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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천국에서 큰 사람들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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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몇 년 동안 고생해 완성한 '최후의 만찬'을 공개하기 위해 지인들을 초청했습니다. 드디어 천이 벗겨지고 작품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순간 사람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군. 예수의 손에 들린 저 광채 나는 유리잔을 보세요.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붓을 들어 유리잔 부분을 뭉개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사람들을 향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한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시선이 예수님의 얼굴에 집중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유리잔에 시선이 모아졌다면 그것은 제 의도를 벗어난 것이지요."
  그는 유리잔이 예수님의 표정을 가리지 않도록 다시 그림을 그려 완성시켰습니다. 현대인들은 종종 예수님의 손에 들린 광채나 유리잔에 환호하는 우를 범합니다. 신앙은 삶의 본질을 찾는 과정입니다. 신앙은 유리잔에 가려진 예수님의 얼굴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사람의 평가가 아닌 예수님의 평가는 절대적입니다. 예수님께 잘 보이고 맘에 들어야 합니다.

  정치적이고 현세적인 메시야 왕국의 도래를 기대했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더 높은 자리에서 권세를 떨칠 수 있을 것인가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 채 '천국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을 예수께 가지고 왔습니다. 그들은 천국의 본질적 실상이나 도래의 방법에 관해서는 도무지 모르는 백지 상태였습니다. 천국은 세속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서로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김으로써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천국에서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어린이주일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가정과 자녀들에게 큰복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바쁘게 사느냐고 잊어버렸던 예수님의 얼굴과 깨끗하고 순수한 동심을 회복하는 행복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1. 낮추는 사람
  본문 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낮추다'의 헬라어 '타페이노오'는 단순한 의미의 겸손이 아니라 멸시와 천대와 굴욕을 당하면서까지 겸손한 것을 의미합니다. 변명하거나 싸우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만한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함으로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수모와 멸시를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이것이야말로 예루살렘에서 모욕과 조롱을 받고 저주의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길을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고난과 핍박의 길을 걷는 것이 자기를 낮추는 삶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자는 자신을 큰 죄인으로 생각하고 철두철미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복음서를 보면 두 개의 대야가 나옵니다. 하나는 빌라도의 대야이고 또 하나는 예수님의 대야입니다. 빌라도의 대야는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하고서 그 일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뜻으로 손을 씻었던 '회피의 대야'였습니다. 의인의 피를 씻는 '범죄의 대야'였습니다. '나만 살겠다는 대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면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은 아무 관계없다고 도망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대야는 사람들을 섬기고 더러움을 씻어내는 대야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대야가 바로 이 예수 그리스도의 대야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이 있습니까? 당신이 먼저 사랑하십시오. 기도가 없는 곳이 있습니까? 당신이 먼저 들어가서 기도의 불을 붙이시기 바랍니다. 찬양이 없는 곳이 있습니까? 당신이 맨 처음 외치는 찬양의 목소리가 되기 바랍니다. 전도가 없습니까? 당신이 먼저 전도의 불을 붙이기 바랍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주변의 환경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는 변혁의 사람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먼저 이 모든 분위기에 불을 붙이는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이러한 섬김의 향내를 피워내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교회를 살펴보면 이 원리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분쟁이었습니다. 사분오열되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싸웠습니까? 그리스도를 높이기보다는, 십자가만을 자랑하기보다는 인간 지도자를 높이고 그들만을 추종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의 지도자들은 결코 저질스러운 지도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있었고, 아볼로가 있었고, 베드로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입니까? 그런데 이렇게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드러나면 교회는 수렁으로 떨어집니다. 온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십자가를 자랑할 때 교회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나바는 너무도 귀한 존재입니다. 바나바는 별다른 능력이 없었습니다. 병 고치는 능력도 없었던 것 같고 귀신을 쫓아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또 무슨 특별한 지위도 없었습니다. 사도의 칭호를 받지도 못했고, 교회의 지도자라는 칭호를 받지도 못했습니다. 가문이 특출났던 것 같지도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겸손히 주를 섬겼습니다. 겸손하게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바나바를 통해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세워지는 일들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바나바 같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어린이, 바나바, 예수님처럼 더 낮추면 오늘의 모든 갈등과 싸움과 복잡한 문제는 한 순간에 해결될 것입니다. 낮출 때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사회에 평화가 물밀 듯 몰려올 것입니다. 자신을 높이고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미움과 버림과 피폐한 존재가 됩니다. 그러나 섬기고 겸손한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높여 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처럼 섬기는 낮아짐의 삶을 실천해 봅시다. 자신을 낮춤으로 천국에서 큰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2. 영접하는 사람
  본문 5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이름은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예수의 '이름'이란 예수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이며 계시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뜻은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혹은 예수 때문에'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고 예수 자신의 삶의 모습 그대로를 닮아 고난의 삶을 살아가는 제자들을 의미하며 어린아이처럼 작고 연약하고 고통 받는 이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이 위대하거나 현명하거나 능력이 있어서 영접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것입니다. 예수에게 속한 자들이기 때문에 영접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의 제자들 중의 하나를 영접하는 자는 그들이 예수께 속한 자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 속한 자들이냐, 아니냐 하는 문제의 걸림돌은 영접이냐, 푸대접이냐 하는 문제에 달려 있는 것이며 이런 말은 영접하는 자의 마음이 이미 예수에게로 향해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접하는 것은 곧 예수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사람인 것입니다. 누구를 대하든, 무엇을 하든 예수를 향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부산에 가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학교를 운영하는 서부교회가 있습니다. 많이 모일 때는 교회학생들만 3만 2천명이 모인다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게 3만 2천명이나 모이는 세계 최고의 교회학교가 있는 교회는 아마도 지도 교역자가 기독교교육을 전공한 박사일 것이다. 적어도 그 교회를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은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 교회의 교회학교를 이끄는 사람들은 다 무명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무명의 교사들이 하나님 앞에서 3만 명이 넘는 교회학교를 일구었습니다. 교사의 자격이 다섯 가지인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 교사로서 자격이 있습니다.
  둘째, 어린이를 위해서 하루에 한 시간씩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셋째, 일주일에 세 번씩 아이를 심방하는 사람입니다.
  넷째, 공과공부 내용을 삼십 번씩 읽어서 다 외우는 사람입니다.
  다섯째, 주일 아침 6시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입니다. 아침부터 뛰는 사람입니다.

  이름도 없는 무명의 교사들, 이 다섯 가지로 무장된 교사들이 3만 명이 넘는 어린이를 건져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교회 안에서 기고만장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다 차버리십니다. 하나님은 말성꾼이나 말꾼이 아닌 일꾼을 쓰십니다. 실질적으로 우리의 목소리가 커질 때가 언제입니까? 은혜를 저버릴 때 목소리가 커집니다. 반면에 교회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 누구입니까?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엎드려 기도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통해서 엄청난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십니다. 교회 안에서 꼭 필요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백만의 군대를 이끄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낙타 무릎의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무명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권능의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배척하는 삶이 아닌 영접하는 성도가 됩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어린아이를 영접하고 가난하고 약한 이웃을 영접합시다. 성령 충만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심방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불타는 마음으로 더 많은 사람들을 영접합시다. 사람은 누구나 상처가 있고 외롭습니다. 인정과 사랑의 존재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예수의 마음으로 믿음 없이 방황하는 사람들을 영접합시다. 그리하여 천국에서 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3. 업신여기지 않는 사람
  본문 10절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비록 세상에서 미약하게 보이는 존재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개별적인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절대적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시사하는 말씀입니다. 무시하는 사람도 있어서는 안 되고 무시 받는 사람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모두가 동등하고 소중한 사랑의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을 봉사하도록 보냄을 받았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천사들이 흠모하는 대단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는다'는 것은 왕정 체제하에서의 신하의 배알처럼 매우 각별한 예우와 신임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천사들의 위상의 탁월성을 강조하기 보다 '소자'에 대한 하나님의 신적 보호의 충만성과 완전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과 중심은 언제나 '소자'에게 있기에 '소자'를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자'를 업신여기는 것은 곧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큰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성도는 반드시 '소자'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소자'에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린 존이 다니던 "제일독립교회"는 오래된 건물이라서 비만 오면 지붕이 새고, 교회 마당은 포장이 안 되어 진흙탕이 되기가 일쑤였습니다. 사람들이 양말과 구두가 젖는 건 당연지사였고 예배당도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은 불평만 늘어놓을 뿐 아무도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존은 이런 안타까운 상황을 보며 교회 마당 입구를 벽돌로 포장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마침 아버지가 벽돌공장을 하고 계시니 벽돌 구하는 일은 누구보다 쉬웠습니다. 다음날부터 존은 하루 7센트인 자기 임금의 일부를 쪼개어 벽돌 한 장씩을 사서는 아무도 보지 않는 이른 새벽에 교회 마당 입구에 깔지 시작했습니다. 그 넓고 긴 교회 마당 입구를 어린 존 혼자서 포장하려면 족히 2년도 넘게 걸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적은 한 달도 채 못 되어 일어났습니다.

  어느 날, 제일독립교회 담임목사인 존 챔버스 목사는 몇 주일째 벽돌을 까는 사람이 누군가 몹시 궁금했습니다. 그 주인공을 알아내기 위해 그는 평소보다 일찍 교회로 나섰습니다. 마침내 교회 입구로 들어서자 교회학교에 다니는 13살짜리 존이 열심히 벽돌을 날라 길을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존은 그 날도 아침 일찍 아무도 모르게 벽돌담은 리어카를 끌고 와서 정성스레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을 어린 존이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챔버스 목사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무언가가 솟구쳐 오름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주시는 감동이었습니다. 챔버스 목사는 어린 존을 위해 마음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어린 존이 어른들도 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존을 꼭 축복하셔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갚아 주세요.'

  챔버스 목사는 주일 설교 때 모든 교인들에게 존이 한 일을 이야기했고, 교인들은 존의 신앙과 헌신에 감격하며 자신들의 이기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반성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힘을 합쳐 교회 마당 입구 포장뿐만 아니라 낡은 교회 건물을 헐고 새로운 교회를 신축하기로 마음을 모았습니다. 어린 존과 그의 벽돌 한 장 한 장이 만들어낸 역사였습니다. '소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큰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소자'를 사랑하는 자가 천국에서 큰 사람입니다. 어린이와 교회교육에 더 관심과 사랑과 투자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갚아 주십니다.

  사랑하는 번동가족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자녀들을 크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낮추고 영접하고 업신여기지 않는 성도가 되어 천국에서 큰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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