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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린이주일]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눅 23: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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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바르게 키우기로 결심하는 날입니다. 신앙교육에 있어서도 어린시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교육학자 콜만 맥카시는 1978년 놀라운 연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16세가 된 아이의 성격과 행동은 12세 때 이미 형성되었고, 12세 때에 아이가 취한 행동은 8세 때에 이미 원인이 있었으며, 8세 때에 아이에게 나타난 행동은 이미 3-4세 때에 그 뿌리가 있었음을 발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어린이주일에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이야기입니다.

종교심리학자 스펜서 박사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기독교인이 기독교에 입교한 연령은 다음과 같습니다.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48명이 20세 이전에 입교하였습니다. 337명은 20대에, 96명이 30대에, 14명이 40대에, 그리고 오직 4명이 50대에 입교하였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깊은 관심을 보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에는 감동스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지쳐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계속 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로마의 군병들은 마침 행렬을 따르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건장하게 생긴 구레네 시몬을 불러 예수님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드셨는지는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광경을 보면서 뒤따르던 여인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고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에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은 봉독한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A.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은 눈물없이 따를 수 없는 고난의 길입니다

27-28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치고 탈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다가 넘어지고 또 넘어지는 것을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쉬워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시는 길에 13번이나 넘어지셨습니다. 그는 너무 지쳐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갈 수 없었습니다. 얼마 전에 교회 지도자들이 지고 행진한 십자가 - 바퀴가 달리고 가벼운 십자가 - 와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예수님을 호송하던 로마의 군병은 함께 행렬을 따르고 있던 건장한 청년 구레네 시몬을 끌어다가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습니다. 지금도 예루살렘에 가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가시다가 넘어진 곳을 표시해 놓고 순례객들에게 설명을 해 주고 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울었던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 길은 눈물이 없이는 따를 수 없는 고난의 길이었습니다.

B. 예수님은 고난 중에도 백성들을 염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눈물 없이는 따를 수 없는 고난의 길에서도 백성들을 염려하는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자신의 고통도 주체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백성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울고 있는 여인들을 향하여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셨으니 백성을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너무나 큰 고통 앞에서 함께 울어주는 여인들의 사랑이 크게 위로가 되었을 것은 분명합니다. 실제로 힘이 들 때 함께 있어줄 사람만 있어도 큰 위로가 됩니다. 함께 아파해 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신 것이 그들의 눈물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도 다 도망하였는데 함께 울며 따라오는 여인들이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큰 위로가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위로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 때 같이 힘들어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할 수 있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지적하신 대로 동무들이 피리를 불어도 함께 춤추지 않으며 대곡하여도 가슴을 치지 않는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주위에도 위로해야 할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위로에 관한 제목으로 설교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 교인들의 상황을 자세히 살펴보니 80% 정도의 교인들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위로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아무튼 울며 따라가는 여인들의 행렬은 예수님께 위로가 되었음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큰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백성들을 염려하셨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타인을 생각하는 예수님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중심에 사로잡혀 이웃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에 바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님처럼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배려의 사람이 됩시다.

C. 예수님은 은혜 없는 가정의 무서운 재난을 예고하셨습니다.

29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수태 못하는 자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즉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할 때가 온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재난의 날이 온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재앙의 날을 예고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 지붕 위에 있는 자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며, 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 그 날에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재난의 날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를 많이 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봉독한 말씀의 38절에서는 그날의 재앙이 아주 심각한 것임을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그때에 사람이 산들을 향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말을 하셨겠습니까? 한순간에 산이 무너져 마을을 덮으면 큰 고통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나온 말입니다. 산이 덮이는 순간에 공포는 있겠지만 재난의 날에 큰 고통을 당하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은혜가 있는 곳에도 재난이 임하는데 은혜가 없는 곳에서는 재난이 얼마나 크겠느냐는 것입니다. 31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라고 하셨습니다. 푸른 나무에도 재난이 닥칩니다. 그러나 마른 나무에 닥칠 재난은 얼마나 심각하겠습니까? 푸른 나무에도 재난이 있다면 마른 나무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재난이 닥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말씀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리요”라고 하였습니다. 복음에 순종하는 사람, 은혜가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면 순종하지 않는 사람, 은혜가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D. 예수님은 재난을 피하기 위해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을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를 하라는 말씀입니다. 울음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여기서는 기도하라는 말씀과 연결되는 울음입니다. 이것은 느긋하게 편안히 기도할 내용이 아닙니다. 출세를 위해서라면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해도 됩니다.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느긋하게 기도해도 됩니다. 그러나 자녀가 당할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는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라도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며 통곡으로 기도하였습니다(에스라10:1 참조). 재난당하고 있는 백성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를 평안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 날에 에스라는 울고 백성들도 울며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도 극히 어려운 문제를 놓고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다”는 말씀이 있습니다(히5:7). 그러므로 눈물로 기도하라는 것은 기도할 내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우리와 자녀가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기도할 때에 눈물로 기도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눈물로 기도할 때에 놀라운 응답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눈물로 기도한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로 이단과 죄악에서 돌아와 기독교의 대교부요, 학자가 되었습니다.

서울교대 학장과 YMCA 이사장을 역임한 서장석 교수는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로 성공할 수 있었다고 간증했습니다. “나는 어머님의 애끓는 눈물의 기도로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네 살 때인가 잠에서 문득 깨어보니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오늘의 내가 교육자로 장로로, YMCA, 보이스카웃, 적십자 등에서 지도자로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나는 오늘도 어머니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어머니의 사랑과 기도의 생활, 감사의 생활, 내일에의 소망의 생활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성도 여러분! 고난의 길에서 예수님의 하신 말씀을 들으십시오. 나보다 백성을 염려하며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하신 주님의 사랑을 느끼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말처럼 장차 임할 재난을 피하기 위하여 눈물로 기도하길 바랍니다. 눈물로 기도하는 자식은 망하지 않습니다. 눈물의 기도로 세운 가정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황광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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