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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부모사랑 (창 2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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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주간 전라도 광주를 다녀왔습니다. 교단에서 주최하는 전국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이번 광주방문은 2번째였습니다. 오래 전 제가 신학대학원에 다닐 때 전국 교회투어를 하면서 처음 방문을 했고, 23년이 지난 뒤 다시 가게 된 것입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광주 시내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특히 5. 18 사건의 현장이었던 광주역, 금남로, 전남도청 등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만 들어왔던 그곳을 따라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망월동을 찾아갔습니다. 망월동의 묘역은 오래 전 국립묘지로 승격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들어가는 입구부터 아주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었고, 각처에서 몰려온 학생들의 참배로 평일인데도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망월동을 둘러보면서 안치된 여러 묘지를 보게 되었고, 한곳에 저의 시선이 고정되었습니다. 묘지번호 57번, 이름은 조사천이란 분이었습니다. 이 사람은 1980년 5월 21일, 금남로에서 총탄에 맞아 숨진 사람입니다. 그는 결혼하여 2남 1녀의 자녀를 둔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이름과 묘지가 알려지게 된 것은 당시 5살이었던 아들 때문입니다. 이 꼬마아이가 죽은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들고 있는 모습이 한 외신기자의 카메라에 잡혀 세계인의 심금을 울리면서 유명해진 것입니다. 이제 그 아이는 30대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유명세를 타면서 인터뷰가 이어지는데, 그의 고백 중에 가장 안타까운 말은 해마다 5월이면 어버이날이 있는데, 지금 현재 그에게는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아버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5월 8일이 어버이날이었고, 오늘은 교회적으로 어버이주일로 지키는 날입니다. 우리가 매일 부모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며 살아야 하겠지만 특별히 오늘은 믿는 자로서 더욱 부모를 생각하며 보내는 날입니다. 부모하면 역시 떠오르는 것이 사랑입니다. 자녀도 사랑이요, 부모도 사랑입니다. 특히 아직 세상에 남아 계신 부모에 대한 사랑이 더 절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는 사랑을 주고 싶어도 이미 세상을 떠난 부모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사랑, 그것은 성경이 자녀에게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명령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입니다. 믿는 자로서 구체적으로 부모를 사랑하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은 그것을 본문을 통해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는 부모에게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그의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이 사건을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관점에서만 보았습니다. 물론 성경이 아브라함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브라함이 아닌 이삭의 관점에서 보려고 합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아들 이삭은 지금 아버지의 고민, 문제, 시험, 어쩌면 아픔에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이것이 자녀인 이삭에게서 보여지는 첫 번째 부모를 향한 사랑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뒤에 약속대로 그의 가정에 자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으로 인해 아브라함의 가정에는 그야말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모든 자녀가 다 소중하지만 이삭은 정말 소중한 자녀였습니다.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는 이삭으로 인해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순간이 아브라함의 생애에 가장 큰 고민과 어려움에 처한 상황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는 것은 어떤 부모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백세에 얻은 정말 소중한 자녀를 죽이는 일은 차라리 부모가 대신 죽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주실 때는 언제고 이렇게 아이로 인해 생애 큰 기쁨과 평안을 얻고 있는데 바치라고 하니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같으면 아마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들 때문에 믿음도 포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아브라함의 생애에 큰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위기의 현장에 아브라함은 혼자가 아니고, 아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들은 죽어야 하는 당사자이기에 따라가고 있지만, 계속되는 말씀을 보면 이삭이 보통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처음부터 이삭은 모든 것을 감지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가 인생의 최대의 문제에 직면했을 때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은 바로 아들, 자녀였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고민과 아픔에 이렇게 동참한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부모를 향한 사랑은 부모를 좀 더 가까이 가는 것이고, 부모의 현실과 상황과 모습을 알아 가는 것이요, 부모를 좀더 깊이 이해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이해입니다. 이해는 상대방의 입장에 서 보는 것입니다. 자녀가 이렇게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 한 번 서는 것입니다. 부모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을 위해 노력하고, 아픔의 때에는 함께 기도하고 고민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이해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파악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아이들이 미국에서 살 때 제가 아주 부자인줄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카드로 기계에 넣기만 하면 돈이 나오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작은아이가 못쓰는 카드를 달라고 하더니 모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미국에서 살다보니 어버이날이 언제인지도 잘 모릅니다. 우리는 그래서 아예 어버이날 하루 전날에 전화해서 ‘내일이 무슨 날인지 아냐’ 고 묻습니다. 그러면 어린이날이 아니냐고 말합니다. 아무리 말해도 모르니까 나중에는 아예 내일은 어버이 날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엄마랑 전화하면 인사하라고 말합니다. 그냥 엎드려 절 받는 것입니다. 그러던 아이들이 요즘에는 좀 달라졌습니다. 이번 어버이날에는 큰 아이가 일찌감치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재미있게 보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미리 자기가 모은 한국 돈을 주고 가기도 했습니다. 조금 크니까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여러분은 부모를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부모의 수고와 눈물과 아픔을 알고 계십니까?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사랑이요, 잘 이해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기쁠 때 함께 기뻐하고, 부모가 문제와 고민이 처할 때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을 실천하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지속적인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사건에서 주목하여 볼 것은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이삭의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은 깊은 번민과 아픔 속에 아들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아들을 제물을 바칩니다. 그런데 그 길로 가기 전에 이 사건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가 돋보이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짧지만 아주 깊은 대화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 먼저 말을 꺼냅니다. "내 아버지여" 아버지가 대답합니다.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아들은 이어서 묻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 할 어린양은 어디 있나이까"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합니다. "아들아 번제 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이런 대화를 눈여겨보면서 역시 아들 이삭은 지금 어느 정도 감을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버지는 차마 아들과 눈을 마주치지도 못한 채 비장한 마음으로 아들의 물음에 대답합니다. 이렇게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를 마지막으로 이제 아들은 밧줄에 묶여 제단에 올려집니다. 이것이 여기에서 돋보이면서, 또한 이것이 사랑임을 보여줍니다. 사랑은 무엇인가? 그것은 말이 이어지고, 대화가 통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통한다는 것은 그만큼 교감이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끊임없이 대화가 통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말하고, 대답하고, 전하고, 들어주는 교감과 대화가운데 부모와 자녀의 사랑은 점점 깊어 가는 것입니다. 자녀는 이런 사랑을 해야 합니다.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나라 가정에 부모와 자녀의 대화가 극히 짧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을 앞두고 지난 4월 26일부터 27일까지 대학생 34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하루 평균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에 대해 응답자의 32.2%가 ‘거의 없다’고 답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10분 이내(26.4%), 10-30분(23.6%), 1분 이내(7.2%), 30분 이상(6.0%) 등으로 나타나 전체 응답자 65.8%가 아버지와 하루 평균 대화 시간이 10분 미만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어머니와 대화 시간은 아버지보다는 좀 더 긴 것으로 조사되었지만 그래도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울러 이번 어버이날에 꼭 하고 싶은 말로는 가장 많은 응답자인 22.7%가 ‘사랑합니다’를 꼽았으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등을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지금 우리 가정의 현실입니다. 가정 안에서 대화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남편과 아내사이에, 형제와 형제사이에, 특히 부모와 자녀 사이에 말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쩌면 모든 문제의 원인이요, 발단이 되는 지도 모릅니다. 자녀와 부모가 통하지 않으니까 점점 관계가 닫혀지고 단절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에 사는 우리 믿는 자의 가정은 이제 대화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말이 통해야 사랑도 정도 통합니다. 자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부모가 되어야 하고, 부모의 말에 대답하는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 가정에 다시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여기에서부터 사랑은 시작됩니다. 대화의 사랑을 통하여 가정의 행복과 기쁨을 이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무엇보다도 순종이 돋보이는 사건입니다. 우선 아브라함의 순종이 뛰어납니다. 하나님 앞에 일체 순종함으로 나아갔던 아브라함이었기에 그는 믿음의 조상으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얼마든지 핑계를 대고, 거부하고, 불순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 앞에 즉각적이고, 완전한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인정하는 뛰어난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순종과 함께 또 돋보이는 것이 바로 이삭의 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순종했다면, 이삭은 아버지에게 순종합니다. 어떻게 보면 아들의 순종으로 아버지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또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뛰어난 믿음과 순종의 사람으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아들이 거부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바뀔 지 모를 일입니다. 특히 죽이는 아버지보다 죽는 아들은 더 참담한 일입니다. 학자들은 당시 이삭의 나이가 20세는 전후한 것으로 봅니다. 아버지는 이미 120세에 가까운 고령의 나이였습니다. 힘으로 보면 얼마든지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에 거부하고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삭은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이 아니기에 아마 아버지의 행동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이가 들더니 치매가 오는 것 같다고 오히려 아버지를 병자로 취급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아들은 말없이 밧줄에 묶여 제단에 누워있습니다. 그리고 칼이 코앞에 내리치는 순간까지 순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순종만큼 돋보이지 않습니까? 아니 더 뛰어나다고 봅니다. 바로 이런 아들의 순종으로 이 가정에 여호와이레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임한 것입니다.

  아들이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부모존중, 부모공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부모를 믿고, 공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아들의 순종은 바로 부모공경의 밑바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모공경에서 순종이 나왔고, 순종으로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십계명을 통하여 이렇게 명령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신약에서 바울은 이렇게 풀어서 말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부모공경은 곧 자녀에게 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면 자녀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부모를 공경하면 나에게 많은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하는 사람 치고 세상에서 잘 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부모를 사랑하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 치고 잘 되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가 증거하고, 주변에서 늘 보는 일이요, 실제로 체험하는 일입니다. 부모공경은 곧 나의 축복으로 이어집니다.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축복은 부모공경이라는 순종에서 완성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는 부모공경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종말의 징조로 말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부모를 거역하는 일이 생긴다고 강조합니다. 이제는 부모를 거역하는 시대입니다. 단순히 말을 듣지 않고, 순종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부모를 거역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욕하고, 매질하고, 심지어는 죽이기도 합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부모존중이라는 아름다운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그 밑에서 통곡하는 어머니 마리아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를 향하여 ‘보소서 아들입니다’ 라고 말씀하셨고, 그의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것을 봅니다. 성경은 이처럼 부모공경이 믿는 자의 마땅한 도리이며, 우리가 축복 받는 통로임을 알려줍니다.

  이제 오늘 어버이주일에 우리에게 주신 부모사랑의 구체적인 방법을 마음에 담으시기 바랍니다. 부모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좀 더 이해하고, 부모와 더 많은 시간과 교감과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실천해야 할 부모 사랑의 행동입니다. 이 믿음을 품고 평생 부모를 사랑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서해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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