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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재물관 (눅 1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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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래 신앙생활 재점검 시리즈 설교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주제이지만 반드시 포함시켜야 할 주제이기 때문에 새로운 재물관을 오늘 여러분과 함께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우리의 삶 전부를 새롭게 합니다. 세상의 생각을 뒤엎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많이 돈에 대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주님이 가르치신 것 가운데 1/3은 재물, 돈, 물질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보다 더 많이 다룬 주제는 하나님나라 밖에는 없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돈, 재물, 물질에 관한 가르침은 성경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에 있고 매일의 삶 가운데 다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돈에 대해서 할 말이 많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돈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돈 때문에 걱정하는지를 아셨고 그것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돈에 대해서 가르침으로 우리를 염려에서 평안으로 스트레스에서부터 주님이 주시는 위로의 자리로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가 읽은 비유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비유를 읽고 나면 좀 의외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칭찬을 받는 청지기의 행사가 전혀 칭찬할 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시면 주님은 그의 불의함을 칭찬하지 않고 다만 그가 한 행동의 지혜로운 측면에 대해서 칭찬했다는 것을 파악하셔야 합니다.

이 청지기는 정직하게 주인의 일을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를 가리켜서 “불의한” 청지기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임박한 파면을 앞두고 “지혜롭게” 자기 앞가림을 하는 그 모습에서 그 불의한 청지기는 오늘 예수 믿는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비유를 통해서 소유에 대한 4가지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1. 지혜로움의 원리

이 청지기에 대한 주님의 칭찬을 들어보십시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세상 살아가는 것 보면 안 믿는 사람들이 훨씬 더 머리가 잘 돌아간다 이런 이야기지요. 이 사람이 한 일은 결코 본받을 만한 정직한 행동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고 있습니다. 다른 번역은 이 사람의 지혜로움을 약삭빠른 짓이라고 좀 부정적인 뉘앙스로 번역합니다.

하지만 8절 후반절에는 좀 더 놀라운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더 똑똑한 면이 있다는 거지요. 주님은 이 사람을 칭찬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믿는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게 약삭빠르게 살아간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그 정직하지 못한 경리의 약삭빠른 짓을 보고 감탄하였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거래를 하는 면에서는 신앙이 두터운 사람들보다 더 영리하다.”

주인의 것을 속여 취하는 이 사람도 이렇게 지혜로운데 하물며 이 세상을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더욱 더 지혜로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탄식하십니다. 그러면 도대체 주님은 어떤 지혜를 우리가 갖기를 원하실까요?

여기서 주님이 사용하신 지혜로움이나 영리함이란 말은 단지 부정적인 뉘앙스만 갖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우리의 삶에 주신 모든 것들에 대해서 우리가 지혜롭게 다루길 원하십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10:16) 우리는 뱀이냐 비둘기냐를 두고 하나를 선택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둘 다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뱀을 징그럽게 여기고 멀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뱀을 관찰하기를 바라십니다. 뱀으로부터도 배우기를 바라십니다. 순결하게 사는 것과 천진난만하게 사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긴 모든 것을 우리가 지혜롭게 영리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그 나라의 유익을 위해서 쓰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 청지기로부터 배울 것은 무엇입니까? 그의 행동의 영리함은 무엇입니까? 이 사람의 부정직함을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의 지혜로움은 배워야 합니다.

1.1 그는 사물을 실제적으로 보았습니다.

자기 직무가 끝난다는 것, 그것을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3절) 이 사람은 현실을 바로 파악했습니다. 도적질하는 것은 몰라도 빌어먹는 것은 부끄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사실에 입각해서 대처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것은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8절)

그러니까 이 청지기가 한 짓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불의한 청지기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가 자기 파면을 앞두고 슬기롭게 대처했다는 것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1.2 그로부터 배울 수 있는 지혜로움은 그가 재빨리 행동한 것입니다.

“옳지,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주인이 나를 청지기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이해 줄 사람들을 미리 마련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소집을 했습니다.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습니다. 기름 백 말 입니다.  자, 이것이 당신의 빚 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 사람이 밀 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습니다.”

땅을 파서 먹고 살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다고 생각한 나머지 묘책을 떠올렸습니다. 반짝하고 떠오른 생각은 불행히도 주인의 재산을 갈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생각이 떠오르자 바로 행동에 옮깁니다.

물론 우리 그리스도인은 떠오르는 아이디어라고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됩니다. 바른 일인지 말씀으로 확인해야 합니다. 신앙의 친구들과 확인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이 사람에게서 배울 것은 자기의 파면을 앞두고 재빨리 손을 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도 꾸물거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기회가 오면 바로 행동에 옮겼다는 것입니다. 자기 직책에서 얻어낼 수 있는 최대의 유익을 얻어낸 것입니다. 파면된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행동을 했습니다.

끝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행동했습니다. 종말을 의식하고 행동한 것이야말로 바로 주님이 칭찬하는 지혜로운 점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이 온다고 생각하면, 그 사실에 입각해서 살아야 되는데 우리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이 비유를 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결코 그 불의한 것을 닮으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짓은 불의하지만 한 것은 똑똑한 짓 아니냐는 가르침을 주시는 것입니다. 불의한 청지기도 자기가 파면될 것을 알고는 대책을 세웠습니다. 인생이 끝날 것을 종말이 오는 것을 알면서도 전혀 대책을 세우지 않는 하나님의 백성보다는 똑똑하다 그런 말입니다.

2. 투자의 원리

우리가 이 비유에서 배울 두 번째의 원리는 투자의 원리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9절)

주님이 하시는 말씀의 뜻이 무엇입니까? 돈으로 친구를 사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돈으로 천국을 사라는 것도 아닙니다. 천국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만이 우리에게 하늘 길을 열어 주셨기에 그분이 십자가에서 지불한 생명만이 우리에게 새 삶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값을 다 지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하늘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은 돈에 대해서 두 가지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2.1 돈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불의의 재물”은 무엇입니까? 주님은 세상의 근본 속성을 불의하다고 보셨습니다. 불의의 재물이란 세상의 재물들을 말합니다.

세상의 재물은 세상이 지속하는 만큼만 지속합니다. 개인적으로 말하면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 물질이 나한테 유익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잠시 동안 우리의 삶에 주신 것만 소유할 뿐입니다. 그런 면에서 해고를 눈앞에 둔 이 청지기와 우리 신세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 직무가 며칠 안에 끝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기겁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살지?” 우리 모두의 삶은 얼마 안에 곧 끝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젊다고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엄숙한 사실은 이 세상의 삶은 매우 짧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도 곧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영원하지 않다는,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에 입각해서 우리가 살기를 바라십니다.

여러분이 여유 돈이 좀 있어서 주식 투자를 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 회사는 분석을 해보니까 오래가야 한 3,4주 만에 반드시 끝장 날 것이 분명한 망할 회사입니다. 다른 한 회사를 살펴보니 지금도 잘 나가지만 앞으로 더 잘 나갈 회사고 어쩌면 세계적인 기업이 될 수 있는 회사라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어느 회사에 투자합니까? 어느 회사에 투자를 할까 고민을 합니까?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은 지속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히 지속합니다. 어디에 여러분은 투자하시렵니까? 이것이야말로 투자의 원리 배후에 있는 핵심문제입니다. 

2.2 돈은 영원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돈은 영원하지 않지만 영원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돈을 사용해서 친구를 사귀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돈으로 친구를 매수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에 누군가가 여러분을 도와준다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우정이 싹틀 수 있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처지에서 진정한 관심과 사랑으로 돕는다면 우정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물질이 영원이 지속할 관계의 시작을 가져다 줄 수도 있습니다.

점심 한 끼 나누기 위해서 사용하는 물질도 누군가에게 영원을 선물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은 시작하지만 영원으로 지속할 수 있습니다. 한 날 천국에서 만나서 그 친구하고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 않겠습니까? 그날 투자한 그 돈이 엄청난 효과를 가져왔다고 담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를 위해 물질을 드리는 것은 영원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투표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디에 표를 던지느냐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현재를 위해서 던질 수도 있고 영원을 위해서 표를 던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이 비유가 가르치는 세 번째의 원리로 넘어가 봅시다.

3. 신뢰의 원리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10절)

그렇습니다. 가장 작은 일에 충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충실하고 가장 작은 일에 불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성실하다는 말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아보려면 작은 일을 어떻게 다루는 지 살펴보면 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돈과 물질은 우리의 삶에서 사소한 문제의 하나입니다. 적어도 주님은 그렇게 보셨습니다. 세상의 물질은 속성상 불의한 것이고 또한 지극히 작은 것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누구를 신뢰할 수 있는지 판정 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신뢰가 가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는 하루에 성경을 몇 장 읽는지, 일주일에 QT 몇 번 하는지, 어떻게 새벽, 저녁으로 기도하는지 살펴보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이 뭔지 아십니까? 그건 가계부를 보는 것입니다. 온갖 종류의 영적인 경험과 간증이 아니라 돈을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보면 그가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우리에게 어떻게 공급하실 지를 결정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여러분의 금전출납부는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온갖 연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소문을 취재하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그가 기록한 금전출납부를 보면 됩니다. 한 사람의 모든 편지를 다 읽어보고 연설을 다 분석하는 것보다 더 정확하게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금전출납부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인생에 허락하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됩니다. 우리의 삶은 섹션별로 나누어진 잡지처럼 되어 있질 않습니다. 모든 것은 서로 밀접히 관련되어 있습니다.

혹시 왜 하나님이 나를 좀 더 위대한 일에 사용하지 않느냐고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지극히 적은 일을 내가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자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나는 별로 가진 게 없어요. 하나님은 나를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진리는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에 있질 않고 가진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큰 칭찬을 받은 연보는 동전 두개를 넣은 과부의 연보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보신 연보 가운데 가장 많은 연보였습니다. 다음 주일 우리는 희년특별헌금을 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칼럼에 밝혔던 대로 8억 이상 리모델링 하고 주변 예배환경을 가꾸기 위해서 우리가 사용을 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맡기신 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런 일이 있을 때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들을 자꾸 의식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어떤 마음자세로 동참하는지 그것을 보시고 여러분을 얼마나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를 평가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을 보십시오. “자기를 속이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조롱을 받으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무엇을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둘 것입니다.” 여기에는 정확한 씨 뿌림과 거둠의 법칙이 작용합니다. 여러분이 심는 바로 그것을 여러분은 거두게 됩니다.

무엇을 여러분은 심을 것입니까? 장차 그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옥수수를 심은데서는 수박을 거두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농사를 짓진 아니해도 그 정도는 이해합니다. 심는 그것을 우리는 장차 거둔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자신의 삶에 대해서 만족하지 못하시는 분은 없습니까? 불만과 짜증보다는 지금껏 무엇을 심었는지를 살펴보십시오. 우리 모두는 심은 것을 정확히 거두기 때문입니다. 물론 기대보다 더 많이, 아니면 더 적게 거둘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여러분이 심은 것을 거둡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거두는 열매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다른 씨를 심기 시작하십시오. 우린 언제나 심는 것을 거두기 때문입니다.

4. 선택의 원리

선택은 단순합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여기서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라는 말씀입니다.

왜 그럴까요? 돈은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둘 다 섬기려 들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돈을 섬기는 쪽으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동전 하나는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동전을 여러분의 눈 가까이 하면 할수록 여러분의 모든 시야를 가리기 시작합니다. 돈을 너무 가까이 하면 주위에 있는 사람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특별히 가난한 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선순위를 보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정말 돈은 우리 삶에 강력한 영향을 끼칩니다. 여러분은 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선택의 문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돈에 대해서 우리가 내릴 선택은 어떻게 벌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 입니다.

돈에 대한 여러분의 입장은 다음 중 하나일 것입니다.

4.1 돈을 사랑하는 입장입니다.

돈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사실 돈은 여러 가지 좋은 일을 해 주기도 합니다. 삶을 편리하게 하기도 하고 쾌적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돈을 사랑하게 되면 결국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 여러분의 인생 모든 것이 거기에 탕진하게 되어있습니다.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고 인간관계도 없고 돈만 전부가 됩니다. 삶이란 텅 비게 됩니다. 그러므로 돈을 바로 다루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돈이 여러분의 인생을 주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돈을 섬겨야만 합니다.

4.2 정반대로, 돈을 미워하는 입장입니다.

그런 입장을 취한다고 어떤 사람들은 주장을 합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하는 수전노 같은 사람들을 보면서 돈이 끼치는 수많은 해악을 보면서  “나는 돈이 싫어. 돈을 멀리하며 살고 싶어”라고 외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것을 가르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돈을 미워하라.”고 가르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돈은 도구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도구를 오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도구 자체를 미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도구는 하나님의 선을 위해서도 사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돈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제 삼의 선택도 있습니다.

4.3 돈에 대해서 죄책감을 갖는 것입니다.

잘 사는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입장이고 주변의 어려운 사람을 보면서도 돕지 않는 가진 자들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해외여행을 해보셨다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잘 사는지를 여러분은 보셨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은 우리가 착해서 복을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마땅히 받을 것을 받아 누린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일 따름입니다. 우리보다 더 열심히 발버둥쳐도 안 되는 나라는 안 될 수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말해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게으른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엄청 열심히 해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는 것이 여러분이 부지런하고 여러분이 더 정직하고 여러분이 착해서라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런 엄청난 축복을 받아 누린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것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당신의 영광과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잘못된 죄책감에 사로잡혀서 감추려들지 말고 정확히 실체를 파악하십시오.

우리 주위에는 많은 도움을 바라는 손길을 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 성폭력 피해아동 보호시설을 마련해 달라는 요청을 시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6,300만원이나 매월 그 돈의 이자에 해당하는 자금이 있으면 우리는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는 성폭력 피해 아이들을 좀 살수 있는, 국가로부터 보조를 받아서 지낼 수 있는 이런 거처를 하나 마련해 달라는 것입니다.

4.4 그러므로 우리의 입장은 돈을 하나님이 주신 도구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위탁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이웃의 선을 위해서 사용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에게 여유 있는 물질을 주신 것은 다른 사람보다 신앙이 좋아서가 아니라 덜 이기적이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자신을 위해서 사용하는 대신에 꼭 필요한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기 위해서 입니다.

돈은 도구입니다. 모든 도구가 그렇듯이 나쁘게도, 선하게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선의 방안으로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을 살피면서 다음 주 어떻게 헌금 할 것인지를 결단 해야만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1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에 얽매여 살지 말고,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십시오. 주님께서는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겠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돈이 여러분을 얽어매지 않습니다. 누구에나 돈을 멀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일에서 멀어지려고 노력해 본 사람이라면 동의할 것입니다. 돈은 우리를 잡아끄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면모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합니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집에 만족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입택 예배를 드린다고 다녀오면 집안이 갑자기 좁아 보이고 복잡해 보이고 어수선해 보입니다. 지금까지 잘 타고 다니던 차가 잘 굴러다닙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새 차를 뽑으면 “이놈의 차가 왜 이리 시끄럽노.”멀쩡한 차를 바꿀 궁리를 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자리에 빠져들지 않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오직 유일한 방안은 말씀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는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다하기도 전에 때로는 사람도 떠나가고 많은 경우에 여러분이 눈 감기 전에 여러분이 지금 갖고 있는 물질도 떠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를 버리지도 떠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신뢰해야 합니까? 얼마 못갈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다함이 없습니다. 그것만이 돈사랑에서부터 우리를 지켜줍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역시 이 청지기와 같습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째깍째깍 시간을 흐르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우리의 시간은 곧 다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도록 주님이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원이고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중요하지 않은 세상물질로서 중요한 것을 위해서 투자하는 것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성공은 얼마나 벌었는가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할 줄 압니다. 그리고 이웃을 위해서 사용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을 위해서 쓰는 자입니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 때문에 여러분은 오스카 쉰들러를 알고 계실 것입니다. 폴란드의 이 사업가는 자기가 가진 돈을, 자기가 하는 사업을 유대인 노동자를 구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포로수용소에 끌려가는 것을 막는 데에 가진 돈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여러분과 마찬가지로 저도 물질이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래 가지 못하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영원히 지속하는 것을 붙잡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과 제가 투자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삶을 쏟아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영원을 위해서 투자해야 합니다. 영원에 비하면 다른 모든 것은 무가치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나의 주님 그리스도 예수를 알게 된 것이 너무도 존귀해서 이것과 비교하면 다른 것은 다 무가치하게 여겨질 뿐입니다. 나는 그리스도 외에는 다 쓰레기처럼 여기고 모두 내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그렇게 한 것입니다.”(빌3:8)

다른 모든 것, 내가 이룬 모든 업적도, 내가 모든 재산도, 명예도 다 무가치합니다.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을 위해서 사용하는 것 그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는 분들은 주님을 아는 일, 그것이 중요합니다. 혹시 오늘 처음으로 교회에 나왔는데 처음 나오자마자 연보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서 “야 역시 교회는 우리 돈에 관심을 갖고 있구나.”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혹시 그렇게 생각을 하시면 제가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제가 오늘 한 설교는 울산교회 세례교인들을 향해서 하는 설교지 그 나머지 분들은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갑자기 이 설교를 듣는 순간, 돈에 대한 설교를 듣는 순간에 “야 역시 내 지갑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나.” 이렇게 생각해서 시험 들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이 주님을 주인으로 만나기 전에는 여러분의 지갑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이 여러분의 오늘까지 삶의 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나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나님 아니면 돈입니다. 그게 사람들의 신입니다.

하나님을 아직 주인으로 삼지 못한 사람에게 제가 돈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주님을 만나셔야 됩니다. 그래야 무엇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인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는 것은 울산교회 교적에 세례교인으로 이름으로 두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만약 주님과의 관계를 이미 맺고 있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을 사용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일에 그것을 사용해서 여러분처럼 새로운 가치관에 따라서 살아가게 하십시오.

우리는 지금 희년을 맞이해서 제가 칼럼에 밝힌 대로 8억 이상 되는 돈을 들여서 예배 환경을 더 쾌적하게,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대해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모우가 함께 짐을 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런 이야기 입니다.

지혜로움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어디에 투자해야 합니까? 여러분은 주인의 신뢰를 어떻게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냐 돈이냐를 여러분은 선택하셔야 합니다.

여러분과 저를 이 땅에 아직도 남겨두심은 이 거룩한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입니다. 새로운 재물관을 가지고 새로운 과업을 수행하는 일에 여러분 자신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가 함께 나아가는 일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에 들였던 8억을 투자할 수 있는 보다 훨씬 더 좋은 일들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부터 출발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의 환경이 25년 동안에 많이 개선되었기 때문입니다.

25년 전에는 이 건물을 짓고 들어올 때에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들어왔습니다. 모르긴 해도 이번에 리모델링해서 들어오면서 여러분이 만족 했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격이 그 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25년 동안에 삶의 모든 주위 환경이 개선되어서 이제는 이 공간이 많이 낡아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출입하고 드나들고 예배하는 데에 제대로 된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 울산교회는 마음먹으면 어떤 일이라도 해 내 갈 수 있는 공동체인 것을 확인해 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연보는 언제나 자원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에 어떤 교회에 집회를 갔더니 커피 마시는 곳에 “자율헌금”그렇게 써놓았더라고요. 본래 헌금은 자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바를 따라서 우리가 함께 힘을 쓸 때에 백짓장도 맞들면 낫습니다. 우리는 이 할 일 많은 광역시 울산을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인지 우리 스스로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정근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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