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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엘리의 아들들 (삼상 2:12-1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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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수 63인에 대한 리포트>
본문 말씀은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을 파(破)하신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양육했던 엘리 제사장의 리더십을 끝내고
사무엘이 새로운 지도자로 부각시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엘리 가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이유는 자녀교육에 있었습니다.
엘리에게는 '홉니'와 '비느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아주 버릇이 없었습니다.
본문 말씀 어느 곳을 읽어봐도 엘리가 사악했다는 말은 나오지 않습니다.
엘리는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한나가 기도해서 낳은 아들 사무엘을 거두어 자기 수하에 두고 길렀습니다.
엘리가 한나 집안에 해를 끼친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되려 은혜를 준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한 가지, 엘리는 자식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서 우리는 자녀교육의 중요성을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 말씀 잘 듣고 효도 잘하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연 우리는 자녀들을 어떤 식으로 교육하고 있는 가도 중요합니다.
사실, 엘리의 실패는 자식교육의 실패였습니다.
아주 그릇된 길로 치달리고 있는 자식들을 바르게 이끌지 못했던 것이지요.

어느 부모도 자식교육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 부족하고 다 연약하기에 아무리 잘 한다고 해도 우리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남 보기에 문제 많은 부모임에도 그 자식들은 반듯하게 자랄 때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자식교육에 아주 열성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자녀들이 삐뚠 길로 빠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녀교육을 자신 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할 뿐입니다.

저는 몇 달 전에 국민 일보 특집으로 실린 「사형수 63인에 대한 리포트」
기사를 스크랩해서 자세히 읽은 적이 있습니다.
국민일보는 사형선고를 받고 현재 형집행을 기다리는 63명의 범행 동기,
출생과 성장 과정, 그리고 종교 현황에 대해서 아주 심층적인 기획 기사를 연재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다 예상은 하시겠지만 사형수들 중에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드물었습니다.
결손 가정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받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은 사형수 63명 가운데 범행 당시
종교를 가진 사람은 겨우 6명뿐이었고 57명이 무교였다는 사실입니다.
종교를 가진 6명 가운데에도 기독교가 2명, 불교가 1명이었으며
무속신앙 등 특수 종교가 3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 사형수들과 자주 접촉해 온 교화위원들에 따르면 이들이 종교를 가졌었다면
사형수가 되지 않고 전혀 다른 인생 행로를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실제로 사형수들 가운데 기독교 신자가 된 사람들은 놀랍게 변화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죄를 깊이 뉘우치는 것은 물론이고 피해자 가족들에게도 사죄합니다.
심지어 사후에 자기의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사형수들도 있습니다.
신앙의 힘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게 할 뿐 아니라 삶에 대한 애착도 갖게 합니다.

사형수들 가운데는 "다시 태어나가나 출소한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하는 질문에 신앙인이 되고 싶다는 대답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매일 매일 죽음의 공포 속에 살아가는 사형수들에게
결국 신앙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지요.
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해야 할 교육이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앙 교육입니다.

<엘리의 실패 = 가정교육의 실패>
본문 말씀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엘리의 문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앙 교육에 실패했기 때문에 가문 전체가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엘리의 두 아들의 문제점은 무엇입니까?
12절 말씀을 보세요.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여기 두 가지가 지적되었습니다.

첫째로, 불량자, 즉 행실이 좋지 못했습니다.
'불량자'란 원어대로 하면 '벨리알의 아들들'(sons of Belial),
즉 '우상의 아들들,'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마귀 자식들'이란 뜻입니다.

둘째로, 행실이 좋지 못한 이유가 있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말은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뜻입니다.
잠 1: 7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고 했는데
하나님을 무시했으니 그 결과는 너무나 뻔합니다. 

여러분, 엘리가 누구입니까?
제사장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를 맡은 성직자요, 오늘로 말하면 목사인데 그 자식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가정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렇습니다.
엘리 가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는 신앙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해 불량했는데 행실이 어떻게 나빴습니까?
여러 가지 죄악이 있었겠지만 성경은 크게 두 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종교적인 잘못과 윤리적인 잘못입니다.

먼저 엘리의 두 아들들은 제사와 관련되어서 망령된 짓을 일삼았습니다.
이들은 경건한 제사 제도를 문란하게 만들어 여호와의 제물을 강탈했습니다.
율법서에 제정된 신성한 제사의 법도를 무시한 채 자신들의 육적인 욕심만 채웠던 것이지요.

13-14절 말씀을 보세요.
엘리의 아들들은 누군가가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고 있으면
종을 시켜 세 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솥에 갈고리를 찔러 넣어서
그 갈고리에 걸려나오는 것은 무엇이든지 제사장의 몫으로 가져갔습니다.

여러분, 이게 왜 죄가 됩니까?
레 7: 30-34절을 보면 제사장의 몫으로 화목제물의
가슴부위와 우편 뒷다리가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욕심 사납게 세살 갈고리로 아무 고기나 마구 강탈했다는 것은
제사장에게 주어진 권한 이상으로 월권행위를 했다는 뜻이 아닙니까?
제사장의 직임이 군림하거나 착취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봉사하고 섬기는데 있음을 잊었던 것이지요!

그 다음에 15-16절 말씀을 보면 제물에 아직 기름을 떼 내어 태우지도 않았는데
종을 시켜 삶은 고기가 아니라 날고기를 내어놓으라며 강짜를 부렸다는 것입니다.
레 3장을 보면 화목제를 드릴 때 짐승의 기름을 다 태워 불살라야 했습니다.
절대로 기름과 피를 먹어서 안 되는 것이 율법의 규례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아들들은 아직 기름이 있는 살코기, 그것도 삶은
고기가 아니라 날고기를 내놓으라고 호통을 쳤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고기가 맛이 있는 것은 기름 때문이 아닙니까?
엘리의 아들들은 기름이 빠진 고기는 맛이 없으니까
아직 기름이 잔뜩 묻은 생고기만 강제로 탈취해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율법에 있는 제사 규례를 말하며
"먼저 기름을 태운 뒤에 가져가시오!" 해도 막무가내였습니다.   
기름진 살코기만 강제로 탈취해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엘리의 아들들은 먼저 신앙교육이 엉망이었습니다.
제사장의 자식들이요, 또 대를 이어 제사장으로 봉사해야 할 성직자들이
율법을 어기고 제 멋대로 상식이하의 짓을 했던 것입니다.
이들의 죄악은 사람 앞에서 저지른 죄이기에 앞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죄였습니다.
그리하여 본문 17절은 이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근본적으로 신앙교육이 크게 잘못된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 다음에, 엘리의 아들들은 종교적인 잘못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잘못되니
이웃과의 수평적인 관계가 잘못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하나님을 무시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이웃을 존중할 수 있겠습니까?

22절 말씀을 보면 엘리의 아들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온갖 잘못을 저질렀는데
심지어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성들, 즉 제사와 관련하여 그릇을 씻는 일과
음식을 만드는 일 등, 신성한 제사를 위하여 봉사하는 여성들과 동침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인 죄악을 저질렀을 뿐 아니라 윤리적인 죄악까지 범했던 것이지요.

엘리는 아버지로서 자기 아들들에 대한 나쁜 소문을 다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루는 자식들을 불러서 타이릅니다.
표준 새번역 성경은 23-25절 말씀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엘리는 자식들을 타일렀다.
'너희가 어쩌자고 이런 짓을 하느냐?
너희가 저지른 악행을, 내가 이 백성 모두에게서 듣고 있다.
이놈들아, 당장 그쳐라!
주님의 백성이 이런 추문을 옮기는 것을 내가 듣게 되다니, 두려운 일이다.
사람끼리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중재하여 주시겠지만,
사람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누가 변호하여 주겠느냐?'
아버지가 이렇게 꾸짖어도, 그들은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이미 그들을 죽이려고 하셨기 때문이다."

<엘리가 가정교육에 실패한 이유는?>
여기 보세요.
여기에 엘리의 잘못된 가정교육의 일단을 엿볼 수 있습니다.

① 엘리는 적절한 때에 자식들을 바로 잡지 못했습니다.
자식들이 무엇인가 비행의 싹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미리 뿌리를 뽑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직 머리가 굵어지기 전, 바로 잡을 수 있을 때 자녀들을 잡아줘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도 있고 "버스 지나 간 뒤 손을 흔든다."는 말도 있듯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을 때 책망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미국 생활을 할 때 부모들을 보니까 대부분 돈 버는데
정신이 없어서 자녀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합니다.
아직 부모의 말을 고분고분 잘 들을 때 아이들을 바로 이끌어주어야 하는데,
그만 세상적인 일에 너무 집착하다보니까 그 타이밍을 잃을 때가 많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비뚠 길로 가서 부모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후회합니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늦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이 순수해서 부모의 책망과 교훈을 잘 받아들일 바로 그 때 교육해야 합니다!
머리가 다 커지고 부모가 무슨 말을 해도 코방귀를 뀔 때는 너무 늦습니다.

여러분, 엘리는 너무 늦게 자식을 책망했습니다.
이제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쇠귀에 경 읽기가 되었을 때 책망하니 아무 감동이 없습니다.
본문 25절 말씀에 보면 귀를 닫고 아비의 말을 도무지 듣지 않습니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어서 그 어떤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된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아직 뿌리가 약한 어린 나무는 쉽게 뽑을 수 있지만
아름드리 큰 나무는 아무리 큰 힘을 써봐도 뽑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직 자녀들의 의지를 꺾을 수 있을 그 때 바르게 교육해야 합니다.
기회를 놓쳐서 안 됩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그 때 신앙교육을 바로 시켜야지 온갖 세속적인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을 때에는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 때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 챈스를 놓치지 마십시오!

② 미온적으로 책망했습니다.
엘리의 책망은 주로 세상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나쁜 소문에 의거했습니다.
자기가 제사장인데 제사장의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사실에 신경을 더 썼던 것이지요.
엘리는 소문보다는 아버지로서 자기가 직접 본 것을 근거로
자식들을 훈계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한 훈계를 하되 가슴과 가슴이 부딪혀야 하는데 그냥 꾸중으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한 집에 살며 함께 밥 먹고 함께 잠자지만 서로의 마음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저 하숙집에 사는 것처럼, 여인숙에 들리는 것처럼 살 가운 대화가 사라진 가정이 많습니다.
앞에서 사형수 이야기를 했지만 거의 대부분이 정다운 가정에서 자라나지 못했습니다.
가족 간에 대화는커녕 증오와 폭력이 난무하는 결손 가정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소설가 공지영 씨는 사형수의 삶을 다룬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란 소설을 썼습니다.
공씨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하여 자신도 '자유로운 사형수'라고 생각하고 매주 한 차례씩 12명의 사형수들을 서울 구치소에서 만나 하루 세 시간씩 그들과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공지영 씨의 결론은 너무나 간단했습니다.
12명의 사형수들 중에 제대로 된 가정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것입니다.
살 가운 대화나 정이 없는 세상 속에 살다보니 막가파 식의 살인자가 되고 말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오직 사랑만이 이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자녀들이 듣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백 마디 말보다도 그저 자식들을 붙들고 주르륵 주르륵
눈물만 흘리는 것이 훨씬 더 효과가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눈물의 자식은 망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들도 사람이기 때문에 잘못될 수 있습니다.
다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때로 부모의 애간장을 녹이고 가슴을 후비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자식들이 되돌아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좋은 말을 해도 사랑의 마음 없이는 자식들의 마음을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엘리가 자식들에 대한 세상의 소문이 안 좋으니까 호통을 칩니다.
그런데 두 아들이 그 말을 듣고서도 감동이 오지 않습니다.
"개는 짖어라. 기차는 간다." 하면서 귀를 닫아버리고 듣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두려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일방적인 훈계일 뿐 자식들의 가슴을 때리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자녀들을 어떻게 대합니까?
단지 세상 소문이 무서워서 자녀들을 훈계하고 책망하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습니까?
먼저 부모인 우리부터 철저히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자녀들을 대해야 합니다.
사랑과 눈물이 있을 때에만 자녀들이 우리의 말을 듣고 변할 것입니다!

엘리가 자녀교육에 실패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났습니까?
본문 27-36절 말씀은 엘리 가문의 운명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엘리 가문을 폐하시고 새로운 제사장 사무엘을 일으키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씀이 30절 후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그렇습니다.
엘리 가문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이유는 너무나 분명했습니다.
하나님을 존중하지 않고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신앙교육을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식들이 하나님을 무시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지요!

오늘 우리가 자식들에게 가르쳐야 할 여러 가지 덕목들이 있습니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도 중요하고 효도도 중요하고 형제간에 우애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덕목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과 온 힘을 다해 우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자녀들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도록 가르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자식의 은혜를 아는 부모>
아주 오래 전에 아르메니아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5만 5천명이 목숨을 잃은 적이 있습니다.
이 때 9층 아파트 건물이 무너져 스잔나라는 어머니와 네 살난 딸이 갇혔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구조대원이 두 모녀를 발견했는데 어머니는 죽고 딸만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목마른 딸을 구하기 위하여 유리 조각으로
자기 팔뚝을 째서 흐르는 피를 한 방울 두 방울 먹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침내 양 팔뚝에 피가 더 이상 나지 않을
정도까지 피를 흘려서 빈혈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자신의 온 피를 흘려 딸의 생명을 구했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 어버이들에게 이와 같은 부모의 희생적인 사랑을
다시 한번 회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항상 주님께 기도하는 믿음의 부모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아 우리 자녀들이 당연히 어버이를 잘 공경해야 하겠지요.
어버이의 은혜를 모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버이의 은혜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자식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신앙생활도 잘 하고 반듯하게 잘 자라줄 때
그것보다 더 감사하고 은혜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 자녀들은 어버이의 은혜에 감사하고 부모님들은 반듯하게 잘 자라준
자녀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김흥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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