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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 (마 18:1-10, 잠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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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뇌성마비 아들의 요청으로 열심히 뒷바라지 한 아버지의 도움으로 철인 3종 경기만 200번 넘게 완주한 바 있는 대학 컴퓨터연구원인 미국의 릭이라고 하는 사람은“아버지는 내 날개를 받쳐주는 바람이자 나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예술사가(史家) 부뢰(傅雷)는 아들 부총(傅聰)이 초등학생 때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에서 피아노와 사기(史記)를 가르쳤고“아들아, 힘을 다해 내 경험과 냉철한 이성을 바쳐 네 지팡이가 되고 싶구나.”라고 하면서 정성을 다 바친 아버지의 힘으로 아들은 세계적 피아니스트가 되었는데 그 아들이 말하기를“아버지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코치였고 스승이었다.”고 했습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는 아버지를 잃고서 홈페이지에‘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오늘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타이거 우즈의 아버지는 아들이 두 살 때부터 골프 스윙을 가르친 극성 아버지였지만 아들이 학교 숙제를 끝낸 뒤라야 골프 연습을 시켰으며 그는 자서전에서‘나는 아들이 골프와 인생 모두에서 승자가 되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제도와 기구와 조직체가 있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조직체는 교회와 가정 밖에 없습니다. 교회보다도 가정을 먼저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은 교회와 더불어 하나님이 세우신 신성한 조직체입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만드신 최초의 기관인 가정이라는 커다란 지붕을 바치고 있는 두 개의 기둥이 둘 있는데 하나는 자녀이고 또 하나는 부모입니다. 만약 가정에 부모는 안 계시고 아이들만 있거나 연로한 부모만 계시고 젊은 자녀들이 전혀 없거나 있기는 하지만 따로 살면서 자주 찾아오지 않거나 마음속에 아예 들어와 있지 않다면 모두 건강한 두 기둥이 바치고 있는 가정은 못되는 것입니다. 아이들만 있는 집은 고아원이고 노인들만 있는 집은 양노원인 셈입니다.

영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노인들을 위해 쓰기 때문에 영국을 노인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프랑스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프랑스를 젊은이들의 왕국이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돈을 벌면 먼저 어린이들을 위해서 돈을 쓰기 때문에 미국을 어린이의 왕국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어린이들에 대한 관심이나 교육시설, 교육방법, 또한 그들에 대한 인격적인 예우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의 무게

우리가 어린이들에 대해서 인격적인 관심을 갖는 근원은 생명의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서에서는 ‘모든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이 주셨다’ 고 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귀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 인간의 핵심부분에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져 있다는 면에서 더더욱 우리 생명이 무게가 있는 것으로 표현이 됩니다. 복음을 살펴보면 두 가지 사실이 발견되는데 그것은‘여자의 인권이 회복되고 어린 아이의 인권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본문에 보면“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큽니까?”하고 묻는 제자들에게 어린이를 내세우며 어린이가 큰 자라고 말씀하시면서 누구든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고“작은 아이 하나라도 실족케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이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시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어린이를 무시하거나 학대하는 가정은 복을 받을 수 없고 어린이를 소홀히 여기는 교회는 부흥하지 못하고 어린이를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국가와 민족은 번영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부모는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은 눈높이 생각을 공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시카고 대학 교수인 벤자민 볼룸이라는 학자가 연구하면서 학자들, 예술가들, 혹은 운동선수들, 흔히 말하는 성공했다고 하는 존경받는 분들을 120명을 조사해  보고 결론을 내렸는데 첫 째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많이  칭찬하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칭찬 받는 수준에서 자기 가치를 발견한답니다. 칭찬 받는 바로 그  수준에  도달하도록 그들은 노력하게 되고 칭찬 받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가르치기는 하되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 번 나무라면 '내가 잘못했는가봐.' 두 번 나무라면 '난 머리가 나쁜가보다.' 세 번 나무라면  '내가 세상에 있는 것이 귀찮은가봐. 나는 구제불능한가 봐. 어머니는 나를 키워가는 것이 고생스러운 가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벌써 정신적으로 자살이 시작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일이 얼마든지 있어도 아이를 나무라면서 키우지 말고 오히려 성공했거나 잘한  일이 있으면 그것을 오래오래 기억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기를, 자기 가능성을 인정하게 되니까요. 잘한 일에 대해서 오래오래 기억합니다. 그래서 장점을 계속 극대화하도록 해주는 것이 교육의 원리입니다. 탈무드에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말을 많이 하면 아니 준만 못하다” 잔소리 들으면서 아이들이 하는 말은 다음과 같습니다. "참 돈 벌기 힘들다." 뇌물성 선물이 세상을 망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누구인가라도 단 한 사람,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할 때에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그는 참으로 귀한 사람으로 태어나게 되는 겁니다.

자녀들은 반드시 예수님께 데려와야 한다.

자녀를 낳거든 제일 먼저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드리며 축복 기도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또 유아 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 출석할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강제성을 띠더라도 예수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어려서부터 성실하게 예배 출석하는 일과 십일조와 감사 헌금 드리는 습관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밥과 옷으로만 키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키워야 한다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미리미리 말씀으로 양육하고 기도를 많이 해 주어야 합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

자녀는 인생의 노년에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자녀 보다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는 없습니다. 효도하는 자녀보다 더 좋은 노후대책은 없습니다. 최고의 노후대책은 바로 자녀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자녀들에게 마땅히 부모에게 행할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습니다. 저절로 자녀들이 부모의 노후 대책이 되지 않습니다. 가르쳐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배운 자녀가 있는 사람은 수치를 당치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인 자녀들을 귀하게 여기고 신앙으로 잘 가르치셔서 그 자녀들로 인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자녀를 자녀로만’이라는 귀한 글을 소개합니다.

나를 고쳐주소서! 가끔 자녀를 나의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는 착각을, 나의 삶을 자녀에게서 보상받으려는 유혹을, ‘다 너를 위한 것이다’ 라고 하면서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했던 이기심을, 그리하여 그들이 나에게 속해 있지만 내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소서

나로 하여금 부모로서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자녀의 성장보다 내가 먼저 성숙해짐으로 그들을 훈계하게 하소서.

그들을 이끌어 주되 강요하거나 협박하지 않으며
그들을 돕되 대가를 기대하지 않으며
그들이 누릴 수 있는, 실패할 수 있는 자유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빼앗지 않게 해 주소서.

그들의 슬픔과 기쁨을 가볍게 취급하지 않으며
그들의 성공과 실패를 과소평가하지 않고
그들의 하찮은 질문과 사소한 행동방식에도 진지하게 반응하며
매사에 그들을 존중함으로 존경받는 어른이 되게 해 주소서.

그리하여 유명한 사람으로가 아니라‘유능한 사람’으로
일류의 사람으로가 아니라‘유일한 사람’으로
우리의 자녀들이 자라나게 해 주소서.

이처럼 성숙한 어른들이 되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여러분 가정과 자녀를 크게 복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고훈 목사님이 쓴 [어머니]란 제목의 時입니다.

당신은 내가 만난 맨 처음의 사람입니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란 것을
몸으로 가르치신 분도 당신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5월의 웃음
주고도 떨어지지 않는 바다여.
우리는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너무 먼 곳에 계신 뒤에야
사랑은 이토록 강물 되어 흐르고
우리 또한 당신이 되어
이제야 그 사랑을 깨닫습니다.

'소금의 고마움은 떨어졌을 때 아버지의 고마움은 돌아가신 뒤에 안다’는 인도 속담이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아버지의 외로움을 알게 된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김현승 시인의 시‘아버지의 마음’처럼‘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자기보다 아들이 영웅이 되는 것에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에베소서 6:1말씀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했는데 "주안에서" 이것이 놀라운 성경적 가족구조요 제도입니다. 믿는 사람에게 가정이란 주님과 가족이 함께 행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입니다. 자식에 대하여 무책임한 부모는, 말년에 그 인생이 비참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람은 반드시 그 자식한테서 무시를 당하게 마련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부모와 가정입니다. 경쟁의 몸부림 속에서 피곤한 육신을 끌고 사람들은 가정을 찾아갑니다. 가정은 휴식처이고 안식처입니다. 또 용기를 주는 곳이고 안식처입니다. 인생의 배신과 패배와 쓰라림을 당했을 때 부모를 찾아갑니다. 부모님은 따뜻한 손길로 아픔을 쓰다듬으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거기는 우리가 낳고 자란 요람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의 산물이요, 희망의 산물이요, 정성의 산물입니다. 부모의 깊은 사랑 속에서 우리의 생명이 이 땅에 태어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에게 전 희망을 걸고 훌륭하고 좋은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부모는 그 어린 생명을 정성을 다해 키웁니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희생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사랑은 이해타산을 넘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태양과 같고 어머니의 사랑은 샘물과도 같습니다. 태양은 사방에서 빛과 열을 발산하며 샘터에서는 샘물이 철철 넘쳐흐릅니다. 우리는 사랑의 태양 아래서 사랑의 맑은 샘물을 마셔가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키웁니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가 쏟아 주는 사랑은 순수한 것입니다. 받기 위해 준 것이 아니고 아깝다고 생각하는 후회가 추호도 없이 일방적으로 쏟아주는 진짜 사랑입니다. 샘내지도 않고 섭섭함도 없이 그저 기쁘기 때문에 주는 고귀한 사랑입니다. 우리의 몸은 밥을 먹어 자랐지만 우리의 정신과 인격은 부모님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진실하고 티가 없으며 깊은데서 우러나오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너무나 숭고하기 때문에 그 자녀가 철이 들기 전에는 도저히 부모님의 높은 사랑과 은공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우리가 철이 들 그때에는 부모님이 이미 이 세상에 계시지 않기 때문에 효도를 별로 해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지만 어머니의 사랑의 우물은 마르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퍼도 퍼도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을 가졌기 때문에 모든 어머니는 부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있어서 가난한 어머니는 하나도 없고, 보기 흉한 어머니도 이 세상에 없습니다. 그러기에 모든 어머니는 아름답습니다. 그 넓은 사랑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포기가 없습니다. 반딧불만한 희망만 있어도 참고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아버지의 가치

아버지란 아이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존재입니다. 아버지의 미소 속에는 아이를 위한 장래의 걱정이 있고, 아버지의 주머니 속에는 아이를 위한 희생적 준비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가슴 속에는 아이에게 훌륭한 모범이 못되고 있다는 가책이 있고, 아버지의 심장 속에는 좀 더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결심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일터로 나가지만 그 머릿속에는 언제나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울고 겉으로 위로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속으로 사랑하고 겉으로 책망하는 자입니다. 아버지는 엄한 얼굴을 가졌으나 부드러운 심장을 가진 자입니다. 아버지는 최후까지 존재하는 아이의 고향이며, 배신하지 않는 아이의 친구입니다. 아이들은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을 배웁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두려움과 자비, 위엄과 사랑의 양면을 동시에 가진 분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의 사랑의 아름다움은 그 깊이에 있습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내 보이는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 깊은 곳으로부터 출발된 사랑입니다. 사랑의 깊이란 누구를 위하여 고통을 대신 당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부모의 사랑은 그 자녀를 위하여 넉넉한 고통을 지불하며 양육하기에 깊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고 생각나는 대로 요구합니다. 그러나 연로한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혹시나 자식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봐 이리 망설이고 저리 망설이고, 웬만하면 참습니다. 부모가 중심일 때는 자녀가 복종하는 위치이고 부부 중심일 때는 자녀와 부모가 맞먹는 구조인데 자녀 중심일 때는 자녀가 상전이 되어 있고 부모는 저 변두리에서 하녀나 노예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비참한 일입니까?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들은 사랑을 너무 많이 받아서 문제이고 나이 많으신 부모님들은 사랑을 받지 못해서 외롭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대신하는 존재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하는 것이 인간됨의 근본임을 깨우칠 뿐만 아니라 부모를 섬겨야 하는 윤리의 배경적인 힘이 되는 말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녀들에 대한 부모의 주권은 다른 어느 것보다도 크고 고상합니다. 어떤 권력이나 위엄도 부모의 위치를 따를 수 없는 것은 부모는 본래적으로 그 권위를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두 기둥은 어린이와 부모입니다. 두 기둥이 견고하고 튼튼할 때,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공장입니다. 부모를 이해하고 공경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자녀들에게는 진리를 가르치며 구원의 도리를 전수해야 합니다. 여기서 행복은 창조됩니다. 이 행복을 불행한 사람들을 위하여 나누어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서정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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