고 형통케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제가 설교준비를 하면서 인터넷에서 2006년 1월에 생명수교회의 장성희씨라고 하는 분이 글을 올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정성희씨는 생명수교회 건축한다는 말에 당황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믿고 나에게 주신 분깃으로 믿고 기도하고 기쁜마음으로 상상하지 못할 만큼의 돈을 헌금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회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데 몇 군데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더랍니다. 한회사를 정하고 연봉협상했는데 정확히 전직장 연봉에 건축헌금을 더한 것이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은 나를 위한 것 같지만 하나님을 위한 일입니다. 저는 교회건축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다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교회건축에 대한 꿈을 가지고 기도를 하면 그것을 감당할만한 능력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감당할만한 시험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조건 무슨 일이 생기면 지금의 상황을 가지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된다, 안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크고 비밀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돼서 우리로 하여금 믿는 자의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제 2의 한남제일교회를 건축하기 원합니다. 또 우리 교역자 가운데 한사람이 거기에 가서 파송받아서 큰 교회 이루기를 바랍니다. 나는 많은 선교사가 파송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선교사를 해외에도 보내고 우리 신학교에도 보내지기를 원합니다. 꿈이 있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감당할 만한 능력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축복받기를 원하십니까?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약속의 말씀으로 받고 된다 안된다 불평하지 말고 그 일을 위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헌신해보시기바랍니다. 심는대로 거두시는 하나님이신줄로 믿습니다.

「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우리는 날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입니다. 또 하나는 믿음의 날개입니다. 분명한 것은 날개는 두 개가 있어야 날아갈 수 있듯이 하나만가지고 가는 새는 본적이 없습니다. 은혜의 날개, 믿음의 날개!!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날개, 믿음의 날개를 활짝 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날개를 통해서 이 한주간도 승리케하실줄로 믿습니다. (오창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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