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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양 날개 (사 40: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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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간 우리나라를 방문한 한 외국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비너스’라 불리는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입니다. 양팔이 없는 모습으로 인형같이 생긴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당당하게 입국하는 모습이 좋아보였습니다. 잘 아시는 대로 그녀는 바다표범처럼 팔다리가 짧아지는 해표지증(海豹肢症 Phocosmelia)이란 질병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생후 6주 만에 버림받고 보호시설에서 자랐고, 22세에 결혼했지만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 헤어지고 ... 하나 같이 비참한 환경과 조건에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미술 공부를 시작했고,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 아이를 낳아 입으로 젖을 먹이고 옷을 입히면서 거뜬히 키워냈습니다. 그러더니 마침내 화가 겸 사진작가로, 세계적인 명사(名士)로 우뚝 서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그녀가 이렇게 어렵다 못해 비참한 현실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과연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 스스로 밝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영국의 탁월한 복지제도이고, 또 하나는 도전정신입니다. 이 둘 중에 물론 중요한 것은 도전 정신이죠. 아무리 복지제도가 잘 되어 있어도 정신력이 없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좋은 복지제도 하에서도 인생을 망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녀가 쓴 책의 제목 의미심장합니다. 「내 손 안에 있는 인생」(My Life in My Hands)인데, 그녀는 육신의 손은 없지만, 마음의 강인한 손이 있었기에 현실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기자회견장에서 말한 재치 있는 한 마디가 생각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여러분에게 ‘도전정신’을 작은 유리병에 담이 하나씩 선물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그런 선물 받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마 지금보다 훨씬 나은 모습으로 인생을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 제가 그보다 ‘더 좋은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이 시간 즉석에서! 물론 제가 직접 드리는 것은 아니고 하나님 주시는 것이고, 저는 전해 드릴 뿐입니다. 이 선물을 받고 안 받고는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아무쪼록 이 선물을 꼭 받으시고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현실 앞에 낙심하는 인생의 모습 : 이사야 시대의 이스라엘과 오늘의 우리들

  본문은 이사야 선지자의 글인데, 그 당시 역사적 배경은 이랬습니다. 이스라엘(정확하게 말하면 南 유다) 백성이 하나님을 거역하다가 바벨론 제국에게 침략을 당할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나라는 망하고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게 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바벨론 포로는 하나님의 징계일 뿐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는다! 때가 되면 반드시 본국으로 귀환시켜 주리라!”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무서운 현실 앞에 무너지고 맙니다. 그때 그들의 심경이 27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 ...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 ”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사정을 몰라주고, 아무리 호소해도 들어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원망과 낙심으로 가득한 모습입니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강국 바벨론의 침략입니까? 물론 그것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이스라엘의 문제는 전혀 다른 데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들에게 닥친 현실을 극복할 힘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현실이 너무 어렵다, 문제가 너무 복잡하다, 일이 너무 많다, ... 틀린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좀더 깊이 생각해 보면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그런 현실, 그런 문제, 그런 일들을 감당할 힘이 없고 실력이 없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보죠. 한 학생이 시험지를 받아들고 시험을 치릅니다. 그런데 앞이 캄캄합니다. 문제가 너무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겁니다. 어렵고 쉬운 것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입니다. 실력만 좋으면 어떤 문제라도 풀 수 있습니다. 답이 없는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역 발상을 하면 문제는 어려울수록 좋은 겁니다.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으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예도 생각해 보세요. 사람이 왜 병에 걸립니까? 병원균 때문에요? 맞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틀립니다. 왜냐하면 병원균은 보통 사람들에게 항상 잠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체력이 더 강하면 이겨냅니다. 힘에 부쳐서 병에 걸리고 고생하고 죽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역설합니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문제이다! 문제가 문제가 아니라 실력이 문제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 인생의 문제들을 능히 이길 수 있는 실력은 무엇입니까? 체력도, 학력도, 재력도, 권력도 실력은 실력입니다. 그런데 그보다 중요한 것은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마음의 힘, 즉 정신력입니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힘은 그 어떤 것이든 제한적입니다. 30절 보십시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 ” 힘이 펄펄 넘치는 한창 때라도 인간의 힘은 제한적이라는 겁니다. 정신력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의 문제가 조금만 커져도 이내 낙심하고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 자신의 ‘힘’과 전혀 차원이 다른 외부의 힘, 즉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그 당시 이스라엘의 모습이 혹시 지금 내 모습은 아닌가요? 현실의 이런 저런 문제 앞에 낙심하고 좌절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인생의 현실을 극복하는 힘 :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영력)

  28절~29절을 보십시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씀합니다. 인간은 유한하며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능자 하나님입니다. 힘이 넘쳐흐르고 넘쳐흐르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무자격자’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 된 사람들이 ‘자격자’입니다. 본래 모든 인간은 죄인으로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감히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께 나아가 새 힘을 받을 수 있습니까? 대속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을 무너뜨리는 게 바로 대속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를 보장해 주는 게 구약 시대에는 속죄 제사였고, 신약 시대에 그 성취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은 것입니다. 인간 자신이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서 피 흘려주심으로 속죄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막15:37~38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실 때의 광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 이전 구약 시대에 있던 성전에는 성소(聖所)와 지성소(至聖所)가 있습니다. 그때는 대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지성소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드리어진 휘장을 지나야 했습니다.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갖고 들어가는 그 외에는 누구도 감히 들어갈 엄두를 못 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휘장을 찢으신 겁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대속으로 믿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 기자는 그런 사실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10:19~20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찬송가 188장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 3절 가사를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빈손 들고 앞에 가 십자가를 붙드네 의가 없는 자라도 도와주심 바라고 생명 샘에 나가니 맘을 씻어 주소서” 그렇습니다. 나는 죄와 허물 많고 부족해도, 빈손 들고 나아가도 예수 십자가만 붙들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십자가 대속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은 얼마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새 힘을 얻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새 힘을 얻는 방법 : 말씀과 기도의 양 날개

  여러분,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새 힘을 얻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31절 보십시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 여호와를 앙망하면 새 힘을 얻습니다. 여기서 ‘앙망한다’는 말은 바라본다, 기다린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어원적으로는 줄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하면, 앙망한다는 것은 늘 긴장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지속적으로 영적인 새 힘을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영적 교제의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이 무엇입니까?  말씀과 기도입니다. 31절을 다시 보면, 새 힘을 얻는 사람의 모습을 독수리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 ...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 ” 여기서 우리는 비유적으로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독수리의 힘은 양 날개에 있습니다. 양 날개를 쫙 편 채 기류를 이용해서 유유히 날아가고, 때로는 날개 짓을 하며 힘차게 창공을 향해 솟아올라갑니다. 바람의 힘이 없으면 날아갈 수 없지만, 양 날개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때로는 양 날개를 쫙 펴고 기류를 타며 날아갑니다. 때로는 양 날개로 날갯짓을 하며 힘차게 하늘로 솟아오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신앙에 있어 말씀과 기도는 양 날개와 같습니다.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잘 활용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힘을 충만히 받을 수 있습니다.

  ① 말씀의 날개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히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나니 ...”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성령의 능력이 부어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지런히 성경 말씀을 섭취해야 됩니다. 말씀을 듣고, 읽고, 연구하고, 암송하고, 묵상하고 ... 다양한 방법으로 섭취해야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특히 암송하는 게 좋습니다. 암송하면 마음속에 말씀이 살아 있어, 언제라도 나올 수 있습니다. 처한 상황에 맞는 말씀을 기억하고 적용함으로 능력 받고 승리하게 됩니다. 암송하라면 나이 탓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교회 권사님은 90세인데도 본문이 아직 암송하지 않은 것이고 은혜로우면 통째로 외워버립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신다면 누가 할 수 없다고 핑계 댈 수 있겠습니까?

  이런 성도가 있습니다. 금요일이 되면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주일 설교 본문과 제목, 찬송가 등을 봅니다. 그것을 미리 읽어보고 불러봅니다. 이렇게 준비된 사람이 주일예배에 말씀을 경청하고 은혜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설교 테이프가 나오면 구입해서 몇 번 듣습니다. 놓친 메시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메시지를 반복 청취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설교원고 전문을 프린트해서 밑줄을 그으며 읽어봅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주보에 나온 요약을 보고 철해놓습니다. 그 외에 개인적으로 성경을 읽습니다. 이런 분에게 어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지 않겠습니까?   

  ② 기도의 날개 :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영적인 능력을 부어주십니다. 1세기 초대교회 시대는 기독교 2천년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교회와 성도들이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 때는 대박해가 있었는데 말입니다. 유대인의 박해, 로마 당국의 박해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상황인데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가 말입니다.

  외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그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새 힘을 공급받았습니다. 행1:13~14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직전에 기도운동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제자들과 성도들이 다락방에 모여 기도합니다. “더불어 마음이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바로 그때 성령이 강림했고 그들은 성령 충만해져서 밖으로 나가 복음을 담대히 증거합니다. 그러다가 체포당합니다. 그러나 풀려난 후 어떻게 합니까? 사실 붙잡혀 들어가서 혼나고 나면 더 무서운 법이데 ... 행4:31 보면 기도함으로 능력 받고 또 나아가 복음을 증거합니다.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

  막9:29 보면 예수님 출타 중에 한 사람이 제자들을 찾아온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아이가 귀신 들려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 여럿이 그 아이 하나를 고치지 못해 전전긍긍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하면 하나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겁니다. 귀이 물러갑니다. 질병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되고,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런 영적인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앙망하심으로 성령이 부어주시는 새 힘을 받아 날마다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4] 새 힘을 얻은 자의 승리 : 연속적인 승리 

  우리가 영혼 가운데 새 힘, 영적인 능력이 부어지면 우리의 삶은 전혀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승리의 삶이 연속적으로 펼쳐집니다. 그 모습을 31절(하)에서 뭐라고 묘사합니까? “ ...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 하리로다”
피곤하지도 지치지도 않는다고 했습니다. 승리하다 말다 하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새 힘을 받으면 현실의 어려움을 넉넉히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환란을 이깁니다. 위로받고 인내하고 견뎌냅니다. 극복합니다. 문제를 해결합니다. 환경을 변화시킵니다. 기적을 창출합니다. 이런 예는 성경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도 날마다 일어납니다.

  말씀의 날개로 새 힘 얻어 승리한 사례를 들어봅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여자 다이빙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가 있습니다. 로라 윌킨슨 선수입니다. 그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였으므로 미국 국민이 크게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대회를 수개월 앞두고 오른쪽 다리 골절상을 당하게 됩니다. 코치와 주치의는 그녀에게 올림픽 출전 불가 판정을 내렸습니다. 선수 생활을 못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암담했지만 기도하는 가운데 철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때 붙든 말씀은 빌4:13이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녀는 힘들 때마다 말씀을 외우면서 훈련을 해나아 갔습니다. 경기마다 조마조마했지만 결국 결승에 진출했고,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녀의 실력도 실력이거니와 말씀을 통해 얻는 새 힘이 결정적인 승리의 요인이었습니다.

  어제 신문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D대 K교수는 청각장애인으로 도예가입니다. 말도 어눌하고 청각 장애가 있는데 대학 강단에 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지만 이루고 말았습니다. 그는 또한 인간문화재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백자를 빚을 때 말씀을 읽으면서 영감을 얻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할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통해 새 힘을 얻으면 지혜가 생겨서 각 분야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학생도, 사업가도, 각 분야의 전문가도 잘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날개로 승리한 사례도 있습니다. 오랜 전 이야기입니다만, 한 미국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직장에 출근했는데 책상에 흰 봉투가 놓여져 있습니다. 뭔가 꺼내 보니까 해고통지서입니다. 일언반구도 암시하지 않고 이럴 수가 있나 싶어 직장 상사들에게, 회사에 분노와 증오가 끓어올랐습니다. 자신의 무능력에 크게 좌절합니다. 도저히 집에 붙어 있을 수 없어서 가출합니다. 오랜 시간 방황해도 별 수 없게 되자 다시 집에 들어옵니다. 만만한 게 아내라 날마다 푸념을 늘어놓습니다. “모든 게 끝장나고,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이제는 죽는 길밖에 없소.” 그 말을 듣고 있던 아내가 차분한 어조로 호소합니다. “좋아요. 그러나 한 가지 당신이 해보지 않은 게 있으니 그걸 해 보고 그때 가서 죽든지 살든지 합시다.” 남편은 퉁명스럽게 그게 뭐냐고 따져 물었고, 아내는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당신이 다 해 봤다고 말하지만 하나님 앞에 나아가 진지하게 기도해 보지는 않았잖아요.” 그 말이 남편의 가슴에 비수처럼 박혔습니다. 남편은 회개하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위로해 주시고, 마음속의 분노를 녹여주십니다. 그러니까 새로운 의욕도 생기고 지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집을 잡혀 융자를 얻어 작게 건축업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5년 만에 회사의 오너가 됩니다.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당시는 미국에 레저산업이 막 시작되려는 시점이었습니다. 건축하면서 보니까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전하고 요금이 저렴한 호텔이 부족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좋은 서비스, 건전한 분위기, 저렴한 요금을 표방하고 호텔을 하나둘 짓기 시작합니다. 마침내 전국 규모의 체인이 됩니다. 그 호텔이 바로 ‘홀리데이 인’이고, 그 남자는 창업자인 케몬스 윌슨입니다.

  여러분! 다시 강조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 앞에 있는 현실의 문제가 진짜 문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이 문제입니다. 나의 신앙이 문제입니다. 나의 영력이 부족한 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현실이 어렵습니까? 태산 같은 문제 앞에 짓눌려 있습니까? 그 모든 것보다 더 크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사실을 굳게 믿으시고, 말씀과 기도의 양 날개로 힘차게 날개 짓을 하며 하나님께 올라가십시오! 반드시 새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새 힘! 하나님이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디 하나님 주시는 새 힘을 얻으시고, 날마다 승리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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