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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주일] 성령, 성령, 성령! (왕하 2: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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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력에는 이대 절기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성탄절과 부활절입니다.
이 두 절기는 대단히 중요한 절기이기 때문에 그 앞에 준비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성탄절 앞에는 넉 주일 전부터 대림절이 있어서 성탄을 준비하게 됩니다.
부활절은 그 앞에 주일을 뺀 사십 일 동안을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 사순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여기에 중요한 절기를 하나 더 말하라고 하면 성령강림절입니다.
성탄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을 교회력상의 삼대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혹시 ‘추수감사절이 아닙니까?’ 하실지 모르겠는데 추수감사주일은 교회력상의 절기는 아닙니다.
추수감사주일은 교회의 역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근세에 청교도들의 신앙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주일입니다.

성령강림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뒤 성령이 강림하여 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성령강림절은 대림절이나 사순절 같이 공식적으로 준비하는 기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절이 지나면 우리는 성령을 갈망하고 성령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부활절 이후 성령강림절까지 전체가 성령강림절 준비기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다락방에 모여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다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오십 일째가 되는 날 성령이 강림했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올해의 성령강림절은 6월 첫째 주일, 6월 4일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기간, 특별히 성령을 갈망하며 지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4월을 영력 충전의 달로 정했는데 ‘영력’은 ‘영적인 힘,’ 성령이 주시는 힘을 말합니다.
4월만 영력 충전을 위해 힘쓸 것이 아니라 늘 그래야 하고, 특히 성령강림절까지는 집중적으로 그래야 합니다.
그럴 때 오순절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처럼 폭발적인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에 그의 제자인 엘리사와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9절을 보세요,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말이 좀 복잡하게 되었는데 알기 쉽게 말하면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해주기를 바라느냐?”(「새번역」)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런 처지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으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어떤 원로교수가 점점 노쇠해지면서 사랑하는 제자에게 ‘나는 이제 얼마 더 살지 못할 것 같은데 자네에게 마지막으로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했다고 합니다.
그 제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선생님, 선생님의 서재에 있는 책들을 모두 저에게 주십시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원로교수의 많은 책을 다 그 제자가 갖게 되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때 정황을 잘 보면 엘리사가 구해야 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저 제자들 앞에서 엘리사가 나의 후계자라고 선포하여 주십시오.’ 하는 것입니다.
그 때 길갈에 선지학교가 있었습니다.
2장의 앞부분을 보면 벧엘, 여리고, 여러 곳에 선지자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제자들 가운데 대표라고 할 수 있는 오십 명이 지금 요단까지 엘리야를 따라 왔습니다.
이들은 왜 엘리야를 이렇게 끝까지 따라왔을까요?
엘리야가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진 것을 알고 전별하기 위해서 따라왔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들 가운데 누구를 후계자로 지목하는지 확답을 얻기 위해서였다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엘리사는 선지학교 출신이 아닙니다. 열두 겨릿소를 앞세우고 밭을 갈던 농부였습니다.
엘리야가 호렙산에서 그를 후계자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고 찾아가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엘리사는 비주류 출신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가 세상에서 떠난 후 그가 엘리야가 하던 일을 이어 받아 선지자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엘리야로부터 공식 후계자로 인정 받는 일이 꼭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그것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구했습니까?
9절 뒷부분을 보세요.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이것을 구했습니다.

먼저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이것은 깊은 통찰과 신앙고백이 숨어 있는 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지금까지 하신 일 모두는 성령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스승님이 능력이 있어서 하신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스승님에게 능력을 주어서 하신 일입니다.’ 하는 것입니다.
사르밧 혼자 사는 여인 집 통의 가루가 마르지 않게 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게 한 일, 그 아들을 다시 살린 일,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과 대결하여 이긴 일, 큰비를 내리게 해서 가뭄이 그치게 한 일,  열왕기하 1장에 기록된, 불이 하늘에서 내려  두 번이나 아하시아 왕이 보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들을 다 불사른 일, 그리고 바로 조금 전에 겉옷을 가지고 말아 요단 물을 쳐서 물이 갈라지게 한 일, 다 ‘성령님께서 스승님을 통해서 하신 일입니다.’ 하는 뜻입니다.

우리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 놀라운 일들이 성령이 하신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 어려운 것들을 이기고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성령의 역사인 것을 알아야합니다.
한국교회는 70년대와 80년대에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그 때 교회의 분위기가 아주 활기찼습니다.
교회마다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를 외쳤습니다.
여의도에서 대형집회가 여러 번 열렸었는데 열리면 백만 이상이 모였습니다.
신학자들은 ‘아, 그것은 그 때가 군사독재 시절이라 사람들의 마음이 답답해서 무엇엔가 의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아, 그것은 교회에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아, 그것은 이 땅에 복음이 들어와서 한 세기 가까이 쌓아올린 역량이 그 때 폭발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밖에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하는데 모두 맞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부분적인 것들입니다.
종합적인 답은 그 때 성령이 이 땅에서 강하게, 뜨겁게 역사했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은 지금 중국대륙에서 강하게 역사하고 있습니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된 때부터 중국교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중반에 일어난 문화대혁명 때는 교회는 거의 숨도 쉬지 못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70년대 후반부터 다시 문을 열고 놀랍게 부흥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북방선교전문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관계로 중국교회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누구보다도 가까이에서 잘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지금 성령이 가장 강하게 역사하고 있는 곳은 중국입니다. 앞으로는 이슬람권이될 것입니다. 그 다음은 마지막으로는 유대권이 될 것입니다.’라는 소리를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선교학자들이 공통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인데 저는 특히 체험에서 나오는 확신을 가지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간의 중국 선교출장에서 이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동시에 성령의 역사가 얼마나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 요령성 항구도시인 대련(大連)의 한 장로님이 작년부터 ‘우리 교회가 교회당을 짓고 있는데 마지막 단계에서 어려움 겪고 있습니다. 목사님, 좀 도와주세요.’하는 호소를 해왔습니다.
그런 요청을 하는 교회가 하나 둘이 아니지만, 그 장로님의 호소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올해 팔순인데 일제 때부터 대를 이어 교회를 지켜오고 있는 신실한 지도자입니다.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힘쓰다가 중국 당국에 의해 체포당해 고초를 겪은 일도 있는 분입니다.
중국 당국은 ‘이 장로만 잡아가두면 교회 재건 운동이 중단될 것이다.’ 판단하고서 이 장로님을 꽤 오랫동안 구속해 두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도들이 ‘그 장로님을 위해서 우리 더 간절하게 기도하자.’ 해서 더 열심히 모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쉽게 재건되었다고 합니다.
그 장로님이 갇혀 있는 동안 성령님이 대신 일한 것입니다.
그 장로님은 ‘그 때 감옥에 들어간 덕분에 감옥 안에 있는 분들에게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나는 안에서 일하고 성령님은 밖에서 내 대신 일하셨지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 장로님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장로님, 형편이 허락되면 제가 한 번 가겠습니다.’고 했습니다.

흑룡강성 하얼빈(哈爾濱)의 목사님 한 분이 작년에 ‘우리가 교회당을 마련했는데 입당예배에 꼭 목사님 모시고 싶습니다.’라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주보 14면, 그 교회의 성도들이 목양교회에 보내는 감사편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도 거절하지 못하고 ‘입당예배에는 가지 못하지만 형편이 허락되면 제가 한 번 방문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약속들을 모아서 지키기 위해서 이번에 시간을 내서 중국을 방문했습니다.
중국 관계의 일은 약속을 잘 지켜야합니다.

대련에서 일을 잘 마치고 토요일 오후에 하얼빈을 도착했습니다.
와 달라고 부탁한 목사님이 영접을 나와서 하얼빈에서 제가 해야 할 일들을 말합니다.
하얼빈에 화요일까지 있게 되어 있었는데 ‘내일, 주일, 아침 일곱 시 한 교회의 1부 예배에서 중국인 성도들에게 설교, 10시 반에는 2부 예배에서 조선족 성도들에게 설교, 그 다음에 다른 교회로 가서 그 교회의 오후 1시 예배에서 중국인 성도들 상대로 설교, 그 다음에 하얼빈 교회들의 중심이 되는 교회에 가서 오후 3시에 청년 예배에서 중국인 성도들 상대로 설교하셔야 합니다. 월요일 아침 여덟 시에는  하얼빈 신학교에 가서 두 시간 동안 특강을 해야 합니다. 화요일에는 아침 아홉 시부터 하얼빈 일대의 조선족 교역자들을 상대로 세 시간 특강을 해야 합니다.’ 했습니다.
여기서 ‘설교’는 여기에서 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제가 본문을 읽고 설교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중국교회에서는 외부 사람이 와서 설교하는 일은 심하게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님이 설교를 하다가 ‘한국에서 손님이 오셨으니 인사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자리를 내주어서 인사를 하는 척 하면서 설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인사성 설교’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 목사님의 말을 듣고 ‘이거 감당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설교나 강연을 하려면 그 몇 배 되는 시간을 써가며 준비를 해야 합니다.
저희 교회 청년부원이었었고, 한동안은 교육전도사로 수고한 박상빈 목사님이 하얼빈에서 중국당국의 공식 허락을 받고 하얼빈한인교회를 담임해서 목회를 잘 하고 있습니다.
박 목사님도 만나보아야 하고, 하얼빈 다음에는 길림성 연길시(延吉市)를 방문하게 되어 있는데 화요일 저녁에 기차를 타고 열한 시간을 가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많이 되었습니다.

주일 아침, 7시 예배에 가면서 ‘몇 명이나 나올까?’ 했습니다.
임마누엘교회라고 작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조선족교회로 세워졌습니다.
저는 국내에서는 ‘조선족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재중동포라는 말을 씁시다.’ 라고 하는데 중국 가서는 재중동포라는 말을 삼가야합니다.
그 분들의 국적이 중국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사람이 가서 재중동포라고 하면 중국 당국이 ‘우리 국민인데 왜 너희 동포라고 하느냐?’ 하기 때문입니다.
그밖에도 중국에 가서는 조심해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교회가 교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족 성도들이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중국 성도들의 교회에 가서 중국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에 예배당을 빌어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겨울이면 영하 20도, 때로는 영하 30도로 내려가는데 멀리서 온 할머니들이 밖에서 추위에서 떨면서 기다렸습니다.
목사님이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하고서 열심히 기도하면서 힘써서 다른 곳의 빌딩 하나를 사서 교회로 리모델링을 잘 하고 작년에 독립을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지역의 중국인 성도들이 ‘잘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예배드릴 수 있게 시간을 허락해 주십시오.’ 했습니다.
그래서 1부, 일곱 시에는 중국인 성도들이 그 목사님, 우리 동포 목사님의 인도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6시 40분쯤에 도착했는데 1층에 수백 명 성도들이 꽉 차서 찬송을 부르고 있습니다.
‘많이 오셨구나!’ 했는데 1층은 본당이 아니랍니다. 본당은 2층에 있답니다.
2층으로 올라가는데 계단에도 성도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본당은 천 명쯤 앉을 수 있게 되었는데 본당도 꽉 찼습니다.
그날 1부 예배에 중국 성도들이 1,500명 참석했다고 합니다.
그 성도들의 얼굴이 매우 신실했고 은혜를 사모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오로지 성령의 역사이다!’ 하면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솟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중국에 갔다가 중국 성도들이 어려움 가운데서도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을 보고 감격도 하고, 은혜도 받습니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이 교회를 위해 무엇도 하겠습니다. 무엇도 하겠습니다.’ 약속을 합니다.
저는 사실은 그런 일은 남들보다 일찍, 70년대, 80년대에 겪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 가는 분들에게 ‘감동을 받았으면  무엇을 하겠다고 약속을 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형편껏 도우십시오. 약속을 하고 돌아와서는 감동도 식고, 바쁘기도 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 많아서 부작용이 큽니다.’ 충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웠습니다.
왜 부끄러웠는지는 지금 우리 교회당을 돌아보면 아실 것입니다.

2부 예배는 조선족 성도들의 예배입니다. 약 600명이 모였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다시 눈물이 났습니다.

그 예배를 마치고 급히 다른 교회로 이동했습니다. 중국인 교회입니다.
조선족 문화관이었던 극장식 건물을 교회가 사서 잘 꾸며서 예배당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지금 하얼빈이나 연변의 동포들은 대련, 청도, 연대, 상해, 광주 같은 항구도시, 남쪽 도시로 많이 이주하고 있어서 숫자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얼빈 조선족문화관도 축소하다보니 예전의 큰 문화관이 교회로 넘어왔습니다.
2층까지 꽉 차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 교회에서는 제가 왔다고 찬양대가 “주님 사랑해요” 하는 찬양의 일부를 한국말로 불렀습니다.

그 다음 교회로 이동했습니다.
하얼빈의 교회들 가운데 중심이 되는 교회인데 오후 3시에 3부, 청년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청년들이 찬양도 인도하고 워십도 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교회에는 연세 많은 성도들이 대부분이다.’고 하는 분들이 있는데 청년들 사이에서도 놀라운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세워진지 이제 5년밖에 안 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날 1부 예배에 4,700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3부 예배까지 다 합하면 8,000여 명이 참석했다고 합니다.
한국의 목양교회에서 꼭 일어나야 할 일이 중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어디 가서 돈 자랑 하지 말고, 어디 가서 인물 자랑하지 말고, 어디 가서 힘 자랑 하지 말고, 어디 가서 욕 자랑하지 말아라.’하는 말이 있지요
여러분 중국교회에 가서 한국교회 자랑하지 마세요.

저는 새벽기도회는 한국에만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중국교회도 새벽기도회 하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일에 제일 먼저 설교한 교회에는 새벽기도회에 300명 정도가 참석한다고 합니다.

그 날 그 중국교회에서 한 설교들이 주보 5면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거기에 있는 대로 그 날 종일 울면서 설교했습니다.
그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이번에 손수건을 여러 장 가져갈 것을 모르고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힘이 이렇게 크구나!’ ‘성령의 힘이 이렇게 강하구나!’ ‘이것을 깨달으라고
이번에 이곳에 보내셨구나!‘ 여러 번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날 하얼빈 신학교에서 특강을 하면서 신학생들에게 ‘여러분은 어려운 환경 가운데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행복한 신학생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오늘 설교 제목이 ‘성령, 성령, 성령’ 그리고 느낌표, 좀 강한 느낌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성령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 생생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제 설교준비를 하면서 이 대목을 정리하고 있는데 마음이 다시 흥분되었습니다.
한 시에 강남에서 장로님 가정 결혼주례가 있어서 11시 40분에는 성도들과 함께 버스를 타고 떠나야 하는데 시간이 된 것을 모르고 열심히 설교원고를 만지고 있었습니다.
전도사님 한 분이 ‘목사님, 우리는 다 버스에 탔는데 목사님은 안가세요?’ 전화하지 않았다면 적지 않은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힘은 이렇게 강합니다.
그 성령은 교회에도 역사하고 개인에게도 역사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완전하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위안과 힘이 되십니다.(기독교대한감리회 신앙고백)

성령은 성도 한 분, 한 분에게 강한 믿음을 줍니다.
성령은 어려움을 이기게 해 줍니다.
성령은 힘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성령은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십니다.
성령은 병을 낫게 해 주십니다. 
성령은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성도 여러분, 그 성령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10절을 보세요.
엘리사가 성령의 역사를 갑절이나 구하자 엘리야는 ‘내가 주겠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루어질 것이고, 이렇게 되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사람은 20대까지는 키가 자랍니다. 체구가 커집니다. 힘이 강해집니다.
20대가 넘어서도 키가 자라기를 바라면 그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20대가 넘으면 속을 채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성장보다 성숙에 힘써야합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20대가 넘어섰습니다.
성령의 열풍이 지났습니다.
‘목사님, 한국에 교회가 들어온 지 120년이 넘었는데 20대 이야기를 왜 하십니까?’ 하실지 모르겠는데 신앙의 일, 정신적인 일에서 120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이제 키가 자라고 체구가 커지는 것을 기본목표로 해서는 안 됩니다.
내실성을 갖추는 것을 기본적인 방향으로 해야 합니다.
넓이의 차원이 아니라 깊이의 차원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외가 있는데 바로 이 교회입니다.
큰 교회당을 지었습니다. 채워야 합니다.
저질렀으니 수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령의 임재를 구해야 합니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해야 합니다.
‘하나님, 과거 우리나라 교회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보다, 다른 교회에 임했던 성령의 역사보다 배의 역사가 우리 교회에 있게 하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아니, 배를 구할 것이 아니라 세 배, 네 배, 열 배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저는 이것을 분명하게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이 이 교회를 인도하신다.’ ‘하나님이 이 교회를 들어 크게 쓰시려 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고거 십 년 간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이기고 여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을 보면 포도원의 품꾼들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도원 주인이 제삼시, 제육시, 제구시, 우리 시간으로 오전 아홉시, 열두시, 오후 세시에 나가 일꾼을 구해 포도원에 들여보내 일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십일시, 오후 다섯시에도 그렇게 했습니다.
중국에서는 일꾼들이 ‘목공’ ‘와공(瓦工: 기와 기술자)’ 이런 팻말을 목에 걸거나 손에 들고 번화가에 서서 그날 자기를  써줄 사람을 기다립니다.
주일 오후에도 이런 사람들이 거리에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십일시에 부름 받은 일꾼은 한 시간 정도 일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삯을 줄 때 주인은 십일시, 오후 다섯시에 부름 받은 일꾼들에게도 일찍 부름 받은 일꾼과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 제십일시에 부름 받은 일꾼들은 그 늦은 시간에 자기를 불러준 것을 감사하면서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한 시간은 짧았지만 일의 양이나 질은 먼저 부름 받은 일꾼들과 같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더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 십일시에 부름 받은 일꾼들처럼 주의 일을 열심히 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구한 엘리사는 그가 원하는 것을 얻었습니다.

14절을 보세요,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간 다음에 그 겉옷으로 물을 치니까 물이 갈라져서 엘리사가 건널 수 있었습니다.

21절을 보세요,
물이 나쁜 성읍에서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물 근원 가운데에 던지며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했더니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게 하던 나쁜 물이 고쳐졌습니다.

24절을 보세요,
그가 저주할 때 그를 조롱하던 어린이들이 암콤 둘에게 찢기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3장을 보세요.
유다와 이스라엘과 에돔의 연합군이 모압군과 싸우는데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제 전멸을 당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이 앞장서서 엘리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엘리사가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샘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하였습니다(16절).
물이 안 나오던 골짜기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받은 엘리사가 한 말에 따를 때 물이 가득했습니다.
요즘 전도가 안 된다고들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성령의 지시에 따르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듯 성도들이 이 전에 가득할 줄로 믿습니다.
해가 비쳐 그 물이 붉어 피와 같이 보였습니다.
모압 사람은 이것을 보고 그것이 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연하지요, 물이 없었으니까요.
‘아 저것은 피다, 연합군 사이에서 내분이 일어나 서로 싸워 죽인 것이다. 자 이제 전리품을 빼앗으러 가자!’ 잘못 판단하고 쳐들어 왔다가 대패했습니다.   

엘리사가 성령 받아 큰 일을 한 것처럼, 여러분과 저도, 성령 받아  큰일 합시다!
목양교회, 성령 받아 큰 일을 하는 교회가 되도록 합시다!

엘리사가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한 것은 ‘나를 당신의 영적인 장자로 인정해 주십시오.’ 한 것입니다.
신명기 21장 7절을 보면 장자에게는 두 몫을 주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이 시대의 영적인 장자로 인정 받기 위해 엘리사와 같은 마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부활절을 보내고 성령강림절을 바라보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간절히 사모합시다.
성령 받기를 구합시다.
성령 받기에 합당한 존재들이 됩시다.

그래서 오순절의 제자들처럼 성령, 성령, 성령을 받아 개인적으로도 놀라운 힘을 얻고,  이 시대 영적인 장자로서 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기를 성령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관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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