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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좋은 교회 (롬 15: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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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한 십 년 전에 미국 플로리다 주에 있는 어느 미국인 교회의 주일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을 때였습니다. 텔레비전 방송에도 정기적으로 나오는, 세계적으로 아주 유명한 개혁주의 신앙 노선의 교회였습니다. 저는 제가 처음 참석해 보는 그 교회 주일 예배, 그리고 주일 밤예배를 통하여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나같이 은혜롭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참 좋은 교회구나’하는 느낌을 처음부터 끝까지 가득 채워줬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쓰면서도 바로 그와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이 로마서의 결론 부분에 와서 그 로마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권면하고 부탁하는 말만 보아도, 사도 바울이 그 로마교회를, 아직까지는 한 번도 직접 방문해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높이 평가하고 있었는지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좋은 교회’란 오늘날 역시 어떤 교인이라도 찾고 싶은 교회이며 어떤 목사라도 세우고 싶은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까?

1.오직 하나님의 말씀에만 순종하는 교회

14절부터 18절에 로마 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는 평신도들의 영적 수준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그들 모두가 각각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에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가 될 정도였습니다. 사람이 제대로 남을 가르칠 수 있게 되려면 그저 성경 지식만 많이 가진다고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보다는 먼저 자기 마음속에 ‘선한 영적 성품’이 가득 넘치는 것이 필수 조건인데, 로마 교회 교인들은 이것이 이미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처럼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울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이 로마서를 썼다고 했습니다. 이미 배웠고 다 알고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말씀으로 재교육 받고 재무장시키고자 하는 것이 바로 사도 바울의 의도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그의 본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라는 말이 바로 그 뜻인데, 여기서 ‘은혜’란 바로 자기가 받은 사도 직분을 가리킵니다. 즉 아무리 영적 성품이 좋고 영적 지혜가 충만한 신자라 하더라도 사도 바울은 여전히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더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수준 높은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도 조금도 거리낌 없이 그저 담대히 이 로마서를 써서 보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며 복음의 제사장된 사도로서는 절대로 등한시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였습니다.

제사장직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그 사역을 수행했지만, 이제 신약 시대에 복음의 제사장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으로써 그 똑같은 사명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제물이 될 수 있도록, 즉 성령 안에서 거룩한 제물로 만들기 위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력을 다해 말씀으로 가르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처럼 말씀전파를 자기 사명의 핵심으로 알고 사역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이 거기에 항상 함께 있었습니다. 여기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세속적인 자랑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셔서 일하고 계신다’ 라는 사실만큼은 참된 전도자의 유일한 자랑이요 긍지입니다.

로마서를 쓴 목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로마서에는 많은 교리가 가르쳐지고 있으며 특별히 구원론이 아주 자세하고도 강력하게 선포되었습니다. 아무리 로마 교회 교인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지혜가 차고 넘친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배워야 하는 점에 있어서는 열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바른 구원론을 더 정확히 깨닫고 믿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교인이 아무리 많이 자라고 성숙했다 할지라도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는 법’은 여전히 더 배우고 계속 익혀야 할 과제일 뿐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영적으로 성숙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더 정확하게 가르침 받아야만 할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신학교에서 성경을 체계적, 교리적으로 정확히 잘 배우고 복음 전파 사명에 전무하는 목사를 통하여 성경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이 백번 지당한 일입니다.

‘민주적인 교회’라는 말은 참 듣기도 좋고 이상적인 교회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실상 그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원칙은 필연적으로 ‘사람 중심의 교회’를 만들며 늘 시끄럽고 불안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직 철두철미하게 ‘성경적인 교회’가 되어야만 교회는 진정 하나님 중심의 기반이 튼튼한 교회가 됩니다. 모두다 그저 하나님 말씀을 더 많이 배우고 더 잘 순종하는 자세 한 가지만 지킬 줄 아는, 실로 영적으로 수준 높고 기본기가 알차게 잡혀 있는 좋은 교회를 함께 세우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세계 선교를 위하여 힘을 쓰는 교회

19절로부터 24절, ‘예루살렘’은 바울이 전도 사역한 지역 중에서 동남쪽 끝에 있었으며, ‘일루리곤’은 오늘날의 유고슬라비아와 거의 같은 지역인데 그의 사역지의 서북쪽 끝에 해당되었습니다. 이제까지 사도는 바로 그 사이에 있는 소아시아 지역을 편만하게, 즉 구석구석 빠짐없이 전도해 왔던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이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남들이 전도하여 세운 곳에 이중으로 사역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하지만 문맥상에서 볼 때에 사도 바울의 의도는 목회자들 간의 경쟁을 피하려 했다기 보다는, 이미 전도된 지방은 피하고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곳을 우선적으로 찾아가서 전도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에 있다고 보입니다. 즉 어찌하든지 더 많은 지역에 남김없이 복음 전파되기를 위해 모든 최선과 우선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길이 막혔더니”라는 말도 바로 그런 맥락에서 해석해야 합니다. 이미 로마에는 교회가 설립되어 있었으며 그 교인들의 영적 수준도 훌륭하다고 소문이 나 있었던 까닭에 사도 바울은 굳이 그곳을 방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그보다도 더 급한, 즉 복음 전도 미개척지가 산재해 있는 와중에 로마를 방문할 겨를도 없었던 것입니다. 일단 소아시아 지역 구석구석을 먼저 전도하려는 것이 사도 바울의 사명의 급선무였고 또한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사야서에 예언된 말씀대로 주의 소식을 아직 받지 못하고 듣지 못한 자들이 복음을 보고 깨닫게 되는 전 세계 선교가 더욱 빨리 진척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는 이 지방, 즉 지금 바울이 로마서를 쓰고 있던 고린도와 그 부근 아가야 지방에서 더 이상 “일할 곳이 없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즉 그 지역에서는 복음 전파가 안 된 곳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러 해 전부터 소원해던 로마교회를 한번 방문해 보고자 했습니다. 그 목적은 두 가지인데, 첫째는 “약간의 만족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잠시 동안 기쁨을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토록 평판이 좋은 교회를 직접 찾아가서 신앙 좋은 교인들을 만나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사도 바울 같은 전도자에게는 더할 수 없는 큰 기쁨과 힘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는 더 큰 목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그 로마교회를 자신의 선교사역 확장을 위하여 쓰이게끔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서바나 즉 오늘날의 스페인은 그 당시 로마세계에서 서쪽 끝이었으며 사도 바울의 마지막 선교 목표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그 전도여행의 방향을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정해 주셨는데, 그 끝이 바로 서바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시대의 마지막 선교 목적지인 서바나 전도를 위해 이 로마교회를 선교 기지로 삼고자 하는 뜻이 있었습니다. 여기 “보내 줌을 바란다”라는 말은 곧 재정적 후원을 뜻합니다. 실제로 사도행전 끝에 보면 그가 정작 로마로 가게 되었을 때 로마교회 교인들이 얼마나 그를 극진히 환대해 주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 로마교회이니만큼 자신의 서바나 선교에도 큰 도움이 되어 줄 것이라고 바울은 확신하면서 솔직한 요청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는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는 선교 확장의 사역에 쓰이기에는 최적의 모든 조건들을 고루 갖춘 요충지였습니다. 그런 로마에 정말 훌륭한 교인들이 모인 좋은 교회가 서 있었고, 사도 바울은 그 교회가 반드시 세계선교를 위해 사용되어져야만 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통 ‘좋은 교회’라고 할 때에는 본 교회 교인들에게 영적으로 은혜를 끼치고 그 삶에 만족과 기쁨이 넘치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아무 부담 없이, 그저 내 편안하게 출석만 할 수 있게 해 주는 교회가 어디일까 하고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교회는 사실상 교인을 살만 찌우는 교회인 줄을 알아야 합니다. 꼴을 배불리 먹고 풀밭에 누워 놀기만 하는 게으른 양들만 양산시키고, 그 양들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로 제단에 올리지는 아니하는, 실로 불충하기 짝이 없는 교회인 것입니다.

정말 좋은 교회란 결코 자기 교회 내실만을 잘 다지는 데서 만족하거나 끝나지 아니하고, 반드시 밖으로 눈을 돌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미 세워진 기성 교회 유지에만 급급해서는 결코 아니 되며 어찌하든지 택자를 찾고 구원해 내는 일에 그 힘을 쓸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까닭에 진짜로 좋은 교회는 반드시 이웃 사회를 전도할 뿐 아니라 땅 끝까지 선교사를 보내는, 이 주님께서 내리신 지상 명령 수행에 총력을 기울이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의 우리 조국은 영적으로, 그리고 실제적으로 이미 세계선교의 중심지가 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거기에다 이 대한민국의 경제발전과 자유민주사회는 우리에게 더욱 좋은 조건을 제공해 줍니다. 이처럼 시대적인 사명이 명백함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만약 자기 지역사회에서 평판 좋은 교회로 알려지는 정도를 두고 만족하거나 교만해 한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3. 자기 교회만 알지 않고 다른 모든 참된 교회들과 교통할 줄 아는 교회

25절 이하 29절에 사도 바울은 로마행을 마음에 품은 채 일단 예루살렘을 먼저 방문코자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교회들이 모은 구제헌금을 우선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28절부터 30절 말씀에 보면, 로마의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큰 흉년이 들어 예루살렘 성도들이 곤란이 컸던 적이 있었는데, 이방 지역의 교회들이 이들을 위하여 특별헌금을 모았습니다. 복음 안에서 서로 빚진 자로 여기는 교회들은 자연스럽게, 당연히 하는 사랑의 교통입니다.

바울은 비록 이방인 중심 전도를 하고는 있었지만, 복음의 원 가지가 된 예루살렘교회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았고, 또한 이방인 교회의 교인들에게도 늘 그처럼 가르쳤습니다. 여기 그 헌금을 두고 ‘열매’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복음을 전해 준 결과로 나타나게 된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바울은 그처럼 예루살렘교회에는 사랑의 헌금을 전달하고, 이어서 로마교회를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충만한 축복’을 또한 전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헌금 전달보다도 사실상 더욱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로마교회가 사도 바울을 통해 똑같은 복음의 영적 축복을 충만하게 전달받아 흩어져 있는 초대 교회의 지교회들이 영적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이런 모든 일들을 위하여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기도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 30절로부터 33절의 말씀에 “힘을 같이 하여...빌어”란 말은 ‘씨름을 같이 하듯이 기도하다’라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예루살렘을 방문할 때에 “유대의 순종치 아니하는 자” 즉 불신 유대인들의 박해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도록 자신의 신변 안전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대한 나의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음직하게” 되도록, 즉 예루살렘교회에 그 구제헌금을 전달하는 사역이 잘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참된 교회의 성도들이라면 늘 자기 교회 일처럼 모든 기도의 힘을 모아야 할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로마교회였지만, 사도 바울은 그 로마교회도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기도해 줄 교회인 줄을 알았습니다. 로마교회는 그처럼 당시의 다른 초대교회들과 늘 같은 복음의 은혜를 나누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영적으로는 이미 교통하고 있는 우주적 교회에 속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교회 목사는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하면서도 그 교회를 방문하는 목사는 귀찮게 여기는 교인들도 세상에 있기는 있습니다. 자기 교회를 위하여서는 밤낮으로 기도하면서도, 교단의 교회들과 세계의 참된 교회들을 위하여서는 기도할 줄 모르는 욕심쟁이 교회도 있기는 있습니다. 자기네들끼리는 정말 가족 같은 교인이요, 사랑스러운 교회라고 하겠지만, 결코 ‘진짜로 좋은 교회’는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교회가 정말 좋은 교회이겠습니까? 교인 많이 모이고 목사 사례 많이 주는 교회가 목사에게 좋은 교회가 되겠습니까? 자체 예배당이 세워져 있어서 건축헌금 할 걱정 없는 교회가 교인들에게 좋은 교회가 되겠습니까? 교인들의 기본기가 잘 다져진 좋은 교회란, 모든 교인들이 다 똑똑해서 그 말들을 모아서 이끌어져 가는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인들이 그저 잠잠하게 성경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할 줄만 아는 교회입니다.

내실이 튼튼한 교회가 된다는 것도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 튼튼한 내실이 밖으로 활용되어 세계선교에 구체적으로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만 진짜 좋은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전 교인들이 자기 교회와 담임목사와 교인들을 사랑하는 것도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한 일이지만, 진리와 행동을 같이 하는 교단의 교회들과 늘 선한 사업에 동참하며 또한 교단은 달라도 참된 복음 안에 이미 하나가 되어 있는 세계의 모든 교회들과 기도를 통하여 교통할 줄 아는 교회가 정말 훌륭하고도 좋은 교회인 것입니다.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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