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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만 의지하자 (고후 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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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이 선교를 하다가 환난을 당한 것을 통하여 주시는 영적 교훈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2천년의 역사에서 예수님 다음의 인물로 꼽히는 분입니다. 신약성경의 절반을 쓴 분입니다. 영적으로는 3층천의 세계도 체험한 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으로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고, 복음을 전하면서 수없이 많은 환난을 겪은 분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형통한다는 말과는 좀 어울리지 않게 많은 역경을 겪은 삶이었습니다.

미국 이민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흥회에 어느 초신자가 참석하여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소형 버스를 바쳤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억수로 축복해 주실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도 그런 기대했던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자기가 바친 버스를 되돌려 달라고 해서 가져갔다고 하는 우스운 얘기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합니다. 고린도 후서 11장에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환난을 당했는가 하는 것을 좀 더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협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23-27).” 바울은 이런 수많은 환난의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려고 하는 영적 교훈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화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롬5:3-4).”

인류역사에서 위대한 인물들은 한결같이 환난과 역경의 터널을 거쳤다는 것입니다. 베토벤은 청각장애인이 되어 피아니스트 생활을 중지하고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밀턴은 시각장애인이 되어 「실락원을 썼습니다. 존 번연은 12년의 감옥생활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혀졌다고 하는 「천로역정」을 저술했습니다. 남아프리카의 만델라는 27년의 감옥생활을 하고 대통령이 되었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영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대학을 졸업하면 식민지로 보내 3년간 고생을 시켰다고 합니다. 고학을 하느라고 고생을 해본 사람은 노동자의 임금을 떼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 애들 삼형제는 여름 방학이 되면 식당에서 웨이터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미국 대학교는 여름 방학이 세 달이나 됩니다. 그래서 미국식당과 한국식당에서 일했습니다. 미국은 식당 웨이터의 월급이 따로 없고 손님이 주는 팀을 나누어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애들과 외식을 하면 언제나 하는 말이 “아빠, 팁 많이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웨이터로 일하다보니 팁을 너무 적게 주는 교인들과 교회 집사, 권사, 장로, 목사가 다시 보이더랍니다. 자기들이 고생했기 때문에 남의 고생을 이해할 줄 아는 것입니다. 

제가 대학교 시절 연세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김형석 교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인이 일본 상지대학을 다닐 때 하숙을 했는데 부자 아이들은 다다미방에서 혼자 독방에서 하숙을 하는데 자기는 돈이 없어서 마루의 모퉁이에 양동이와 빗자루와 걸레 두는 곳을 개조해서 만든 개집만한 조그만 방에서 하숙을 했답니다. 그런데 졸업할 때가 되니 하숙 주인 할머니가 오더니 “김상, 김상은 꼭 성공할 것이오”라고 하더랍니다. “아니,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내가 수십 년 여기서 하숙을 치는데 김상이 쓰고 있는 그 방에서 하숙을 하고 나간 사람들은 다 성공하는 것을 보았으니 이 다음에 당신도 꼭 성공할 것이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민족도 마찬가지 입니다. 노벨상을 제일 많이 받은 민족이 어느 민족입니까? 유대민족입니다. 경제학의 65%, 의학과 물리학의 25%를 유대인이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유대민족은 환난과 역경 가운데서 단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외세의 침략을 받아 예루살렘 선전이 10번이나 무너졌고, 주인이 20번이나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 유대인이 겁내는 민족이 생겼습니다. 한국민족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대책회의를 했답니다. 답이 나왔는데, 우리 대대인은 “너 죽고 나 살자”인데, 한국민족은 “너 죽고 나 죽자”로 나오기 때문이랍니다. 우리 민족이 어딜 가도 살아나는 것은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이화대학교, 숙명여자대학교에서 배운 지식 때문이 아닙니다. 전쟁과 가난을 통하여 연단 받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짧은 2절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고통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는 것은 죽는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상하게도 사람은 죽을 뻔해야 버려야 할 것 버리고, 고쳐야 할 것 고칩니다. 사람들은 ‘마지노선’이 무너져야 하나님께 손을 들고 나옵니다. 마지노선이 무엇입니까? 프랑스 사람들은 마지노 요새를 믿었습니다. 너무 튼튼하게 지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요새선만 있으면 독일군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요새선에 약점이 하나 있었는데, 막강한 폭발력을 동반한 공중 공격에는 취약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설마하며 방심하는 사이 결국 독일이 공중에서 프랑스를 공격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최후의 선을 일컬어 ‘마지노선’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 것입니다. 우리는 미련해서 인생의 마지노선이 무너져야 하나님 앞에 항복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을 의뢰하지 말라”고 합니다. 신앙은 자기신뢰를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육체, 건강, 물질, 지식, 지혜,  믿을 것이 못됩니다. 잘나봤댔자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다 무상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버립니까? 환난을 통해서 버리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환난이 주는 유익입니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됩니다. 자기의뢰를 버리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으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의뢰하면 됩니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환난입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멜란히톤은 “환난과 곤고가 나를 골방으로 몰아넣어 기도하게 하고, 그 기도는 환난과 곤고를 몰아낸다”라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청교도 부루스 목사는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웅변적인가 하고 수사학적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긴가 기하학적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많은가 산술학적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조직적인가 논리학적으로 보지 아니하시고, 다만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진실한가를 보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기도를 들으십니다.

미국 L.A.에 가면 동양선교교회라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 교회를 시작한 분이 임동선 목사입니다. 이분은 인천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해방 후 1946년 북한 유치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당시 교회를 나가 본적도 없고, 성경 한 구절도 읽어본 적이 없고, 기도도 한번 해보지 못한 사람인데 무릎을 꿇고 “하나님, 나 살려 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안심하라. 죽지 않는다. 너는 나의 일꾼이 된다”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 말씀대로 기적적으로 살아나서 목사가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례 받은 사람의 기도만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고, 집사, 권사, 장로, 목사의 기도만 들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진심으로 구하기만 하면 그 기도를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 교포교회 어느 목사가 기도하러 기도원에 갔습니다. 교인 가운데 집사가 삼형제와 함께 봉제공장을 하는데 불경기를 만나 파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집사 가정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던 중 그 집사에게 전화를 해서 기도원에 올라와서 같이 기도하자고 권했습니다. 그 집사가 목사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함께 기도원에 올라와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며칠 동안 기도를 마치고 내려왔는데 그 집사님의 사무실에 팩스 한 장이 텍사스에서부터 온 것이 보였습니다. 내용인즉, 1년 전에 옷을 흥정하던 큰 회사인데 이제 그 옷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서였습니다. 그것은 몇 년 동안 작업을 해도 남는 큰 주문이었기 때문에 봉제공장이 살아났습니다. 삼형제 모두 새로 집을 마련하고 자동차도 사고 부자가 되었습니다. 교회에도 기념으로 그랜드 피아노를 사서 바쳤습니다. 여러분 어려울 때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지난달에 고향 바닷가에 가서 횟집에 들려 음식을 먹었습니다. 서울에서 많은 손님들이 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대화 가운데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손님들 가운데 바다 생선이 너무 맛이 있어 외상을 달라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가게 주인은 두말없이 외상을 준답니다. 그러면 본인들이 놀랜답니다.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서울 사람에게 어떻게 쉽게 외상을 주느냐는 것입니다. 당신의 얼굴을 보니 외상값 떼먹을 것 같지 않아서 준다고 하면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서울에 와서 그 다음날로 돈을 붙이며 다음에 올 땐 친구들 열 명도 넘게 데리고 온다고 합니다. 자기를 믿어준 것이 그렇게 고맙다고 한답니다. 주인의 얘기가 이렇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다 마음이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열 명이면 아홉 명이 넘게 다 외상값을 갚는 좋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면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해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어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린 다음에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하시며 물으셨습니다. 이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이렇게 구하였습니다.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백성이 많으니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7-9).” 그는 임금입니다. 왕입니다. 장성했습니다.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작은 아이라고 본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를 하나님은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 왕이 왜 버림을 받게 됩니까?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삼상 15:17).”  하나님은 작게 여길 때 그를 이스라엘의 머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반대로 스스로 크다고 여길 때 작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은 어린이주일입니다. 어린이처럼 스스로 작게 여겨야 합니다. 어린이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듯 우리도 하나님을 부모님처럼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어린아이의 무기는 눈물입니다. 울면 부모는 꼼짝 못합니다. 우리도 눈물을 뿌려 기도해서라도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시고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입니다.
(김인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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