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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큰 일 (출 14: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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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진도군 회동리에서 모도리 사이 약 2.8km의 바다가 갈라지는 해할 현상은 모세의 기적과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2백3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진도군에서는 매년 봄, 가을이 되면 어김없이 조수간만의 차이로 인해 해저에 형성된 바닷길이 해면 위로 일정 시간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치 바다가 갈라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 기간에 회동리 일대에서는 이 광경을 보러 온 전국에서 모인 인파들로 인해 한판 축제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해할 현상이란 해저지형의 영향으로 조석의 저조시에 주위보다 높은 해저 지형이 해상으로 노출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마치 바다를 양쪽으로 갈라놓은 것 같이 보이는 자연 현상입니다. 우리나라의 남 서해안과 같이 해저 지형이 복잡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지역에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도, 무창포, 사도, 제부도, 서건도, 실미도 등 무려 6곳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자연 현상을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과 연관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조수간만의 차이로 나타나는 바다 갈라짐의 현상은 자연계시의 신비로움입니다. 그러나 홍해가 갈라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한 것은 하나님의 특별은총의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이후로 홍해는 그같이 바다 가운데 육지가 들어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앞세우고 출애굽의 대 거사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 10가지 재앙을 차례로 내림으로 애굽의 바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탈출을 가능케 했습니다.

그러나 10가지 재앙으로 인해 애굽의 바로 왕의 영향권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동안 이미 종의 신분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한 채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함께 애굽과의 관계를 완전히 종결시키기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스본 맞은 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숙곳에서 에담까지 왔던 북동쪽 방향으로부터 갑자기 남동쪽 방향으로 행진을 명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게 하여 하나님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직접 체험하게 하시므로 백성들의 영적 활동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습니다.

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한 기적입니다.

본문 14장 13-14절에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바로는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다른 곳에 이르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했습니다.
본문 14장 4절에 {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바로가 원래부터 선했는데 하나님께서 고의로 악하게 만드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바로의 스스로 강퍅해진 마음을 통제치 아니하시고 그냥 내버려 두셨다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바로의 악을 간과하셨다는 말입니다.
바로의 군대는 대추격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불평은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본문 14장 11-12절에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했습니다.
불평하는 백성들을 향해 모세의 일성은 두려워 말고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가신 하나님께서는 구원이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은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모른 체 백성들은 애굽에서 익숙해졌던 노예근성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저들에게는 하나님의 언약이니 약속이니 하는 것은 마음에 와 닿지 아니했습니다. 오직 현실의 공포와 고통스러운 것을 해결하는 것이 저들의 급선무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사탄에게 붙잡혀 사탄의 종노릇을 하던 옛 사람의 근성이 다시 재현되는 것과 같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8절에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라고 했습니다.
디도서 3장 3절에 {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 노릇한 자요 악독과 투기로 지낸 자요 가증스러운 자요 피차 미워한 자이었으나}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가만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겁내지 말고 하나님의 큰일을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르짖지 말고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Ⅱ. 애굽 사람들을 멸하기 위한 기적입니다.

본문 14장 17절에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 뒤를 따라 들어갈 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 모든 군대와 그 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어 밀 때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갈라져서 마른 땅이 되었습니다. 땅을 들어내고 바닷물이 좌우로 벽이 되어 있는 그곳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른 땅을 건너듯이 건넜습니다. 곧바로 바로와 말들과 병사들과 마병들이 그 뒤를 쫓아 좌우로 벽이 된 바다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여기에 대다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9절에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육지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지나온 것은 하나님이 보증하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이 바다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의 약속도 아니고 아무런 보장도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본문 14장 19-20절에 {이스라엘 진 앞에 행하던 하나님의 사자가 옮겨 그 뒤로 행하매 구름 기둥도 앞에서 그 뒤로 옮겨 애굽 진과 이스라엘 진 사이에 이르러 서니 저 편은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 편은 밤이 광명하므로 밤새도록 저편이 이편에 가까이 못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철저히 자연계시와 과학 세계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특별 은총과 신앙의 세계에 있었습니다.
자연계시와 특별계시의 영역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습니다. 저들은 아무런 보장도 없이 감히 바다 가운데 들어 왔습니다. 하나님은 새벽에 불기둥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교란하여 우왕좌왕하게 하셨습니다.
여기 '어지럽게 했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대적들을 물리치실 때 종종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사무엘상 7장 10절에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고 했습니다.
이때 애굽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하기에 바빴으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애굽 사람들 스스로의 입으로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을 친다고 했습니다(14:25).
이때 하나님께서는 본래 의도대로 본문 14장 26-28
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 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갈라져 벽이 되었던 홍해 바닷물이 본래의 홍해 바다로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 사람도 죽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한 사람도 살아난 자 없이 다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Ⅲ. 만민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본문 14장 31절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 종 모세를 믿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큰일이라고 하면 넓게는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큰일은 출애굽 시에 내린 10가지 재앙과 홍해도하 사건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표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역사(work)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종들의 권위를 보장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이 사건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종 모세를 믿었다고 하는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은 그들이 애굽을 떠났을 때가 아닙니다.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완전 해방은 홍해도하 사건과 함께 끝이 났습니다. 애굽에서의 10가지 재앙은 출애굽의 전개 과정에 불과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러한 최악의 사태로 몰고 갔었습니까? 그것은 ① 애굽의 바로에게 다시는 이스라엘을 범하지 못하게 하려는 일차적인 의도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는 ② 출애굽의 대역사를 하나님이 친히 주관하셨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본문 14장 18절에 {내가 바로와 그 병거와 마병으로 인하여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③ 앞으로 40년 동안 전개되는 수많은 유형무형의 전투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지도자 모세의 명령에 순종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신적인 공권을 인정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가들에 의하면 당시에 바닷물이 갈라져서 육지 같이 된 폭이 적어도 1,609m는 되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남녀노소 합해서 200만 명 정도의 백성들이 하룻밤 사이에 건너려고 하면 이 정도는 최소한의 폭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홍해에서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 되고 말았습니다.
홍해도하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절정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단독사역이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인간은 속수무책입니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이 사건을 통하여 우리 앞에 닥친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퇴행적이고 편협한 인본주의와 무사 안일주의를 교정 받는 사건입니다. 계속되는 가나안 행진에 하나님의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도 사탄은 우리의 힘든 환경을 볼모로 신앙의 길을 중단하고 돌아가자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신령한 교회생활보다는 마귀에 종노릇 하듯 이 세상이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애굽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하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주권도 영토도 없으면서 그곳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말하자면 애굽 이골이 되어버렸습니다. 이골이 무엇입니까? 익숙해진 버릇입니다. 본래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소질이라고 한다면 이골은 후천적인 학습과 경험에서 온 것입니다. 430년 동안 익숙해진 애굽의 종살이에 이골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이골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현상은 단회적 현상이지만 홍해가 갈라지던 그 뜨겁고도 장엄한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앞뒤로 옮겨가면서 자기 백성들의 길을 승리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우리 앞에 놓인 유형무형의 홍해에 뛰어드는 것은 죽기를 각오한 자들의 용단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의 당연한 신앙행위입니다.

3·1·3·1운동 가운데 선교운동, 선지학교 운동, 교세 1,000명의 확보운동에 머뭇거리면 추격해 오는 애굽의 군대에게 맞아 죽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큰일을 본 사람입니다. 그것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하나님의 큰일입니다. 하나님의 큰일을 이미 본 사람들은 믿고 순종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다시 큰일을 볼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시고 약속하신 것이 현실화 되는 것입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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