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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비전을 가진 그리스도인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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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있는 사람은 용서할 수 있지만 미래 없는 사람은 용서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현재는 좋지만 미래가 없는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요? 아니면 현재는 힘들어도 5년 후 10년 후가 좋은 사람을 선택할 것인가요? 5년 후, 10년 후가 더 좋은 사람이 되려면 비전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비전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비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큰 꿈이 우리의 현실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추진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은 감히 시도하지 못하는 것을 시도하는 사람이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비전 있는 사람이 되려면 울타리를 치며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고 제자리 뛰기하며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 멀리뛰기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면서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로, 또 내일을 맞이할 때는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성실한 삶을 살아야 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비전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크던 작던 꿈을 가지고 있는데 그 꿈을 이루기 위하여 도전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있지만 하나님이 주신 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원인은, 우리의 마음이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힘은 ‘하나님 안에서 품는 긍정의 힘’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긍정보다 부정을 선택하고 기쁨보다 걱정을 선택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걱정과 근심이 미래를 준비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얼마나 커다란 착각인가요? 긍정을 선택하고 기쁨을 선택하고 걱정을 버리며 높은 단계로 도약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가정이 번창하고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을 상상하며 머리와 가슴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상상해야 실제로 그것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삶은 최선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기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제 살았던 방식이 오늘의 삶을 결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내일의 삶은 바로 오늘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매일 매일이 새로운 기회가 되는 것이고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난날의 생각들에 이젠 더 이상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갈 때 항상 꿈을 꾸거나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과거에 집착했던 지난날의 기억들 모두 떨쳐버리고 내일의 새로운 기회를 위해서 오늘의 삶의 계획을 다시 세우는 일. 그 새롭고도 중요한 계획들을 매일 매순간 세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사람들이 만나서 명함을 주고받을 때 다음의 글로 넣으면 어떨까요? "우리가 만난 후 당신이 나를 잊는다 해도 당신은 잃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을 잊는다면 당신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잊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꿈이 있습니까? 원하는 것이 무엇이며 되고 싶은 것이 무엇입니까?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절망에 빠져 인생을 포기한 사람에게도 소원이 있습니다. 어떤 소원이냐면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빨리 죽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분이 계셨습니다. 어떻게 살아 있는 사람을 "빨리 죽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 건강하게 하시고 평안하게 하셔서 오래 오래 살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했더니 그 분은 큰소리로 "아멘"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지나서 그분을 만나서 "어디 가세요?"라고 여쭤봤더니 "허리가 아파서 약국에 가요"라는 것이었습니다. 죽게 해 달라고 기도 요청하던 분이 아프다고 약국에 가셨습니다. 사람이 "죽고 싶다"고 하는 말은 자신이 원하는 것, 되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지금 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는 표현입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아유, 내가 빨리 죽어야 되는데"라고 하시는 것은 100%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어서 하는 말씀이라고 합니다.

비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무엇인가 ‘되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 이 있지만 야망과 비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야망과 비전은 다른데, 야망이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비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비전은 눈앞에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는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꿈꾸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전을 가졌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며, 지금 확인되지 않은 천국에 간다는 사람이고, 아무도 증명해 내지 못한 영생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모두 비전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비전을 담은 고백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여러 사람을 보아도 하나님을 향해 있을 때와 하나님을 등졌을 때의 삶이 달라졌고 말과 행동이 달라졌습니다. 다윗이 비전을 가졌을 때는 골리앗을 눕힐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자 자신의 정욕조차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사울이 비전을 가졌을 때 많은 왕들을 정복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었을 때 자신의 질투심도 다스릴 수 없었습니다. 노아가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방주를 지어 인류의 존속에 기여할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었을 때는 술에 취해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엘리야가 비전을 가지고 있었을 때는 하늘로부터 불을 내릴 수 있었으나 그것을 잃었을 때는 이세벨을 피하여 도망하였을 뿐 아니라 자살까지 하려고 하였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지금 힘들고 어렵다면 "지금 내가 하나님을 등지지 않았는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비전은 보는 것이다.

비전은 남이 볼 수 없는 것,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눈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봅니다. 그래서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보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제 눈에 안경"입니다. 눈은 보이는 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민수기 13:30-4:10절 말씀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 광야에 도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그 땅을 정탐하기 위해 12지파의 족장들을 보냈는데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족장들이 돌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열 명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가 갈 수 없는 땅, 거기는 성이 견고하고 그 사람들은 키카 크고 굉장한 사람들이기에 거기에 갈 수가 없습니다."라고 절망적인 보고를 했는데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땅을 보고 와서 "그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심히 아름다운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습니다. 열 명은 거기는 사람들의 키가 크고 성이 견고하기 때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민14:9)고 했습니다. 똑같은 것을 보고 왔는데 열 사람이 본 것과 두 사람이 본 것이 다릅니다. 눈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가졌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눈으로 봅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눈으로 미래를 보고, 사람을 보고, 그리고 사건을 보는 것이 비전입니다. 이 세상에는 몽상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몽상이라는 말은 "꿈속의 생각,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생각"을 말합니다. 몽상가는 생각은 하지만 계획하지 않습니다. 몽상가는 말은 하지만 행함이 없습니다. 시작하지 않습니다. 몽상가는 뭔가 하려고 하는 것 같아도 배우거나, 훈련받거나 간섭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력하지 않습니다. 몽상가는 고난을 거절하고 힘든 것을 하려고 하지 않고 오직 입으로만 잘 합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생각하며 계획하고, 행동하며, 훈련받기를 감당합니다. 믿음 안에서 비전을 가진 사람은 다릅니다. 그는 말하기보다 행동합니다. 기꺼이 배우고 훈련받고 고난에 동참하기를 즐겨합니다. 한 마디로 비전을 가진 사람은 비전을 위한 정당한 값을 치룰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어떤 일도 대가를 치루지 않고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만 하고 가만히 앉아서 무엇이 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몽상가"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값을 치루시고 우리들을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아무리 통성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기도해도 공부하지 않는 학생은 시험에서 점수를 잘 받을 수가 없습니다. 밤새 철야기도 하고 중간고사 볼 때 "주여 믿습니다."하고 연필을 굴려 보아도 소용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닙니다.

비전을 품고 달라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변화하려면 눈물이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익숙한 것과 결별해야 하고 때로는 편안하고 안락한 것을 포기해야 하며 집착하던 것을 놓아야 하고 아끼며 붙들고 있던 것을 던져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믿음으로 발견하였다면 비전을 방해하는 것을 기꺼이 내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에 새겨 두고 잊지 않는 "집착"은 변화의 큰 장애물입니다. 집착을 버려야 새로운 세계가 열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자기 존재에 대해 새롭게 눈뜨게 되었습니다. 자기들이 사람 낚는 어부가 될 수 있음을 보고서 배와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마4:20~22). 제자들이 가진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를 수 있었던 것은 비전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어려움과 문제들을 각오해야 한다.

폴 하비(Paul Harvey)는 "성공의 도상에 있는지 아닌지는 항상 알 수 있다. 성공하는 길은 언제나 오르막이다"라고 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는 말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방해물과 곤고함, 반대와 낙담,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믿고 끝까지 목표를 향하여 나가는 단호한 결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장애물로 여기고 불가능한 것이라 말하는 것도 비전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나를 실패하게 하신 것, 눈물 흘리게 하신 것, 어려움을 겪게 하신 것에 모두 하나님의 뜻하심이 있다"고 믿고 낙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이 이 일을 이루게 하실 것이라고 믿고 낙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비전을 가진 사람은 비전을 함께 할 사람을 사귀어야 한다.

우리는 결코 혼자 살아갈 수가 없는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가깝게 지내는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 승리하는 사람, 비전을 가진 사람은 모범이 될 만한 사람을 사귀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과 가까우십니까? 어떤 사람을 자주 만나십니까? 자기가 만나는 사람이 자기보다 나은 사람인가 확인해 보세요. 나은 사람을 바라보고, 나은 사람을 닮으려 하고, 나은 사람을 가까이 하고 사귀려 해야 합니다.

신앙도 그렇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닮으려하고 가까이하려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닮으려하고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고 사귀면 그 사람에게도 감사할 조건이 생길 것입니다. 아무나 다 사귀면 안됩니다. 여러분도 감사하며 감사의 대상이 되도록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 마음에 합하려 노력하는 사람, 주일을 잘 지키고, 예배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 빛이 되고 소금되려 애쓰는 사람을 바라보며 닮으려하고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닮으려하고 가까이 하며 사귀려 해야 합니다.

"집에서 가까운 교회가 좋은 교회이며 예수 믿는 사람은 가까운 교회에 출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말 그럴까요? 먼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뜻도 아닙니다. 거리가 문제가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유치원이나 학원이 있으면 무조건 그리로 아이를 보내나요?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으면 거기만 갑니까? 실력이나 적성 그리고 장래희망에 상관없이 가까운 곳에 대학이 있으면 무조건 그리로 가나요? 그런데 교회는 가까운 곳에 가야 한다고 하는 것은 '편의주의적인 생각' 일뿐 신앙적이지는 못한 말입니다.

좋은 교회는 멀어도 다닐 가치가 있습니다. 집 가까운 교회에 나가는 것이 좋다고 주장하려면 '먼저 출석할 교회를 정해 놓고 그 교회에서 가까운 곳에 살집을 준비해야 옳은 것'입니다. 집을 먼저 정해놓고 가까운 교회를 찾는 것은 신앙적인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예배자는 가까운 교회가 아니라 좋은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교회를 신중히 정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영적인 문제와 적결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교회이며 성도들은 주일을 주일답게 거룩하게 지키고, 예배를 예배답게 정성을 다해 드리며,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는 설교를 귀중히 여기며, 바르게 선포되는 말씀에 '아멘'하고 순종하는(딤후4:3-4)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생명력 있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이 세상에는 살아있는 것 같으나“거룩한 모양만 있고 능력이 없는”죽은 교회(계3:1)가 있습니다. 그리고 병든 교회, 졸고 있는 교회가 있습니다. 생명력 있는 교회는 말씀이 살아있고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살아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며 꿈틀거리는 교회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안에서 존재하는 교회 같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이 땅에는 하나님 한 분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눈치를 보며 목회하며 사역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나님 한 분의 눈치만 보며 사역하는 교회, 지도자와 일반교인들이 평안하여 서로 귀중히 여기며 다툼이 없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면 우리 영암교회는 어떤 교회입니까? 제 생각에 '영암교회는 좋은 교회'이지만, 영암교회에도 입을 쭉 내민 “오리 입을 가진 사람”들도 있지만 오리 입보다는 예쁜 입을 가진 교인들이 더 많습니다. 교회를 찾으면 마음이 편하고, 예배를 드리면 감사가 넘치고, 말씀을 들으면 깨달아지며 새로운 결단을 하게 되고, 힘이 들어도 봉사하는 기쁨이 있고, 헌금을 드려도 부족함에 죄송한 마음이 들고, 자신이 좋은 교회에 출석하는 자부심이 생기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까'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는'중심'과 '초점'이‘예수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중심입니다(히12:2). 좋은 교회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만 바라보는" 교회입니다(히12:2). 예수님 중심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움직여 가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상적인 교회, 완전한 교회는 이 땅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영암교회도 흠이 많습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아서 방주 속에 각종 짐승들이 들어갔던 것처럼 각종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거기에 냄새도 나고 시끄럽기도 하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까?" 노력하며 애쓰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사귈까, 기도하고 감사하며 사는 사람을 사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까”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꿈은 “내가 되고 싶은 것, 내가 꿈꾸고 있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일까?”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견고히 서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이 배웠어도 경험이 많아도 이 세상이 쉽지 않습니다.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이 세상은 살기가 어렵고 살벌합니다. 우리보다 똑똑하고 잘 난 사람, 큰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자기 자신을 메뚜기로 여기며 살면 안 됩니다.' 세상이 높고 잘난 사람이 많아도, 비록 힘이 들고 어렵지만, 가족의 문제, 자녀, 사업 등에 문제가 있고, 삶이 힘들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나와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이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롬8:28). 비록 이 땅의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드시고(시55:22)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요14:18)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신이 메뚜기인가? 아니면 저들이 자신의 밥인가요? 하는 그것은 여러분이 비전을 가졌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습니다. 자신을 메뚜기로 보고 사십니까? 아니면 저들을 밥으로 보십니까?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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