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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도가 염려할 일 (히 3: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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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명한 문필가 칼라일에 대하여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그는 항상 생각하며 글을 쓰는 사람이므로 자연히 조용한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집에서 닭을 몇 마리 기르는데 새벽마다 닭울음소리로 잠을 잘 자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옆집 주인을 만나 사정을 말했습니다. 그때 그 주인이 말하기를“하룻밤에 세 번밖에 울지 않는 것을 뭐 그러시오.”라고 했습니다. 칼라일이 또 말하기를“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닭 울음소리를 기다리느라고 도무지 잠을 잘 수 없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말 같지만 그것이 우리 인간의 현실인 듯 합니다. 우리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 일을 흔히 염려하는 때가 많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시기를“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마태복음 6:27)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수없이 반복하신 말씀 가운데 하나가“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위로가 되고 힘이 됩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립보서 4:6-7)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마태복음6:25)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6:34)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인 12절 하반 절에는 이상하게도“염려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염려를 하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염려에 관한 성경의 말씀을 종합해보면, 세상적인 일 즉 육신의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고, 대신 영적인 일에 대해선 염려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근심 걱정과 염려는 육신의 건강과 영혼의 건강을 해칩니다. 이는 마치 곡식의 성장을 해치는 잡초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것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마태복음 13:22).
그러나 심령을 위한 염려와 근심은 영혼 건강에 큰 유익이 됩니다. 영혼이 건강할 때 육신의 건강과 함께 범사가 잘되는 놀라운 일들이 있게 됩니다(요한삼서 1:2).

고린도후서 7:10에“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즉 영혼을 위한 근심과 걱정은 건강한 심령을 갖게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합니다. 그러나 세상적인 근심은 사망을 가져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근심은 마음 밭의 잡초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눌 본문에 말씀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브리서 3: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는 것은“분리되다, 떠나다, 배신하다.”의 의미로 불신앙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불신앙이란 하나님과의 분리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란, 마치 포도나무의 가지가 줄기에서 잘려 나간 것과 같습니다. 줄기에서 잘려진 나무 가지를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말라버림이요, 버림이며, 마지막은 불태움입니다(요한복음 15장). 이처럼 하나님에게서 떨어짐은 실패요, 불행이요, 영원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인물 가운데 이스라엘의 사울 왕이 그 사람이며, 예수님의 제자인 가룟 유다도 그 사람입니다. 또한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를 지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사람임을 본문은 밝히고 있습니다.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이로 보건대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브리서 3:15-19)하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들의 주변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이단에 미혹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리고 또한 믿음을 저버리고 낙심한 사람들은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에 말씀하시기를“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브리서 6:4-6)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히브리서 3:12) 라고 하셨습니다.

칼빈이 어느 날 환상을 보니“천국까지 가는 길에는 여러 갈래의 지옥으로 가는 길이 갈림길이 있는데 바로 천국 한 발자국 앞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라고 했습니다.
사울과 가룟유다가 그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므로 심령을 위해 염려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1. 피차 권면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13절 말씀에“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하셨습니다. 사람의 심령은 연약하여 마치 상한 갈대와 갔습니다. 넘어지기 쉽고, 부러지기 쉽고, 깨어지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격려가 필요하고 권면이 필요합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이 시대에 최고의 부흥사입니다. 이 시대에 그러한 부흥사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은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도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골치 덩어리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저 아이는 커서 뭐가 되겠는가?”하고 머리를 흔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그의 할머니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개구쟁이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는 말을 잘하고 사람 끄는 재주가 있어. 개성만 잘 살리면 크게 될 거야”라고 격려를 했습니다. 할머니의 격려에 힘입은 빌리 그레이엄은 마침내 세계적인 대 부흥사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맥아더 장군도 자랄 때 사고뭉치였다고 합니다. 말썽을 부리며 아이들을 몰고 다니는 골목대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그의 장래를 염려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의 할머니는 “너는 군인의 기질을 타고났어”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 한마디에 맥아더는 눈이 확 뜨였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위대한 군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격려의 말 한마디가 사람의 일생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집니다. 서로 권면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전도서 4:9-12 말씀에“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어느 날 영국의 설교대가인 스펄전 목사에게 어떤 교인이 찾아와서 “나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 교회에 나오지 않고 혼자서 믿으려합니다. 그래도 구원을 받겠지요?”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스펄전 목사는 대답하기를 “혼자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숯불이 모여서 타야 더 잘 타지, 잘 타는 숯불도 떼어놓으면 꺼지고 맙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성도도 혼자 있다가 그 불이 꺼지기 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올바른 신앙생활을 위해서는 반드시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브리서 10:25)라고 하셨습니다. 모여서 함께 예배드리며,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며, 서로 격려하면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기 때문입니다.


2. 죄의 유혹으로 강퍅함을 면하라 하셨습니다.

본문 13절에“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죄를 말합니다. 불순종이 거듭되면 그 사람의 심령은 강퍅해져 더욱 무서운 죄에 빠지며 회개할 수 없게 됩니다.

사람의 인체 가운데 특정 장기(臟器)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간 경화’‘동맥 경화’‘뇌경색’‘심근경색’등이 그것입니다. 이때에 쓰이는‘경(硬)’자는 ‘굳을 경, 단단할 경, 딱딱할 경’자 입니다. 부드러워야할 장기가 딱딱하게 굳어져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므로 끝내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처럼 육체의 장기가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과 같은 현상이 영혼에도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3:8에“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강퍅”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한자의‘단단할 경(硬)’자와 같습니다. 강퍅이란, ‘굳어지다, 말라서 굳은, 딱딱한, 성미가 깔깔하고 고집이 셈, 괴팍하고 융통성이 없는 마음, 옹고집, 자기주장에 대한 양보가 없는 것’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장기가 굳어지면 사망에 이르듯, 심령이 걍퍅해지면“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11절)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여 꿈을 이루지 못하고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심령은 강퍅이 아니라 부드러운 심령 즉 온유한 마음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마음 가운데 하나가 온유한 마음입니다.“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서 5:22-23)하셨는데, 그 중의 하나가‘온유’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부드러운 심령을 소유한 사람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5)라고 하셨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마음이여! 알 수 없구나.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하나 꽂을 자리가 없구나.”(달마대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드러우면 온 세상을 다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을 다 수용하게 됩니다. 여기에 사람의 아름다움이 있고, 보람이 있고, 존귀함이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심령이 강퍆하게 되지 않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온유한 심령은 사랑하셔서 땅을 차지하도록 하시지만 반면 강퍅한 심령은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 즉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3. 시작할 때의 확신을 끝까지 잡으라 하셨습니다.

본문 14절에“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브리서 3:14)하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나라를 상속할 사람이 어떠한 사람인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누구입니까?“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는”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처음의 신앙을 끝까지 잡는 것을 가리킵니다. 즉 신앙의 변절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에 있어서 변하면 버립니다. 물건도 그렇고,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변하면 버립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셨으나 그는 도중에 변했습니다. 변했을 때 하나님은 버리셨습니다. 기룟 유다도 마찬가집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렇습니다.

처음의 신앙을 끝까지 잡지 못해 버림을 당했음을 본문 15~16에 말씀하고 있습니다.“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라고 하셨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된 60만 가운데 끝까지 확신을 가지고 믿음을 지킨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요여호수아와 갈렙이었습니다. 그들은 꿈의 땅 가나안을 소유할 수가 있었습니다. 신앙에는 확신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승리와 영광을 선물로 내려 주십니다.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인 윈스턴 처칠은 국립묘지에 묻히지 않고 옛날 자신이 다니던 작은 교회 옆에 있는 묘지에 묻혔습니다.
1943년 전시 내각을 수립하고 독일 비행기가 하루에 1천여 대씩 런던을 폭격할 때, 그는 하루에 18시간씩 근무를 하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BBC 방송을 통해서 “우리가 전쟁에서 이기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땀과 피와 눈물밖에 바칠 것이 없습니다.”라고 전 영국군에게 호소하자, 그 방송을 들은 영국군은 3일밖에 먹을 수 없었던 양식을 가지고 보름이나 견디면서 싸워 마침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것입니다.
처칠이 고등학교 다닐 때에는 영문학에 낙제를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회고록을 쓰고 나서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했습니다.
그가 은퇴한 후에 한번은 그의 모교에서 연설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칠은 지팡이를 짚고서 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에게“여러분의 대 선 배이신 처칠 경이 말씀하실 때 한 마디도 빼놓지 말고 모두 받아쓰라.”고 했습니다. 처칠 경은 지팡이를 짚고 강단에 서서 두꺼운 안경 너머로 학생들을 한참 동안 응시하더니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는 뚜벅뚜벅 걸어 내려갔습니다.“결코 포기하지 마시오! 결코! 결코!”

하나님은 확신에 찬 믿음으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에게 능력을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히브리서 3:14)하셨습니다.



사탄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죄악의 사람, 불순종의 사람 즉 사탄의 사람으로 삼고자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겨야 하겠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첫째, 서로 권면하는 것입니다.
둘째, 심령의 강퍅함을 이기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구하는 것입니다.
셋째, 처음의 믿음을 끝까지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행복한 삶, 후회함이 없는 삶, 보람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장차 올 하늘나라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우리 모두위에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익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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