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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롬 8: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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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적이 이끄는 40일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다섯 가지 목적에 대해서 한 주간에 하나씩 살펴보고 있는데, 첫 주간은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계획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이 곧 예배이며, 우리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임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두 번째 주간에 우리가 배운 말씀은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태어났다.”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교제’라고 말합니다. 첫 번 출생은 육적인 가족이 되는 것이지만, 두 번째 출생을 통해서 우리는 영적 가족이 된 것입니다. 가족의 특성은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바로 오늘, 셋째 주간에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다.”입니다. 우린 이것을 가리켜 ‘훈련’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 하나님을 닮아가는 삶이 바로 우리 인생의 중요한 과정이고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늘 교우들이 아이를 낳아서 축복기도를 받기 위해서, 또는 유아세례를 받기 위해서 데리고 올 때 마다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어찌나 부모와 똑같은지 말입니다. 사진을 찍어 놓은 것처럼 아이를 보면 네 아버지, 엄마가 누구겠다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때 판박이같다, 붕어빵 같다 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 큰 아이 정주가 초등학교 4학년 때, 지난 번 목회하던 교회에서의 일입니다. 교회 앞 마당 놀이터를 지나는데 초등학생 아이들 몇 명이 놀다가 한 아이가 저를 유심히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저 아저씨 좀 봐. 우리 반 정주하고 똑같이 생겼다.”고 소리치더라구요. 제가 자기 반 정주하고 똑같이 닮았다고 하는데 당연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니까요. 누가 봐도 닮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거 참 듣기 좋은 소리 아닙니까? 제가 속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닮지 누구를 닮냐..” 했습니다. 제 아들은 저를 닮아야 정상입니다. 바꿔 말하면 하나님 자녀 된 우리들은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안 닮고 마귀를 닮았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우리 아이가 저를 안 닮고 아무리 봐도 옆 집 아저씨를 닮은 것 같다고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지 마귀의 성품을 닮고 사탄의 모습을 닮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당신의 모습대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에겐 죄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동산인 에덴동산에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뱀의 유혹,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하나님처럼 눈이 밝아지리란 유혹에 빠져 인간에게 죄, 즉 불순종이 들어왔습니다. 우린 하나님의 형상을 다 잃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사단의 자식처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죽이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살인하고 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안타까이 여기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게 하고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셔서 그 분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이 우리들 인간의 원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에게 새로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형상을 회복하는 길을 열어주셨는데 아직도 우리는 완전히 형상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왜입니까? 너무나 오랫동안 죄 가운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성품과 잘못된 삶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왔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그것이 고쳐지질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을 회복하는 길은 때로 많은 시간이 요구됩니다. 우리가 한번 잘못 든 습관을 고치려면 굉장히 힘듭니다. 날마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이 있다가 군대 가니 아주 힘이 듭니다. 그런데 3년 동안 거기 있으면 바뀝니다. 훈련받으면 괜찮아집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습성, 습관에서 하나하나 바꿔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에 보니,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아멘. 

  자란다는 것은 그를 닮아간다는 얘기입니다. 그는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닮아가길 원하고 예수님처럼 닮아가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나를 본 자는 곧 아버지를 본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띠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분의 성품은 곧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래서 곧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서,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생각,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생의 세 번째 목적은 바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 번째 주간엔 새벽시간에 교재를 통해서, 소그룹을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를 닮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여러분이 안 믿으시겠지만, 제가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생겼었습니다. 처음 목사 안수를 받고 보문동에 있는 성암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했는데 어느 날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심방을 갔습니다. 그 집의 여집사님이 심방 예배를 마치고 하는 말이 “부목사님을 뵈니 꼭 예수님 얼굴을 뵙는것 같아요.”하셨습니다. 별로 안 믿으시는 눈치입니다만^^ 물론 그 분이 저를 좋게 봐 주셔서 그렇지요. 그러나 당황스럽기도 하고 참 감사하기도 했습니다. 제 마음이야 누구나 가진 부패한 본성을 똑같이 가지고 있지만, 그 분이 좋게 봐 주시고 사랑스런 눈으로 봐 주신 덕에 나온 예수님 얼굴을 닮았단 칭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여러분의 얼굴을 통해서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다면,  예수님이 오신다면 아마 저 집사님 같을거야,  저 권사님 같을거야란 얘길 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과정을 ‘훈련’이라고 부릅니다. 훈련이란 것은 하기 싫어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논산 훈련소가서 총 쏘기 싫다고 안 쏘고, 구보하기 싫다고 안할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새벽마다 훈련 받고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21일째인데 힘드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고비를 넘기면 훨씬 수월할 것입니다. 훈련이란 것은 힘든 고비도 넘겨봐야 그만큼 성숙하고 성장하는 법입니다. 지금 우리는 훈련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훈련입니까? 예수님을 닮아가는 훈련입니다. 논산 훈련소에 가면 훌륭한 군인이 되기 위해 훈련받듯이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닮기 위해서 훈련받는 군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님을 닮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하실에 예배 끝나고 차를 빼다가 옆 차를 박았습니다. 화부터 내야할까요? 아님 상황부터 따져야 할까요? 예수님이라면 화부터 냈을까요? 예수님이라면 따지고 멱살 잡고 싸우셨겠습니까? 피해가 크다면야 보험처리 해야겠지만 왠만해선 “이쯤이야 괜찮아요. 그냥 가세요.” 하지 않겠습니까? 바로 그것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옆 사람에게 손잡고 얘기합시다. “이제 우리 예수님 처럼 삽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가장 유익한 도구가 있다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예수님의 말씀, 생각, 습관이 성경에 다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바로 진리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할 때 우린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쉬운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소그룹에 참여해서 다른 교우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사실 나의 거울입니다. 내가 혼자 있으면 내 성격이 어떤지 잘 모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는 자기가 아주 좋은 사람같지만 다른 사람 보기에는 아닐 수 있습니다. 나 같은 남편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할 수 있지만 부인한테 물어보면 다신 보기 싫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어떤 아내는 나만한 아내가 어딨냐고 말할 수 있지만 남편한테 물어보면 두 번 다시 살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혼자 있으면 착각하기 쉽지만 여럿과 함께 있으면 자기의 모난 성격이 다른 사람을 통해서 투영되고, 거울을 보듯이 자기를 돌아볼 수 있습니다. 자기 성품을 알게 됩니다. 다른 사람과 부대낌으로 말미암아 성품이 변하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시냇가의 돌들이 오래 있다 보면 어찌 됩니까? 둥글둥글해 집니다. 옆 사람과 얘기할까요? “당신도 둥글둥글해지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좋은 것입니다. 혼자 있을 때는 자기의 모난 성격 그대로 살아가지만 교회 와서는 느낍니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바른 말 하는 사람이 있어야 성가대가 잘 되지라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몇 마디를 툭툭 던집니다. 그런데 얼마 후 어떤 사람이 성가대에 안 나옵니다 왜 안나오나 궁금하다가 한 1년 지나고 물어봤더니 나 땜에 안나온다고 합니다. 내가 한 말 때문에요. 그런데 그것을 혼자서는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린 부대끼면서 깨닫습니다. 내가 고칠게 많은 사람이구나, 내가 성품이 모가 났구나하는 것을 부딪치면서 알게 됩니다. 교회생활하면서 서로 부딪치면서 자기 성품이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것입니다. 소그룹의 교제를 통해서 성장하고 성숙해 가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여기에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유익한 세가지 도구를 더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그것은 우리에게는 고통이 될 수 있는 도구입니다.

  오늘 성경 로마서 8장 28절, 29절 두 절 말씀 읽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아멘. 

  아들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우리를 미리 불러주셨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본받게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하나님의 목적에 충실하게 되는 선한 결과를 가져오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 속에는 우리가 인생에서 부딪칠 수 있는 모든 것, 실수, 실패까지도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로는 실패를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질병도 사용하십니다. “저 사람 저 성격 못 고쳐!”해도 병이 걸리면 고치더라구요. 어떤 사람은 자꾸 바람을 피워서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반신 불구가 와서 다니지를 못하니 고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을 쓰십니다. 교만한 사람을 낮추는 방법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사업 한번 흔들어 놓으시면 사람은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훈련시키시고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변화시키는 첫 번째 도구가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로 고통과 아픔을 통해서 예수님을 닮아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한번 병을 앓고 나면 부쩍 큽니다. 고생도 많이 했지만 한번 아프면 말도 하고 걷기도 합니다. ‘아... 고난을 통해서 인간이 성장하는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 이하에 보니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통해서 성장, 성숙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종 우리는 질문합니다. “하나님, 왜 하필 우리 집입니까? 왜 나입니까?” 이제 그렇게 물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 제가 이 고통을 통해서 무엇을 배우길 원하십니까? 저의 어떤 성품을 고치기를 원하십니까?” 이것을 물으셔야 합니다. “제가 어떻게 변화되길 원하십니까?”라고 물어야 합니다. 한번 따라해 보십시오. “하나님, 제가 어떻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 고통은 마치 철을 단련하는 뜨겁게 달궈진 용광로와 같습니다. 용광로 속에 들어가면 모든 것이 다 녹아버립니다. 불순물들이 다 밑으로 빠져버립니다. 쇠도 뜨거운 불에 들어가면 다 물처럼 흐물흐물해집니다. 더러운 것은 다 뜹니다. 그것을 걷어내면 깨끗하고 순수한 철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통이란 용광로를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순수하게 만드시고 깨끗하게 만드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기 23장에 보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말씀합니다.
  은세공업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은이 도대체 깨끗하다는 것을 어떻게 압니까?” 세공업자의 대답은 “제 모습이 비치는 것을 보고 압니다.”였습니다. 은을 정련하다 보면 은에 자기 얼굴이 비치는데 그 때가 100% 깨끗하고 순수한 은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깨끗할 때 우리의 심령이 깨끗할 때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질 때 우리 믿음의 불순물이 빠져버리면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서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에 보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도 이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의 밤을 지내셨습니다. 하루가 지나면 십자가에 달리셔서 비참한 고통스런 죽음을 당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엄청난 시련이 온다고 할 때, 수술을 기다릴 때 그 심정이 어떻습니까? 그게 더 힘들지 않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얼마나 아프시고 힘드셨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할 수 있거든 내게서 이 잔을 옮겨 주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아멘. 그 분은 너무 힘드셔서 제자들과 함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했습니다. 비록 십자가에 죽지만 하나님이 나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일으키실 것을 그 분은 믿으셨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그 고통스러운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셨습니다. 우리에게 고통과 고난을 주심은 우리를 깨끗케 만드시고자 하심입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가운데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편안하고, 건강하고, 잘 될 때에는 예수님 생각 별로 안합니다. 그러다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아이들도 배 부르면 부모 안 찾습니다. 자기 혼자 잘 놉니다. 그러다 배 고프면 엄마 찾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배 부를 때는 하나님 필요없다고 합니다. 귀찮아 합니다. 그러나 힘들어 보십시오. 주님만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고통가운데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두 번째 도구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가 주님을 닮아가길 원하십니다. 예수님도 이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도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광야에 나가셔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았습니다. ‘이 돌로 떡덩이를 만들라’, ‘저 높은데서 뛰어내리라’, ‘내게 경배하고 절하라 그러면 세상 모든 것을 너에게 주겠다.’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하나의 유혹의 의미로서의 시험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하는 시험이 다가오고 있지 않습니까? 물질에 대한 시험, 정욕에 대한 시험, 명예에 대한 시험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이 시험을 극복해 나갈 때 우리는 주님의 성품을 닮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험 가운데 연단되고 시험가운데 인격의 성숙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시험이 찾아옵니다. 여러분 시험당할 때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시험 받을 때 꼭 죄가 있어서 시험 받는 것은 아닙니다. 예순미도 죄가 없지만 시험 받았습니다. 시험받을 때 모든 사람이 다 시험 받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게만 시험이, 내게만 올무가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다 시험가운데 던져져 있습니다.

  이 때, 시험을 받을 때 좋은 생각에 집중해야 합니다. 유혹으로서의 시험이 올 때, 생각을 돌리셔야 합니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험 당할 때 영적인 파트너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우리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주고 기도해주는 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소그룹이 우리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요구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시험을 통해서 우리를 성장시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연단이든 어떤 시험이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 시험을 통해서 우리에게 그 선한 결과를 주시길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시험을 이길 대 마다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시험과의 부딪힘과 피나는 싸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험을 이기려면 시험을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천국의 전화는 늘 열려 있습니다. 24시간 늘 개통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셔야 합니다. 시험 당할 때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이런 시험을 통해서 우리 믿음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모욕과 수치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인격을 성장시키십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상에서 많은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며 가로되, 성전을 허물고 사흘에 짓는자여 하고 모욕했습니다. 예수님도 오해를 받으시고 상처를 받으시고 판단을 받고 학대를 당하셨습니다.
  우리도 모욕을 당할 수 있습니다. 모욕을 가장 많이 당한 인물을 들라면 예수님 외에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너무나 많은 학대와 모욕을 당했습니다.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그는 학대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억울한 오해의 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하는 일 마다 어려움이 닥쳐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것을 극복해냈습니다. 먼 훗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형들이여, 나를 애굽에 팔아먹었으므로 걱정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당신들보다 나를 먼저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 가족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로 형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학대를 당할 때 용서를 배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을 모욕하는 자들, 여러분을 학대하는 자들을 통해서 우리는 용서라는 아주 귀중한 성품을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모욕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무리들을 향해서 “주여! 저들의 죄를 저들에게 내리지 마소서 저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통해서 선한 결과를 가져오게 하시는 것을 믿으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선으로 그것을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하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방법들을 사용하십니다. 고통을 통해서 시험을 통해서 모욕과 학대를 통해서 우리들이 주님의 성품을 배워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영적인 훈련에 열심히 동참하셔서 여러분의 인생에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놀라운 영광의 생애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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