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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돌을 버리는 자가 받는 은혜 (요 8: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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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자기 허물이 숨겨졌으면,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감추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은 세계 어떤 지도자들이나 세계 어떤 능력 있는 사람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자기의 약점이 감추어졌으면 하는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의 작은 일이라도 좋은 점들은, 잘 하는 것들은 드러났으면, 알아주었으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이 되고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또한 반대로 자기의 허물은 숨겨졌으면 하고, 자기의 허물이 감추어졌을 때가 좋으면 남의 허물도 감추어져야 좋은데, 남의 허물은 드러날수록 신나해 합니다. ‘누가 어땠데 어땠데’ 하는 우리나라를 어땠데 사회라고 합니다. ‘누가 어땠데 저땠데’ 그러면 그렇게 밥맛도 좋고 잠도 잘 오며 모두 기분이 좋아 합니다. 남의 일에, 그 사람은 고통을 당하는데 모두 다 즐거워합니다. 또한 남이 잘되는 것을 모두 다 기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잘되고 성공하면, 누가 칭찬해주고 박수해 주리라는 기대를 하지 마십시오. 그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이번에도 어떤 정치인이 4억이 담긴 상자를 자동차에서 넘겨주다가 그만 어떻게 이것이 들켜졌습니다. 경찰이 현장을 덮쳤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붙잡혔습니다. 저는 그걸 보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는지 모릅니다. 거기까지 올라가기가 얼마나 어렵고, 그 자리가 얼마나 귀한 자리인데, 우리 온 국민들은 신나합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들은 얼마나 밤을 새워 울까, 얼마나 가슴을 칠까,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비탄에 빠질까?’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이 붙잡혀 왔습니다. 지도자들이 모두 다 그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 시민들이 모두 다 돌을 들고 모였습니다. 모두 다 흥분합니다. ‘저런 여자는 죽어야 된다.’, ‘말세다’, ‘원래 쟤가 여고 다닐 때부터 저랬다’고 모두 다 야단입니다. 세계의 언론들이 모두 다 집합을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이곳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본문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행하신 것을 주시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방법으로 보아야 하고 주님의 방법으로 사람을 구원해야 합니다. 주님은 한 시간 이내에 죽을 수밖에 없는 돌 더미 위에 비참하게 피 흘리며 쓰러져야 할 이 여인을 상처 하나 없이 건져내시고, 많은 군중들도 모두 다 집으로 조용하게 돌려보내는 사건이 오늘 본문입니다. 이 여인은 구원함을 받아야 할 여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의 편에 섰습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 이 여인을 바라보고 웃으며, 즐기고 만족하는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의 대지를 길게 잡았습니다.

  첫째, 주님이 주신 말씀은 이 여인을 향하여 돌을 던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마귀에게 이끌려 죄를 짓고 마귀에게 이용당하다가 마귀에게 버림 받은 불쌍한 여인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사람만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을 떠나 범죄한 모든 사람은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부모 없는 어린아이만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이 여인도 불쌍한 것입니다. 굶주린 사람도 불쌍하지만 이 여인도 불쌍한 여인입니다. 우리는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돌을 들고 이 여인을 해쳐서 돌무더기를 만든다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간도 이 여인의 길을 걸어가는 수 천 만 명의 범죄한 사람들을 구원하여 내는 구원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이 민족을 살리고, 이 불쌍한 세계 수많은 사람들을 건져낼 수 있는 것이지 범죄 했다고 해서 돌을 던지면 결국 이 세상은 돌무더기 세상이 되고 한 사람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둘째, 마귀의 길은 부끄러움의 길, 멸망의 길입니다. 마귀의 길은 결국 돌만이, 돌 세례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수많은 마귀의 종 된 백성을 건져내는 구원의 손길, 은혜의 손길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여인의 죄에 대해서 모두 흥분하고 관심을 집중했습니다. 이 죄를 크게 보았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할 중요한 일들은 참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쓸데없는 일에 흥분하면서, 정말 우리가 사랑을 베풀어야 할 선한 손길은 외면합니다. 이 자리는 온 시민이 모두 다 모이면서도 정말 굶주리고 헐벗으며, 밤새워 눈물 흘리고 부모 이웃도 없이 아무 도움을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이 어린 생명들을 모두 외면하고 있습니다. 좋은 일이, 사람을 살리
는 일이, 아름답고 거룩한 일이 얼마나 많은데 사람들은 이런 곳으로 가지 않고 이런 일에는 흥분하지 않으며, 이런 일에 시간을 바치지 않고 헛된 일에 시간을 바칩니다.

  세 번째 말씀입니다. 이 여인만이 죄인인 줄 알고 있습니다. 모두 이 여인의 죄만 크고 죽어야 할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모두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하시고 허리를 숙여서 글을 쓰셨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보일 수 있도록 손가락으로 크게 쓰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지금 어떻게 하느냐? 모두 이걸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하는 대로 모두 가서 보니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죄를 모두 다 쓰시는 것입니다. ‘김과장! 너는 천호동 사거리 술집에서 개떡같이 한 것을 너는 모르냐?’ 다 적는 것입니다. 한 사람에 관한 것이 보통 열 개 스무 개가 넘는데 쫙 적어 내려갑니다. ‘김집사! 너 집사이
지만 너도 잡사야. 전에 너는 그런 거 없었냐?’ 하고 주욱 적어 내려갑니다. ‘김목사! 너는 완전하냐? 너도 형편없지 않냐?’ 하고 모두 다 적어갑니다. 너무 너무 주님이 잘 아시니까 사람들은 모두 다 돌을 버렸습니다. 그 여자보다 더 나쁜 죄인들이 모두 돌을 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짜 의로운 분은, 정말 죄 없는 분은 돌을 들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정말 죄가 없으시니까 돌을 안 드는 것입니다. 죄 있는 분이 죄인에게 돌을 던집니다. 죄가 이렇게 우리를 흥분하게 합니다. 우리의 죄, 악함, 불의함이 우리 이웃을 정죄하고, 상처를 줍니다.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내 안에 넘치는 죄악이 모든 사람에게 돌을 던지게 합니다. 돌을 제거하고 버려야 합니다. 돌이 없는 가정,
돌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네 번째입니다. 이 세상에 죄 있는 사람은 모두 다 죽어야 하고, 의인만 사는 것인 줄 알면 잘못 생각하는 것입니다. 죄 있는 사람은 모두 다 감옥에 가두고 거룩한 사람만이 사는 것이 세상이 아닙니다. 무식한 자는 모두 다 필요 없고 모두 다 유식한 자만 필요하며, 가난한 자는 필요 없고 있는 사람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불구자와 장애인은 필요 없고, 건강한 사람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세상이 아닙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 거짓된 자와 진실한 자, 죄인과 의인이 함께 서로 사랑하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눈이 먼 장님이 있었습니다. “저 사람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선생님!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고, 저 장님 시각 장애인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기 위하여 그의 눈이 어두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의 눈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피조물로서의 우리를 보면서 서로 사랑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조금이라도 남에게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것이 내 몸에 있다면, 우리는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어떤 교인은 병원에서 완전히 움직이지 못하고 암 환자로 누워 있으면서도 편지를 써서 ‘예수를 믿으세요. 구원을 얻습니다.’ 하고 창밖으로 하나씩 던졌습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래도 예수 믿어 구원함을 얻도록 사명을 다 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를 들어보셨습니까? 월남전에서 부상을 당해 양쪽 다리를 위까지 모두 다 절단한 청년이 미국 4천 3백 킬로미터를 3년 8개월 동안 손으로 걸어 다니면서, 다리를 가지고도 모두 불행해하고, 원망, 불평하며 죽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희망을 가지십시오. 용기를 가지십시오. 나는 다리가 없어도 손으로 4천 킬로가 넘는 길을 걸어갑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러분! 내게 다리가 없으면 손이 있을 수 있고, 내게 재산이 없다면 건강이 있을 수 있는 것이며, 내게 무엇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그것 가지고도 남에게 나누어 주며, 사랑해 줄줄 아는 이런 축복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돌이 없어야 합니다. 돌을 버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주님이 갇힌 자를 돌아보고 옷 없는 자에게 옷을 입혀 주며,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부모 없는 자를 위로해주며, 많은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 줄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쁨과 축복이 어디에 있습니까? 오늘 우리와 이 사회, 우리나라가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의 눈으로 보고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나아갈 때, 우리 모든 공동체는 희망이 있고 소망이 있으며, 그리고 미래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다섯째, 오늘 우리는 너무나 돌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증오의 돌, 생긴 대로 너무 부딪히는 돌들이 우리의 위를 하늘을 덮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 놓고, 왜  이렇게 잘못된 길로 빠져들고 있습니까? 여러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2차 대전 이후에 세계 2 백 개국 가운데 민주주의와 경제성장과 그리고 기독교의 부흥을 가져온 나라는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합니다. 경제는 10위권으로 들어갔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가 10위권으로 왔습니다. 일본은 지금 잘 살지만 그 때 이미 2차 대전 때 잠수함 만들고 비행기 수 천대 만들었던 나라입니다. 그러니까 일본이 위로 올라 온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금 올라 온 것입니다. 여러분! 민주주의는 우리나라같이 이런 막가파 민
주주의가 없습니다. 진짜 마구 살아도 되는 나라입니다. 민주주의는 몇 가지 자유가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종교의 자유 이런 몇 가지 자유인데, 지금 마음껏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선교는 우리나라가 지금 세계에서 미국 다음으로 많이 합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았는데 오늘 우리의 삶은, 실지로 우리의 경험은 너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너무 우리가 돌을 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스승과 제자가, 노사가, 정치가 돌판 입니다. 마구 던집니다. 정치는 정적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그랬습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파트너입니다. 여, 야가 파트너입니다. 그래서 스포츠도 정적이 아닙니다. 옛날의 스포츠는 죽이고 자기가 노예 신분에서 벗어나서 해방되는, 그런 입장을 가지고
게임을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스포츠도 파트너입니다. 같이 모든 국민들이 이 그라운드를 기쁘게 박수치게 만들어야 됩니다. 정치도 돌을 던지면 안 됩니다. 돌당이 되면 안 됩니다. 사랑의 당,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당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이 교회까지도 우리 한국 교회가 지금 막 돌 던지고 강단에서도 목사님이 마구 돌 던지고 받아라 하며, 밑에서도 목사님을 소송해서 얼마나 이런 고통을 당하는 교회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축복, 사랑, 소망이 넘치는 나라, 하나님이 주신 이 무한한 축복을 함께 나누는 잔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섯 번째입니다. 돌을 버리면 축복이 옵니다. 가정에 돌을 버리십시오. 힘주지 마십시오. 자녀를 돌로 기르지 마십시오. 아내에게 돌 던지지 마십시오. 입에도 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마구 돌이 나가는 것입니다. 입으로 사랑, 감사, 기쁨, 애정을 표현하십시오. 돌이 전혀 없는 꽃을 전달하십시오. 우리 눈에도 얼마나 돌이 많이 들어 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안됩니다. 눈에도 돌을 모두 다 제거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도 돌이 너무 많습니다. 교회도, 길거리도 우리가 돌을 제거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옵니다. 손에 돌을 제거해야 합니다. 돌이 있는 정치, 사회는 안 됩니다. 아프리카를 연구한 분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말합니다. 아프리카가 기근에 처하는 한 가지 원인은 돌 때문이라고 합니다. 부족끼리 싸웁니다. 엄청난 지하자원, 지금 나이지리아 같은 나라는 세계에서 두 번째 갈 정도로 석유가 난다고 합니다. 이런 자원을 가지고도 자꾸 돌을 던지니까 어려움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피 흘리신 손으로 우리 인류를 구원하시고 주님은 돌 하나 없이도 이천 년 동안 왕의 왕이시며, 그 앞에 모두 무릎을 꿇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 손 아래에 우리가 모입니다. 돌이 없는 그에게 우리 모두가 참여합니다. 돌이 없는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돌이 없는 나라가 영원히 번영합니다. 저는 농촌에 있어서 잘 압니다. 밭 가운데 제일 못 쓰는 밭은 자갈밭입니다. 돌이 있으면 밭도 곡식도 안 됩니다. 우리 가정도 자갈밭 되면 가정이 안 되고, 사회도 자갈밭 만들면 안 됩니다. 옥토는 무엇입
니까? 힘이 없는, 전혀 힘이 없는 흙이 모여야 그곳이 비옥한 땅이 되어 30배 60배 결실을 맺고, 내 잘났다고 하는 돌이 있는 곳에는 생명 하나라도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힘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돌이 있으면 모두 다 해결된다고, 돌이어야 된다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우리 인간은 너무나 귀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 짐승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여러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장발장’ 이 사람은 자기 가정에 남매들도 많고 식구가 많아 노숙자로 일을 하면서 너무 피곤하며, 힘들고 먹을 것은 없으니 그래서 빵을 훔치다가 들켜서 3년 형을 받습니다. 그는 감옥에 가서도 너무 성격이 괴팍해서 어떻게 하더라도 탈출을 하려고 합니다. 19년이라는 세월을 감옥에서 지냅니다. 그는 나왔지만 아무도 받아주지 않습니다. 벤치에 앉아 있는 그에게 누가 성당으로 가라고 안내해 주어서 그는 성당에 가서 신부님의 사랑을 받고 그날 밤 신부님 댁에서 잠을 잡니다. 그러던 그날 밤 대접을 잘 받고 사랑을 받았던 이 사람은 그 성당에 있는 은촛대를 훔쳐가지고 나옵니다. 못 고칩니다. 19년 감옥에서 고칠 수 있으면 모두 다 감옥을 만들 것입니다. 이 세상은 감옥으로 돌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들겨 패고 날마다 욕하며, 짐승같이 다루는 감옥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얼마 못 가서 이 사람은 붙잡힙니다. 붙잡혀서 신부 앞에 왔습니다. “신부님! 이것 성당 것이 맞지요? 이걸 이놈이 여기서 훔쳐 나온 겁니다. 내가 잡았습니다.” 신부님이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아이고 아닌데요. 이 사람은 어젯밤에 여기서 자고 간 게 맞습니다. 제가 잘 압니다. 이건 제가 선물 한 것입니다. 제가 준 것입니다.” 장발장의 마음은 변화가 옵니다. 마음이 뭉클합니다. 19년 동안 감옥에서 억누르고 두들겨 패며, 욕하고 때리던 돌망치로는 안 되던 사람이 마음이 흔들립니다. 나중에는 시장이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누굴 고치려고 합니까? 자녀를 기를 때 흥분하고, 속상해 하지 마십시오. 원래 하나님 앞에 우리 인간은 모두 다 그렇습니다. 자녀 보면서 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거 바로 잡아야지’ 그러지 말고 못 본 척 하고 가만히 두면 하나님이 잘 길러 주십니다. 나중에 서울대학교 졸업식장에 가서 같이 사진 찍는 날이 곧 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저 인간 안 될 것 같지만 나중에 그 아이의 지도를 받아서 “어머니, 이건 그런 게 아니에요.” 그리고 가르쳐 주는 날이 금방 역전 되는 것을 알고, 자녀들이나 내 이웃이 잘못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며, 예수의 사랑과 주님의 품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치료 해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 인간은 바른 길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돌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 교회의 부흥, 은혜도 돌은 아닙니다. 국가도 우리 사회도 돌을 버려야 됩니다

  여덟 번째입니다. 옛사람은 돌을 들어야 늘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소식을 들어야 기쁨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남의 소식도 깊고, 감추어져 있는 소식을 들어야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신문보고 만족하는 게 아닙니다. 일요 신문, 주간지 그런 소식이 재미가 있게 되어져있습니다. 어디에서 만족합니까? 옛사람은 범죄에서 만족합니다. 술 취하고 방탕한데서 하나님 없는데서 만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한 여인이 이렇게 비참하게 쓰러진데서 모두 기쁨을 얻는다는 것은 원래 자기 자신이 아닌 옛사람입니다. 마귀의 종 된, 마귀에게 매여 있는 잘못된 내 자아로 인하여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기쁨을 얻고 있는 것입니다. 새사람은 어디서 만족합니까? 선한 일에, 긍휼을 베푸는데서 만족합니다. 남의 허물을 덮어 주는데서, 용서해 주는데서 만족이 옵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찬송할 때, 거룩한 길을 걸어가고 믿음으로 사는 길,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서 만족이 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옛사람으로 웃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새사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로 만족하는 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홉째,  돌을 던지면 돌은 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돌이 날아가면 그냥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돌은 언젠가 내 차례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던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랑을 던지면 사랑이 옵니다. 흥부놀부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그만 제비 하나에게도 긍휼을 베풀면 그 다음에 박을 가져와서 황금 박을 켜는 것입니다. 놀부는 부러지지도 않은 제비 다리를 부러뜨립니다. 좋은 것을 뿌려야 좋은 것이 나옵니다. 좋은 노후를 바라고 계십니까? 노후를 쓸데없이 걱정 하지 말고 좋은 일 많이 하십시오. 열매가 맺어집니다. 이 진리는 영원한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자녀 걱정 하지 마시고 좋은 일 하십시오. 내가 이 땅을 떠난 다음 자녀의 길은 하나님이 돌보아 주십니다. 천국의 길 가시려면 좋은 일 하십시오. 돌 던지지 말고 사랑을 던지십시오. 기쁨을 선물해 주십시오. 긍휼을 뿌리십시오. 그러면 하늘나라에 가서도 축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열 번째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축복, 기적, 능력은 어디서 옵니까? 돌을 버리고 오히려 돌을 들 때에는 내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자신을 치는 돌로 삼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한국에 복음이 전해진 것은 1885년입니다. 그리고 금년이 121년이 되었지 않습니까? 121년 가운데 가장 큰 사건은 한국 교회사뿐만 아니라 아시아 교회사, 세계 교회사에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그것은 평양에서 일어났던 1907년의 회개 부흥운동입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 할 수 없을 만큼 기독교 역사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평양, 신의주, 함흥, 청진으로 놀라운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여러 사람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길선주 목사님 한 분이 회개하면서 목사님이신지만 ‘나는 죄인입니다 내가 더 나쁜 놈입니다 내가 친구 누구한테 보내준 돈 내가 가로 챘습니다’ 이 말 한마디 하면서 놀라운 역사가, 성령의 역 사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가정에 기적을 원하십니까? 누구 보고 돌 던지지 말고 나 때문이라고 해 보십시오. 여러분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이 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도 누구에게 넘기지 말고 ‘내 잘못이다’라고 회개하고 일어나면, 이 나라는 세계적인 민족이 될 줄로 믿습니다. 왜 누구에게 자꾸 돌을 던지십니까? 그것은 끊임없이 무덤만 만들 뿐이고 상처만 주며, 고통만 주는 끊임없는 아픔만 가져다 줄 뿐이지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열 한 번째 입니다. 기독교는 화목케 하는 종교입니다. 다 같이 사는 종교입니다. 모두가 다 살 수 있는 길을 주님은 열어 주셨습니다. 주 안에서 모두에게 길이 있습니다. 황희 정승은 참 인자하셨다고 합니다. 하루는 그 집에 하인 두 사람이 늘 싸우는데 젊은 하인이 와서 “아이고~ 주인님! 내가 저 늙은 사람 때문에 못살겠습니다.”라고 마구 공격합니다. 나쁘다는 것입니다. “아~ 그런가? 자네 말이 맞네. 자네가 맞아. 자네가 잘했어.” 또한 늙은 종이 와가지고 “아~ 저 사람은 인간도 아닙니다. 완전히 나쁜 놈입니다.”, “맞네. 자네 말이 맞네. 참~ 자네가 착하네.” 이걸 지켜보던 부인이 “여보! 뭔가 말을 바로 해야지. 모두 다 맞다고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러면 됩니까?”라고 하니깐 황희 정승이 가만히 들어보니 “자네 말도 맞네 .모두 다 맞네.” 모두 다 맞는 것입니다. 젊은 사람이 잘못했다고 쫓아내고, 늙은 사람이 잘못했다고 쫓아내며, 부인도 쫓아내고 그러면 자기 하나 남습니다. 우리 모두 다 맞습니다. 말은 다 맞습니다. 그래서 같이 살아 됩니다. 사랑해야 됩니다. 모두 다 틀려도 함께 살아야 합니다.

  이번 부활절 연합예배가 참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지도자들이 싸우는 건 지도자들이 싸우는 것입니다. 우리 교계도 KNCC와 한기총이 부활절 예배를 연합으로 드리지 못하고 17년 동안 하나가 되지 못하다가 이번 잠실에서 17년 만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수요일 날 국가 조찬기도회를 하는데 대통령께서 이 말씀을 하십니다. “제가 텔레비전을 보니까 한기총과 NCC, 보수하고 진보하고 영원히 같이 못 갈 줄 알았는데 하나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걸 보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 ~하나가 될 수 있구나. 우리나라도 진보와 보수가 계속 이러지 말고 하나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가 찾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가 하나 되는 모습이 나라의 지도자에게도 영향을 준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달라도 같이 모일 수 있고 하나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 얼굴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생각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자녀♬ 대통령께서 또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도 과거의 지도자들도 그 시대에 훌륭히 사명을 모두 다 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에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거는 모두 다 나쁘고 과거는 모두 다 정리해야 한다’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늘 이만큼 잘 사는 것은 누가 한 것이 있지 않느냐는 말이 됩니다. 꼴통 보수? 꼴통이 없으면 어떻게 삽니까? 꼴통 때문에 이만큼 살았지 않았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이걸 인정해 주니까 그러면 그 말 한마디에 나라가, 분위기가 좋아집니다. 저는 국가 조찬 기도회와 이번 부활절 예배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이 나라를 축복해 주실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같이 화목하게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우리가 조금 잘 한 것 무슨 의미가 있고, 조금 잘 나고 조금 의로운 것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마지막 결론을 맺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이 불쌍한 여인이 있는 곳에 주님이 오셨습니다. 주님이 이 여인을 건져 주셨습니다. 모두 다 주님을 떠났지만 부모도 도와 줄 수 없고 친구도 아무도 이 여인을 도와 줄 수 없으며, 그 남자까지 같이 와야 하는데 그놈은 도망을 쳤습니다. 이 중요한 순간에 주님이 오셔서 이 여인을 살려 주십니다. 살려 주시기만 한 줄 아십니까? 주님은 위기에서 건져만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 여인을 영원한 축복의 여인으로 만드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그랬습니다. 기생 라합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고치는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원한 승리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그래서 죄의 길에는 주님이 같이 할 필요가 없습니
다. 지옥 가는 길은 혼자 가면 됩니다. 멸망의 길은 혼자 가면 됩니다. 그러나 천국의 길, 생명의 길은 항상 주님이 같이 해 주십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 주님이 돌을 막아 주실 수 있고, 나를 향하여 달려드는 이 수많은 세력을 막아주실 이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손 외에는 없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주님과 함께 하면서 나도 살고 이 민족도 살리는 복된 성도되시기를 바랍니다 (김삼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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