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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통은 축복이다 (창 32: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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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가운데, 행동이나 말이 매우 거슬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저런 사람이 무슨 신자냐?”고 말하지만, 비판은 언제나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즉시 천사처럼 변하지 않는다.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하나님 형상처럼 아름답게 변하기에, 고통은 축복이다.

  야곱은 꾀 많은 사람이다. 팥죽 한 그릇으로 형 에서에게 장자권을 빼었다. 아버지가 형 에서에게 부어줄 축복을, 아버지를 속여서 대신 받았다. 그 결과 형 에서는 분노하여, 야곱을 죽이려고 했다. 그래서 형의 분노를 피하여, 외삼촌이 계시는 하란으로 피난을 간다.

  외삼촌의 집에서 야곱은, 20년 간 많은 고생을 하고, 아내와 재물을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지난 20년 간 야곱을 죽이기 위해 복수의 칼을 갈고 있던 형이, 사백 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죽이려고 달려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야곱은 특유의 잔꾀를 쓰기 시작한다. 자기 재산과 식구들을 3떼로 나누어서 앞서 보내고, 자신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홀로 떨어져 뒤에 남아 있었다. 나만이라도 살기 위해서였다. 그는 나뿐인 사람, 나쁜 사람이다. 야곱은 홀로 떨어져, 얍복강 가에서 밤을 지새웠다.

  밤은 공포를 안겨다 준다. 두려움을 동반한다.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밤, 짐승들이 우는 소리에, 더욱 외롭고, 두려움은 커져갔다. 정말 고통스러웠다. 인생에는 밤이 있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지고, 직장을 잃고, 사업이 안되고, 자녀가 속을 썩이나요?

  밤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인생의 밤은 외롭다. 야곱은 혼자남아 괴로워 어쩔 줄 몰라할 때, 갑자기 누군가 야곱을 붙잡아서, 그와 맞붙어 싸웠다(ק󰔨אָ, 씨름했다). 자기의 목숨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 사람과 결투를 벌렸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싸움을 걸어오셨다.

  많은 세월 동안 하나님께서 야곱을 지켜보셨지만, 타성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기에,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야곱은 고통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1. 그는 어떤 고통을 통하여 당했나?

(1) 밤을 맞았다(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얍복 나루를 건너게 하였다. 우리의 인생에도 밤이 찾아오면, 모두 다 떠나보내야 하는 시간이 온다.

  우리 인생에도 이렇게 밤이 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밤, 외로운 밤, 고독한 밤에 홀로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모든 소망이 다 끊어지고, 모든 인간적인 방법을 모두 다 동원해도, 해결할 수 없는 밤이 있다.

(2) 홀로 남아있는 고통을 당했다(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하나님께서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그를 고독하게 만드셨다. 왜냐면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정직해진다. 가면을 쓸 필요가 없기에,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야곱은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살았다. 머리가 너무 바쁘게 움직였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야곱은 외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풍요로움을 얻었다. 자식도 많고, 아내도 많고, 소유물도 많았다.

  그런데 그에게 내적인 부요함은 없었다. 성품의 부요함은 없었다. 그 내면에 세상적인 찌꺼기들이 너무나 많았다. 고독한 야곱은 자신의 내면을 보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다. 우리도 언제 변화될 수 있는가? 혼자 있을 수밖에 없는 인생의 실패와 질고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나와 단둘이 만나는, 골방기도가 필요하고, 경건의 시간(QT)이 필요하다. 홀로 있는 순간에는 가면을 쓸 필요가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 때, 우리는 괜히 똥 폼을 잡으며, 허세를 부리고 과장을 한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벗고 있어도 부끄럽지 않다.

  아무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정직한 나 혼자만의 시간에서부터, 참된 신앙은 시작된다. 위대한 기독교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신앙이란 창조주이신 하나님 앞에, 피조물인 인간이 외톨이로, 단독자로 홀로 서는 실존의 결단”이라고 정의했다.

  하나님께서는 고독한 밤에 야곱을 찾아오시고, 그와 씨름하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주님께서는 홀로 있게 하신다. 나의 나된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자기의 삶을 내려놓도록, 얍복강 앞에 우리를 세우신다.

  얍복(ק󰔴󰖸, 비워짐) ← (ק󰙍󰔧, 비운다, 공허하게 하다)는 말에서 왔다. 하나님은 얍복강에서 야곱을 부르시고, 자신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잘못 살아온 삶을 결산하도록, 야곱을 홀로 있게 만드셨다. 그래서 모든 찌꺼기들을 쏟아 놓아, 회개하도록 만드셨다.

(3) 깨뜨림의 고통을 당했다(25).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 되었더라”

하나님께서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그를 깨뜨리셨다.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시기 전에, 먼저 우리를 약하고 무력하게 하신다. 사명을 맡기시기 전에, 우리를 깨뜨리신다. 요셉, 모세, 다윗과 바울을 깨뜨리셨다. 이날 이후 야곱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아가 강한 사람을 요긴하게 쓰실 수가 없기에, 자아를 깨뜨리신다.

  지금까지 야곱은, 자기 힘으로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 살아왔다. 지금까지 노력해서 안 된 것이 없었다. 다 되었다. 아내도 자기가 원하는 아내를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결국 얻어냈다. 자기 꾀로 안 된 것이 없었다.

  그래서 잔꾀를 부렸고,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기는 했지만, 정말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야곱은 하나님을 들먹이며, 예배하였다. 직분도 가지고 있었지만, 자기 중심의 인간에 불과했는데, 환도뼈가 부러지자, 주저 앉아버렸다.

  하나님의 능력이 삶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우리의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해낼 수 있다는 강함,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문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강함을, 그 간교함을 깨뜨리신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사 중에, 소제가 있다.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다. 소제의 특징은 고운 가루다. 아주 잘게 부서뜨린 고운 가루다. 소제에 쓰이는 고운 곡식 가루처럼, 우리가 부서져 고운 가루가 될 때,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 수 있다.

  또한 번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의 모든 제물이, 죽어야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다. 우리 자신이 깨어져야, 하나님께 엎드릴 수 있다. 환도뼈가 부러지자, 26절에서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하였다.

  이 구절을 보고, 야곱이 계속 씨름했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씨름이 아니다. 씨름은 이미 환도뼈가 부러짐으로 끝났다. 환도뼈가 부러졌는데, 무슨 씨름을 더 하겠는가? 26절은 씨름이 아니라, 주님께 매달림이다. 환도뼈가 깨어지자, 하나님께 매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매달림이 아니라, 발버둥이었다. 사람은 어려움을 당할 때, 2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발버둥이고, 다른 하나는 매달림이다. 발버둥은 아직도 내 힘, 내 지식, 내 능력, 내 노력, 내 조건…으로 이겨보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매달림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으려는 자세다.

야곱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처음에는 형이 자신을 없애려고, 자객을 보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참 싸우다가, 이 분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그래서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해왔지만, 이제 야곱은 자기 힘으로 싸우던 씨름은 끝이 났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면서, 인생 길에서 어려운 사건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여전히 내 것을 가지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래서 요령을 부려보지만, 깨어지고 부서져서, 더 곤란을 당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내 방식대로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그대로 볼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이기에, 하나님께서 싸움을 걸어오셨다. 그리고 야곱을 깨뜨려 버리셨다.

  환도뼈가 부러졌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어 달리게 되었다. 우리는 절망의 고통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 매어 달려야 한다. (26)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우리들이 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게 된다. 하나님의 날개로 날게 된다. 그러므로 깨어짐이 축복이다. 깨어질 때 깨달아지고, 깨어질 때 그 속에 감춰진 보배가 쏟아져 나온다. 반석이 깨어질 때 생수가 터져 나오고, 밀알이 깨어질 때 생명의 싹이 나온다.

  하나님은 축복을 부어 주시기 전에, 먼저 비우게 하신다. 오물로 가득한 그릇에는 귀한 것을 담을 수 없다. 더러운 것을 비워야, 귀하고 소중한 것을 담아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사랑하는 사람을 깨뜨리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깨뜨리신다(히12:6-7).

  다라서 우리 인생에 어떤 어려움이 있고, 어떤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나요? 힘들지만,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손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찌꺼기들을 걸러 내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지는 귀한 시간이다.

2. 깨어진 야곱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축복(26)

얍복강에서 깨어진 야곱의 생애에,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난다. 야곱은 깨어진 다음 하나님을 만났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을 알았다.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한 사람이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축복은 물질적인 축복만은 아니었다. 이제 모두 잃는다 할지라도, 하나님만은 잃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렸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인생은 안식이 있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

  내 몸에 힘을 빼고, 하나님을 의지할 때, 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야곱은 지금 하나님께 매달려 축복을 구하고 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름을 물어보셨다(27). 이 질문은 중요하다. 야곱은 똑같은 질문을 20년 전에 받았다.

  20년 전에 그의 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물었다(창27:18-19). “너는 누구냐?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에 야곱은 “에서”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환도뼈가 깨어져 나간 지금 야곱은, 하나님 앞에 야곱이라고 했다. “사기꾼입니다”라고 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바꿔주시고, 축복하셨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라…, 거기서 야곱을 축복한지라”(28-29). 야곱은 드디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 그가 축복은 무엇인가?

(1) 평강의 복이다.

야곱은 깨어지면서 낮아진다. 겸손하게 된다. 발버둥칠 때 가졌던, 마음의 분노와 불안이 사라진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맡길 때, 평강이 찾아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히12:11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하였다. 우리 짐을 내려놓음으로, 마음에 평강이 임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하나님께 쓰임 받는 축복이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그의 찌꺼기들을 다 쏟아 놓았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위해선, 그릇이 깨끗해야 한다. 야곱은 드디어 얍복(비우다)라는 이름을 가진 얍복 나루에서, 자신의 모든 쓰레기를 버렸다.

  드디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성결의 길에 들어섰다. 아직 완전하지 않아도 성결한 삶으로 초청을 받았다. (딤후2:20-21)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이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배함이 되리라”고 하였다. 야곱은 얍복강에서 깨어짐을 통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3) 명예를 얻게 되었다.

얍복강에서 야곱의 이름은 변화되었다.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변화되었다. 이스라엘은 통치하다, 또는 하나님의 왕자라는 뜻이다. ‘사기꾼’이라는 이름에서 ‘하나님이 다스린다’는 이름으로 변화되었다.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지렁이 같은 야곱이,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재물보다 명예가 더 중요하다. 야곱은 재물 위에, 명예를 또 얻게 되었다. (잠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하였다.

  그가 깨어지면서 낮아졌고, 겸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변하였다. 이름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하게 된다. 신분이 변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축복의 사람이 되었다. 작은 그리스도인, 크리스천이 되었다. 하나님의 보호와 관심을 받게 된다.

(4) 문제가 해결되는 축복이다.

야곱은 하나님을 만나서 변화되었다. 그는 환경의 변화를 위해 홀로 머물러 기도하고 있을 때, 먼저 하나님께서는 환경보다 야곱을 변화시키셨다.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변화되자, 환경도 문제도 변화되었다. 에서의 분모의 마음이 눈처럼 녹았다. 창33장에 가면, 에서가 야곱을 만났을 때, 이상하게 감동을 받는다. 야곱이 가져간 예물도 받지 않았다. 야곱을 만나자, 입을 맞추고 울었다(33:4). 20년 동안 괴롭혔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5) 부흥의 축복이 임했다(창35장).

야곱의 가정에 부흥이 임한다. 가족들이 우상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신앙으로 회복되었다. 성령님이 임하시고,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온다(창35:9-11), 축복을 약속 받았다.

  자손들이 잘 된다는 축복을 약속 받았다. (창35:12)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져서, 절뚝거리며 걷고 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새 아침을 맞았다. 그의 마음에는 기쁨이 넘치고 평강이 넘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났다. 새 이름을 받았다. 비록 그의 몸에 상처가 났지만, 그의 성품은 변화되었다. 이제 그의 인생 주인은 바뀌었다. 인생의 주인은 야곱 자신이라고 외쳤지만, 이제는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셨다.

  따라서 우리도 바뀔 수 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열심 때문이다. 깨뜨리시면서 까지, 사랑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주님 앞에 버티지 말고, 자신의 일생을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란다. 고통은 고통스러워 말고 고마워하라.

  고통은 변장된 축복이다. 야곱은 고독과, 깨지는 고통 속에서 축복 받았다. 혹시 야곱처럼 외로운 얍복강에 홀로 있지 않나요? 내가 깨어지는 고통이 있나요?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고통스러워하지 말고, 감사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신다. 우리의 이름을 묻고 계신다.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라. 솔직히 마음을 털어놓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복 주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깨어짐을 통해 복을 받고, 복을 나누어주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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