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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죄 씻음의 비결 (마 5:4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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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지난주에 이어서 아이들 기도 몇 가지 더 소개합니다.

하나님. 레모네이드를 팔고 26센트를 벌었어요. 이번 주일에 쬐끔 드릴께요. -크리스-

하나님, 제 친구 아더가 그러는데요.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는 꽃을 다 만들었대요. 꼭 거짓말 같애요. -벤자민-

사랑하는 하나님. 감기에 걸리면 뭐가 좋은가요? -룻-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한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가이-

하나님, 하나님. 왜 밤만 되면 해를 숨기시나요? 가장 필요할 때인데 말이에요. -바바라-


집집마다 다녀 본 결론은 부부가 50 대 50으로 서로 양보하고 사는 집이 가장 좋습니다. 서로에게 ‘상처’ 받는다고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부부는 ‘일심동체’입니다. 내 안에 있는 다른 나, 그가 내게 이런 저런 비판도 한다고 생각해야 발전이 있습니다.
남들이 둘중 하나를 비판할 때 그래도 부부는 서로 도와 변호해 주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이상적으로 균형 잡힌 가정은 5%도 채안됩니다. 그렇다면 남자나 여자 어느 한 쪽이 주도권을 가집니다. 남자가 잡고 사는 가정도 보았고, 여자가 잡고 사는 가정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집안 꼴이 되기 위해서는 여자가 잡는 편이 훨씬 낫습디다.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돕는 배필’로 지으셨거든요. 여자가 남자보다 더 우수하기 때문에, 여자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지혜입니다.

어떤 아내가 남편을 참 사랑합니다. 음식도 늘 챙겨주고, 어디 나갔다가도 남편 돌아오기 몇 시간 전에는 꼭 돌아와서 집안을 아늑하게 합니다. 어째서 그럴 수 있느냐고 친구가 물었던 모양입니다. 대답이 걸작입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러셨잖아!”

오늘 본문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우리 주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까지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끼리만 사랑하면 그건 남들보다 잘하는 것이 하나도 아니다. 너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라. 그를 사랑하라. 힘써 사랑하라.”

만일 이것만 이뤄진다면 이 세상은 정말 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가정이라면 “가정천국”이요, 회사라면 “회사천국”입니다. 학교라면 “학교천국”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 이것은 우리가 인생의 ‘목표’로 삼아야 할 좋은 일입니다. 이것만 된다면 여러분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다른 어떤 조건이 다 갖춰져도 원수가 원수로 남아있다면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부족해도 원수를 사랑할 수 있다면, 성공했습니다. 이제 일평생 붙들고 살아갈 기도 제목 생겼습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죄가 우리를 원수 맺게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했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하와에게 그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이 경우, 하와가 아담의 원수입니다. 하와가 아니었다면 아담은 그 선악과를 먹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와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뱀에게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이 경우 뱀이 하와의 원수입니다.

이제 여자와 뱀의 관계는 원수지간입니다. 여기서 뱀은 ‘사탄의 세력’을 대표하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죄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러므로 사탄과는 ‘화해’할 수 없습니다. 사탄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담과 하와의 관계입니다. 서로 책임을 전가하기로 하면, 원수관계를 풀 길이 없습니다.

“내 탓입니다.” 이것이 돼야 합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원수 맺게 된 것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상’이요 ‘증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 된 관계가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사가 아니더라도 증상(symptom)과 문제(disease)를 구분합니다. 우리교회 의사-간호사가 많은데, 잘못하면 실수하는 건 줄 나도 압니다.

예를 들면, ‘열’은 문제 자체는 아닙니다. 그건 증상입니다. 열이 났을 때, 사람들은 열을 좋게 생각해야 합니다. 잘 다뤄야 합니다. 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1. 우선 몸에 어떤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도로에 신호체계가 망가지면 혼란이 옵니다. 도로 신호로 치면 열은 ‘붉은 신호등’입니다.

그런데 몸에 이상이 왔는데 열이 나지를 않는다면 그건 큰일입니다. 자가진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자가진단은 중요합니다. 의사에게 가기 전에 스스로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병원을 찾습니다. 의사도 “어디가 어떻게 아프십니까?” 묻습니다. 영어를 모르는 환자들이 벽에 써 붙이는 것은 “아프다” 그런 내용이 중심입니다.

2. 열이 난다는 것은, 몸 안에 항체들이 병원균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열이 날 때, 열 자체를 문제로 삼아선 안 됩니다. 열은 나야 합니다. 열이 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우리가 건강하니까 열도 납니다. 열 낼 에너지가 없다면 그냥 차갑게 식어가고 말겠지요.

원수.
사탄 마귀가 아니라면 어떤 인간 사이에 맺어진 원수라도 그것은 ‘증상’입니다.
증상을 감사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해 주시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무릎 꿇어야 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된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를 용서하고, 그를 사랑해야 합니다.

싸움닭을 가만 봅시다. 그들은 원수 맺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공중에 집어던지니까, 서로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정말 잘못된 싸움입니다.

원수는 원수가 아닙니다. 그 뒤에 숨어서 조종하는 사탄이 원수입니다.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6.25 전쟁에 대해서도 그런 시각이 있습니다. 남북을 분단시킨 것은 우리가 아니라 미국과 소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끼리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물론 북한의 소수의 지도자들, 즉 김일성과 김정일을 비롯한 소수는 악한 사람들입니다. 그들과 대다수의 북한 주민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할 이유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악한 무리를 제거하고 나면 우리끼리는 화해해야 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히틀러와 소수의 지도자들을 제고하고 난 독일을 우리가 용서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일본도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일본 사람들은 선량합니다. 일본 사람이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일본놈” 내지 “쪽발이” 라고 부르면서 미워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내가 만난 일본 사람들 중에 정말 신사들이 참 여럿 있었습니다.

영적인 문제로 돌아갑시다.

원수 마귀는 끝까지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마귀와 상대하여 우리가 얻을 것은 ‘승리’ 말고 없습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합니다.

마귀도 우리를 완전정복 하기 전까지는 도전을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을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하신 주님의 ‘경고’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정말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큰 싸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안일을 보면, 어디 심각한 일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사소한 일인데, ‘감정’으로 옮겨 붙어서 본격적인 싸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대범한’ 남자들이 큰 마음을 먹으면 됩니다. 아무리 째째해 보이는 남자라도 통 큰 여자보다 마음이 넓은 법입니다. 그게 하나님의 창조 섭리입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먼저 큰 도량을 보이십시오.

흔히 ‘아이들 싸움이 집안싸움 되고, 집안싸움이 동네싸움 된다.’ 그러지 않습니까? 아이들이 싸우는 거야 빤한 것 아닙니까? 먼지처럼 작은 일로 동네가 싸움판에 말려든다면 그보다 억울한 일이 또 있을까요?

현상, 혹은 증상에 매달리지 맙시다. 우리에게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현상과 실체를 구분할 수 있는 지혜 말입니다. 증상에서 문제를 찾아내는 지혜, 그런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에게 없다면,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죄가 문제입니다.
모든 경우에 숨어있는 문제는 죄입니다.

현상은 메시지입니다. 현상/증상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걸 무시하면 안 됩니다. 거기 메시지가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현상/증상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의 ‘행동’으로 옮겨야 할 내용입니다.

스스로 돌아보십시오. 우리 앞에 문제처럼 다가오는 산더미 같은 걱정거리는, 다름 아닌,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라는 것,” 바로 그런 ‘메시지’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탕자의 비유”가 들었습니다.

환경과 여건을 통해, 그는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잘 나갈 때는 몰랐던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자기가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함을 알았습니다. 그래야 살 길이 있음을 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돌아설 시점을 파악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바로 여기서부터 은혜입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그 밖의 여러 환난과 고난, 눈물과 고통은 다 증세입니다.
증세에서 우리는 메시지를 읽으면 됩니다. 증세 자체는 가치중립입니다. 그것에 매달릴 이유가 없습니다.
“죄”를 지적하는 메시지, 십자가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는 메시지입니다.

가만 보면 사람은 누구나 ‘실패자’입니다. 잊고 살거나, 세상의 열락에 젖어서 그렇지, 맨 정신으로 보면 사람은 누구나 ‘죄인’입니다. 이런 죄를 품고 사는 사람이 구원받을 길은 오직 십자가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뿐입니다.

현상에 급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은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열입니다.

물론 열이 높아져서 다른 side effect가 생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껏해야 죽기밖에 더하겠습니까?

문제는 죄라니까요. 우리의 영혼을 영원토록 죽음에 몰아넣는 존재,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죄를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그 죄를 사함 받아야 합니다.

원수요?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를 만났을 때, 우리는 “내가 죄인이다!”를 깨달아야 옳습니다. 아니라면, “저 사람이 나쁘다!” 해야 하는데, 그런 판단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지를 않으셨습니다. 

좋은 시 한편이 중앙일보에 났더라고요. 소개해 드리지요.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성미정(1967∼ )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이
당신도 언젠가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참 좋은 시입니다. 이런 좋은 시를 통해서 부부가 더 가까워지면 좋겠습니다.

부부가 참 사랑을 회복하면, 여러 인간관계 속에 맺혔던 것이 하나 둘씩 풀리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끝까지 남는
것은 부부더라고요. 그러니까 열심히 사랑하십시오.
건강할 때 사랑하십시오.

지난 금요일에는 내 지도교수 Marvin L. Chaney 박사의 고별예배가 있었습니다. 그의 나이 이제 66세인데 은퇴합니다. 미국은 정년이 따로 없습니다. 앞으로 10년도 더 일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은퇴 계획을 말하기에 왜 그러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젊고 힘이 있을 때 아내와 함께할 시간을 더 가지고 싶어서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제 만난 사모님은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세 딸도 각각 남편들과 대동하고 나왔는데, 보기가 여간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아름답고 귀한 가정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고, 여러분의 인생이 참으로 복되시기를 빕니다.

기도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원수를 용서하고, 서로의 잘못을 이해하는 너그러움을 주시옵소서. 내 속에 있는 죄의 본질을 직시하고, 죄 사함 얻도록 십자가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은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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