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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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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모세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의 영도자로 소명을 받습니다. 그것도 80이란 나이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가 소명을 받고 보니 지난 과거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거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갓난아이로 갈대상자에 담겨서 나일강변으로 떠내려갈 때 바로의 공주가 건진 것도 우연입니까?  바로의 궁중에서 40년을 보낸 것도 알고 보니 지도자 훈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과 싸워 이기려면 애급을 알아야 합니다. 살인자가 되어 광야에서 40년을 보냅니다. 그 40년도 알고 보니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가려면 그 광야를 거쳐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이스라엘의 목자로 삼기 위하여 그 40년 동안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순간부터는 지난날의 80년이 결코 허송세월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으면 과거는 모두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것을 깨닫게 됩니다.

황혼 시간에 하나님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첫마디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십니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소명을 받고 이제 양을 치는 미디안의 목동이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는 순간입니다. 이제 그에게 요구된 것은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모세에게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첫째, 과거의 모든 것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을 벗는 것은 과거와의 절대 단절을 의미합니다. 잊어야 할 과거는 잊어야 합니다. 우리가 자기를 소개하는 이력서를 씁니다. 이력서란 밟을 리(履), 신바닥 력(歷), 자기 발로 걸어온, 신이 다닌 경로를 쓰는 것이요, 신이 다닌 자취를 쓰는 것입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간 이드로의 집에서 처가살이 한 사람입니다. 처가살이는 참으로 못할 짓이라고 합디다. 자존심 구겨지는 것이랍니다. 처가살이 40년에서 오는 열등감도 버리라는 것입니다. 열등감!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여기서 헤어나기가 참으로 힘든 것이랍니다. 열등감은 어디로 튕겨나갈지 모르는 럭비공과 같은 것이랍니다. 

중국 축구가 한국 축구를 이기지 못합니다. 13억 가운데서 뽑힌 선수들인데도 그들은 ‘대한공포증’이란 것이 있어서 이기지 못합니다. 거기서 벗어나야만 한국을 이길 것입니다. 과거에 실수했으니 미래에도 실수할 것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세는 혈기를 부리던 사람입니다. 혈기로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과거에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오늘은 온유한 사람이 됩니다. 천하 인간 중에 모세처럼 온유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오히려 과거 때문에 더욱 온유한 사람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과거 이상의 일이 미래에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과거에 실수한 사람은 반드시 또 실수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교회에서 목사님을 초청할 때에도 신학대학의 성적표를 요구합니다. 성적이 시원치 않으면 목회도 시원치 않을 것이라고 단정해버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목회는 결코 성적 순위가 아닙니다.  과거에 실수했으니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면 안됩니다. 결혼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혼은 하나의 완전한 청산을 의미합니다. 이전에는 애인이 있었다 하더라도 결혼했으면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다시 연결이 되면 큰일입니다.

요즘은 핸드폰이라는 것이 있어서 자꾸 연결합니다. 이것 참 야단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옛날 애인하고 전화하고 만나는 이가 있으면 손들어 보세요.  하나도 없으니 다행입니다. 제주도에 신혼여행을 온 신부가 신랑이 잠깐 나간 사이에 옛날 애인하고 전화를 하다가 들켜서 그 날로 이혼 당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면서 과거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지난날의 성공을 가지고 교만해서도 안되고, 실패했다고 해서 열등감을 가져서도 안됩니다. 

둘째, 신을 벗으라는 것은 자기 포기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법정에서는 자기 권리를 포기할 때 신을 벗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자기를 포기한 때부터 가능합니다. 모세는 자기 노력으로 자기 동포를 구원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살인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광야에 쫓겨나서 이드로의 양을 치며 이제 더 기대할 것 없는 비참한 인간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만나십니다. 젊기도 하고 무엇을 좀 할 수 있었을 때 부르지 않고 다 죽어버린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신을 벗으라 하셨습니다. 이제 너 자신을 완전히 포기하고 이제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라는 것입니다. 인생은 내가 무엇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고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됩니다. 지혜자 솔로몬이 왕이 된 후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리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내가 네게 무엇을 줄고”하는 하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아이라 출입ㅈ할 줄을 알지 못하오니 지혜로운 마음을 주세요”라고 하였습니다.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출입(出入)입니다. 그러나 쉬운 것이 아닙니다.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집에 못들어오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발로 걸어 나갔으나 걸어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1983년 대한항공 비행기가 앵커리지에서 서울로 오다가 소련 전투기의 폭격을 맞고 296명이 바닷속에 떨어졌습니다. 1985년 챌린저 13호가 처음으로 여자를 태우고 올라가다가 공중에서 폭파되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던 날 제 친구 목사가 한 시간 전에 그 다리를 건넜다고 합니다. 교회는 강북에 있고 아파트는 강남에 있어서 그날 아침 새벽기도를 마치고 그 다리를 건넜습니다. 한 시간만 늦게 건넜어도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건이 있기 전에는 집을 나나서면서 집에 계신 어머니에게 “어머니, 저 잘 다녀올께요”라고 인사를 하곤 했는데 인사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어머니, 저 나갑니다.” 왜? 나가는 것은 자신 있는데 돌아오는 것은 보장을 못하겠더라는 것입니다.
시편 121편 8절에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을 지켜 주십니까? 발에서 신을 벗은 자입니다. 발에서 신을 벗어 버리고 “주여 저는 어린아이라 출입할 줄을 모르나이다. 발에 신이 없어 걷지 못합니다. 주께서 이 종으로 걷게 하옵소서”하는 자입니다.

셋째, 천국은 발에서 신을 벗은 자가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은 신을 벗고 발바닥으로 밟은 것임을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여호수아서 5장 13-15절을 봅시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을 들고 마주 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 하나이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신을 벗었다는 것은 옛 사람, 세상 경험, 내 생각, 내 사고를 다 버리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교회생활도 신을 벗어야 합니다. 내 지식과 세상 경험을 다 버리고 겸손하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교회의 일꾼이 됩니다.

미국장로교단에서 목회하시는 한국인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미국장로교단 총회 안에 몇 분의 한국인 목사님들이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순회목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순회목사란 교회를 방문하며 관리하는 목사입니다. 우리교단으로 말하면 감리사와 같은 분입니다. 어느 날 미국 백인교회 가운데 큰 교회를 목회하는 백인 목사님과 약속이 있어 그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약속한 시간에 가보니 사무실 문에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펴서 읽어보니 대충 이런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교인 중에 노인이 갑자가 소천하여 병원에 예배드리러 갑니다. 실례지만 사무실에 가셔서 기다리세요. 제가 빨리 마치고 오겠습니다. 옆에 있는 초인종을 누르면 목사님을 안내 할 분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벨을 눌렀더니 그 교회 사찰집사와 같은 분이 나왔습니다. 일을 하다가 나왔는지, 손에는 기름이 묻고, 청바지를 입고, 머리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이 나가시면서 자기에게 부탁했다고 하면서 시커먼 손으로 물을 떠다주면서 사과를 하나 먹으라고 주는 것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우리처럼 사과 껍질을 벗겨 먹지 않습니다. 껍질에 영양이 많다고 하여 껍질 채 그냥 다 먹습니다. 시커먼 손으로 주면서 먹으라고 하니 먹고는 싶은데 먹을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다고 하면서 사양했습니다. 조금 지난 후 담임목사가 왔습니다. “불편한 것 없었느냐?” “아니다. 사찰집사가 물도 가져오고 사과도 가져왔다.” “그런데 왜 사과는 먹지 않았느냐?” “배가 고프지 않아 먹지 않았다.” 그랬더니 담임목사가 하는 말이 당신 보기엔 그 사과를 가져 온 분이 사찰집사처럼 보이느냐, 그분은 IBM회사의 제 2인자가 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전세계에서 그분과 30분 면담하려고 6개월에서 1년 전에 미리 예약해야 만날 수 있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자기 교회 장로인데, 금년에 관리부장직을 맡아서 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에어컨 고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을 시켜서 고쳐도 되지만 그가 직접 고치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 회사로서는 상당한 손해가 될 수도 있지만 아침에 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오늘 급한 일이 있어서 회사에 못나가요.” “무슨 일인데요?” “에어컨 고쳐야 해! 우리 집 에어컨이 아니고 아버지 집 에어컨이야! 금년에 내가 관리부장이야 내가 직접 고쳐야지!”  그는 회사를 결근하고 교회의 관리부장직을 감당하려고 먼지를 뒤집어쓰고 찬송을 부르면서 그 에어컨을 고치고 있었습니다. 한국 목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 줄 알았으면 그 사과 먹어도 되는데!”  그 장로님이 평소에 그런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니까 하나님이 그를 IBM회사의 제 2인자의 자리에 올려놓으신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 입니까? 그런데 한국의 재벌 집사나 장로는 교회에 와서 이렇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하나님, 내가 얼마나 바쁜지 아십니까? 그 바쁜 시간에 나왔으니 내게 감사하시오.” 우리가 상전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사환처럼 부리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가 필요할 때 이용 가치로만 하나님을 대하지는 않는가?

“알렉산더”란 영화를 보면 알렉산더에게 충성을 다했던 부하 하나가 중상을 입고 죽어갑니다. 알렉산더가 와서 그에게 위로를 합니다. “자네의 소원이 무엇인가? 말하는 대로 줄 것이네. 왕이 되고 싶으면 작은 나라를 떼어 주겠네.” 그때 부하는 말합니다. “저에게 생명을 연장시켜 주세요. 몇 년이라도, 어니 일년이라도 더 살게 해주세요.” “아니, 그런 부탁은 내게 하면 되나? 그건 하나님께 부탁을 해야지!” 그 소리를 듣고 부하가 한숨을 쉬면서 말합니다. “그럴 줄 알았으면 하나님께 충성하는건데...” 

여러분, 신을 벗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신을 벗은 자에게 말씀하시며 교제 하십니다. 내 생각, 내 고집 다 버리고 주께서 인도하는 대로 따라 가십시오. 참 평안에 이를 것입니다. 천국은 발에서 신을 벗은 자들이 가는 나라입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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